최훈민 자문(왼쪽)과 전석호, 상남자 비주얼은 이들의 공통점
최훈민 자문(왼쪽)과 전석호, 상남자 비주얼은 이들의 공통점
최훈민 자문(왼쪽)과 전석호, 상남자 비주얼은 이들의 공통점

재능있는 예인은 언젠가는 발각되기 마련이다. 다만, 이번에는 노다지마냥 수많은 예인이 발각되었다. 배우 전석호도 그 노다지에 속한 보석 중 하나였다.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으로 브라운관에 첫 발을 내민 그는 이제 ‘불특정 다수’에게 ‘하대리’라고 불리고 있다. 그동안 ‘불특정 소수’에게만 노출되었던 연극인 전석호는 그의 이름 석 자를 알림과 동시에 새로운 이름도 얻게 됐다.

18일 텐아시아 스튜디오에서 하대리 전석호를 만났다. 이 자리에는 특별한 인물이 동행했다. ‘미생’ 촬영 내내 전석호 뿐 아니라 많은 배우 그리고 제작진이 도움을 받았던 최훈민 종합상사 자문이다. 실제 대우 인터내셔널에서 2010년부터 4년간 근무했던 최훈민 씨는 사직 이후 해외를 떠돌다 ‘미생’ 팀에 자문으로 합류해 상사와의 질긴 인연을 실감하며 극의 디테일을 살리는데 일조했다.

두 사람은 18일까지 이어진 ‘미생’의 마지막 촬영 이후, 곧장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고 했다. 모든 촬영이 종료된 이후, 스태프와 동료 선후배 배우들과 함께 간단히 한 잔 하고 왔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수컷 분위기 물씬 그리스인 조르바같은 두 남자의 수다는 술기운 탓에 더욱 유쾌했다.

최훈민 자문(왼쪽)과 전석호
최훈민 자문(왼쪽)과 전석호
최훈민 자문(왼쪽)과 전석호


Q. 촬영이 마침내 끝났다. ‘미생’은 지금 가장 뜨거운 드라마다. 드라마로 인한 변화를 실감하나.

전석호 : 이런 인터뷰 자리까지 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다. 대학로에서 공연만 하다가 요즘은 인터뷰도 하고 가끔 알아봐주시는 분들도 계시니 신기하다. 그렇지만 6개월은 갈까? 이 거품이(웃음).
최훈민 : 보름도 안갈지도 몰라(웃음).

Q. ‘미생’은 어쩌면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도 있었는데 처음에 거절했다고 들었다.
전석호 : 거절한 것은 아니고 당시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생’ 첫 촬영이 공연 첫 날과 겹치더라. 드라마 쪽은 잘 몰랐으나 캐스팅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내가 하는 것이 도리어 해를 끼치는 것 같았다.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것은 배우로서 가지게 되는 당연한 욕심이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되면 서로에게 안 좋은 상황이 올까봐 걱정했다. 아쉽지만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는데,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마지막 공연 날 전화를 주셔서 “내일부터 출근해라”라고 불러주셨다. 감사드린다.

Q. “내일부터 출근해라”라니, 로맨틱하다.
전석호 : 감독님은 위트가이다. 크게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웃음).

Q. 그런데 최훈민 자문은 비주얼이 결코 직장인 같지 않다. 배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최훈민 : 나는 평.범.하.다.
전석호 : 대체 어디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최훈민 : 실제 김원석 감독님께서 한 배역에 출연을 제안하셨지만 끝까지 안한다고 했었다. 연기는 배우가 할 일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그림을 따라갈 자신이 없다. 촬영장에서 보면 정말이지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Q. 두 사람 엄청나게 친한 것 같은데, 어떻게 친해졌나.
최훈민 : 안 친하다가 ‘급’ 친해졌다. 이 사람(전석호) 남자에게 관심없다. 문자를 보내도 답도 안한다. 다른 대리들은 다 답장이 왔는데.
전석호 : 인상이 강하다 보니까 쉽게 못 다가가겠더라. 그런데 은근 소녀 감성이더라.
최훈민 : 맞다. 소녀감성이라 시완 씨처럼 아기자기한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전석호 : 그래도 결국은 형이 먼저 손을 내밀어줬다.
최훈민 : 유대리와 하대리는 소속사가 없다보니 의상협찬이 없었다. 짜증났다. 상사에서 일할 때 의류팀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인연이 있던 거래처에 전화해서 하대리 유대리 옷 좀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하대리는 결국 예쁜 옷 못입혔다. 유대리님 다 몰아줬다. 나는 의류팀 출신이라 예쁘게 입히고 싶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펑퍼짐한 하대리 의상이 공대남자 출신의 느낌을 잘 살린 것 같다. 무심한 남자답게.
전석호 : 나는 그런게 어울린다. 미국식 정장(웃음).
최훈민 : 뭐, 여자들이 극과 극 좋아하지 않나. 도시남성을 좋아하는 반면, 이런 공대남자도 좋아한다. 족발 먹을 때 넘어오는 여자들이 있는 것처럼.

Q. 실제 하대리 전석호 씨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실감하나.
전석호 : 전혀. 길 가다가 손 내미는 사람들은 다 남자다. ‘어유, 우리 하대리’하면서(웃음).
최훈민 : 한 지인이 하대리 갖다주라며 선물 디퓨저를 주길래 전해줬다. 나중에 ‘디퓨저 잘 쓰고 있냐?’라고 하니 ‘디퓨저가 뭐예요?’라는 식이다. 상남자다.
전석호 : 디퓨저가 뭐야, 진짜? (기자 : 방향제인데 나무를 꽂아두면…)
최훈민 : 말해줘도 모른다(한숨).

Q. 하대리와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나. 그냥 봐서는 110%는 되는 것 같다. 혹시 주변에 수많은 안영이가 있는 것 아닐까.
전석호 :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다.

Q. 그렇지만 안영이와 하대리의 관계를 묘한 썸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안영이를 향한 애정도 느껴졌고.
전석호 : 실제로는 피해자들과 썸은 전혀 없고, 썸이 생기기 전에 다들 질겁을 했다. 하대리로서는 감독님과 작가님이 써주시는 대본에 충실했다. 그런데 관객은 극으로 가면 정반대를 생각하는 것 같다. 아주 끝까지 가버리니까 반대를 바랐다고 할까. 어쩌면 그것을 작가님이나 감독님이 원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j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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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생’의 매력이라고할까. 극 중 무수한 관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했다는 점이다.

최훈민 : 그것이 드라마에서 큰 포인트였다. 각자 느끼는 것.
전석호 : 한 발만 더 나가면 위험해지는데 우리는 딱 거기까지만 갔다. 사실은 용기내서 한 발 다가가는 사람보다는 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그래서 흥미롭게 바라보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보는 시청자들로서는 엊그제 겪은 현실같기도 하고. 재미있는 반응이 회사 다니는 친구가 자기네 회사 과장님이 ‘나는 오차장이야’라고 하고, 이 친구를 ‘송그래’라고 부른단다.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 못하게끔 왔다갔다 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Q. 직장 상사들이 다들 자기가 오차장이라 생각해서 힘들어 하는 신입직원들이 많다고 들었다. 실제 ‘상사맨’ 출신으로서 현실에 오차장 같은 선배는 존재하나.
최훈민 : 있다. 상사에서 만난 팀장님 네 분 중 두 분이 그랬다. 내가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취업을 했다. 졸업을 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몰래 입사했다 걸렸다. 그 때 팀장님이 등짝 한 번 때리고 채용될 수 있도록 힘을 써주셨다. 나중에 회사를 나가셨는데 회식 날 엄청나게 울었다. 팀장님이 ‘여직원들 울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왜 너가 우냐’라고 하시더라. 그 분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다.

Q. 상사맨으로 감정이입을 특히 했던 캐릭터는?
최훈민 : 석율(변요한)이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석율이 의상이 좀 튀는데, 나도 처음에 취업해서 튀는 양말을 신고다녀 인사팀에서 매일 불러댔다.
전석호 : 진짜?
최훈민 : 매일 잡아냈다. 그런데 1년 꾸준히 하니까 애들도 따라하고 회사가 변하더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어느 순간에는 내가 김동식처럼 되어 있더라. 5년차에 그만뒀다.

Q. 힘들다고는 하나 그래도 좋은 직장인데, 왜 그만뒀나.
최훈민 : 집을 사게 되면서 그만뒀다. 워낙 돈을 잘 모으는 타입이기도 하고 4년 동안 모은 돈으로 집을 샀는데, 집을 사고나니 이제 돈을 벌 필요가 없겠구나 싶었다. 사실 원래는 음악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내가 할 수 있는 음악과 하고 싶은 음악 사이에서 한계와 직면하게 됐다. 돈이나 많이 벌자하고 취업을 했다. 그런데 돈 모으고 집 사고 나니 허무해지더라. 돈으로 충족될 수 있는 욕구를 넘어가야겠다 생각하고 고민 끝에 그만두고 1년 동안 여행을 갔다. 처음에는 유럽부터 시작해서 아프리카, 중동을 돌았다. 터키에서 시작해 발칸을 도는데 CJ에서 연락이 왔다. 여행을 끝내고 오전 11시에 귀국하자마자 그날 오후 5시 바로 출근했다.

Q. 이번 드라마를 통해 일반 직장인에 대해 보다 이해를 하게 됐을 것 같다. 직장인들의 삶 중 가장 힘든 것은 어떤 것 같나.
전석호 : 가끔 서울 시내를 다닐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도 하는데, 지옥철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엄청 힘들다. 숨만 쉬어도 옆 사람한테 피해주는 것 같다. 하루 이틀도 이렇게 힘든데 1년에 360일 이상을 그런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친구 중에 수원 삼성에 다니는 녀석은 새벽 다섯 시 반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고 하더라. 어떻게 매일 그렇게 출근할까 싶다.

Q. 그렇다면 실제 경험해본 입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최훈민 : 아침에 일어나는 것. 항상 출근이 오후 1시고 퇴근이 밤 10시 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석호 : 아,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 서울스퀘어에서 촬영할 때 창밖에 서울역과 종로가 보였다. 날씨 좋은 날 한 번쯤 뛰어나가 데이트를 하고 싶기도 했을텐데 그런 욕구를 다 참고 황금시간 대에 사무실 안에서 일을 하지 않나. 물론 우리 역시도 어느 정도의 자유를 포기하고 연기생활을 하지만, 회사원들 역시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월요병이 생길만큼 이런 부분을 감수하면서 일하는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인터뷰②에서 20일에 계속.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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