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은은 연기적 갈증을 한 잔의 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고나은은 연기적 갈증을 한 잔의 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고나은은 연기적 갈증을 한 잔의 물로 채우려 하지 않는다

안정적 삶이 최고라 말하는 세상이지만, 인생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도전하는 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성과와는 무관하게 도전하는 것 자체로 인간은 빛을 뿜어낸다.

일일극이나 주말극 속 전형적인 여주인공에서 벗어나 JTBC 누아르물 ‘무정도시’에 불쑥 떠오른 고나은의 얼굴이 아름다웠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KBS1 사극 ‘정도전’으로도 성큼 걸음을 내딛어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호흡했다. 그는 이 작품이 특별했다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동근, 조재현과 같은 선배 배우들이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현장 속에 고나은 역시 고려의 기상을 그대로 물려받은 여인, 원경왕후 민씨의 강인함을 빚어냈다. 피바람을 일으켜서라도 남편 이방원(안재모)을 왕좌에 앉히는데 큰 공헌을 한 여인이다. 왕의 아내가 아닌 왕의 정치적 동반자가 되려는 의지를 품은 그런 여인이었다.

그 여인의 마음을 흠뻑 느낀 고나은은 또 다른 도전을 보채는 중이다.

고나은은 깊이 더 깊이 우물을 파고 있다
고나은은 깊이 더 깊이 우물을 파고 있다
고나은은 깊이 더 깊이 우물을 파고 있다

Q. 최근작 ‘정도전’에서 연기했던 원경왕후 민씨라는 인물은 배우 최명길이 과거 드라마 ‘용의눈물’이나 ‘대왕세종’에서 맡았던 역할이었다. ‘원경왕후=최명길’이라는 시각도 지배적이라 부담도 느꼈을 법한데.
고나은 : 최명길 선배님이 워낙 잘 하셨던터라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배님과 똑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은 대본 속 상황에 충실하자고 마음먹고 나름대로 캐릭터를 잡아갔다.

Q. 부담인 동시에 배우 최명길에 이어 2대 원경왕후가 된다는 자부심 역시 느낄 수 있었을 듯 하다.
고나은 : 내가 2대 원경왕후로 불린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지만 최명길 선배님과 다르게 ‘정도전’에서는 민씨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다. 그래서 아쉬운 점은 있다. 감독님도 애초에 ‘민씨는 잘 하면 잘 보이는 역할이지만 자칫 묻힐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배우의 입장에서는 묻혀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물이니 잘 살려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사 한 마디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표현해야 그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 연구했다.

Q. 드라마 타이틀롤이 정도전인 탓에, 남편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기 전 막을 내려버렸다. 민씨의 입장에서는 전성기 직전 문이 닫힌 셈이긴 하다.
고나은 : 그렇지. 가장 좋을 때 끝나버렸다. 그러나 중전 자리에 오르고 나서 민씨의 인생에는 처참한 일들이 많이 생기니, 어떻게 보면 가장 행복한 순간에 끝을 맺은 것이기도 하다.

Q. 스스로 생각한 원경왕후는 어떤 여자였나.
고나은 :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여성들이 소극적이고 남자들의 내조를 하던 존재였다고 하지만, 고려 여인들은 굉장히 당찼다고 한다. 원경왕후는 결국 고려의 여자가 조선으로 걸어들어간 것이니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한 그런 여인이었다. 야심도 있어, 남편을 어떻게 해서라도 왕으로 만들려고 했던 여자다. 또 충분히 그럴 능력을 갖춘 여인이기도 하고. 이런 여인이니 민씨가 뱉어내는 대사들은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을 수밖에.

Q. 민씨의 삶을 더 이해하기 위해 사료를 찾아보기도 했나.
고나은 : 사료보다는 드라마를 찾아보았다. 실존인물이라고 하지만 결국 드라마 안에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것은 기본적인 배경들만 알고자 했다. 사실 후반부에 갑작스레 투입된 것이라 준비할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어려웠던 점은 실존인물 연기라는 것보다 사극연기라는 점 때문이다. 전혀 다른 장르라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 대사톤도 그렇고.

Q. 이성계 역 유동근이나 정도전 역 조재현 등 대단한 선배들이 많았던 작품이라 연기적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나은 : 정말! 중간에 들어갔던 나로선 선배들이 다져놓은 바탕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등바등 해내야 했다.

Q. 에너지가 어마어마한 배우들과 함께 하는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고나은 : 대본 리딩 때부터 압도당했다. 리딩 이후에 걱정을 했을 정도다. 다행히도 선배들 또 선생님들이 배려를 많이 해주셔 조금이나마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갈수록 익숙해질 수 있게 이끌어주셨다.

Q. 갑자기 투입됐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민씨는 이방원(안재모)과 혼례 신도 없이 갑작스레 등장했다.
고나은 : 안 그래도 안재모 오빠가 ‘우리 언제 결혼했지?’라고 물어보더라. 선생님들도 농담식으로 그렇게 물어보시고.

Q. 첫 사극 도전이 힘들었다 했는데, 그 와중에 느끼게 된 사극만의 매력이 있다면.
고나은 : 사극은 보통 하시는 분들만 계속 하지않나. 왜 그런 것인지 알겠더라. 나로선 처음 시도하는 장르인터라 익숙하지 않은 말투를 해야하고 그것을 또 연기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Q. 게다가 ‘정도전’은 오랜만에 엄청난 인기를 끈 정통사극이다. 투입되기 전부터 관심있게 지켜본 드라마였을까.
고나은 : 들어가게 됐다는 말을 듣고는 1회부터 보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왜 이걸 안봤지’ 싶더라. 요즘 정치상황과도 비슷한 면이 있었고,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극은 반드시 필요한 장르라는 생각도 다시금 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역사적 사실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도 그러했다. 무엇보다 만드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몸소 체험하게 되어 좋았다. 퓨전사극도 많이 나오지만 정통사극의 무게감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나로서도 이 작품 때문에 마치 연기를 처음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내가 그동안 연기를 쉽게 했었나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정도전’ 이후 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정도전’ 이후 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정도전’ 이후 그의 시선은 어디로 향할까

Q.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한 작품이었고, 제작진 역시 혼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강렬하게 느껴진 드라마였다. 민씨의 시각에서 명장면은 무엇이었나.
고나은 : 원경왕후를 떼어놓고 마지막 회가 좋았다. 어쩔 수 없는 각자의 상황이 있는 법이고 빼앗으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이 존재하는 가운데 그야말로 대망의 엔딩이 되었다. 매회 대본을 볼 때마다 작가님께 감탄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잘 표현할까 싶었다. 작가라는 직업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된 작품이다. 흠, 그리고 민씨의 명장면은 남편 이방원을 위해 정도전에게 맞서는 장면을 꼽겠다. 여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대목은 인상 깊었다.

Q. ‘정도전’을 통해 느낀 것이 많은 만큼, 사극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지진 않았나.
고나은 : 배우로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이키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일단 내공으로 꽉찬 선배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누가 되고 싶지 않아 민씨라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들에 깊고 디테일하게 들어가기 위해 학교다닐 때보다도 더 열심히 임했다. 여전히 멀었으나 소소하게나마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듯 하다. 그러니 사극에 또 도전 해보고 싶은 마음은 든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장르에도 또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새기게 된 마음가짐이 사극이기에 생긴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도전해야할 것들이 많다.

Q. 그런데 참 궁금한 것이 있었다. 드라마 ‘보석비빔밥’ 이후 공백기(2년)가 길었다. 이유가 늘 궁금했다.
고나은 : ‘보석비빔밥’ 이후 여러 문제로 쉼이 길어졌는데, 개인적으로도 아쉽다. 사실 많은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도 했다. 만약 계속 일을 했더라면 일 자체에 급급했을텐데, 일종의 슬럼프 같은 시간을 지나 심적으로는 더 여유로워졌다.

Q. 다시 돌아온 이후, 누아르에도 도전을 했고 이젠 사극이다. 좀 더 도전적이 됐다.
고나은 : 나라는 배우를 스스로 생각해보니 이미지가 다소 한정적이더라. 깨고 싶었다. 그 수단 중 하나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극에도 이렇듯 도전했다.

Q. 끝으로 ‘정도전’에 참여한 일원으로서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리더란.
고나은 : 정도전처럼 국민이 주인이라 생각하는 리더. 그리고 그 주변에 원경왕후 같은 조력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비록 이방원은 원경왕후를 정치적 동반자라고 생각지 않았으나.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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