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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우리에게 벌거숭이와 같은 존재다. 음악으로, DJ로, 또 여러 사회적 이슈를 통해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설파했다. 그는 결코 우리가 듣고 싶은 달콤한 말을 해주지 않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하는 날카로운 이야기들을 던졌다. 덕분에 한때는 리더 대우를 받았지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신해철과 같은 진짜로 ‘센’ 캐릭터가 한때 가요계 최고의 스타로 각광받았다는 사실이 좀 놀랍다. 요즘의 뮤지션들은 너무나 착해졌다. 침묵하고, 순응적이고, 또는 웃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요즘 누가 신해철처럼 사회적 이슈에 대해 대놓고 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또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자해 음악적 실험을 펼쳐 보이겠는가. 이쯤 되면 신해철이 연구대상이 아니라, 당시 신해철을 받아줬던 시대가 연구대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음악이 남는다. 신해철, 그리고 넥스트의 음악은 우리에게 메탈리카, ‘공각기동대’, ‘첩혈쌍웅’과 함께 로망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태지와 함께 90년대를 상징하는 뮤지션인 신해철은 화석이 되길 거부하고 다시 새 앨범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의 나이 마흔일곱. 하지만 그는 아직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간직한 채 우리 앞에 섰다. 새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 파트 1’을 발표한 신해철을 7일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Q. ‘SNL 코리아’에 나온 것이 화제가 됐다. 기본적으로 출연자가 망가지는 프로그램인데 출연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신해철: 그렇지는 않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이미 내가 망가지는 걸 거부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웃음) 영국 유학시절에 TV 쇼 프로그램에서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퀴즈를 풀고 웃고 떠드는 걸 봤다. 나중에 자막 올라가는 걸 보니 예스의 릭 웨이크먼인 거다. 난 그런 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해철이 왜 따귀를 맞느냐, 체중으로 놀림을 받느냐는 핵심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재밌어 하느냐, 그리고 팬들도 즐거웠느냐다. 음악 프로그램 나가서 음향이 만족이 안 돼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SNL 코리아’ 나가서 웃고 떠드는 게 더 낫다. 그리고 팬들에게 앨범이 나왔다고 알려는 줘야하지 않나? 그 정도면 된 것 같다.

Q. 유희열이 20년 만에 함께 방송에 출연한 거라고 하더라. 유희열은 신해철을 통해서 라디오 ‘음악도시’로 방송 데뷔를 하지 않았나? 격세지감일 것 같다.
신해철: 둘이 방송에 같이 나온 것은 아마도 그 정도 됐을 거다. 뭐, 그런데 내가 그런 거엔 둔감한 편이다. 얼마 만에 방송에 나왔다는 것은 그렇게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니지 않나.

Q. 컴백 기자회견 당시 음악을 만든 과정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식으로 방송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던가?
신해철: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하면 서로 부담스러울 것 같다. 방송에서 그러면 다들 하품하지 않을까? 난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는 편인데,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 의도를 너무 자세하게 설명해주면 음악을 들을 때 오히려 불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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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도 만났으니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앨범은 미디의 비중이 매우 크다. 리허설 밴드가 연주를 해서 나온 라인들을 미디로 다시 구현해냈다. 이러한 복잡한 작업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나?
신해철: 몇 가지 과정이 있었다. 미디를 해오면서 내 나름의 소리를 만들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다보니 내가 하는 작업이 마치 영화에서 실제 사람의 모션을 캡처해 3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것과 흡사해지더라. 이런 작업의 모티브는 비트겐슈타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드럼을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비트겐슈타인을 작업할 당시 드럼 프로그래밍에서 그 세기, 비트 등을 세밀하게 디자인하는 기술이 비로소 가능해졌기 때문이지. 당시 미디를 사용하는 이들의 고민은 샘플 CD를 사서 그 안에 담긴 소스를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소리 하나 하나를 일일이 프로그래밍할 것이냐 하는 것은 문제였다. 그런 와중에 서태지가 완성된 샘플을 쓰는 것이 일일이 소리를 만드는 것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인해서 부지런한 미디 프로그래머들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 유행은 계속 바뀌는 중이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굉장히 발전했다. 가령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의 경우 현악 연주자들이 앉은 의자의 간격까지 설정할 수 있고, 각 연주자에게 개성까지 부여할 수 있다. 베이스를 프로그래밍할 때는 백인 연주자인지 흑인 연주자인지도 정할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을 보고 있자니 미디를 중심으로 내 앨범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일본인들이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만들 때 깡통 하나 튀어 오르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하려고 탄성계수를 측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미친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더라.

Q.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통해 미디를 하는 것이 밴드 사운드보다 낫다는 것인가?
신해철: 편집증적으로 무조건 미디를 해야 한다고 고집한 것은 아니다. 음악적으로 결과가 더 낫다면 그것을 선택할 뿐이지. 100% 미디는 아니다. 옛날 넥스트 멤버들이 세션해 놓은 거 일부를 썼고, 내가 직접 연주를 한 것도 있다. 이틀 걸려서 네 마디 프로그램 하느니, 내가 연주하는 게 더 빠르고 나은 부분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번 EP에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프린세스 메이커’(Princess Maker)’와 같은 그루브한 흑인 비트를 주로 썼는데,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들이 이후 비슷한 장르의 곡을 프로듀스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Q. 예전에 신대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업실에 놀러온 신해철이 소리를 잡는다고 해서 맡겨놓고 집에 갔다가 다음날 와봤더니 그대로 그 자리에서 계속 소리를 잡고 있더라고.
신해철: 소리를 잡는 것은 결국 기계가 아닌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소리를 잡을 때 혼자서 다 해버리는 것이 낫다. 나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나보다 날고 기는 ‘덕후’들이 많을 거다.

Q. 정규 6집 ‘리부트 마이셀프’는 신해철의 2집 ‘마이셀프(Myself)’에서 이어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집에서 했듯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원하는 것의 중간에 있는 앨범이라는 뜻인가?
신해철: ‘마이셀프’는 당시 상황 때문에 우연히 그런 앨범이 나온 거다. 이번 앨범에 담긴 네 곡이 대중과의 타협점은 아니다. 특별히 뭘 보여줘야겠다는 것도 아니고, 대중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죽인 것도 아니다. 지금 내 마인드는 데뷔 초창기와 비슷하다. 데뷔 때 내 꿈은 내가 만든 곡을 제발 녹음실에 들어가 녹음해보는 것 단지 그거였다. 1집에 담긴 음악들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헤비메탈과는 동떨어져 있었지만, 나에게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못 하는 것보다 녹음이라는 것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금 내 마인드가 그렇다.

Q. 데뷔 후 가장 오랫동안 활동을 쉬었다.
신해철: 휴식기에 들어가기 약 4~5년 전부터 힘든 싸움들이 시작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전업 뮤지션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난 음악으로 번 돈은 다음 앨범을 만드는데 쏟아붓고 라디오 DJ로 생계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MP3 사태가 벌어지면서 음반사들이 일제히 돈을 회수했고, 자본이 돌지 않기 시작했다. 사실 난 그때부터 음악적으로 정체기에 들어간 것이다. 난 인류가 존속하는 한 음악은 영원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음악도 있고, 사람도 있는데 돈은 없는 거야. 그때 처음으로 ‘돈을 좀 벌어놓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내 앨범 작업도 힘들어졌다. 소비자들이 내 음악에 대해 생산자금을 대는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제작비 마련이 힘들어지니 휴지기가 길어질 수밖에. 그 외에 기술적인 한계도 있었다. 6년 전 쯤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이 도저히 기술적으로 구현이 되지 않아서 미디 포기 선언을 한 적도 있다. 그런 여러 문제들이 겹치면서 타의로, 또 자의로 음악을 쉬어야 했다.

Q.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제 신해철도 완전히 부모세대가 된 것 아닌가.
신해철: (버럭 하며)아직 아이들이 어리니까 완전히 부모세대는 아니다! 하하. 다행인 것은 그래도 내가 젊었을 때 했던 이야기를 뒤집지 않게 돼 다행이라는 점이다. 이제는 신해철, 또는 넥스트의 또 다른 챕터를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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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만들어 15년 간 손질한 곡이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 곡에 총각 때 만든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의 내레이션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신해철: 내가 볼 때 요새 러브 송의 95%는 발정 난 암컷 수컷들이 유전자의 명령으로 짝을 찾는 일시적 연애담이다. 내 노래 중에는 바로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가 그런 곡이다. ‘단 하나의 약속’은‘왕자와 공주가 만나 행복하게 결혼해 잘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는 동화의 뒷이야기, 가령 아기 똥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상까지 다룬 노래다. 사랑이 은은하지만 영원한 불꽃으로 바뀐 이후를 노래한 것이다. 젊은 애들은 우리의 사랑을 뽕짝의 소재 정도로 보는데, 우리도 칼 같은 각오로 사랑을 유지한다. 미안한데, 니들의 러브스토리가 같잖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니 ‘단 하나의 약속’에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의 내레이션이 붙이는 것은 대단히 재밌는 상황인 거다. 이 노래를 좋아했던, 이 노래를 들으며 연애를 했던 이들에게는 대단한 윙크가 되지 않을까?

Q. ‘단 하나의 약속’을 보면 역시 신해철은 웅장한 스케일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신해철: 처음에는 이렇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결국 지 버릇 개 못 주는 거지. 웅장함은 꼭 필요한 설정이었다. 지금의 내 사랑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를 설명하려면 이 정도 엔딩은 필요했다. ‘프라미스 디보션 데스티니…’의 내레이션은 ‘단 하나의 약속’이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보다 세 배 정도는 비장했다. 이제는 이 단어들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간다는 비장함 말이다.

Q. 기자회견 때 ‘단 하나의 약속’을 설명할 때도 그렇고, ‘SNL 코리아’에서도 그렇고 ‘아프지 말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더라. 나이가 든 건가?
신해철: 나 어린 시절 할머니가 삼촌들에게 ‘니 뭐한다꼬! 아프지만 마라’라고 말씀하신 거를 나 나름대로 이야기한 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도 괜찮다고, 좋다고 해주는 목소리가 아닌가. 우리는 그런 위로를 박탈당한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지. 국가가 공교육을 통해 개인에게 소명의식을 부여함으로써 각자가 최대치의 결과물을 이끌어내게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미카엘 엔데의 ‘모모’에서처럼 시간도둑에게 쫓기면서 살게 되는 거다. 내가 ‘도시인’에서 이야기한 그러한 상황의 원인이 뭘까 하고 생각을 해보니, 바로 맹목적으로 발전하려는 자세더라. 이런 이야기를 예전의 신해철이라면 더 전투적으로 할 수 있었겠지. 또 그럴 날이 올 거다.

Q. ‘아따(A.D.D.a)’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신해철의 컴백 곡 치곤 조금 가볍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복해서 들어보니 예사 곡이 아니더라.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이 작업의 프로세스를 구현하기까지 1년 반 정도 사전작업을 한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다.
신해철: 가벼운 것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심각한 영화 만들던 감독들이 잠깐 가벼운 거 보여준다고 외도하다가 박살이 날 수 있다. 처음에 이 곡 만들었을 때에는 주위에서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무거운 거 만들던 사람이 본인은 힘 빼고 만들었다고 해도 옆에서 보기에는 무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난 내가 더 가벼워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가벼워지고, 더 놀아줄 수 있으려면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더라. 사실 ‘아따’가 요즘 유행하는 곡들에 비하면 복잡한 편이긴 하다.

Q. 작년에 조용필은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음악을 선보였다. 신해철도 그런 방식을 생각해보진 않았나?
신해철: 트렌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용필 형은 소리, 작법 모두를 최근 트렌드에 맞췄다. ‘리부트 마이셀프’는 최근의 팝 트렌드를 따라간 경우다. 지금 해외에서는 70년대 골든 에이지의 그루브를 현대적인 사운드에 접목해 발매년도 자체가 헷갈리는 음악들이 나오고 있다. 난 그쪽으로 간 느낌이다.

Q. 방금 설명한대로 ‘캐치 미 이프 유 캔’ ‘프린세스 메이커’는 신해철 나름대로 펑키한 복고적인 R&B에 접근한 곡들이다. 오랜만에 컴백 앨범인데 록이 없다는 것은 아쉬워하는 팬들도 있지 않을까?
신해철: 내가 록을 했을 때 니들이 많이 팔아준 적도 없잖아! 디스토션 기타가 징징거리는 음악은 이미 많이 만들어 놨다. 공개하는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번에 싱코페이션이 많이 들어간 댄서블한 음악들이 나왔다고 해서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 2도 그런 음악이 담길 거라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펑키한 R&B는 내가 원래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Q. 신해철의 골수팬들은 ‘디 오션(The Ocean)’과 같은 곡들을 여전히 기대한다.
신해철: 내가 지금 ‘디 오션’의 150% 내용을 가지고 200% 완성도의 곡을 만들면 들을 사람 아무도 없다. 시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리스너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반성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 어렸을 때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펫츠(Master of Puppets)’ 앨범을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이틀간 학교를 안 가고 음악만 들었다. 그런데 지금 메탈리카 신보가 나온다면 내가 그걸 듣는데 얼마나 시간을 소비할 것 같은가? 딱 러닝타임 정도일 거다.

Q. 본인의 음악취향은 어떤가?
신해철: 영혼이 소용돌이 칠 시기에 막대한 시간을 투자한 음악이 평생 간다. 내 속을 들여다보면 90%의 공간을 딥 퍼플과 디스코가 차지하고 있고, 다른 음악들이 나머지 공간에 쟁여져 있지 않을까?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를 처음 듣고 울었을 때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지 평생 음악을 하게 될 에너지를 얻게 된 것 같다.

Q. 록만큼 디스코를 좋아했나?
신해철: 그렇다. 초등학교 때 밴드부에서 클라리넷을 배우면서 오히려 음악과 멀어졌다. 그 때 디스코가 마약처럼 내 혈관을 타고 들어왔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고맙다. 내가 쾌락을 기본으로 음악을 대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디스코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음악은 90% 이상이 쾌락을 반영한다. 나머지 10%에 철학, 사회적인 면이 들어가는 것이지.

Q. 본인이 만든 곡 중에 가장 실험적인 곡은 뭐라고 생각하나?
신해철: 글쎄 개인적으로 실험적, 상업적인 기준에 대한 구분이 없다. ‘디 오션’을 만들 때도 다른 곡들보다 더 심각하고 철학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재밌고, 즐겁다고 여길 뿐이었다. 특히 뒷부분에 나오는 키보드 솔로를 치면서 ‘야호’하면서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Q. 1992년 환경보호 콘서트 ‘내일은 늦으리’를 기념해 발매된 앨범 ‘내일은 늦으리’에 담긴 ‘1999’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신해철: 그때 12트랙 오디오 레코더가 생겨서 거기에 소리를 녹음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샘플로 삼아 신디사이저로 작업했다. 말하자면 디지털 멜로트론이랄까? 그 노래 만들면서도 미친놈 소리 꽤 들었다. 지금 정기송과 그때 넥스트 초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런 스타일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 말이다. 넥스트 초기에는 댄스뮤직과 메탈 기타를 결합한 형태의 음악을 해보고 싶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난 후 나인 인치 네일스, 미니스트리, 롭 좀비 등이 등장하면서 그런 트렌드를 형성하게 됐다. 그걸 보면서 역시 동시대 음악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욕망을 품는구나 생각했다.

Q. 최근 신해철, 서태지, 이승환의 합동공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만약 성사되면 ‘내일은 늦으리’ 이후 처음 아닌가?
신해철: 그 공연 여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 머리 아프다. 그렇게 세 명이 모이면 내가 힘들어질 거다. 내가 양쪽 수발 다 들어야 하는 그림이란 말이지. ‘내일은 늦으리’ 후에도 서태지와 아이들, 이승환과 SBS ‘슈퍼콘서트’ 등 여러 공연에서 함께 한 적이 있다. 물론 ‘내일은 늦으리’는 다른 콘서트와는 달랐다. 모두 라이브였고, 출연진이 정말 쟁쟁했다. 그때 ‘내일은 늦으리’를 하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려나 보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 라인업이 그해 메인스트림 전력의 전부라고 하면 어이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

Q. 앞으로 선보여질 넥스트에 대한 궁금증도 크다. 기자회견 때 ‘넥스트 유나이티드’라는 이름 하에 여러 멤버들이 다양한 밴드를 이룰 거라고 설명했다.
신해철: ‘넥스트 유나이티드’를 하나의 축구팀으로 보면 그 안에 다양한 포메이션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포메이션 K가 국악, 포메이션 M이 메탈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각 포메이션마다 구성원이 달라질 것이다. 넥스트 유나이티드는 연주자의 개인적인 능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팀워크에 중점을 두는 형태가 될 것이다. 내가 U2처럼 어촌 마을에 함께 살던 고향 친구들끼리 팀을 결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멤버가 나가고 들어고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넥스트라는 이름이 음악집단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넥스트 유나이티드를 통해 이것을 최대한 여러 용도로 펼쳐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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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악도시’ ‘고스트스테이션’ 등의 DJ로 신해철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다.
신해철: DJ는 내가 음악만큼 좋아한 일이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 인생을 그릴 때 제1의 꿈이 음악, 그 다음이 프로듀서, 엔지니어, 그리고 DJ였다. DJ는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내가 제일 괴로웠던 시절이 ‘고스트스테이션’이 가장 잘 나갈 때다. 오늘 한 말이 내일 기사화되니까. 내가 한 말을 미디어가 다 받아 적는 것은 나를 무력화 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다. 결국 좋지 않은 이야기들만 남게 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내 말이 기사화가 되면 결국 의도는 빠지고 껍데기가 남고, 나중엔 껍데기마저 변형되더라.

Q. 그럼 혹시 DJ 복귀에 대한 생각은 없나?
신해철: 요새는 팟캐스트도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다르다. 난 쉬는 동안 대중에 대한 내 애정은 회복을 했다. 공백에 들어간 후 초기 3년 동안은 다시는 대중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근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더라. 하지만 대중에 대한 내 신뢰를 회복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방송을 하다가 정치적 사회적 이슈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대중은 날 지켜주기 전에 먼저 돌을 던지더라. 때문에 방송을 다시 하기가 조심스럽다.

Q. 요새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듣나?
신해철: 요새는 나도 유튜브에 올라탄다. 60년대 그루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에게 귀가 간다. 미국 팝, 힙합의 비중은 여전히 적다. 요새는 리마스터 앨범들을 챙겨듣는 편이다. 내가 나중에 선배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리마스터 작업이 아닐까 한다.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된 리마스터 앨범이 나온 게 없다. 가끔 보면 밸런스가 무너진 결과물들이 나오기도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리마스터 작업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Q. 예전에 앨범 ‘정글 스토리’ 속지에서 신해철이 ‘크게 될 도현이’라고 적은 것이 기억이 난다. 실제로 윤도현은 YB를 통해 넥스트 이후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록 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후 대중을 아우를만한 록 스타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신해철: 한때는 콘텐츠의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돌이 중심이 된 주류를 제외한 음악, 非댄스뮤직들이 인디로 규정되고, 인디 신이 본래 의미와 달리 다양한 음악의 도피처가 된 역사가 10년을 넘어서면서 인디 신의 수준이 꾸준히 높아졌다. 하지만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장수 한 명이 구멍을 하나 뚫어줘야 전쟁에서 이기듯이 여기서도 스타가 나와 줘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시점에서 넥스트가 상업적으로 엄청나게 부활하는 것이 후배들에게 구멍을 뚫어주지는 못한다. 넥스트가 아닌,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가 나와서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즉, 국카스텐과 같은 친구들이 쭉쭉 뻗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국카스텐 이 새끼들아! 빨리 앨범 내라. 너희가 멈춰있으면 결국 너희 후배들이 기회를 잃는다.

Q. 이제 데뷔 25주년으로 중견을 넘어섰다. 늙어서 꾸준히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은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롤링스톤즈처럼 계속 본인들의 스타일 추구하는 것 아니면 데이빗 보위, 브라이언 이노처럼 늘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것. 신해철이 보기에는 뭐가 더 멋진가?
신해철: 난 오서독스한 것, 잡탕인 것 둘 다 멋지다고 생각한다. 평생 한 길을 가는 이들은 정말 존경스럽고, 미친년 널뛰기하듯이 이런 저런 음악 왔다 갔다 하는 이들은 걔 중에 속보이는 경우도 있고, 좋은 결과가 있는 이들도 있다. 난 양쪽에 다 감동을 받는 편인데, 그래도 진짜 부러운 것은 한 길을 파는 사람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유의미한 단어는 디보션(Devotion)이다. 최근 방송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신부가 꿈이었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는데, 그때는 택하고 싶은 직업이 없었다. 보통의 직업은 다 웃겨 보이는 거다. 그래도 신부는 나를 통째로 헌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음악이 그런 것이더라. 이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죽는 순간에 ‘난 음악에게 바칠 만큼 바쳤어’라고 이야기할 가능성이 있구나. 아직은.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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