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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차 커플 ‘때려쳐’(여)와 ‘박살내’(남)의 첫 데이트 영화는 ‘트랜스포머’(2007)였다. 이후 두 사람은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의식을 치르듯 로봇들을 만나러 극장을 찾았다. 하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퇴화하는 이야기에 이들은 실망했고, ‘트랜스포머3’를 보고 난 후, ‘다시는 이 시리즈를 보지 않으리’ 다짐을 했다. 하지만, 욕하면서도 결국은 보게 된다는 ‘트랜스포머’의 마력은 강력했다. 이들은 결국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4’)를 보고야 말았으니, 남은 것은 뭐? 논쟁과 언쟁이다. 가상의 두 인물을 통해 ‘트랜스포머4’를 조목조목 해부해봤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논쟁1. 중국홍보 영화?
리빙빙 한경
리빙빙 한경
때려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 인생에서 사라진 2시간 44분(상영시간), 어떻게 보상할거야. 이래서 내가 ‘트랜스포머4’는 보지 말자고 했잖아!
박살내: 왜 나한테 분풀이야.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10개관 중에 8개관이 ‘트랜스포머4’인데 어떡해. 그리고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뭘 원한거야. 어차피 주제의 견고함이나 플롯의 치밀함을 위한 영화가 아니잖아. 원래 이 영화는 머리 비우라고 보는 거야. ‘트랜스포머4’에서 ‘블레이드 러너’ 같은 철학을 원하면 난감하다고.
때려쳐: 누가 철학적인 사유까지 원한대? 빈약한 이야기와 허술한 캐릭터는 접어두더라도 액션만큼은 참신했어야 한다는 거야. 그에 비해 대기업 PPL(간접광고)은 어찌나 지능적으로 끼워 넣었던지. 도망가던 조슈아(스탠리 투치)가 냉장고에서 중국산 팩우유를 꺼내 쪽쪽 빨아먹을 땐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왔어. 우유 외에도 중국산 자동차, 컴퓨터, 전자제품 매장, 직불카드, 술! 중국 홍보영화도 아니고, 원.
박살내: CF 감독 출신다운 마이클 베이의 위엄이지! 하하하.
대려쳐: (까칠) 뭐?
박살내: 농담이야, 농담. 정색하긴. 중국으로부터 160만 달러나 투자 받았으니 눈치를 안 볼 수 없었겠지. 중국시장이 또 어마어마하잖아. ‘중국에서 1위하면 삼대가 먹고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난 그보다 사무라이 로봇을 등장시키고 그 로봇 더빙을 일본 배우 와타나베 켄에게 맡긴 게 더 흥미로웠어. 일본 시장을 염두에 둔 선택 같았거든.
때려쳐: 그럼 한국 시장은?
박살내: ‘트랜스포머2’에서 LG 휴대전화가 등장하긴 했었는데… 이번엔 글쎄…
때려쳐: 뭐야? 우린, 호갱님인 거야?

#논쟁2. 전형적인 할리우드가족주의 + 마이클 베이의 자기 복제
마크 월버그 마이클 베이 복사
마크 월버그 마이클 베이 복사


때려쳐: 그나저나 샘 윗윅키(샤이아 라보프)인지 웩웩웩인지가 안 나온다고 해서 뭔가 다를 줄 알았더니, 스토리가 더 산으로 간 느낌이야.
박살내: 난 주인공이 마크 월버그(케이드 예거 역)로 바뀌어서 오히려 좋던데? 샤이아 라보프가 미성숙한 ‘초딩’ 같았다면, 마크 월버그는 진짜 사나이를 보는 느낌이었어. 뭔가 영화에 묵직한 중심이 잡힌 느낌이랄까.
때려쳐: 나라고 왜 그런 기대를 안 했겠니. 그런데 마크 월버그가 들어오면서 가족주의 코드만 강해져 버렸어. 지구 평화 운운하는 옵대장도 그렇고, ‘치마가 너무 짧은 게 아니냐’고 딸(니콜라 펠츠)에게 면박 주는 마크 월버그도 그렇고, 쌍팔년도에나 먹힐 이야기를 그리도 장황하게 하다니. 야, 넌 어디 가서 그러지 마라. 꼰대 소리 듣기 딱 좋다.
박살내: 그러고 보니 마크 월버그(아빠)-니콜라 펠츠(딸)-잭 레이너(딸 남자침구) 조합이 뭔가 상당히 낯익은데…
때려쳐: 뭐야? 정말 모르는 거야?
박살내: 뭘?
때려쳐: 보자마자 딱 알겠더만. 영화 ‘아마겟돈’(1998)이잖아. 브루스 윌리스(아빠)-리브 테일러(딸)-벤 애플렉(딸 남자친구) 조합을 고스란히 가져다 썼어. “금지옥엽 같은 내 딸을 감히 너 따위가 건드려?” 하다가, 막판에는 “내 딸과의 교제를 허락하겠네” 아우~~ 유치해.
박살내: 하하하. 그런데 ‘아마겟돈’, 마이클 베이 영화 아니야?
때려쳐: 그러니까 더 문제라는 거야. 자기 영화를 복제한 거니까. 그런데 이 영화 캐릭터에 문제가 한 두 개니?
박살내: 하긴. 대륙의 여신 리빙빙은 너무 안쓰럽더라.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를 할리우드가 망가뜨리다니. 할리우드 감독들 눈에는 동양여자가 모두 이소룡의 핏줄로 보이나? 과학자로 나와서 하는 일이라곤, 봉 들고 무술하는 것 밖에 없으니… 스탠리 투치와의 러브 라인도 너무 뜬금없었고.
때려쳐: 리빙빙은 그래도 (슈퍼주니어 출신) 한경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 한경은 등장하자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비명횡사하잖아. 내 뒤에 앉은 여자들이 “한경 나왔다!”고 속닥거리지 않았다면, 난 한경이 나온 줄도 몰랐을 거야.
박살내: 갑자기 ‘어벤져스2’ 수현이 걱정되네. 수현도 과학자로 등장한다던데,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농담 따먹기만 하다가 사라지는 거 아니야?
때려쳐: 수현은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블링크로 출연한 판빙빙 정도만 나와 줘도 좋겠어. 판빙빙 출연 분량(5분)에 대해서 말들이 많던데, 보랏빛 포탈로 공간 이동하는 블링크가 내 눈엔 정말 멋졌거든. 결국 중요한 건 출연 분량이 아니라 존재감인 것 같아. 그나저나 리빙빙-판빙빙 이름은 한 끗 차이인데, 리빙빙은 감독 잘못만나서 이미지만 구긴 느낌이야. 뭐, 본인이 만족한다면 할 말 없지만.

#논쟁3. 절제 없이 퍼붓기만 하는 액션 + 락다운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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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살내: 그래도 로봇 다루는 솜씨 하나는 마이클 베이가 일품 아니니? 달리던 차들이 변신 할 때의 쾌감은 정말 끝내주는 것 같아. 특히 새로운 악당 락다운이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로 변신,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장면은 섹시함의 극치였어. 마이클 베이는 남자들의 로망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때려쳐: 뭐야~ 아마추어같이. 거대로봇을 실사영화 속에서 재현하는 건, 이제 ‘트랜스포머’만의 장점이 아니야. 그런 면에서라면 차라리 얼마 전 개봉한 ‘퍼시픽림’이 훨씬 더 흥미롭지. ‘퍼시픽림’은 드리프트라는 정신의 융합을 통해 인간과 로봇의 조화로운 합체를 그려냈잖아. 그에 비하면 ‘트랜스포머’ 로봇들의 싸움은 이젠 너무 1차원적으로 느껴져. 그리고 절제라는 게 뭔지 모르는 마이클 베이의 ‘파괴지왕’적 악취미가 이번엔 너무 과해. 액션도 강약중간약 효율적으로 조율돼야 재밌지, 강강강강강만 계속 되풀이 되니까 시신경이 마비되는 느낌이었어. 그 뭐다냐? 한계효용체감의법칙? 그 법칙에 딱 걸린 느낌이야. 액션이 뒤로 갈수록 심드렁해지는 기분 말이야.
박살내: 나는 그래도 마이클 베이가 이번에는 액션에 나름 신경을 썼다고 생각해. 무엇보다 ‘싸우고 있는 저 로봇이 내 편인지 네 편인지 혼동됐던’ 지난 시리즈의 단점이 많이 개선돼서 좋았어. 오토봇 수를 줄이는 대신 개성을 살린 것도 ‘신의 한 수’ 였다고 보고.
때려쳐: 그 따위 말, 때려 쳐. 오토봇 개성을 살렸다고? 개성을 살려서 옵티머스 프라임이 그 지경이 된 거야? 너, 내가 옵대장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지? 옵대장과의 의리 때문에 그래도 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챙겨봤는데, 이번엔 실망이 너무 커. 카리스마 대마왕 옵대장이 왜 갑자기 중2병 환자가 된 거냐고. 옵대장이 대사를 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어.
박살내: 하하하. 대사가 유치찬란하긴 했지. 뭐라고 했더라? “전설은 실재한다”, “창조자여 난 네가 누군지 모른다. 네가 지구를 침략하면 나는 너를 처단하러 갈 것이다”라고 했나?
때려쳐: 화룡점정은 이거야. “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나의 영혼이라고 생각해” 아, 진짜 허세 작렬! 오그라드는 내, 손 발! 샤이아 라보프가 빠지면서 샘의 ‘절친’ 범블비의 활약이 줄어든 것도 아쉬워. 그 귀엽던 범블비가 이번엔 질투에 눈이 먼 천둥벌거숭이가 돼 버렸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불량청소년 같았다니까.
락
박살내: 현상금 사냥꾼 락다운도 별로였어? 우주선 ‘나이트쉽’을 배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락다운의 위용은 그래도 대단하잖아.
때려쳐: 멋있긴.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락다운이야. 락다운은 왜 군말 없이 그 중요한 절대무기 씨드를 인간들에게 넘겨주는 거야? 아무리 계약을 했다기로서니, 악당이 그렇게 착해도 돼? 사실, 생각해보면 락다운은 큰 죄가 없어. 돈 받고 임무를 수행할 뿐, 인간을 해친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정말 답답한 건 옵대장이야. 인간들에게 사냥까지 당하면서 왜 매번 지구평화 운운하는 거니? 기억상실증인가? 아니면, 정의감 불타는 중2병?
박살내: 하하하. 너, 이 영화에서 좋게 본 게 하나도 없어?
때려쳐: 몰라. 사실, 나한테 화가 나서 그래. 다신 보지 말자 했다가 욕하면서 보고 후회하고. 보지 말자 했다가 또 보고 욕하고 후회하고. 아마 다음에도 그러겠지?
박살내: 그러지 않을까? ‘트랜스포머’는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의리’ 시리즈의 최고봉이니까. 그런데 너 누구랑 계속 카톡하는 거야?
때려쳐: 친구들한테 ‘트랜스포머4’ 보라고 추천하는 중이다. 나만 당할 수 없잖아.
박살내: 뭐? 이러니까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흥행에서 승승장구하는 거라고. 못났다, 참!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영화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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