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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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변신의 귀재가 따로 없다. 영화 ‘피에타’(2012)에서 스스로 기계에 손을 넣었던 한 남자는 tvN ‘우와한 녀’(2013)의 동성애자로, 또 영화 ‘잉투기’(2013)의 방황하는 청년을 지나 끝없는 순애보를 그리는 남자 서지석 역으로 대중을 만났다. 지난 2일 종방한 KBS2 일일드라마 ‘천상여자’의 또 다른 주인공 배우 권율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 많이 못 알아보고 헷갈려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서는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읽힌다. 스타가 아니어도 좋으니, 캐릭터로만 기억되고 싶다는 이 남자의 말에는 짐짓 ‘겸손’이라는 단어로 꾸며대지 않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작품은 끝났지만, 연기와 사랑에 빠진 이 남자의 순애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Q. 장장 6개월여의 시간을 순애보를 그리는 남자 지석으로 살았다. 작품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권율: 홀가분하다. 촬영 중에는 내가 견뎌내야 하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워낙 지석이 실제 내 모습과는 달랐으니까.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지석이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끝까지 캐릭터를 지켜냈다는 점에 만족한다.

Q. ‘지석’이 아닌 ‘권율’이라면 그런 상황 속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권율: 멱살부터 잡지 않았을까, 하하하. 선유(윤소이)에게도 솔직한 마음을 알려달라고 말했겠지.

Q. 생각해보면 간단한 설정이기는 한데, 연기하기에는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어떻게 작품에 합류하게 됐나.
권율: ‘천상여자’ 미팅을 갔는데 어수선 PD님께서 그러시더라, “참 예쁘게 생겼는데 눈빛에 사연이 있는 것 같다”고. 지석 역은 말보다는 눈빛과 분위기로 감정을 전해야 하는 캐릭터였던 터라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다.
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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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천상여자’가 일일극으로는 첫 작품이다. 전개 방식이나 이야기 구성 등이 여타 작품들과 많이 달랐을 텐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권율: 출연을 결정하면서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 통속적인 일일극의 연기를 벗어나는 것. 보통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해야 하지만, 시청자들이 지석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끔 만들고 싶었다. 물론 일일극이 워낙 극성이 강하기에 어느 정도는 작품 안에서 배우가 대놓고 표현해야 할 만한 부분도 있었다.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작품을 마친 뒤에는 다양한 연기법을 배운 기분이다.

Q. ‘피에타’의 기타남, ‘우와한 녀’의 지성기, ‘잉투기’의 희준 등 그간 출연한 작품 속 캐릭터가 극과 극을 오간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 따로 있나.
권율: 항상 사람들이 예측할 만한 연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얼마나 캐릭터가 매력적인지, 얼마나 빈틈이 많은지가 중요한 선택 요소 중 하나다. 배우로서 내가 연기하며 채워넣을 수 있는 배역을 본능적으로 찾아 나가는 것 같다.

Q. 그렇게 따지면 ‘천상여자’ 속 지석은 그리 자유도가 높은 캐릭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일극의 특성상 정형화된 연기가 필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권율: 해본 적이 없었던 연기라는 게 도전 욕구를 불러왔다. 스스로 상징적인 연기를 하는 데만 익숙해져서 감정을 텍스트대로 드러내는 건 익숙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화가 날 만한 상황일 때 “나 화났어”라고 노골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처럼. 한 번쯤은 나에게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천상여자’를 만난 거다. 또 일일극처럼 잘 짜인 시스템 속에서 배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넓은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게 뜻깊다.

Q. 개인적으로는 ‘잉투기’ 때와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더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미안하지만, 한때는 철없는 희준을 보며 ‘이런 역할이 적격’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하.
권율: 실제로 나와 비슷한 캐릭터기도 했으니까. 그 나이 때는 자신을 많이 포장하기도 했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기도. 말하다 보니까 딱 희준이네, 하하. 그만큼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는 말처럼 들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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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매번 이미지 변신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는 건 아닌지.
권율: 딱히 그런 고민은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작품을 본 뒤에 “그 배우인지 몰랐다”고 말할 때 무척 듣기 좋더라. 더 많이 못 알아보고 헷갈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내가 배우로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고.

Q. 지금의 느긋한 성격을 갖기까지 꽤 성장통을 겪었을 것 같다. 사실 데뷔 이래 부침을 거듭하기도 했지 않나.
권율: 열정이 넘쳤던 시기에 원하는 만큼의 작품을 하지 못해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특히 현실적인 부분과 이상이 충돌할 때는 견디기 힘들더라. 배우라는 직업이 선택받는 직업이다 보니 누군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깨기가 참 어렵다. 내 안에 있는 어떤 열정이나 연기 욕심과 달리 사람들은 외적인 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때쯤 들어온 역할들도 다 대학 동아리 오빠, 누구의 동생, 철없는 막내아들과 같은 역할뿐이었고. 그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일차적인 이미지로 ‘배우 권율’이 각인되는 게 싫었다. 내가 갑자기 3차 성징이 와서 막 골격이 바뀌고 얼굴이 달라지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하하.

Q.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무엇인가.
권율: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나부터 외면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아야겠더라. 그게 다 내면이 부족해서 외면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으로 생각하니까 좀 더 마음이 편해졌다. 조바심도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조금 늦더라도 진짜 배우의 길을 가보자고 생각하게 된 거지. 특히 요즘에는 외면과 내면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Q. 외면과 내면의 조화라. 쉽고도 어렵게 들리는 이야기이다.
권율: 다 기본소양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적은 성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 순간까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하다. 배우에게는 그게 발성, 발음 등이 되겠지. 뛰어난 성과도 기본적인 부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잦더라. 의구심을 품고 할지 말지를 망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기본기를 다지고 연기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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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을 이야기할 때 ‘피에타’, ‘우와한 녀’ 등 작품이 터닝 포인트로 거론되기도 한다. ‘천상여자’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
권율: 많이 배운 작품이다. 사실 꼭 하나의 작품만을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겠나. 모든 과정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 아니겠나.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좀 살다 보니까 그 터닝 포인트라는 게 드문드문 찾아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에 확 몰려오더라. ‘천상여자’는 그렇게 밀려온 기회의 파도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거기에 올라탈 일만 남은 거지, 하하.

Q. 그 흐름에 몸을 맡기 뒤에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배우 권율’의 최종 목표는.
권율: 거창한 목표는 없다. ‘천상여자’ 속 지석만큼 좋은 캐릭터로 더 자주 대중을 찾아뵙는 게 전부다. 그리고 연기를 통해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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