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두나
배두나


배두나의 발걸음은 항상 궁금하다. 그녀가 어떤 작품에서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날지 예측 불가능하다. 상업성 짙은 영화에서부터 작은 영화까지 그녀가 내딛는 발걸음의 폭은 또래의 여느 여배우와 달리 매우 크다. 봉준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워쇼스키 남매 등 유명 감독들의 배두나 활용법도 천차만별이다. 배두나의 남다른 발걸음이 흥미로운 이유다.

해외로 향해있던 그녀의 발걸음이 ‘도희야’로 옮겨졌다. 근래 독특한 역할만 해온 탓인지 ‘도희야’ 속 일상적인 인물 영남이 더욱 반갑다. 편견과 선입견에 맞서 남모를 외로움에 사무친 영남의 모습이 어떤 면에선 배두나처럼 느껴진다. 외로운 영남의 모습에 공감됐다고 말을 건넸다. 영남과 배두나, 서로 꼭 맞는 옷을 입었다. 텐아시아는 배두나를 만나, 그녀의 흥미로운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추적했다.

Q. 먼저 칸 영화제 초청 축하한다. ‘공기인형’에 이어 두 번째 칸에 가는 건데 이번엔 한국영화로 간다는 점에서 조금 남다른 기분이겠다. ( ‘괴물’이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을 당시 배두나는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배두나 :
사실 일본, 한국, 미국 등 어떤 영화든 영화제에 가면 기분 좋다. 이번 작품이 특별한 게 ‘공기인형’은 내가 선택을 받은 거고, ‘도희야’는 내 취향대로 내가 선택한 거다. 그래서 ‘공기인형’ 때는 운 좋게 갔다 온 느낌이다. 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기도 하고. ‘도희야’는 그와 달라서 기분 좋으면서도 얼떨떨하다.

Q. ‘괴물’(2006) 이후 6년 만에 선택한 한국 영화가 ‘코리아’(2012)였는데, ‘도희야’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국 영화를 좀 더 하겠다는 의미인가.
배두나 :
특별히 한국 영화를 하겠다는 건 아니었고, 사실은 충동 선택이다. (웃음). 시나리오를 읽고, 이건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단 기간에 용기를 내본 것도 처음이다.

Q. 그래도 뭔가 확신이 있었으니까 ‘충동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싶다.
배두나 :
글쎄. 여러모로 탄탄한 시나리오였고, 왠지 글을 쓴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것 같았다. 글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만나본 적도 없는데 그런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 표현하는 방식이 보통 시나리오와 달랐고, 설명적이기보다 문학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고, 괜찮은 감독일 거란 확신이 있었다. 또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도희는 한국 영화의 여성 캐릭터 중 참 멋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영남이나 용하 등 다른 캐릭터들 역시 힘이 있었다. 그래서 덤볐다. 안 그랬으면 꼼꼼하게 따지고 고민했을 거다.

배두나
배두나
Q. 언론시사회 당시 영남의 외로운 모습에 공감됐다는 말을 남겼다. 그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배두나 :
영남은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권위적인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이고, 사회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에 놓인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공감했다고 하면 말이 될까.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영남이 지닌 외로움을 어느 정도 공감할 거로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당시 ‘주피터 어센딩’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는데 타지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좀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Q. 그런데 새로운 곳에 가고, 뭔가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나. 과거 인터뷰를 떠올려보면 그랬던 것 같은데 그런 성향이 조금은 바뀐 건가.
배두나 :
아직도 좋아하긴 좋아한다. 그런데 양면이 있는 것 같다. 호기심 어린 나로선 새로운 게 있으면 매우 재밌다. 새로운 문화가 있으면 접해보고 싶고, 배우고 싶다. 그러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사실 ‘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 등은 한국에서 잘 안 해봤던 새로운 거다. 반면 ‘도희야’는 ‘플란다스의 개’, ‘고양이를 부탁해’ 등 초창기에 했던 작품처럼 향수를 주는 부분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리운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Q. 최근 해온 캐릭터가 평범하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배두나 :
그럴 수도 있겠다. ‘공기인형’ ‘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 등 보통 사람을 연기하진 않았다. 그래서 현실적인 캐릭터에 갈증이 있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눈에 들어온 셈이다.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그린스크린 앞에서 연기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바다 냄새, 시골 냄새 같은 게 확 나는 것 같았다. (웃음) 이번에 원 없이 바다를 봤다. 처음 여수 금오도를 내려갔을 때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어’라고 놀라다가 2~3일 지나면 도시가 다시 그립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Q. 그렇다면 작품 선택할 때 배두나만의 기준이 있나. 매번 평범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배두나 :
가리는 건 없는데 기본적으로 ‘좋은 감독에게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래서 감독이 어떤 사람인가 가장 많이 본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나는 감독이 쓰는 소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쓰임을 당하려면, 이왕 좋은 작품 안에서 쓰임을 당하는 게 좋은 거니까. 그렇다면 입봉 감독은 좋은 감독인지 어떻게 알 것이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땐 내 직감이다.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했을 때의 품성 등을 보면 직감적으로 온다.

배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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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은 어떤 감독인가.
배두나 :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외유내강은 처음 본 것 같다. 정말 한없이 부드럽고, 언성 한 번 높인 적도 없고, 화를 낸 적도 없다. 그렇게 부드럽지만, 자기가 원하는 걸 다 가져가는 사람이다. 영화를 봐도, 되게 잔잔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한다. 사람 자체가 그렇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미스터리한 사람이다. 그리고 서로 의지를 많이 했다. 특히 영남을 연기하는 데 있어 내 느낌으론 우리 둘만 이해했다.

Q. 둘만 이해했다는 게 어떤 지점인가.
배두나 :
음. 촬영하다 보면 ‘영남이 여기서 이래도 돼’라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 이창동 감독님(‘도희야’ 제작자)도 가끔 오셔서 영남의 방향이 맞느냐고도 했는데, 그런 가운데 감독님은 나한테 확신을 주셨다. 사실 데뷔하는 감독이 그러는 게 쉽지 않다. 이창동 감독님도 나중에 ‘사실은 조금 걱정했는데 영화 보니까 기우였다’고 하더라.

Q. 정주리 감독과는 79년생 동갑으로 알고 있다. 또 김지연 프로듀서, 송새벽 등 동갑내기들이 현장에 많았다고 들었다. 이전과 달리 현장 분위기가 좀 달랐겠다.
배두나 :
감독님, 피디님과 친구처럼 지냈다. 그리고 의지하는 척은 안 했지만, 그들에게 심적으로 많이 의지했다. 나 역시 힘이 되려고 노력했다. 또 친한 친구들끼리 만드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칸 영화제 초청이 더 얼떨떨한 것도 있다.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한 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촬영장에 놀러 왔다. 영남과 용하가 파출소에서 대치하는 장면인데 고레에다 감독님이 한쪽 구석에서 구경하고 계셨다. 아마 메이킹 영상에는 있을 거다. 여하튼 그랬는데 연출 쪽 스태프들은 고레에다 감독님 등장에 떠들썩했다. 한 스태프는 그날 머리를 하고 와서 괜히 감독님 주변을 서성대더라. 그 상황이 얼마나 웃겼던지.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Q. ‘공기인형’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나 보다.
배두나 :
종종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촬영할 땐 내가 현장에 놀러 가기도 했다. 고레에다 감독님은 여전히 자상하시다. 사실 (감독님이) 부산 가는 일정이었다. 그래서 여수 촬영이면 직접 운전해서 가려고 했다. PD님은 피곤하다고 말렸고. 그런 사정을 듣고, 감독님이 하루 먼저 강화도로 오신 거다.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난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선물했다.

Q. 배두나가 생각하는 ‘도희야’는 어떤 영화인가. 어떤 누군가 “‘도희야’ 어때”라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재밌느냐”는 물음에도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배두나 :
나 역시 그랬다. 어떤 영화냐고 했을 때 거의 대답을 못 했다. 언론 시사회 이후라서 그나마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많은 분이 굉장히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 사회적으로 뭔가를 꼬집는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감독님이 하고자 했던 것보다 오히려 뭔가를 더 찾아내는 분들도 있다.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의도했던 건 아닌데 할 정도였다. 감독님이 말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외로운 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다. 아동학대, 이주노동자, 성 소수자 등 별별 이야기가 나와서 여러 의미를 두는데 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Q. 영남과 도희, 평범한 상황에 놓인 인물이 아니다. 그래서 극 중 두 사람의 관계도 평범하진 않다. 영남과 도희의 관계, 어떻게 받아들였나.
배두나 :
개인적으로는 ‘모성애’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도 도희한테 기대고, 의지했던 면도 없지 않았을 것 같다. 나중에 도희가 어떤 선택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어떤 영감을 받기도 했을 것 같다. 영남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하는 인물이니까. 이처럼 도희로 인해 단단해지고, 용기를 낸다. 한편으로 도희는 정말 안쓰러운 아이다. 하지만 보통의 언니였으면 쉽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영남은 남들의 오해를 염려해 쉽게 못 해주는 거에 대한 갈등도 있다. 도희에게 있어 영남은 또 다르다. 엄마를 초월한,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간절한 존재다.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대상이다. 아기 새가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보는 존재처럼. 외로운 여자 둘이 만나서 위로하는 영화라는 감독님의 표현이 맞다. 영남도 도희한테 엄청나게 위로를 받는데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땐 구원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배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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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엇보다 감정 수위 조절이 힘들었을 것 같다.
배두나 :
영남은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다. 마음의 빗장을 푸는 순간 (영남은)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더 철저하게 막아놓은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영남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줘야 한다. 동시에 영남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막고 있다는 것까지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해야만 했다. 그게 느껴진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가끔 내가 모니터를 해도 좀 더 표현했어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스러울 때도 있었다.

Q. 성적 소수자에 대한 표현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실 명확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다. 그래서 계속 ‘뭘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배두나 :
아주 조금씩 힌트를 주려고 했다. 일부 관객들은 눈치를 채기도 하더라. 그런데 사실 외형적인 부분에서는 성적 소수자라고 해서 큰 차이는 없다. 내 주변 친구들을 봐도 그렇다. 그리고 힌트와 표현들도 굉장히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다.

Q. 그리고 영남은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걸까. 그것도 소주병에 마시지 않고, 꼭 생수병에 따라서 마시는데.
배두나 :
소주병을 들이지 않는다. (웃음). 얼마나 불안한지, 마음의 응어리가 있는지 표현하는 수단이다. 비밀이 많고, 벽에 부딪혀서 넘어가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꼭 물병에 옮겨 마시고, 남들 앞에선 술 안 마신다고 한다. 얼마나 사회적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지 보이는 좋은 힌트라고 생각했다.

Q. 혹시 촬영 중 실제 술을 마신 건가.
배두나 :
물이다. 실제 술을 마시면 굉장히 빨개진다. 영남은 빨개지면 안 될 것 같아서.

Q. 어떤 면에선 도희의 행동이 섬뜩하다. ‘괴물’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처럼 비친다. 올바른 방향으로 클 수 있게 보살핌을 잘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른들의 몫이기도 하고.
배두나 :
나 역시 그 생각이 가장 컸다. 영남 입장에선 경찰 조사를 받고 나서 다시 한 번 문을 닫게 된다. 그래서 마음 아프지만, 도희와 작별을 택한다.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테고. 그러다가 도희가 ‘어린 괴물 같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정신이 확 드는 거다. 도희로서는 간절히 원하던 것을 위해 독한 선택을 한 건데, 그것으로부터 버림받은 게 된다. 그래서 어떤 불안이나 응어리를 내려놓고 다시 달려가게 되는, 그런 지점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영남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 이전에는 모성애를 느껴도, 나 자신을 방어해야 해서 못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허무는 순간이기도 하다.

Q. 영남과 도희는 그 이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면.
배두나 :
고생하고 있을 것 같다는 사람도 있고, 둘 사이가 다른 쪽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다. 관객 몫이니까. 내 생각은 글쎄… 아직은 좋은 친구, 모성애 같은 사이로 지낼 것 같다. 몇 년 더 지나서 생각했을 땐 잘 모르겠다. (웃음).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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