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꽃보다 할배'


개성 강한 네 할배의 캐릭터, 웃음 유발하지만 인생의 교훈도 담겨 있어 더 훈훈

대한민국은 현재 온 국민이 힐링이 필요한 시기다.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는 뉴스들이 수시로 쏟아져 나오고 삶 곳곳에 위험이 산재해 있다. 대중교통도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없고 편하게 비행기 타거나 배타고 여행을 떠날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가장들의 통장 잔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환하게 웃는 사람들보다 무표정하게 상념에 싸인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상식이 도무지 통하지 않는 삶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

국민들은 안심하려 하면 곧바로 달려오는 사건의 연속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 정신을 차리기 힘든 상황에서 전해진 지하철 2호선 사고 소식은 패배감뿐만 아니라 무기력감까지 느끼게 했다. 삶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그러나 서민들이 유일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TV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애도의 기간인 것도 이유 중 한 가지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콘텐츠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정규 편성이 거의 정상화된 현재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온국민이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뉴스만 계속 보다보면 전 국민이 우울증에 걸린 판국이다. 나도 요즘 매일 밤 채널을 돌리다가 TV를 끄게 된다. 말초적인 감각만 건드리는 프로그램의 홍수에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평소에 즐겨 보던 프로그램도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결코 사고의 참상을 잊자는 게 아니다.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고 삶을 지탱할 동력을 공급해줄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미만 좇는 기존의 프로그램 말고 전국민적인 슬픔과 무기력감을 씻어줄 ‘힐링 콘텐츠’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 세대만 아닌 모든 세대가 서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꽃보다할배] 스페인4화
[꽃보다할배] 스페인4화
이런 가운데 케이블 채널 tvN의 여행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스페인편’의 종영은 아쉬움을 안겨준다. 평균 나이 77세의 네 노장 배우들의 여행기만큼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해줄 ‘힐링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 사실 이번 스페인 편은 지난해 방송된 유럽과 대만 배낭 여행만큼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다. 신선함이 다소 떨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2일 방송된 마지막 편은 유쾌한 웃음과 함께 긴 여운을 안겨줄 만큼 감동적이었다.

시청자들은 개성이 다른 네 노장 배우들이 일생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배낭여행에서 좌충우돌하면서도 즐거워하는 모습에 함께 행복해했다. 50년 넘게 안방극장에서 국민 아버지, 국민 할아버지로 살아온 이들이 배낭 여행을 통해 힐링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부모, 조모를 떠올리며 행복감을 느꼈다. 10대부터 80대까지 온국민이 세대교감을 할 수 있었다.

방송 마지막 부분에 이번 여행에서 일정 때문에 포르투칼 리스본을 가지 못해 아쉬워한 신구를 위해 제작진이 준비한 깜짝 혼자 여행 제안은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혼자 떠났지만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멋진 할배’ 신구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짓게 했다. 마지막 크레디트가 오를 때 입에서 저절로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는 최고다”는 말이 나왔다. 제작진의 따뜻한 휴머니티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꽃보다 할배’가 더욱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던 건 제작진의 네 배우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져서다. 제작진이 잡아준 캐릭터들은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였지만 그들의 인생 철학을 느낄 수 있어 교훈도 전해줬다.
tvN '꽃보다 할배 시즌2' 스틸
tvN '꽃보다 할배 시즌2' 스틸
여행지에서 하나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앞으로만 나아가 ‘직진순재’로 불린 이순재의 모습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라는 한길을 줄기차게 걸어온 뚝심이 느껴졌다. 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결정적일 때는 앞장서 나가 무리를 이끌 줄 아는 ‘구야형’ 신구에게서는 ‘외유내강형’ 리더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가장 젊은 감각과 체력을 가진 박근형의 아내를 사랑하는 모습에서는 진정한 로맨티시스트의 최고봉을 만날 수 있었다. 귀찮게 여기저기를 둘러보지 않아도 떠난 것만으로도 즐거운 백일섭은 여유의 미학을 아는 진정한 풍류남아였다.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네 할배들의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에서 경외감까지 느꼈다면 과장일까?
전국민 힐링 프로젝트인 ‘꽃보다 할배’ 시리즈가 계속 될지는 미지수다. 시청자들도 네 배우의 체력이 지난해에 비해 현격히 떨어졌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몇몇 매체의 기사에 따르면 네 배우가 이번 여행에서 감기와 체력 저하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제작진이 마지막에 자막으로 ‘네 할배들이 행복해하는 한 여행은 계속된다’고 공표했지만 향후 계획은 네 배우들의 건강 상태에 달려 있는 듯하다.

제발 네 어른 모두다 건강해 이 전국민 ‘힐링 프로젝트’가 계속 됐으면 하는 게 애청자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한 바람이다. 멤버 교체 없이 네 꽃 할배들이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가는 날을 간절히 기대해본다.

글. 최재욱 대중문화평론가 fatdeer69@gmail.com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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