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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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재영이다.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리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열한시’부터 ‘플랜맨’ ‘방황하는 칼날’ 그리고 30일 개봉될 ‘역린’까지 5개월 사이에 무려 4편이다. 싫증 날 법도 하지만, 영리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며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마주했다. 과학자, 결벽증을 지닌 남자, 딸을 잃은 아버지, 왕의 심복 등이 그의 옷을 입고 탄생했다. 그 중 ‘방황하는 칼날’의 정재영은 딸을 잃은, 그것도 성폭행으로 하나뿐인 딸을 먼 곳으로 보낸 아버지 상현을 품었다. 아무리 영화라고, 연기라고 하지만 그 마음이 오죽하겠나 싶다. 상현이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정재영의 마음도 같았으리라. 그래서일까. 이전과 달리 강렬하게 달리는 정재영의 마음이 가슴을 파고들면서 분노가 끌어 오른다. 흥행을 이어가는 것 보니 대중들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아버지 정재영의 마음을 품고, 아버지 상현으로 살았던 몇 개월의 시간, 그에게 직접 들었다.

Q. ‘열한시’, ‘플랜맨’, ‘방황하는 칼날’ 그리고 ‘역린’까지.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쉼 없는 개봉이다. 촬영하면서 홍보하고, 두 편 연이어 홍보하다 보면 막 헛갈리기도 하겠다.
정재영 : 크게 그런 건 없다. 참, 최근에 ‘역린’ 제작보고회를 오전에 하고, 오후에는 ‘방황하는 칼날’ 관련해서 홍보 활동을 했는데 그땐 좀 정신없긴 했다.

Q. 그래도 당분간 조금 한가하겠다. 아직 작품 소식이 없는 것 같던데.
정재영 :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또 바로 하지 않을까. (작품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문제다. 많이 찍네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거니까.

Q. 대중들의 인식에 ‘방황하는 칼날’이 정재영 영화라면, ‘역린’은 현빈 영화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방황하는 칼날’ 흥행에 조금 더 부담이겠다. 그리고 ‘역린’은 배우들도 많으니까.
정재영 : 그럴 수도 있다. 제작비로 따지면, ‘방황하는 칼날’이 ‘역린’의 4분의 1이다. 배우도 많고, 감독님도 영화는 처음이지만 드라마 쪽에서는 베테랑이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다. 큰 영화가 잘된다는 보장도 없고. 더욱이 감독님은 첫 영화인데 얼마나 긴장하겠나. 또 (현)빈이도 제대하고 첫 작품인데 정말 긴장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큰 작품이 잘 못되면 여파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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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황하는 칼날’ 때문에 만났으니 이에 집중하겠다. 영화 자체가 묵직하다. 그리고 정재영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적으로 강하게 몰아친다. 이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재영 :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가 가장 많았던 작품 중 하나였다. 사실 정확히 알면 더 쉬운데 이건 확신이 없었다. 시나리오 읽을 땐 공감됐는데 막상 하니까 난관에 부딪히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른 행동, 표현 등이 나왔던 적도 꽤 있었고, 그러다 보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배우다 보니 별의별 경우의 사람을 관찰하는 게 직업적인 병처럼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 속 상황은 평상시에 생각하지 않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다. 나 역시 그걸 깊이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데서 오는 차이점인 것 같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그런 마음들을 충분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찍은 다음 일이지만,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영남제분 사건 편을 보면서 그 피해자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극 중 상현보다 100배는 더 힘들었을 거다. 그리고 1,000배는 더 위대하다.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그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 싶다. 상황은 다르지만, 그 아버지의 경우를 봤을 때 가족의 남은 인생은 없다는 거다.

Q. 최근 영화 개봉이 많아서 촬영과 홍보가 겹치는 일은 없었나.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영화 찍을 때 다른 영화의 개봉이 겹쳤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정재영 : 다행히 없었다. 정말 겹쳤으면 힘들었을 거다. ‘열한시’ 끝나고, 충분히 준비한 다음에 찍었다.

Q. 연기적인 면에서 ‘정재영의 진가’ 등 좋은 평가를 받을 것 같다. 이미 그런 평가도 있고. 그런데 정재영 특유의 맛과 웃음은 좀 사라진 것 같다.
정재영 : 그걸 살릴 만한 여유도 없었고, 그렇게 할 장면도 없었다. 그런 걸 해서도 안 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Q. 감정적 여유 없이 계속해서 몰아치는데 그 감정을 유지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
정재영 : 감정적인 것들은 계획을 세우거나 기준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분은 폭발하지 않고 가는 게 좋았다고, 또 어떤 분은 뒷부분에서 폭발하는 게 좋았다고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 같다. 단지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하는 게 적절한가, 이 상황에서 아버지로서 혹은 나는 어떻게 할 건지 그것만 생각하는 거다. 그러면서 맞춰가게 된다. 과하면 깎아내고, 부족하면 좀 더 하고.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감정을 아는데 힘들었다는 거다. 상현이라면, 나라면 그 상황에서 감정이 어떨까? 그 부분에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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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으로서, 사실 이 같은 소재 끔찍하지 않나. 출연할 때 이런 것 때문에 망설이진 않았나.

정재영 : 처음에는 아내가 반대했다. 이런 이야기 자체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거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책은 매우 좋은데, 자식이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거다. 만약 딸이었다면 좀 더 주저했을 것 같다. 그나마 딸을 가진 부모보다는 감정이입이 덜된 것 같다. 현실과 영화 속 상황이 똑같아도,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런 똑같은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 딸을 잃어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짜 딸을 잃어 본 사람한테 시나리오 주면, 뺨 맞을 행동이다. (웃음) 이성민 씨는 딸이 있으니까 상현 역할을 줘도 안 했을 거다. 생각해보면, 감독은 딸이 있는데 이런 소재 하는 거 보면 독한 것 같다. 본인이 직접 표현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감독은 원작을 보고 엄청나게 울었다고 들었다. 그때 어느 정도 해소됐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을까.

Q. 정재영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분노가 들끓는다. 그리고 사적 복수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미성년 성범죄에 대한 고민과 고찰도 필요할 것 같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아 보기 불편한 것도 없잖아 있다.
정재영 : 감독의 의도 아닐까. 현실적인 구조나 제도적인 문제 등을 고발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내용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그 부분에서는 원작하고도 많이 다르다.

Q. 이에 대해 정재영 개인의 의견을 듣고 싶다. 사적 복수 등 영화가 던지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 말이다.
정재영 : 막연히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은데. 내가 부모인데 만약 그런 동영상을 봤다면 좀 더 잔인하게 했을 것 같다. 하지만 타당한가, 옳은가에 대한 문제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상현처럼) 할 것 같다. 그리고 타당 여부가 무슨 상관이냐 싶기도 하다. 가령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데 그건 나라마다 다르지 않나. 미국은 각 주에 따라 법이 조금씩 다르다. 만약 단순 절도인데 손을 자르는 게 법이라고 치자. 그럼 그곳에서는 손을 자르는 게 타당하고 맞는 거다. 누군가는 그걸 보고 단순 절도인데 손을 자르는 건 심하지 않으냐고 할 거다. 이처럼 타당한 정도도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는 일이고, 명확한 기준을 두기가 어렵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서도 다르다. 우리 영화에서 말하는 건 타당 여부가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보자는 거다. 아이들이 싸우면, 무조건 자기 자식 편만 들려고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부분들을 좀 더 공정하고, 정직하게 생각해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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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를 보면서 머리로는 이해되는데 막상 그 상황에 닥치면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안 된다. 극 중 상현이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를 때도 얼핏 가능하겠다 싶으면서도, 정말 그렇게 될까 싶은 거다.

정재영 : 의도라기보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의문의 메시지를 받고 움직이는데 이 메시지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군가의 장난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망설이다 찾아갔는데 메시지 내용처럼 화분 밑에 진짜 열쇠가 있는 거다. 그리고 동영상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 동영상에는 딸의 최후가 있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 동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는 순간 철용이 들어오고, 숨어 있는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깔깔 웃는 모습에 감정 변화가 일어나는 거다.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에 보고 있는데 들어오면 어떨까.

Q. 그렇다면 딸의 최후가 담긴 동영상을 봤는데도 안 들어오면 어떻게 했을까.
정재영 : 아마 경찰에 신고하진 않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을 것 같다.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보다 동영상 속 남자가 진짜 이 아이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을 거다. 정재영인지, 상현의 마음인지는 모르겠는데 나 같으면 그럴 것 같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안 하고는 두 번째 문제다.

Q.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총을 쏠 것인가, 안 쏠 것인가 마치 관객에게 선택하라는 것 같다. 물론 영화에선 총알이 없지만.
정재영 : 일단 총알을 빼고 가지만,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는 거다. 누군가는 용서했느냐, 마음이 바뀐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단지 총알만 뺏을 뿐이다. 생각해봐라. 야구 방망이로도 죽였는데 죽이고자 했으면 어떻게든 못 죽이겠느냐. 다만, 보자마자 죽이자는 생각은 없었던 거다. 그 아이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보통 부모들이 범인들한테 하는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그거다. ‘왜 죽였어’ 또는 ‘왜 때렸어’ 등을 물어본다더라. 그리고 마음으로는 죽이는 거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한 가지로 쉽게 설명된다면 쉽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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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CJ ‘열한시’, 롯데 ‘플랜맨’, CJ ‘방황하는 칼날’, 롯데 ‘역린’ 등 참 사이좋게 CJ, 롯데 한 작품씩 개봉하고 있다.

정재영 : 그래서 이렇게 개봉이 몰리는 거다. 내 생각은 안 하는 거다. (웃음). ‘열한시’ 이전엔 쇼박스였는데, 그러고 보니 NEW하곤 아직 연이 닿지 않았다.

Q. 어쩔 수 없이 ‘역린’도 물어봐야겠다. 아직 영화 보기 전이지만, 곧이어 개봉되니까 살짝 맛보기만.
정재영 : 내 분량만 알지 전체적인 톤 앤 매너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건 때깔은 ‘악’ 소리 날 정도다. 미쟝센 등에 엄청나게 정성을 들였다. 아쉬운 게 있다면, 찍을 때 공들여 찍었던 컷이 15세 관람가 등급에 맞춰지면서 조정된 것들이 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장면인데. 나보다는 감독님이 좀 아쉬워할 것 같다.

Q. 어떤 사극을 보더라도, 왕(또는 임금)의 그림자 역할은 있다. 그것과 차별화가 중요할 것 같다.
정재영 : 영화를 봐야지, 먼저 들으면 재미없다. (그래도 부탁한다. ‘플랜맨’에 이어 한지민과도 다시 만났고.) 영화 속에서는 한 번도 못 만난다. 정순황후(한지민 역할)는 내시가 상대할 신분이 아니다. 빈이하고만 붙어 다닌다. (웃음). 궁궐에서는 눈도 못 마주치고, 얼굴도 못 봤다. 내시 역을 하니 그런 어려움이 있다. 눈을 아래로 깔고 있다 보니 작아진다. 현빈이라서 그런 것도 있고. (웃음).

Q. ‘방황하는 칼날’의 정재영은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역린’의 정재영은 이상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방황하는 칼날’보다 ‘역린’이 궁금한 것도 있다.
정재영 : 예고편 보는데 어색하더라. 포스터 모습을 봐도 어색하고. 그리고 내 캐릭터보다 작품이 묵직하다. 오래간만에 본 묵직한 남성적인 영화였던 것 같다. 현빈이 진짜 멋있게 나온다. 조정석도 그렇고. 난 그거에 비하면, 괜히 했나 싶다. 아주 잘생긴 게 흠이다. 군주가 그렇게 잘생기면, 궁녀들은 다 어떡하라는 건지. 나만 현실적이다. (웃음).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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