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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짙은(성용욱, 35)을 왜 좋아할까?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성별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그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믿는 편이다. 여심을 끄는 싱어송라이터들이 있다. 짙은, 정준일, 에피톤 프로젝트 등. 이들은 외모에서 느껴지는 댄디한 느낌도 닮았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을 잘 만드는 출중한 아티스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섬세하다. 남자들이 알지 못하는 이런 섬세함을 여성들은 포착하곤 한다. 때로는 음악을 듣고, 화자의 속내를 짐작하기까지 한다. 거기서 뮤지션에 대한 애틋함이 시작되고, 이는 사랑으로 번진다. 이러한 감정이입은 어쩌면 음악을 듣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여성들에게 왜 짙은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짙은의 음악은 감성적인 남자의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눈 올 때 들으면 좋다” “마음이 스산해지면서 따뜻해진다” 등등의 대답들이 돌아왔다. 한 여성은 “만약에 짙은이 미남이었다면, 정말 대단한 스타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짙은을 인터뷰하는 현장에는 여성 후배가 팬이라며 따라왔다. 새 음반 ‘Dispora(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에 사인을 받더니 부끄럽다며 같이 사진도 못 찍고 황황히 자리를 뜨더라. 짙은에게 왜 여성 팬이 많은지 직접 묻자 “저도 모르죠. 알면 알려 주세요”라는 무책임한 대답이 돌아왔다. 음, 알 수 없는 여성들의 세계.

앨범 ‘Dispora 흩어진 사람들’을 듣고 짙은의 음악이 더 짙어졌다고 생각했다. 첫 곡 ‘망명’부터 자못 진지하다. 전에 없던 광활한 풍경이 느껴진다. 짙은을 잘 아는 여성 팬에게 묻자 “더 낯설어져도 될 것 같았는데 그냥 짙은 분위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신뢰하기로 했다. 난 여성들보다 짙은의 음악을 더 농밀하게 느낄 수 없으니까.(물론 짙은을 좋아하는 남성도 많다. 오해 마시길) 다음은 짙은과 나눈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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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원래 윤형로와 듀오였다. 저번 앨범 ‘백야’부터 실질적인 솔로 프로젝트가 됐다.
짙은: 지난 앨범에서는 센티멘탈 시너리가 프로듀서를 맡아서 그의 느낌이 들어갔다. 이번에는 내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기 때문에 정말 혼자 한 느낌이다. 전작에는 일렉트로니카 요소도 있엇고, 사운드 스케이프가 촘촘했다면, 이번에는 보다 담백하고, 어쿠스틱 느낌이 강하다.

Q. 앨범 콘셉트와 연결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 이번 앨범 제목을 ‘Diaspora : 흩어진 사람들’이라고 한 이유는?
짙은: 항상 수록곡 제목 중에 앨범 타이틀을 찾았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앨범 제목이란 것을 따로 지었다. 전에는 앨범 콘셉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곡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곡 분위기들이 각각 다르다. ‘망명’ ‘트라이’를 제목으로 하면 앨범의 한쪽 면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앨범의 서사적인 흐름을 잘 잡아줄만한 것이 없을까 하다가 ‘Diaspora’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흩어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에 부제를 붙이게 됐다.

Q. ‘망명’ ‘트라이’와 같은 곡들은 전보다 무게감,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 기존의 짙은과 다른 느낌.
짙은: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다보니 내 정신상태가 칙칙해졌다. EBS 라디오 ‘단편 소설 觀’을 진행하면서 하루에 한 편씩 단편소설을 읽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심연의 이야기, 특히 어두운 이야기들을 내가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다보니 내 작품도 변했다.

Q. 어떤 책들을 봤나?
짙은: 박민규, 이청준, 김연수, 김애란 등의 소설.

Q.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가사에 특히 신경을 쓴 것 같다.
짙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사보다 멜로디를 잘 만들려 노력했다. 이전에 가사가 좋은 곡들, 가령 ‘손톱’ ‘그런 너’와 같은 곡들은 형로가 쓴 게 많았다. 가사를 포기한 것 같은 ‘디셈버’와 같은 곡들이 내가 쓴 거고.(웃음) 언제부턴가 가사 전달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언어에 대한 존경심이 더 생겼다고 할까? 귀에 꽂히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를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 비슷한 것에서 벗어난 것 같다. 이번에는 가사, 그리고 사운드에 욕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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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이가 드니 음악 스타일이 변하던가?
짙은: 전에는 예쁜 멜로디의 선두주자였지만(웃음), 요새 그런 음악이 너무 많다. 내가 더 잘할 자신이 없다. 주위에 잘 하는 후배들도 많고. 뭔가 다른 것을 고민하게 되더라. 그러면서 나를 위한 음악을 해보면 어떨까 했다. 나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음악 말이다. 내가 좋아서 일기 쓰듯이 글을 쓰는 음악. 듣는 이를 배려하기보다는 혼자의 세계에 집중했다. 그런 재미에 빠져 지냈다.

Q. 앨범에는 망명, 외로움, 도피와 같은 정서들이 있다. 본인의 상황이 그랬나?
짙은: 항상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적응은 잘 하는 편인데, 마음을 잘 못 붙였다. 나 같은 이들, 이방인들에 대한 연민이 있어 왔다. 요새는 우리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버려진, 소외된 느낌을 더더욱 받는다.

Q. ‘트라이’를 타이틀곡으로 한 이유가 있나?
짙은: ‘안개’ ‘해바라기’가 더 짙은스러운 곡이긴 하다. 라디오에서 틀기도 좋다. 하지만 타이틀곡은 새 앨범에서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곡으로 하고 싶었다. 앨범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상징하는 곡이다.

Q. 기존 팬들이 기대하는 음악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은 없었나?
짙은: 그런 건 내려놨다.(웃음) ‘백야’ ‘디셈버’ 같은 곡은 다시 만들어보려 해도 잘 안 되더라. 지금 내 정신상태가 그게 아닌 거지.

Q. 결과적으로 짙은의 음악은 더욱 짙어진 것 같다.
짙은: 전에는 음악에 내 인성을 부여하지 않으려 했다. 음악은 청자와 나 사이에 있는 공적인 것이라 여겼으니까. 그래서 내 속으로 깊게 안 들어가고 어느 정도 선에서 멈췄던 것 같다. 전에는 나를 감동시키고, 나를 보여주는 것, 그런 거 싫어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는 더 내면을 드러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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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앨범을 듣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짙은: 내 음악을 너무 심각하게 안 들어주셨으면 한다. 조금 심각하게 만들긴 했지만, 듣는 사람이 그 깊이나 고뇌를 굳이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들어주셨으면 한다. 생업에 종사하다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Q. ‘디아스포라’ 음반을 연작으로 낼 거라 들었다.
짙은: 정확히 계획이 선 것은 아니다. 흩어진 사람들’에 관한 음반을 냈으니 나 자신이 여행을 떠난다던지, 어디론가 떠나봐야 하는데 요새 바빠서 그러지 못했다. 지금 차기작에 집중할 상황이 못 된다. 라디오를 하고 있고 줄리아하트, 루시아 등 동료뮤지션 공연 게스트, 페스티벌, 단독공연 준비도 해야 해서… 사실 난 이번 앨범 묻힐 줄 알았다.

Q. 왜?
짙은: 이번 노래가 예전만큼 달콤하거나 훅이 있지 않아서 말이다. 그래서 묻힐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난 노래 제목처럼 ‘망명’을 하려 했는데, 다행히 묻히지 않아서 다음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예정된 활동이 정리가 되면 방랑하면서 곡을 써볼 생각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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