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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드라마 속 인물과 연기자의 삶이 겹쳐져보일 때 시청자들은 깊은 공감을 느낀다.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극본 김수현 연출 손정현)의 임실댁 허진은 요즘 주인공 못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감초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기반에 둔 감칠맛 나는 연기도 능수능란하지만 70년대 톱 여배우에서 큰 굴곡을 겪으며 생활고에 직면하는 등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사회생한 그의 인생도 캐릭터에 오버랩되며 예상 밖의 인기를 얻었다. 종영을 앞두고 SBS 일산제작센터에서 만난 허진은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라며 임실댁 특유의 ‘구시렁거림’을 직접 들려주었다.

Q. 임실댁표 구시렁거리는 대사가 방송 내내 큰 인기를 얻었다.
허진: 나는 인터넷을 잘 안 봐서 모르는데 주위에서 얘기를 많이 해 주더라. 동네 찜질방 같은 데도 가면 벗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몰려와 ‘얼굴 한번 보자’고도 하고(웃음). 정말 오랜만에 출연한 작품인데 예상 외의 큰 사랑을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

Q.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장면도 재밌지만 대사 속에 뼈 있는 ‘촌철살인’이 들어있는 것도 인기 요인인 것 같다.
허진: 혼자 온갖 명언이며 철학적인 대사는 다 한다(웃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모른 척 하면 인간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 못할 게 뭐 있나’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 불쌍하다’ 같은 대사는 인생에 대한 진리를 담고 있는 부분이라 연기하면서도 참 많이 배운다.

Q. 특히 주인댁인 최여사(김용림)에게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갈등을 빚는 부분이 웃음을 자아낸다.
허진: 서로 미워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많지 않나? 김용림 씨와는 그런 느낌으로 연기하고 있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사실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유머 코드를 원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때로 푼수같은 모습을 보이며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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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라도 사투리도 정말 찰지다.

허진: 대사를 직접 쓰느냐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원래 고향이 전라남도 영광인데 이 드라마에 추천해 준 강부자 언니가 김수현 선생님께 일부러 전라도 사투리 대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려 탄생한 대사다. 작가님이 전라도 사투리를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서 써주신 거라 정말 고맙다.

Q. 김수현 작가가 대사에 대해 특별히 주문한 부분이 있나.
허진: 항상 대사를 세게 하지 말고 중얼중얼 구시렁거리는 느낌으로 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근데 최근 몇몇 장면에서는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내가 좀 오버를 해서 김수현 선생님께’조화를 이루면서 연기하라’는 지적을 들었다. 내가 너무 튀게 연기했나 싶어 반성 중이다.(웃음)

Q. 원래 처음에는 최여사 역할을 제안 받았었다고 들었다. 아쉽진 않나.
허진: 처음 대본 리딩하러 갔을 때 오랜만인 데다 너무 얼어서 제대로 못 했다. 사실 독살맞은 역할도 잘 하는데(웃음) 그래도 김용림 언니가 맡은 게 훨씬 좋았던 것 같다.

Q. SBS ‘무인시대’ 이후 10년 만의 연기 복귀였는데 다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어렵진 않았나.
허진: 주변 사람들이 참 많이 도와줬다. 처음 촬영하러 왔을 때 함께 출연하는 한진희 씨는 내게 커피와 식권을 사다 주면서 손을 잡아주더라. 강부자 언니와 감독님, 작가님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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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복이 참 많은 것 같다.

허진: 울다가 쓰러져있는 사람을 강부자 언니가 잡아서 눈물 닦아주고 김수현 작가님은 밥도 주고 사람들은 잘 한다고 용기도 줬다. 뼛속 깊이 감사함을 느끼는 날들인 것 같다.

Q. 1976년 TBC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할 정도로 여배우로서 큰 전성기도 누렸다.
허진: TBC ‘셋방살이’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었다. 그 때 이례적으로 미국 포상 휴가도 가고 그랬다. 지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 함께 출연하는 한진희 씨도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함께 받아 미국행에 동행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것도 내 흔적이더라. 잘했던 것도 내 흔적이고, 사람들에게 성질부리고 편하게 못 대해주고 내 위주로만 했던 것, 그래서 오랫동안 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내 흔적인 것 같다.

Q. 전성기 때 꽤 도도한 여배우였었나보다.
허진: 마음에 안 맞으면 촬영장에서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다. 아마 골칫덩어리로 닉네임이 붙었었을 거다. 그런 것 치곤 사람들이 많이 봐 준 편이었다. 젊을 땐 내가 잘나서 택해주는 줄 알았다. 절대 그게 아니다. 예쁘고 연기 잘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그 중에 내가 선택됐다는 데 대해 늘 감사해야 한다. 중간에 잘 안 되는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다. 성실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재능이 있어도 잘 할 수 없다. 특히 드라마는 여러 사람이 하는 협업이니까. 그때는 그걸 잘 몰랐지.

Q.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젊은 배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있겠다.
허진: 있는데 말 못한다.(웃음) 내가 겪었던 걸 얘기해주면 잘못 전달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후배들을 보면 그저 웃어만 준다. 하지만 오늘 내가 사는 게 내일의 거울이라는 얘기는 해주고 싶다. 오늘 성실하고 열심히 하면 내일이 있지만 성실과 감사가 사라지면 내일이 없다. 지금 아무리 좋은 위치에 있고 시청률 1위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해도 어느 틈엔가 감사를 모르고 교만해지만 당분간은 괜찮겠지만 언젠가는 혼자 남게 된다. 버림받은 자의 쓴 잔은 가져본 사람만이 안다. 고생을 실컷 하는 경험을 하면서, 하느님이 내게 그걸 일러주신 것 같다.

Q. ‘세 번 결혼하는 여자’로 재기한 만큼 앞으로의 행보도 궁금하다.
허진: 또 다른 작품을 하게 되면 고맙고, 그렇지 않아도 이 드라마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돼 감사하다. 지금은 밑바닥에서 올라왔으니 나중엔 우아한 느낌의 역도 해봤으면 좋겠다.(웃음)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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