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철없는 캐릭터가 또 있었을까? 30일 종영한 SBS 주말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채린 역으로 분한 손여은은 벌써부터 ‘올해의 악녀’ 캐릭터로 꼽힐 정도로 독특한 인물로 작품의 후반 인기를 견인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계획된 악의는 없지만 자신만의 감정에 충실한 어린아이같은 모습으로 새로운 ‘민폐 캐릭터’의 전형을 보여준 손여은은 이번 작품으로 데뷔 1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시청자들에게 정확히 각인시켰다. 브라운관 속 철없는 악녀와는 달리 진지한 눈빛을 빛내는 손여은은 “누구보다 채린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며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Q. 예상밖으로 채린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손여은: 채린이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사실 용서받지 못할 만한 일들을 많이 해서 이런 결말이 올 수 있으리라곤 생각을 못해서 마지막까지 더 긴장했던 것 같다.

Q.작품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채린의 돌발적인 모습에 시청자들의 많이 주목했던 것 같다.
손여은: 시청자 반응을 보면서 우리 얘기를 많이 재밌어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이 실제로 그?지 않냐’란 얘기도 많이 들었다.(웃음) 그냥 미운 게 아니라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스타일이라며. 사실 그렇게 보여야지하고 생각하고 연기한 적은 없다.

Q. 캐릭터 톤을 잡는 게 쉽지는 않았겠다. 특히 화를 내는 높은 톤의 목소리 연기가 많았는데.
손여은: 연기하면서 사실 ‘이게 맞나?’ 싶은 때가 많아서 중간 중간 작가님께 여쭤보곤 했었다. 다행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하셔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캐릭터를 위해서 연기 스타일은 배우가 끊임없이 노력해 찾아내야 하는 것 같다. 채린이는 철도 없고 미성숙한 캐릭터이다 보니 목소리톤도 높아지고 약간 징징대는 부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는 장면도 아이같은 느낌을 줬다. 걸음걸이도 채린이에게 가까워질수록 설정하지 않아도 약간 아이같은 모습으로 나오더라.



Q.내면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나보다.
손여은: 사회에 제대로 적응한 어른같다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순수하고 솔직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주위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채린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만은 이 사람을 제대로 이해해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계속 그 인물을 이해해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Q. 화를 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손여은: 아이들이 화를 낼 때 보면 자기 분에 못이겨 울곤 하지 않나. 화가 나는데 말은 못하고 홀로 파르르 떠는 듯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웃음)

Q.특히 극중 채린이 폭력가정에서 성장한 배경이 드러나면서 반전이 있었는데 연기하기 어렵진 않았나.
손여은: 오히려 앞에 채린이의 이해할 수 없었던 행동들이 설명되면서 연기하면서 반가웠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조신한 며느리에서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캐릭터로, 다시 가정폭력에 노출됐던 기억이 있는 여성으로 변화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캐릭터 변화를 놓고 보면 왜 그랬는지가 잘 설명된 것 같다.

Q.시청자들이 볼 때 ‘원래 성격이 저렇게 철이 없나’ 싶을 정도로 실감나는 장면이 많았는데, 실제 성격은 어떤가.
손여은: 생각이 좀 많고 낯도 많이 가리고 조용한 편이다.(웃음) 그래서인지 연기할 때 오히려 더 몰입해서 뭔가 발산한다는 카타르시스같은 것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Q.채린이 덕에 상대역이었던 송창의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가 된 것 같다.

손여은: 송창의 오빠는 실제로도 부드럽다. 사람을 굉장히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처음 촬영할 때부터 내게 먼저 다가와서 말도 걸어주고 이것 저것 챙겨주더라. 오빠가 자상하게 배려해준 덕에 연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Q.김수현 작가 작품에는 처음 합류하게 됐는데 어떤 인연이 있었나.
손여은: 작가님이 내 전작인 MBC ‘구암 허준’을 보시고 감사하게도 캐스팅 제의를 해 주셨다. 대본을 보면서 항상 작가님 특유의 따뜻함이 묻어나서 촬영하는 동안도 철저하게 믿으면서 할 수 있었다. 순발력을 요하는 부분도 그렇고, 내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Q.극중 피아노 치는 연기는 직접 했다고 들었다. 실제로도 피아노를 전공했다고.
손여은: 일곱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워낙 음악을 좋아했다. 미술이나 다른 것도 많이 배워봤는데 피아노 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우연한 기회에 연기로 전향하게 됐지만 피아노는 항상 옆에 두고 있다. 극중에서는 채린이가 친다는 생각을 하고 편곡도 좀 했다. 좀더 격정적인 분위기로 감정을 최대한 몸에 실어서 연주했다. 작가님께서 마지막에는 서정적인 곡을 주문하셔서 쇼팽의 녹턴을 치기도 했다. 앞으로도 작품 속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겠다. 음악으로 서로 교류하고 사랑하는 작품이 있으면 꼭 해보고 싶다.


Q.연기자 전향 과정이 궁금하다.

손여은: 피아노를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대학시절 부산에서 우연히 서울에 놀러왔다 길거리 캐스팅이 돼 데뷔 기회를 잡게 됐다. 집에서는 물론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피아노를 했다고 꼭 그와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술은 어차피 다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연기 하면서 무척 행복해서 같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Q.아, 겉보기에는 ‘서울 여자’ 느낌이 많이 나는데 고향이 부산인가?
손여은: 맞다. 부산사투리 연기도 잘 할 수 있는데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표준어보다 사투리로 하면 표현이 훨씬 풍부해질 때가 있다. 사투리도 장점과 특기가 된 세상이 와서 반갑다.

Q.데뷔 10년차인데 오랜만에 ‘손여은’이라는 이름 석자를 제대로 알린 것 같다.
손여은: 별다른 조바심은 없었다. 그저 맡은 역할 하나 하나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데 대해 감사하는 부분이 많다. 채린이가 미운 짓도 많이 했는데 그 마음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고맙다는 생각이다. 어떤 역을 하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 연기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가 있으면 좋겠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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