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 (7)
최규성 (7)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53)씨는 텐아시아에 매주 인디뮤지션을 소개하는 ‘골든 인디 컬렉션’을 연재하고 있다. 매주 그가 보내온 글과 사진을 편집하면서 느끼는 것은 콘텐츠의 무게감이다. 직접 찍은 사진들, 그리고 뮤지션들의 구술을 통해 정리된 음악적 여정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값진 내용들이 그 안에 있다. 최 씨는 음악에 대한 평가 이전에 그들이 살아온 삶에 집중한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뭘 좋아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는지를 물어본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담아낸 ‘팩트(fact)’ 덩어리들은 음악인을 소개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명함판이 된다. 그리고 그 명함판은 음악에 다가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최 씨가 최근에 펴낸 책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 504쪽) 역시 엄청난 팩트의 덩어리다. 1958년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된 LP부터 지난해 나온 조용필의 ‘헬로’까지 자신이 열정적으로 수집한 반세기 동안의 LP를 집대성했다. 저자는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LP의 라벨부터 음반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 시대적 배경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았다. LP에 대한 사진과 글을 보다보면 음반이 손에 잡히는 것 같다. 이러한 팩트들의 집합은 자연스레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다가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음악이 담긴 LP 자체에 집중을 해보려 했어요. LP의 재킷만 봐도 그 안에 시대의 핵심, 유행의 흐름이 들어가 있어요. 신중현과 엽전들 1집 LP를 보면 초반 재킷에는 ‘미인’의 이름이 빠져 있어요. 처음엔 타이틀곡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런데 나중에 ‘미인’이 히트를 하면서 재반부터는 이 곡이 타이틀곡으로 표시가 돼서 나와요. 그런데 나중에 신중현이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이 음반에서 무려 7곡이 방송금지 처분을 당하죠. 그래서 노래를 들을 수 없도록 X표로 긁어놓은 훼손된 음반이 생기게 되요. 이런 흔적이 70년대 금지문화를 증명하는 사료예요. 이런 스토리를 실물의 LP를 통해 직접 보여주는 거죠.”
최규성 (1)
최규성 (1)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최규성 씨는 LP의 초반부터 많게는 7~8개의 재반의 LP와 재킷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찍어 책에 실었다. 재킷에 담긴 크레디트만 봐도 역사의 흔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다. 여기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걸어 다니는 음악 백과사전’으로 명성이 자자한 저자의 방대한 지식이 글로 담겼다.

최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인 1973년부터 음반 수집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TV, 라디오로 음악을 접해온 최 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 갔다가 LP를 처음 봤다. “시꺼먼 것이 돌아가는데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 나를 흥분시켰어요. 몸에서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일었죠. 그 노래가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였어요. 이어서 핑크 플로이드, CCR 등을 들으면서 LP를 모아야겠다고 결심했죠.”

가요에 애정이 깊었던 최 씨는 팝 음반과 함께 신중현, 키보이스, 트윈 폴리오, 데블스, 한대수, 김민기, 김의철 등의 LP를 함께 모았다. “당시 음악 듣는 선수들은 한국 대중음악을 무시하던 시절이었어요. 가요 LP를 사면 쪽팔린다고 할 때죠. 그런데 난 한국의 포크, 그룹사운드를 너무 좋아했어요. 윤연선, 박미성, 임희숙은 특히 사랑했던 여가수들이죠.”

대학에 가기 전까지 4,000여장의 LP를 모았다. 그러다 우연한 사고로 LP들을 모두 날리면서 충격을 받아 수집을 그만뒀다. 신문기자로 일하던 90년대에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 동호회가 유행했다. 최 씨는 수집가로써 면모를 발휘하며 하이텔 AV동호회에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당시 절판된 레이저디스크를 찾아다닌다고 해서 ‘절판소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시 음반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경험하고 나서부터다. “동호회 지인의 집에 갔는데 1억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오디오가 있었어요. 그 장비로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듣는데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갑자기 LP를 모으던 옛 생각이 간절해졌죠.”

다시 LP 수집을 결심한 최 씨는 그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가이드북을 찾아 서점에 갔다. 하지만 가요 LP를 제대로 다룬 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직접 LP가이드북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이때가 1999년이었다. 이후 최 씨는 미국, 유럽, 아시아, 심지어 북한에서도 LP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주간한국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추억의 LP여행’을 연재했다. 이 연재기사의 애독자였던 민음사 박맹호 회장은 최 씨에게 “작품성 있는 아티스트를 다루는 것도 좋지만 이미자, 하춘화, 남진, 나훈아와 같은 국민가수들에 대한 자료도 정리가 제대로 안 돼 있다. 이런 대중가수들도 다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 전까지는 포크, 록 등 소위 음악을 좀 듣는 선수들이 좋아하는 음악 위주로 모았죠. 박 회장님의 말을 들은 후에는 주류의 인기가수들의 음반까지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어요. LP만 모은 것이 아니에요. 음악잡지, 공연 포스터, 가수들의 무대의상, 트로피까지 음악관련 자료들을 모조리 수집했죠.”
최규성 (6)
최규성 (6)
병적인 수집욕은 결국 504쪽 분량의 두터운 실질적인 책의 자료가 됐다. 여기에 인터뷰, 신문사 자료실에서 먼지와 싸우며 얻어낸 정보들이 총망라됐다. 최 씨는 자신이 가진 음반 중 191장을 골라 심층적으로 다뤘다. 음반 선정 기준은 뭘까? “시대적으로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음반들을 골랐어요.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한 12인치 LP ‘KBS 레코드 시리즈’, 최초의 록 창작 음반인 애드훠의 ‘비속의 여인’,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한 김 시스터즈 등이 그런 음반이죠.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제작한 최초의 LP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나라잖아요. 한국대중음악의 뿌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최 씨는 한국대중음악을 바라보는 핵심 키워드를 뽑아 목차를 나눴다. 신중현 사단을 시작으로 포크, 그룹사운드, 트로트, 사운드트랙 등을 시대별로 정리했다. 이러한 정리를 통해 잘못된 역사도 바로잡으려 했다. “잘못 알려진 내용들이 상식처럼 된 경우가 많아요. 최초의 포크를 1969년 트윈 폴리오의 음반이라고 하는데 이미 1964년에 아리랑 브라더스가 최초의 포크음반을 발표했죠. 전인권의 노래로 유명한 ‘사노라면’은 구전가요로 알려져 있는데 연원을 살펴보면 이 노래가 길옥윤이 만든 곡으로 자니리가 먼저 부른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외에 펄 시스터즈의 데뷔곡 ‘커피 한 잔’은 에드훠의 에드훠 첫 앨범에 ‘내 속을 태우는구료’로 먼저 담겼고, 김광석의 ‘불행아’는 김의철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가 원곡이죠. 전문가들도 헷갈리는 게 한둘이 아니에요. 잘못된 팩트들을 바로 잡으려 했습니다.”

책에는 희귀한 LP도 많다. 1975년 수감 중인 김지하의 인터뷰 육성과 직접 부른 노래를 담은 옥중 음반 ‘김지하 시와 노래의 말’, 길옥윤과 패티김이 결혼식 하객에게만 나눠줬다는 가수 커플 최초 결혼 기념음반, 일본 조총련계에서 나온 전설의 음반인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 김현식이 ‘사나이 노래’ 한 곡을 고고, 블루스 록, 행진곡 버전으로 편곡해 실은 싱글 등 진귀한 음반들도 책에서 볼 수 있다.

꿈에 그리던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펴낸 최 씨의 다음 목표는 뭘까? “이제는 대중음악 아카이브를 만드는 것이 남은 꿈이에요. 지금 해외에서 케이팝이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뿌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잖아요. 대중음악을 연구하는 전문가부터 일반 대중들까지 유익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음악 아카이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대중음악의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어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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