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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8개월이다. 10년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의 전설’ 홍진호가 방송인으로 거듭나기까지 걸린 시간 말이다. 지난해 7월 종방한 케이블채널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에서 우승자로 이름을 알렸던 그는 ‘더 지니어스2’에 출연해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7회에 탈락하며 시즌1 때만큼의 인상적인 플레이는 선보이지 못했지만, 그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사실은 그를 향한 대중의 관심. 게임 스타크래프트: 부르드 워 리그의 종언과 함께 자취를 감췄던 팸덤(fandom)이 실체를 드러낸 순간, 그 파급력은 실로 놀라웠다. 공교롭게도 ‘더 지니어스2’가 매회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장악한 것도, 방송 논란이 이 정도까지 가열된 것도 그 원인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즌1은 상금, 시즌2로는 인기를 얻었네요.”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라디오에 이어 방송까지 종횡무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4년 새로운 도전의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스스로 ‘스타크래프트의 늙은 호랑이’에서 ‘방송가 병아리’가 됐다”고 고백한 이 남자, 어디까지 뻗어 나갈 수 있을까.

Q. 생각보다 일찍 탈락했다. (웃음)
홍진호: 마음 편하게 보고 있다. 관전자 입장이 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웃음)

Q. ‘더 지니어스2’는 유독 각종 논란에 홍역을 치르는 일이 잦았다.
홍진호: 방송 특성상 2~3회씩 앞당겨 녹화하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대처가 어렵더라. 직접 출연하는 입장에서는 ‘논란’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마치 ‘콤보(combo)’ 터지듯이 나오니까 당황스럽더라. 또 우연히 비연예인 출연자들이 모두 탈락하면서 남은 출연자들도 게임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더 지니어스’의 매력이 추악한 승리, 사회의 더러운 측면 등을 수면 위로 꺼내는 건데 주위 반응 신경 쓰느라 손발이 묶였다.

Q. 아무래도 논란의 시발점이 된 건 6회였다. 시청자들은 ‘이두희 신분증 은닉’에 대해 격분했다. 직접 게임에 참가한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홍진호: 사실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잘못된 플레이’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신분증을 준다는 것은 그걸 통한 암묵적인 거래가 용인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나도 신분증을 받자마자 ‘아, 오늘 신분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두희가 워낙 덜렁대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일이 터진 거다. 제작진도 답답했을 것 같다.

Q. 6회 방송을 보며 당신의 대처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최초 연합을 계획했던 이두희가 게임 참여가 어렵다면 다른 파트너를 찾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메인 매치 내내 두 손을 놓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조금 의아했다.
홍진호: 사실 방송 이후 후회를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모로 머리가 복잡했다. 전 시즌 우승자라는 사실 때문에 견제도 많이 받았고, 이미 상대 팀 연합에서 우승할 수 있는 계획을 짜고 완성 단계에 있었기에 그들의 틈새를 파고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게임에서 생존을 최우선 목표로 뒀다면 나름의 방법을 찾았어야 하는 건 맞다. 괜히 나 때문에 감정의 화살이 출연자들에게 돌아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Q. 임요환이 ‘독점게임’에서 폭탄을 조유영에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은데.
홍진호: 임요환의 플레이는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웃음) 본인 입장에서는 항상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는 게 문제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예전에 임요환이 이두희에게 배신당한 적이 있으니까. 조유영이 그 틈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

Q. 임요환과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음에도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홍진호: 나는 좋은 플레이를 하고 싶은 마음과 승리에 대한 욕심이 반반인데 임요환은 자기 자신의 생존이 1순위다. 그게 의도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물론 가넷 0개, 우승 0번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다.

Q. 그래도 보통 8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게임에서 후반부에는 신분증을 돌려주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시즌1 출연자들이었다면 실컷 놀리다가 다시 신분증을 돌려주며 “같이 해보자”고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홍진호: 시즌2 출연자들이 정이 없는 건가? (웃음) 사실 게임하는 입장에서는 집중하다 보니 그런 걸 잘 못 느낀다. 다만 이번 출연자들은 시즌1을 통해 학습을 마친 뒤 합류했으니 게임에 대한 의욕과 우승에 대한 욕심이 더 강했던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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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 욕심이 만든 연합이 제대로 된 게임의 진행을 방해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사실 5회 ‘7계명’ 때는 제작진이 무한대 칩까지 준비해놨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끝날 게임이 아니었다.
홍진호: 시즌1 때는 다들 경험이 없어서인지 각자 문제 해결에 집중하다가 그게 잘 안되면 연합을 만드는 식이었다. 시즌2는 그 반대다. ‘7계명’도 게임 설명을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이건 무조건 시너지구나’하고. 배신, 연합보다는 악어와 악어새를 찾는 진행이 필요했는데 잘 안됐다.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Q. 어떻게 보면 이번 시즌의 게임 구성이 더 그런 측면을 부각한 감도 있다. 메인매치부터 데스매치까지 개인의 지략보다는 연합이 중요한 게임이 다수 등장했다.
홍진호: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다만 어쨌든 ‘더 지니어스2’에서 중요한 건 게임보다도 그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의 자세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Q. ‘더 지니어스’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홍진호: 시즌1 때는 상금을, 시즌2에서는 인기를 얻었다. (웃음) 인정한다.

Q. 최근 라디오에 이어 방송까지 진출했다. 앞서 시즌1 우승 이후에는 “프로게이머 출신으로서 내가 가진 무기가 장점이다”고 말했다. 그 무기의 힘을 실감하는가.
홍진호: 아직 확실한 답을 내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방송이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 ‘더 지니어스’처럼 승부를 통해 나의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프로그램 외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려면 더 공부가 필요하다. 새로운 전장에서 나만의 무기가 무엇일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Q. 어떤 무기가 필요할 것 같나.
홍진호: 방송기량? (웃음) 경험이 최고의 배움이라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부딪혀보고 있다. 게임을 할 때는 ‘늙은 호랑이’처럼 있었는데 방송가에 오니까 ‘병아리’가 따로 없다. (웃음) 내가 유재석처럼 판을 만들고 움직여나가는 것은 못할 것 같고, ‘더 지니어스’로 얻은 스마트한 이미지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예전에 만든 캐릭터를 고수할 생각은 없다.

Q. 딕션(발음)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웃음)
홍진호: 나도 라디오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방송가 사람들은 딕션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지 않더라. 그냥 캐릭터로 받아들여 주는 것 같다. 30대에 접어드니까 심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긴다. (Q.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스피킹 책을 읽으며 발음 교정을 하는 모습도 공개됐다) 딕션은 약점이 아니라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책은 누구 줘버리려고 한다. (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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