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빗
다빗
사랑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일을 한다는 것, 쉬운 말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신인가수 다빗은 이를 조바심 없이 차근차근 이루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자신의 생일에 첫 싱글 ‘바람이 불면’을 발표한 다빗은 싱그럽고 신선한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려고 노력하는 싱어송라이터. 미국 실용음악 명문 학교 버클리 음대에 재학 중인 다빗은 한때 아이돌 기획사에 몸을 담기도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에 맞는 음악을 찾기 위해서 작곡을 시작했다. 휘성, 제이슨 므라즈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계기가 됐다. 그는 2012년 ‘제이슨 므라즈 커버송 대회’에서 3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1989년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빗은 부족할 것 없는 집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부모님이 일방적으로 정해준 인생은 오히려 스트레스였다. 그런 그의 유일한 돌파구는 음악 그리고 한국이었다. 버클리 음대라는 명문 학교에 입학해서도 한국에 대한 그리움은 커졌다. 다빗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찾은 한국에서 밥에 간장을 비벼 먹으며 끼니를 버틸 정도로 어렵게 지냈지만, 오히려 그는 한국 생활의 매력을 더욱 느꼈다. 그리고 그만의 음악을 위해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다. 1위를 해야겠다는 욕심보다 평생 음악을 즐기겠다는 그의 즐거운 마음은 음악에도 이어져 데뷔와 동시에 팬미팅을 개최할 정도로 반응을 얻고 있다.

Q. 이름부터 특이하다. ‘다빗(Dabit)’이라니 ‘다비드(David)’에서 따온 것인가?
다빗 : 원래 이름은 데이비드(David)다. 친구 중에 데이비드 오라는 친구가 있는데 계속 헷갈려서 친구들이 나를 다비드를 발음해 불렀다. 그래서 어떤 이름으로 활동할까 생각하다 아예 스펠링을 바꿔 다빗으로 가보는 게 어떨까 생각했다. 친구들이 항상 장난식으로 썼던 그 이름이 재미있게 ‘Dabit’으로 바꾸자고 해 더 의미가 있다.

Q. 미국에서 왔다고 들었다.
다빗 :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과 미국을 자주 왔다 갔다 했다. 아기 때부터 매년 방학마다 한국에 왔다. 유치원을 한국에서 다녔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두 달씩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한국말을 계속 연습할 기회도 있었고, 난 오히려 한국이 더 편한 것 같다.

Q. 실용음악으로 유명한 버클리 음대 출신이다.
다빗 : 버클리 음대를 휴학하고 한국에 왔다. 형이 두 명 있는데 둘 다 공부를 잘해서 나도 형들처럼 그 길을 따라가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음악을 너무 하고 싶었다. 기회가 없어서 레슨도 못 받고 있다가 버클리 음대에 지원만 해보겠다고 용기를 냈다. 아버지께서는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덜컥 합격하고 장학금까지 받게 돼 정말 음악을 하게 됐다. 진짜 운이 좋았다. 막상 합격하니까 아버지가 당황하셨는지 1년만 늦게 입학하자고, 다른데 다녀보고 결정하고 말을 하시더라. 그래서 한 학기를 한국에 있는 경희대학교에서 보내기도 했다.

Q.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던 것인가? 어떻게 설득했나.
다빗 : 아무리 말해도 아빠하고 엄마는 잘 듣지 않으신다. 그래서 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계획을 철저하게 다 준비해놓고 설득한다. 아버지가 교수이신데 어떤 것을 하게 되면 의미도 있어야 되고, 이유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님께는 마치 기획안을 짜서 발표를 해야 한다. 버클리 음대 지원도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있었다.

Q. 음악이 즐겁다는 것을 언제부터 알게 됐나?
다빗 : 아마 초등학교 4~5학년 쯤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 전화로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음성 녹음으로 노래를 불러보고 맨날 들었다. 그때는 목소리가 안 좋아서 실망했지만 그때부터 녹음하는 데에 취미를 두고 싼 마이크로 사고, 돈을 모아서 컴퓨터도 샀다. 많이 듣고 연습하다보니 자연스레 음악이 좋아졌다. 사실 큰 형은 뉴욕에 있는 투자회사에 다니고 작은 형은 의대에 다닌다. 어릴 때부터 형들이 너무 뛰어나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삼형제가 축구, 태권도, 학교에서 반장, 회장도 똑같이 했다. 그런데 내가 항상 꼴찌였다. 그나마 좀 뛰어났던 게 음악이었다. 피아노, 색소폰도 같이 배웠지만 그 중 노래만 내가 집중적으로 잘했었다. 그래서 노래로 스트레스 많이 풀고 나만의 길을 찾았던 것 같다.

Q. 그럼 음악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다빗 : 처음 음악에 빠지게 된 앨범이 휘성 2집이었다. 그때 한참 R&B에 빠져서 계속 가요를 들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제이슨 므라즈에 빠졌다. 그래서인지 내 음악에서도 어느 정도 휘성 선배님의 R&B 느낌과 제이슨 므라즈의 가벼운 어쿠스틱 느낌도 있다. 또 버클리를 오래 다니다보니 재즈 느낌도 살짝 있다.

Q. 미국에 있었을 텐데 휘성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인가?
다빗 : 휘성은 미국에 있을 때 사촌누나가 생일 선물로 앨범을 보내줬다. 그때 휘성 2집, 이효리 2집, 브라운아이드소울 1집을 선물 받은 것으로 기억난다. 그때 완전 휘성에 꽂혔다. 목소리에 소울이 정말..와… 만약에 만나게 된다면? 지금 만나기는 싫다. 좀 더 내가 음악을 많이 해보고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을 때, 그때 만나고 싶다.

Q. 그러고보니 2012년 ‘제이슨 므라즈 커버송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다빗 : 당시 한국에서 제이슨 므라즈 콘서트를 하면서 대회가 열렸다. 나도 참가하려고 하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사람들도 참여한다기에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마감 한 시간 전에 카메라를 틀고 원샷으로 촬영해 그냥 올렸다. 어차피 원샷이니까 대충하는 것이어서 즐기면서 하면서 완전 ‘생쇼’를 했는데 그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톱3까지 올라갔다! 아쉬운 것은 1등은 제이슨 므라즈를 만나는 기회를 얻었고, 2등은 콘서트에 초대받는 것이었는데 3등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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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돌 기획사에서 연습생도 했다고. 그런데 왜 솔로 가수로 데뷔했나?
다빗 : 1년 정도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뭔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도 엄청 춰야 했지만, 아이돌 음악 편곡에서는 내 목소리가 묻힌다. 목소리가 음악에 맞지 않아 많이 고민을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혼자 곡을 쓰기 시작했다. 한국 가요도 아이돌 음악도 안 맞다 보니까 내가 나를 위한 곡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작곡 경험이 없어서 아무리 내가 곡을 써도 한국말도 완벽하지 않은데 잘 될까 생각하다가 가사를 쓰다 보니까 주변 반응이 나쁘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셨다. 사실 회사를 나오고 난 후 작곡에 대한 것이 조심스러웠다. 작곡을 시작하면 가수가 아닌 그냥 작곡가가 될까봐. 노래 때문에 음악을 시작한 것이었기에 정말 노래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노래들이 너무 안 맞다 보니까 못하는 것보다 목소리가 튀지 않더라.

Q.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목소리 장점은 무엇인가?
다빗 : 평소 목소리는 어느 정도 미성인데 저음은 땡땡하고 들 뜬다. 감미로울 때는 감미롭고 듣기 편한 목소리? (웃음)

Q. 작곡에 도전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텐데.
다빗 : 어렸을 때 엉터리로 먼저 시도해봤던 경험이 많이 도움됐다. 클래식을 연주해도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지 않고, 선생님 손만 쳐다보고 멜로디만 듣고 연주했다. 집에서 형들도 피아노 연습을 계속 하다보니 귀도 많이 발달이 됐다.

Q. 힘들 때 가장 의지가 됐던 것은 무엇인가?
다빗 : 한국에 같이 들어와서 지금 그룹 24K에서 활동하는 친구가 있다. 미국에서 같이 오디션 보다가 우연히 만나서 알게 된 친구인데 그 친구가 내 노래를 정말 과하게 칭찬한다. 버클리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가 눌려 있었는데 그 친구의 칭찬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그때부터 자신감도 갖게 됐다. 아직까지도 응원해준다. 고맙다.

Q. 가사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다빗 : 일상생활에서 뽑아 온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음악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어린 것 같다. 순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성숙해지면서 노래도 같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 내 목표다. 성숙해지면서 음악도 성숙해지고.

Q. 가수로서 첫 무대는 언제였나?
다빗 : 작년 12월 5일에 있었던 팬미팅이었다. 연습생을 하면서 팬들이 좀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진짜 큰 회사에 있지 않는 한 데뷔와 동시에 팬미팅을 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기뻤다. 당시 첫 곡은 너무 긴장해서 사실 망했었는데 마음이 안정이 되고, 또 사람들이 응원해주니까 좋았다. 그때 크리스마스 캐롤을 몇 개 부르고, 마지막으로 타이틀곡 ‘후후후’를 불렀는데 마음도 딱 잡았고 정말 잘 부른 것 같다.

Q. 그렇다면 처음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순간이 기억나나?
다빗 : 처음으로 무대에 선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휘성 선배님의 ‘안되나요’를 불렀다. 진짜 한 방에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부르고 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것이다. 노래 도중에 일어나서 박수를 치더라. 그래서 깜짝 놀라 정말 좋은 기분으로 나가면서 친구한테 어땠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내 마이크는 꺼져 있었고, AR이 같이 나와버렸던 무대였다. 휘성의 목소리로 내가 립싱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너무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내 인생의 첫 무대였는데 사람들이 나를 다 휘성으로 보니까… 그날 진짜 울었다. 친구가 “앞으로 휘성만큼 노래를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해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장기자랑에 나가 1등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는 케이팝이 크지 않았는데 미국 사람들이 휘성의 목소리를 듣고 기립박수를 친 것이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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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린 시절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고 갔으면 정체성이 헛갈리진 않았나?
다빗 : 많이 어중간했다. 방학 때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한국에 오니까 영어는 편한데 그렇게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한국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에게 항상 한국에서 살겠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 문화, 음식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한국은 살기 어렵다고 알아서 살아보라고 집도 구해주지 않으셨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딱 100만원만 들고 왔다. 처음에는 친척 집에 같이 있다가 일을 구하고, 집도 구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정말 쌀하고 간장만으로 비벼 먹었던 적도 있다. 99% 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확신하게 됐다. 그냥 좋다. 한국의 바쁜 생활 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Q. 이제 한국에서 산 지 3년이 지났다. 아직도 좋나? (웃음)
다빗 : 여전히 좋다. 작년에 미국에 3년 만에 돌아갔는데 가족들도 보고, 친구들을 보니 좋긴 좋은데 뭔가 계속 한국 생각밖에 나지 않더라.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한국에 정이 많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곳에서 사랑하는 일을 하니까 더 좋은 것 같다.

Q. 한국에서 가장 좋은 것은 뭔가?
다빗 : 음식. (웃음) 음악하는 친구들이 바빠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심심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먹으러 간다. 혼자 인천 가서 조개구이 먹고, 아무 생각 없이 빕스 같은 샐러드바에 혼자 먹고. 심지어 스테이크 집이나 고기도 혼자 식당에서 가서 먹어 봤다. 한국 음식이 제일 좋고, 맛집 투어하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Q. 2014년 목표는 무엇인가?
다빗 : 음악적으로는 프로젝트를 두개를 발표하는 것이다. 또 물론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콜라보레이션도 해보고 싶다. 가능하면 힙합하는 분들, 랩하는 분이랑 같이 하면 좋겠다. 사실 한국에 대해 아쉬운 것이 있다면 한국은 너무 빨리 바뀐다. 사람들이 즐기지 않고 일로만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디 차트에 올라야겠다, 1위를 해야겠다는 그런 욕심보다 차근차근 내가 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그냥 평생 음악을 즐기면서 하고 싶다.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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