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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힘. 최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때로는 과잉 소비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이 들려오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바로 ‘목소리의 힘’이다. 사실 김광석을 추억하는 행사는 매년 있어왔다. 리메이크 앨범, 미공개 발표 등도 꽤 많다. 김광석만큼 리메이크가 많이 된 가수도 드물 것이다. 올해는 유별나다. TV 뮤지컬 등이 차례로 김광석을 소환하면서 그의 노래는 여느 때보다도 많이 들려지고 있다. 이런 이슈 때문일까? 김광석 거리가 조성된 중구 방천시장이 ‘김광석 효과’를 보고 있다는 뉴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더욱 명징해지는 사실은, 김광석을 대체할 것은 김광석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누가 어떤 방법으로 김광석의 노래들을 재현해도, 음반 속 그의 목소리를 뛰어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더라.

김광석의 목소리가 이처럼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이웃집 형과 같은 친근감, 울음을 참는 듯한 떨림, 아버지가 토닥토닥해주는 따스함. 이 모든 것이 김광석의 목소리에 있다. 이 목소리가 비단 한국인에게만 매력을 주는 것은 아닌가 보다. 2009년에 독일의 힙합그룹 디 오르존스(Die Orsons)는 김광석을 추모하는 곡 ‘김광석(Kim Kwang Seok)’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해외 청취자들은 김광석을 ‘한국의 커트 코베인’ 내지 ‘한국의 밥 딜런’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들이 듣기에도 김광석은 커트 코베인이나 김광석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목소리인가 보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살펴보기 위해 잠깐 그의 삶을 돌아보자. 1964년생인 김광석은 1982년 명지대학교 입학 후 대학연합동아리 ‘연합메아리’를 통해 음악생활을 시작했다. 운동권 노래패였다. 1984년 김민기의 앨범 ‘개똥이’에 참여한 김광석은 이때 만난 사람들과 함께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1집을 발표하게 된다. (가수 안치환은 김광석의 노찾사 후배로 ‘마흔즈음’이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김광석에게서 느껴지는 민중가요 풍의 내지르는 창법은 이 당시에 체득된 것으로 보인다. 김민기의 목소리와 김광석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떨림은 둘 다 진중하고, 듣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덥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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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은 동물원을 거쳐 솔로로 데뷔해 총 6장의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김광석을 세상에 알린 것은 동물원 1집에 실린 ‘거리에서’다. 김창기가 만든 이 곡에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지닌 애절함이 잘 나타난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라는 가사가 이처럼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들기도 힘들 거다. 1989년에 나온 1집에서도 역시 김광석의 목소리는 애절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안녕 친구여’같은 노래가 그렇다. 1991년에 나온 2집은 김광석을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한동준이 만들어준 ‘사랑했지만’과 같은 곡은 가요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김광석은 DJ를 맡는 등 방송활동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 때문에 김광석은 ‘사랑이라는 이유로’와 같이 사랑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인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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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나온 앨범 ‘다시부르기 1’에는 김광석이 노찾사 시절부터 3집까지 불렀던 자신의 곡을 다시 녹음해 담았다. 활동 초기를 정리하는 성격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앨범에는 현재 김광석의 노래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등병의 편지’(김현성 곡)가 담겼다. 김광석은 1990년 ‘겨레의 노래’ 공연을 준비할 때 이 곡을 처음 들었다고 한다. 김광석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어머니와 자기보다 11살 많은 형 생각이 났다고 한다. 김광석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형이 군대에 갔고, 일주일쯤 뒤 집으로 발송된 형의 옷가지를 빨며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고. ‘이등병의 편지’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이런 감정이입 때문일 것이다. 김광석은 입대하는 팬을 위해 길 위에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군 위문 공연에서도 이 곡을 부르곤 했다.

김광석은 1992년부터 1995년까지는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다. 이는 소극장 공연문화를 만개시킨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김광석은 매 공연마다 자신의 일상사를 두런두런 들려줬다. 동물원에서 함께 했던 박기영이 패스트푸드 업체 KFC 매장 개발 담당자로 근무하던 시절. 김광석은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서 공연을 할 때 “내 친구 기영이가 KFC에 취직했다고 하는데, 나는 KGB와 같은 첩보기관인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닭장사더라”라는 멘트를 한동안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부인이 아이를 출산했다며 관객들에게 떡을 나눠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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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공연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1994년에 나온 4집은 모던포크의 색이 강하다. 첫 곡 ‘일어나’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통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김광석의 모습이다. 여기에 실린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등의 곡은 이전보다 훨씬 진지하고, 진솔하다. 특히 눈여겨볼 것은, 김광석이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김광석의 목소리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을 파고드는 이야기다. 장기공연을 통한 관객들과의 소통이 김광석에게 준 선물일까? 이러한 진중한 감성은 1995년에 나온 ‘다시 부르기 2’에서 조동익 밴드의 연주와 함께 고고한 음악으로 귀결된다. 이 앨범 역시 ‘다시 부르기 1’에 이은 리메이크 앨범으로 한대수 ‘바람과 나’, 이정선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양병집 ‘변해가네’, 김의철 ‘불행아’ 등 선배들의 곡이 담겼다. 이 곡들은 김광석의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목소리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김광석이 1996년 1월 6일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이들이 김광석이 가진 목소리의 힘을 목격했을 것이다.

김광석이 들려준 ‘목소리의 힘’은 오로지 김광석의 것이다. 김광석을 그 누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흔히 TV 속에 반짝하고 나오는 누군가를 김광석의 적자로 쉬 부르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만약 김광석의 적자가 있다면, 그는 TV가 아닌 공연장에 있을 것이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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