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원 대표
최재원 대표
“평생 못 잊는 첫사랑 같다.”

영화 ‘변호인’의 제작사 위더스필름 최재원 대표의 소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니, 어쩌면 제작할 때부터 수많은 논란과 잡음이 이미 예견됐던 ‘변호인’이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변호인’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한국영화 역대 아홉 번째 1,000만 영화라는 값진 ‘훈장’도 달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했던 최재원 대표, 시작할 때만큼이나 떠나보내는 마음도 남다를 것만 같다. 가슴에 품고, 평생 잊지 못하는 첫사랑의 기억처럼.

최재원 대표는 1998년 영화 투자에 발을 담그며 충무로와 인연을 맺었다. 2000년 투자사 아이픽쳐스를 설립했고, 2005년 아이픽쳐스를 인수한 바른손의 공동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장화, 홍련’, ‘고양이를 부탁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살인의 추억’,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40여 편의 투자와 제작에 참여했다. 2009년 NEW의 대표를 역임한 뒤 2010년 위더스필름을 만들었다. 16년째 영화 일을 해오면서 큰 흥행도 경험했고, 쓰라린 실패도 맛봤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충무로를 지켰고, 그 뚝심으로 ‘변호인’을 탄생시켰다. ‘변호인’을 떠나 보내기에 앞서 최재원 대표를 만났다.

Q. 먼저 ‘변호인’ 1,000만 돌파 축하한다.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아바타’를 넘어설 기세였으나 그건 좀 힘들 것 같다.
최재원 : 오락영화만은 아니므로 조금 의미 있는 순위에 오르는 게 소재적인 확장에서도 도움되고, 영화사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목표는 달성했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성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게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1,000만 넘으니까 또 그런 욕심을 내게 된다. (웃음)

Q. ‘변호인’을 떠나보내면서 ‘변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변호인’ 관련해 마지막 인터뷰일 것 같은데 영화 ‘변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듣고 싶다.
최재원 :
‘변호인’ 때문에 정말 행복했고, 가슴에 담고 살 것 같다. 만들 때부터, 과정에서부터 참 남다른 영화다. 당분간 못 잊을 것 같다. 사람들 역시 나한테서 ‘변호인’을 연상할 거고, 내 인생의 영화가 한 편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영화를 더 한다더라도 ‘변호인’ 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마치 느낌이 평생 못 잊는 첫사랑 같다. 아내한테 미안하지만, 정말 첫사랑이 생각났다. 결과가 좋아지니까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한테 많은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첫사랑이 문득 떠올랐다. (웃음). 다시 한 번 아내한테 미안하지만.

Q. 최근 봉하마을도 다녀왔다. 어떤 의미인가. 다른 무언가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
최재원 :
영화 찍을 때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고, 진정성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상적인 환경이라면, 봉하부터 다녀오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예를 들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명량’을 찍는다면 현충사부터 다녀오지 않았을까? 대대적으로 공개할 문제는 아니지만, 실화 이야기를 하면 그게 자연스러운 순서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고, 한번 갔다 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예전부터 이야기하곤 했다. 봉하마을에 가는 날짜도 우리가 정했고, 배우들 소속사도 모르게 진행됐다. 또 방문한 날이 권양숙 여사 생신이었는데 전날 우연히 알게 된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사진도 찍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안 찍혔는데 나중에 온 시민이 찍어서 알려지게 됐다. 사진도 딱 한 장밖에 없지 않나. (웃음)

최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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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변호인’을 흥행을 놓고 이런저런 분석이 나온다. 그 중엔 짜 맞춘 것도 많고. 제작자 입장에선
‘변호인’ 흥행 이유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최재원 : 시대 환경이 주는 무의식들에 대한 통감이 아닐까 싶다. 가장 큰 건 공분이다. 어느 현상에 대해 공분이 있었는데 그걸 영화가 적절하게 건드리고, 촉발시키기도 하면서 상호 연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회 정국이 안정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흥행을 못 했을 것 같다. 또 세대마다 다른 느낌을 준 것 같다. 40대는 살아온 시대에 대한 기시감을 던져주고, 30대는 힘든 가장의 마음을, 20대는 법정 드라마란 장르적 재미와 처음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무언가의 느낌을 준 것 같다. 각기 다른 감정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본 것 같다. 그리고 송강호가 지금까지 송강호를 뛰어넘는 연기를 해줬다.

Q. 노무현 색깔을 많이 뺐다고 했는데 원래는 어느 정도였나. 그리고 사실 뺐다고 하더라도 어떤 측면에선 굉장히 노무현의 색깔이 가득히 드리워져 있다. 몇몇 일화들은 노무현 실화를 그대로 가져오기도 했고.
최재원 :
기본적인 이야기는 노 전 대통령 이야기다. 이걸 좀 더 보편화시키는 걸로 가는 게 목표였다. 물론 빼고자 노력했지만, 빠질 수 없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확장하면, 그분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애를 쓰긴 썼는데 균형점은 영화적 캐릭터로서 가져갈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기본이었다. 다행스러운 건지 그 분의 실제 삶이 너무나 드라마틱했다는 점이다.

Q. 빼고, 더하는 것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무작정 빼고, 더하진 않았을 것 같다.
최재원 :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건 노무현이네’ 하는 이야기는 배제했다. 내 주장은 굳이 노무현이 아니더라도 타당한 이야기란 점이다. 반면 감독은 원작자 입장에서 노무현을 포기 못 한 지점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오는 타협지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지점이 굉장히 잘 됐던 것 같다.

Q. 분명 노 전 대통령 이야기임에도, 처음에는 ‘제대로’ 알리는 걸 조심스러워했다. 그 마음도 모르는 건 아니나 한편으론 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재원 : 영화는 영화다. 그거였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가 한두 마디 말과 단어로 패가 나눠어버렸다. 거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또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어느 형태의 입장을 취한다는 건 옳지 않다고 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을 찬양했다는 주장도 본 사람의 관점과 시각에서 판단하는 것뿐이다. 실제 노무현 지지하는 쪽에서는 오히려 비판하기도 한다. 난감했던 일이었다. 어차피 다 알 텐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먼저 나서게 되면, ‘왜 주인공이 송우석이야? 노무현으로 가야지’란 문제부터 발생하지 않겠느냐 싶은 거다. 송우석이란 인물을 창출해내는데 노무현의 삶을 모티베이션 했을 뿐이다. 송우석이 곧 노무현이 아니다. 그걸 관객들이 인지해 줬으면 했다.

최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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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재원 대표는 86학번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 운동권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한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당시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 핵심 간부였다고. 아무래도 그런 성향이 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키도 하겠다.

최재원 : 그 정도는 아니고. (웃음) 서총련 산하 농활추진위원회라고 있는데 거기 간부였다. 예전에 나를 기억하는 분이 핵심이라고 했을 거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땐 다 데모했다. 선배들이 다 잡혀가면, 후배들이 간부를 맡기도 했다. 이게 중요한 건 아닌데. (웃음) 낼모레 나이 50을 바라보면서 그 치열함을 잊고 살았던 거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 영화를 개봉하면서 그 생각이 더 들었다. 민주노총이 점거당한 날 대한극장에서 무대 인사를 돌고 있었는데,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학생 때 그렇게 욕했던 기성세대, 내가 바로 그 기성세대가 됐는데 내 자식들에게 뭘 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비판했던 기성세대처럼 돌아섰나? 그건 아닌 것 같고. 80년대 학번들은 데모 안 한 친구들이 거의 없었을 텐데 40~50이 된 상태에서 작금의 상태를 봤을 때 갖게 되는 허탈감, 죄책감이 마음속에 있다.

Q. 알려진 대로 ‘변호인’은 송강호의 합류로 상황이 급변했다. 또 최재원 대표는 송강호와 친구 사이기도 하다. 어떻게 설득했나.
최재원 :
설득한 게 없다. 책은 주고 싶은데 어떻게 줘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에 사무실에 찾아왔다. (위더스필름은 영화 홍보사와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 당시 송강호는 업무차 영화 홍보사를 찾았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작품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만들 거란 의지와 함께 작품 설명을 한 뒤 책을 줬다. 다음은 아시는 것처럼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그랬던 사람이 부산영화제에서 머리에서 안 떠난다며 감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 며칠 뒤에 ‘좋은 영화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연기할게’란 문자가 왔다. 일련의 과정은 강호의 판단이었지, 그렇게 설득하진 않았다. 제작자가 친구인 게 작용을 했겠지만, 그보다 시나리오와 감독에 대해 인정하는 게 많았다.

Q. 참, 송강호 설득에 앞서 양우석 감독의 뭘 믿었나. 영화 관련 일을 했다고 아무나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최재원 :
이 작품은 자기도 하고 싶어 했다. 입봉하고, 세 번째쯤 할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 보더니 ‘자기가 안 해도 된다. 더 좋은 감독 찾아보자’고 했다. 그리고 감독을 만났는데 다른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양우석 감독이 하는 걸로 됐다.

최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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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도 뭔가 신뢰나 확신은 있었나 보다.
최재원 :
기본적으로 뭘 말해야겠다는 스토리텔링은 잘한다. 기술적인 건 보완하면 되는 문제다. 아주 막말로 건방진 생각을 했던 건 정 안 되면 내가 백업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자신감도 있었고. 여하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강한 사람이 연출하는 게 맞는다고 봤다. 그래서 양 감독이 맞겠다 싶었다.

Q. 비단 ‘변호인’이 아니더라도 흥행도 경험했고, 실패도 경험했다. 둘 다 소중한 경험일 텐데 각각의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은 좀 다를 것 같다.
최재원 :
재밌는 게 상업적 성공 이후 제작자, 투자자 입장에서 씁쓸함을 맛볼 때가 있다. 좋은 성과가 다음에 그대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또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거다. 또 제작자, 투자자도 애를 많이 썼는데 내 것이 아닌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반면 잘못된 영화를 보게 되면, 왜 잘못되는지 분석하기 전에 결과에 매립돼 다음 찬스를 못 가지게 된다. 그래서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배드 서클’을 돌게 된다. 그럼에도 가장 큰 경험을 준 건 ‘놈놈놈’이다. 외형적 성과는 이뤘지만, 실제적 성과에서 뭘 놓쳤지? 왜 예산을 오버하고, 어느 점이 잘못됐는지 반추할 수 있었다. 일종의 책임감,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 등이 더 많아지게 됐다. ‘변호인’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고, 안쓰럽기도 하고, 어쩔 수 없었던 친구가 피디다. 제작사 대표가 현장에 상주하는 순간 실제 피디는 내가 된다. 그 친구가 맘에 걸리지만, 내 소신은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건방을 떨자면 내가 현장에 없었다면,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Q. 위더스 필름에서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변호인’ 같이 민감한 작품을 또 볼 수 있는 건가. 가령 87년 뒷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이번에 소위 좌파 영화를 만들었으니 다음엔 우파 영화를 만들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웃음)
최재원 :
아무 생각 없다. 배운 게 공감이다. 1,000만 만들어줬던 건 영화가 주는 공감이라는 커다란 울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위더스가 앞으로 가장 고민하는 부분일 것 같다. 코미디, 가벼운 영화일 수도 있지만, 공감이란 측면에서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고 생각. 벌려놓은 영화. 준비하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김대승 감독 ‘후궁’ 다음 차기작을 준비 중이고, 오상훈 감독도 휴먼 코미디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변호인’을 해서 성향을 궁금해하는데 좋은 책을 만나면 성향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1,000만 결과 때문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글. 황성운 jabon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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