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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말해 난해하다 자극 없다 안 섹시하다, 난 말해 억울하다 편견이다 이해는 한다
망할 변박을 멈추지 않을 거야, 오지랖 예술의 혼을 불태우며
마음을 열어봐 다 느끼게 될 거야, 전조의 환상에 가슴 젖어가며
오늘도 난 무명 무명 무명을 떨치네, Music is my life 배부른 소리하네

선우정아 ‘알 수 없는 작곡가’

텐아시아에서는 결산 기사를 통해 2013년 주요 흐름을 살펴봤다. 기사에서 언급된 굵직한 움직임들 외에도 여러 반짝이는 순간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다사다난했던 2013년을 떠나보내며 대중음악계 올해의 순간 10개를 선정했다. 당신은 올 한해 얼마나 많은 음악을 만났나? 음악으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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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의 도전, 들국화의 뚝심
올해 공교롭게도 조용필과 들국화가 같은 날 신곡을 공개했다. 지난 4월 2일 조용필은 통산 19집이자 10년 만의 신보 ‘Hello(헬로)’의 전곡 음원을 미디어에, 들국화는 27년만의 신곡을 생방송 라이브로 각각 들려줬다. 조용필과 들국화는 국내 가요계에서 상징적인 존재. 데뷔 45주년을 맞는 조용필은 오랜 세월 ‘가왕’으로 군림해왔으며,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스타였던 들국화는 작년 14년 만의 재결성을 통해 건재함을 보여줬다. 조용필은 자신이 가진 스타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 파격을 선보였으며, 들국화는 보다 성숙해진 음악으로 나이 든 대가의 풍모를 드러냈다. 둘의 신곡은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거장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가슴 뿌듯한 결과물이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음악이 너무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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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가 이영훈을 소환한 순간
6월 1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이문세의 데뷔 30주년 공연 ‘대한민국 이문세’에 5만 명의 관객이 들어찼다. 이문세는 객석을 바라보더니 “제가 그 유명한 이문세입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옆 사람 좀 꼬집어보세요”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는 스태프 600여명이 투여됐으며 비롯해 안성기 박찬호, 김완선, 송종국, 우지원, 류승완, 이금희, 최유라, 박경림, 이수영, 조세현(사진작가), 로이킴 등 수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합창단을 이뤄 무대에 오르는 등 엄청난 인력이 투여됐다. 이문세의 공연이기에 가능했던 것.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음악적 동반자인 작곡가 이영훈을 언급한 순간이었다. 이문세는 “우리는 무명 가수와 무명 작곡가로 만났다. 둘은 성격이 달라서 더 잘 맞았다. 내가 죽어서도 감사해야 할 사람”이라며 “이영훈은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있었다면 이 노래만큼은 반주해주지 않았을까”라고 말하며 ‘사랑이 지나가면’을 노래했다. 무대 위에는 마치 이영훈이 앉아 있는 것처럼 자동피아노가 연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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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춘 공연에 뜬 이효리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와야겠니?”(이효리) “누나 이렇게 오니까 좋잖아요. 노래 잘하네!”(김태춘) 가수 김태춘의 단독공연 ‘패배자 대 부흥성회’가 열린 7월 13일 저녁 8시 반경 홍대 라이브클럽 오뙤르. 김태춘이 혼자 노래를 하다가 이효리가 갑자기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네가 와 달라고 전화를 하니까 내가 안 올 수가 없잖니?”(이효리) “그냥 던져본 건데 진짜 오실 줄 몰랐어요.”(김태춘) “관객이 많네? 태춘이가 팬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인기가 꽤 있구나? 이 누나 덕분인가?”(이효리) 김태춘은 인디 신에서도 드물게 정통 컨트리와 블루스를 연주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올해 첫 솔로앨범 ‘가축병원블루스’를 발표했다. 이효리 5집 ‘모노크롬(MONOCHROME)’에 김태춘이 만들고 기타연주까지 직접 해준 ‘사랑의 부도수표’, ‘묻지 않을게요’가 수록되면서 둘은 인연을 맺었다. 활동 반경이 전혀 다른 두 뮤지션이 오누이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자 공연장 분위기는 한층 편해졌다. 당시 이효리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이상순도 공연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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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팝 오신 날, 올여름 가장 뜨거운 서울
이기 팝이 그렇게 관객을 잡아먹을지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 펑크록의 신이었다. 광분 그 자체였다. 찰나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가 노래를 하면 천지가 요동치는 듯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록이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 바로 이기 팝이었다. 아쉬운 것은 단 하나였다. 벨트는 풀었지만 바지는 벗지 않았다는 것. 이기 팝이 무대에 오른 8월 17일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시티브레이크’(이하 시티브레이크)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은 올해 들어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이했다. 바로 ‘이기 앤드 더 스투지스’ 때문이었다. 이기 팝은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광분해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첫 곡으로 ‘로우 파워(Raw Power)’가 시작되자 주경기장에 폭탄이 떨어진 듯했다. 음량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순전히 이기 팝 때문이었다. 관객들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신기한 풍경이었다. 메탈리카, 뮤즈가 나온다고 해서 ‘시티브레이크’ 티켓을 구매했을 젊은 팬들이 처음 보는 이기 팝을 보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노래 제목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기 팝이 뱉어내는 에너지는 진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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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프트베르크, 이제 그만 방사능
4월 27일 ‘전자음악의 알파와 오메가’ 크라프트베르크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이 열린 잠실 종합운동장 서문주차장 돔스테이지에서 춤추는 관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800명 가까운 관객들은 모두 3D안경을 낀 채 입체 영상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손에 잡힐 것 같은 사운드를 온 몸으로 느꼈다. 아마도 일부러 몸을 움직여 춤출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오감이 이미 춤추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인트로에 이어 첫 곡으로 ‘로보츠(Robots)’가 흐르자 영상 속에서는 지구로 향하는 우주선이 한국에 착륙을 시도했다. 입체영상 속 우주선이 객석으로 돌진하자 관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3D로 보는 듯한 전율이었다. ‘라디오액티비티(Radioactivity)’가 나오자 공연장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노래 중간에는 대표적인 방사능 유출 피해지역인 체르노빌, 히로시마, 후쿠시마 등의 지역 이름이 거론됐다. 이어 한글로 ‘이제 그만 방사능’이란 문구가 화면에 나오자 관객들은 반가움의 탄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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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돔, 빅뱅의 안방이 되다
12월 19일 도쿄돔에 선 빅뱅. 다섯 명의 힘은 대단했다. 지드래곤의 랩, 탑의 눈빛, 승리의 입담, 대성의 가창력, 태양의 섹시함이 도쿄 돔에 모인 5만5천 명의 팬들을 한 순간도 가만두지 않았다. 일본 돔 투어 중인 빅뱅은 그야말로 물이 오를 대로 올라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다섯 명이 호흡을 맞추면 하늘이 놀라고, 개인기를 발휘하면 땅이 동하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다섯 남자는 무대에서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 없었다. 일본 팬들은 시종일관 ‘비끄방(빅뱅의 일본 발음)’을 외치며 울고 웃었다. 빅뱅은 지난 11월부터 내년 1월까지 사이타마 세이부 돔을 시작으로 오사카 쿄세라 돔, 후쿠오카 야후 오크 돔, 나고야 돔, 도쿄 돔, 삿포로 돔을 도는 일본 6대 돔 투어를 통해 약 77만1,000명의 관객을 동원할 예정이다. 2009년 일본 정식 진출 후 4년 만에 일궈낸 쾌거. 빅뱅은 일본 진출 당시까지만 해도 현지에서 마니악한 인지도를 가졌었다. 소규모 클럽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공연장의 규모를 넓혀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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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형’을 춤추게 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아라비안 펑키 소울
5월 4일 ‘2013 51플러스 페스티벌’이 열린 문래예술공장. 자정 가까운 시각 무대에 오른 마지막 출연자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차 끊긴 사람들 아닌가? 밤새 놀아보자”며 관객들 가슴에 불을 댕겼다. ‘의심스러워’, ‘뚱딴지’ 등이 이어지자 여성들이 군무를 추기 시작했다. 꽤 어려운 동작을 단박에 따라하는 똑똑한 관객과 몸을 불사르는 성실한 뮤지션의 만남이었다. 한 흑인 관객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아라비안 펑키 소울에 맞춰 고함을 지르며 춤을 췄다. 이들의 춤은 도무지 멈출 줄 몰랐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51플러스’는 2010년 홍대입구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 위기에 놓였던 ‘두리반’을 돕기 위해 처음 생겨났다. 두리반 문제가 해결되고 난 후에도 사람들이 ‘51플러스’에 모여드는 이유는 순수하게 음악을 찾기 위해서다. 익히 알고 있는 뮤지션을 확인하러 오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탱글탱글한 음악을 미리 보러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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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용팝 앞에서 흐뭇해진 에로디
10월 13일 ‘잔다리 페스타’가 열린 홍대 주차장거리. 올해 화제가 된 걸그룹 크레용팝은 윤병주(로다운 30), 김인수(크라잉넛), 이보람(삼청교육대), 박재륜(닥솔로지) 등 인디 1세대 뮤지션들이 뭉친 프로젝트 밴드 에로디(L.O.D)와 함께 야외 스페셜 무대에 올랐다. 그라인드 코어를 추구하는 에로디의 난폭한 공연이 끝난 후 크레용팝이 무대에 오르자 공포에 떨던 관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크레용팝이 에로디의 반주에 맞춰 ‘빠빠빠’를 노래하자 어느새 모인 팝저씨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크레용팝이 무대에 오르자 에로디는 왠지 모르게 흐뭇해보였다. 크래용팝은 “작년 겨울에 홍대에서 게릴라공연을 하며 우리 음악을 알려나갔었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게 돼 너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2회째를 맞는 ‘잔다리 페스타’는 31곳의 무대에서 약 340여 팀의 아티스트들이 공연한 올해 행사에는 사흘간 약 5천 명의 유료관객이 몰린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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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선우정아와 관악기 둘, 그리고 귀신이…
11월 20일 오후 9시 서교동 KT&G상상마당에서 열린 공연 ‘앙상블, 선우정아’는 매주 수요일 열리는 기획공연 ‘웬즈데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공연은 총 5회 중 세 번째 무대. 선우정아는 두 대의 베이스와 노래, 아코디언, 오르간과 노래, 색소폰, 트롬본과 노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와 노래, 퍼커션, 피아노와 노래의 편성으로 무대를 준비했다. 이날 무대 위에는 선우정아, 그리고 색소폰과 트롬본뿐이었다. 보컬과 관악기 둘의 단출하고 또 실험적인 편성. 어떤 음악이 나오게 될지 궁금했다. 노래 ‘알 수 없는 작곡가’가 시작되자 궁금증은 일소에 해소됐다. 셋이서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앙상블은 흡사 무반주에 보컬 세 명의 아카펠라, 혹은 세 대의 관악기가 어우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빈틈이 없었다. 아니, 여백이 있어서 오히려 아름다웠다. 그리고 무대 위에 귀신이라도 왔는지 어디선가 미지의 화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면 선우정아 본인이 마녀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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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
12월 15일 서교동에 위치한 공연장 예스24 무브홀에서 콘서트 ‘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가 열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들인 신대철, 한상원, 최이철이 사측의 부당해고로 거리로 내쫓긴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를 연 것. 이날 공연장 앞에는 음악 팬들 외에도 명인들의 연주를 보러 온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긴 줄을 섰다. 공연장 안은 약 400여 명의 관객들로 가득 차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공연은 뜨거웠다. “기타는 자유! 기타는 저항!” ‘부두 차일드(Voodoo Child)’를 연주하다 감정이 복받친 신대철이 별안간 외쳤다. 뒤이어 ‘주님은 내가 부두교의 아이라는 것을 아시지’라는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 가사가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향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노래 가사보다 중요한 건 바로 기타가 내뿜는 표독스러운 소리였다. 그 분노에 찬 굉음은 마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울분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기타와 영혼이 하나가 된 듯 무아지경의 기타솔로를 5분 넘게 토해낸 신대철은 결국 기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공연장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이 이어졌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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