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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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소녀일 것만 같은 윤하도 이제 음악을 시작한지 10년이 다 돼 간다.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후 바지런히 달려왔다. 굴곡도 있었지만 언제나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려 했다. 당차고, 씩씩하고, 항상 웃었던 윤하. 헌데 새 미니앨범 ‘서브소닉(Subsonic)’에서는 성숙함, 그리고 약간의 어두움도 느껴진다. 아니, 어두움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체념이 섞인 어른스러움이라고 할까? 다소 민감한 질문인 ‘아이유와의 비교’에 대해 “요새는 예전만큼 비교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다”면서도 “처음에는 동생 태어난 기분이었다. 엄마가 나만 사랑했으면 좋겠는데 동생을 더 좋아해서 섭섭한 기분”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윤하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여유도 느껴졌다. 윤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새 음반은 음악이 평소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어요. 차분한 편이죠. 왠지는 모르겠어요. 요새 제가 좀 그런가 봐요. 중요한 분기점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물여섯 살이면 많은 나이는 아닌데, 벌써 내년이면 음악 시작한지 10년이 되요. 이제는 어리다는 것에 안주할 수 없고, 앞으로 또 다른 길을 생각하기 힘든 그런 분기점에 온 것 같다. 고민이 많답니다.”

윤하가 고민하는 것은 물론 뮤지션으로서 길이다. 윤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알고 있다. 이제는 슬슬 그 시선 밖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는 뮤지션과 아이돌의 중간에 있고, 연예인과 아티스트의 중간에 있는, 그 중간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당찬 소녀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당찬 소녀가 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새로운 길을 고민할 때가 된 거죠.”
윤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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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소닉’은 작년 7월에 나온 4집 ‘슈퍼소닉’, 올해 5월에 나온 ‘저스트 리슨(Just Listen)’에서 이러지는 3부작의 마지막격인 앨범이다. 지난 10년을 정리하듯이 윤하는 새 앨범에서 힘을 살짝 뺐다. 록의 성향도 보이지만 안개가 뿌옇게 낀 느낌이다. “저번 앨범은 힘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이번에는 편하게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다보니 곡들이 약간 어두운 톤으로 되긴 했는데, 그런 색을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제가 요새 느끼는 것을 편하게 담은 거죠.

새 앨범에는 ‘시간을 믿었어’와 ‘홈’ 두 개의 자작곡이 실렸다. 데뷔앨범 때부터 함께 작업해온 ‘스코어’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처음으로 마감 없이 곡을 만들었어요. 원래 마감이 있어서 회사에서 ‘언제까지 곡을 만들어와’ 이렇게 주문을 하시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 나온 곡이 ‘시간을 믿었어’, 두 번째로 나온 곡이 ‘홈’이예요. 최근의 제 정서가 그대로 들어갔죠. ‘시간을 믿었어’에서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홈’에서는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말하고 싶었어요.

‘시간을 믿었어’는 윤하 본인이 느낀 사랑의 상처를 담은 곡이다. “함께 했던 시간만큼,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사라지고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어른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야.(웃음)” 최근 미쓰에이 수지가 ‘힐링캠프’에서 노래한 ‘그 거리’도 윤하 본인의 아픔을 담은 곡이다.
윤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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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소닉’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그 안에는 내부로 수렴하는 격정 같은 것도 느껴진다.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느낌이랄까? 뻔한 위로는 없다. 대신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하려 한다. 이런 변화는 나이 탓이다. “어렸을 때에는 그냥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말하는 게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죠. 그냥 누군가 상처받았던 이야기, 누군가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하다보면 아픔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도 너랑 똑같아’라고 말하기만 해도 되죠.”

윤하는 새 앨범에서는 의도적으로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슬픔을 솔직히 털어놨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성장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음악에 제 슬픔을 숨겨야 한다고, 항상 밝은 모습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물론 언제나 튼튼한 윤하가 팬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솔직하지 못한 거잖아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아직 나는 당차고 튼튼한 소녀입니다. 전 상처 받지 않고요. 캔디 같은 아이랍니다’라고 연기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거죠.”

윤하는 차기작을 온전히 자신의 곡으로 채우고 싶은 욕심도 있다. 온전한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후배들인 아이유와 김예림처럼 좋은 프로듀서, 좋은 작곡가를 통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은 없을까? “지금은 제 음악을 찾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전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홀로 서는 것이 제 길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팬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중요하죠. 하지만 히트를 하지 않아도 제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했으면 후회 없어요. 자신의 음악을 꾸준히 했을 때 그것이 공감을 얻어내면 그게 진짜 좋은 노래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게 편하단다. 10년 후 쯤에는 재즈 앨범을 한 장 가진 여가수가 되고 싶다. “요새 재즈를 많이 들어요. 엘라 피츠제럴드, 줄리 런던, 멜 토메와 같은 보컬 음반 주로 듣고, 블루스도 좋아해요. 지금은 제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인 것 같은데 나이를 먹으면 꼭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이예요.”
윤하3
윤하3
윤하는 오는 27일과 28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홀에서 단독공연 ‘스물여섯 그리고’를 열고 한 해를 마무리한다. 2009년 첫 국내 단독공연 후 무려 3만 여명의 유료관객을 동원한 윤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연습한다고 울상을 짓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녀다. 그리고 음악보다 먹는 게 더 좋다고 말하는 모습은 순수한 아이 같다. “먹는 게 너무 좋아요. 먹어야 노래도 할 수 있잖아요. 예능은 못하지만, 먹방 프로그램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자신 있는데!”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위얼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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