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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자유! 기타는 저항!” ‘부두 차일드(Voodoo Child)’를 연주하다 감정이 복받친 신대철이 별안간 외쳤다. 뒤이어 ‘주님은 내가 부두교의 아이라는 것을 아시지’라는 지미 헨드릭스의 노래 가사가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향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노래 가사보다 중요한 건 바로 기타가 내뿜는 표독스러운 소리였다. 그 분노에 찬 굉음은 마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울분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기타와 영혼이 하나가 된 듯 무아지경의 기타솔로를 5분 넘게 토해낸 신대철은 결국 기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공연장이 떠나갈 것 같은 함성이 이어졌다.

15일 서교동에 위치한 공연장 예스24 무브홀에서 콘서트 ‘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가 열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타리스트들인 신대철, 한상원, 최이철이 사측의 부당해고로 거리로 내쫓긴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를 연 것. 이날 공연장 앞에는 음악 팬들 외에도 명인들의 연주를 보러 온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긴 줄을 섰다. 공연장 안은 약 400여 명의 관객들로 가득 차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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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가 열리게 된 이유는 지난 11월 1일 콜텍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G6 콘서트’ 때문이다. 콜텍문화재단은 기타제작 회사 콜트콜텍의 박영호 회장이 이사장을 맡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공급하고 있는 콜트콜텍은 지난 2007년 노동자를 대량 정리해고하면서 노사갈등을 빚었다. 이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사측의 공장 해외 이전으로 인한 폐업 및 정리 해고에 맞서 현재까지 거리 집회, 송전탑 고공 투쟁, 단식 투쟁, 법정 투쟁, 문화예술인들과의 연대 투쟁 등을 벌여오고 있다. 신대철 등 기타리스트들은 콜트콜텍의 노사갈등을 모르는 상태에서 ‘G6 콘서트’ 공연을 수락했다. 당시 신대철은 SNS를 통해 콜트콜텍 사건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공개 사과하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한 공연을 열 것을 약속했다.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기타 레전드, 기타 노동자를 만나다’가 열린 것이다. ‘콜트콜텍기타노동자와 함께하는 공동행동’이 이 공연을 기획하면서 일사천리로 약속이 지켜졌다. 공연이 열린 15일은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이 2510일을 맞는 날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응답한 명인들의 연주는 더욱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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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의 열기는 대단했다. 오프닝을 맡은 게이트 플라워즈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의 체온을 단번에 올렸다. 보컬 박근홍이 짐승처럼 포효하자 염승식은 이빨로 기타를 연주하며 응수했다. 게이트 플라워즈는 작년 여름 콜트콜텍의 투쟁 2000일을 기해 공장에서 열린 공연에도 참여한 바 있다. 최이철, 한상원, 신대철은 이날 기타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들을 선보였다. 한상원은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 제임스 브라운 등 펑크(funk)의 클래식을 연주하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냈다. 폭발적인 기타 솔로을 토해내자 엄청난 음압이 객석을 둘러쌌다. 한상원은 “재밌어요? 여러분이 저의 스위치를 눌러주셔서 제가 이렇게 기타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환갑을 넘긴 최이철은 연륜에 맞게 따뜻한 연주로 관객을 감싸줬다. 사랑과 평화 시절의 히트곡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겨울바다’ 외에 캐럴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을 연주하며 관객들을 위로했다. 최이철은 “살다보면 잊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끔찍한 일들은 잊어버리자. 이제는 날아오를 시간”이라며 사랑과 평화 5집에 담긴 ‘날개’를 들려줬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연장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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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철이 이끄는 시나위의 무대는 뜨거운 록의 향연이었다. 신대철은 새 앨범 신곡과 함께 ‘크게 라디오를 켜고’, 그리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미인’을 접붙이기하면서 한국 록의 클래식들을 대거 들려줬다. 신대철은 이날 공연을 위해 특별한 순서도 준비했다. “평소에 잘 안하는데 오늘은 꼭 해보고 싶은 곡이 있다. 기타를 위해 모인 날, 기타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해보고 싶다”라며 블루스 곡 ‘해브 유 에버 러브드 우먼(Have You Ever Loved Woman)’을 연주하고 직접 노래까지 했다. 신대철의 기타와 블루스하프(하모니카)가 어우러지자 블루스의 진한 맛이 배어났다. 진정 기타의 매력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음악이 블루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뮤지션들이 동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기존에도 투쟁에 공감한 뮤지션들은 ‘노 뮤직, 노 라이프(No Music, No Life)라는 기치 아래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장기간 공연을 펼쳐나갔으며 이는 지금도 꾸준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유명 록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기타리스트 탐 모렐로는 미국에 원정투쟁을 간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직접 만나 연대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한국의 대중음악 역사를 만들어온 전설과 같은 대선배 기타리스트들이 투쟁에 동참했다는 것에서 의미가 컸다. 방종운 금속노조 콜트악기 지회장은 “연주자분들이 행동으로 연대해주셔서 너무 고맙다. 기타는 착취의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름다운 영혼을 통해 보여주셨다”라고 말했다. 장석천 금속노조 콜텍지회 사무장은 “이제 투쟁이 8년째에 접어들었다. 오늘 공연을 통해 기타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악기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라고 말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콜트콜텍기타노동자와 함께하는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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