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누나’ 방송화면
‘꽃보다 누나’ 방송화면
‘꽃보다 누나’ 방송화면

tvN ‘꽃보다 누나’ 2회 2013년 12월 6일 금 오후 10시 20분

다섯 줄 요약
우여곡절 끝에 미니밴을 빌려 호텔로 향하는 일행, 하지만 운전기사는 호텔로 가는 길을 몰라 모두를 당황스럽게 한다. 어렵사리 도착한 숙소에서 짐을 푼 일행은 아야소피아 성당으로 향하고, 예레바탄 지하궁전을 관람한다. 하지만 잠시 나와 있는 사이 이승기는 구매한 팽이에 정신이 팔리고, 김희애와 윤여정을 잃어버린다. 우왕좌왕 하는 와중에 이승기는 환전을 하느라 또 한번 윤여정과 자옥을 놓치고, 가까스로 모인 이들은 무사히 야경 구경을 마치고 첫 날을 보낸다.

리뷰
‘꽃보다 할배’의 주인공들에게는 ‘H4’라는 애칭이 붙었고, ‘꽃보다 누나’에서는 ‘승기야 도망쳐’라는 부제가 붙는다. 이는 같은 콘셉트로 다른 변형을 시도한 두 프로그램이 도달한 지점이 얼마나 다른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철저한 짐꾼이자 가이드였다. 덕분에 ‘꽃보다 할배’에서는 4명의 할배들이 갖고 있는 관계의 역학에서 오는 캐릭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비슷해 보이는 연령대에서도 엄연히 서열이 존재했고, 그 서열 안에서 할배들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다.

하지만 ‘꽃보다 누나’에서 지금까지 가장 돋보이는 캐릭터는 다소 까칠한 윤여정도, 긍정의 여신인 김자옥도, 배려심 넘치는 김희애도, 다혈질의 이미연도 아닌 짐꾼에서 짐으로 전락한 이승기다. 10대 후반에 데뷔해 생활인 ‘이승기’로서의 삶을 살아간 적이 없는 ‘연예인 이승기’에게 보통 여자들보다도 훨씬 까탈스러울 것이 뻔한 각기 다른 연령의 여배우 넷을 챙기며 여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온 ‘누나’들이 이승기 보다 훨씬 현실 감각이 뛰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덕분에 ‘꽃보다 누나’는 각기 다른 연령층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아니라, 성인이 된 후 생활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던 이승기의 성장 로드무비로 비춰진다. 아마도 이미 ‘1박 2일’을 통해 이승기와 예능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제작진은 이러한 상황적인 요소들을 충분히 고려했기 때문에 이서진이 아니라 이승기를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이승기는 ‘꽃보다 누나’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의 가장 강력한 갈등을 이끌며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이승기’가 없이는 ‘꽃보다 누나’의 갈등은 시작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할배들이 좀 더 편한 여행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제작진에게 투정 섞인 협상을 건다. 여행비를 좀 더 타내기 위해, 혹은 좀 더 편한 여행을 누리기 위해 이서진은 항상 먼저 제작진에게 농담 섞인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꽃보다 누나’에서 이승기는 환전에 집중하다가 ‘왜 선생님들께 먼저 이야기를 하고 행동하지 않느냐’는 이유로 제작진에게 혼난다. 누나들의 편에서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낯선 누나들을 피해 제작진 속으로 숨어든다. 어른과 선배들을 모시고 제대로 여행을 할 줄 모르는 이승기를 제작진은 다그치고, 이승기는 서로가 불편할지도 모를 잠자리 때문에 누나들이 기다리는 방 대신 굳이 장비로 가득한 VJ 방의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이승기에게 제작진은 협상과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누나들로부터 잠시 쉴 수 있는 쉼터처럼 보인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승기도 조금씩 익숙해 질 것이고, 능란해 질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승기가 그렇게 변해가는 동안, 카메라도 자연스럽게 이승기의 변화와 성장에 포커스를 맞출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직진 순재’나 ‘투덜이 일섭’처럼 움직이는 캐릭터가 없는 정적인 누나들 사이에서 물리적으로나 캐릭터적으로나 가장 동적인 것은 이승기다.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이승기의 움직임을 쫓을 수 밖에 없고, 편집의 묘를 살려 갈등을 애써 구성해 봐도 가장 자연스러운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이승기가 갈등의 중심에 섰을 때다.

‘꽃보다 누나’는 결국 짐꾼의 역할이 이서진이 아니라 이승기여야만 했는지를 증명해 내고 있다. 하물며 지금까지 가장 도드라진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배려심 넘치는 김희애와 다혈질인 이미연의 모습 조차도 이승기로부터 시작된 캐릭터라는 것은 의미심장 하다.

‘꽃보다 누나’는 영리한 스핀오프다. 하지만 동시에 이 ‘스핀 오프’가 명확한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편집을 통해 상황을 과장할 순 있지만, 상황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도 그 동력은 이승기가 제공해 주고 있지만, 언제나 이승기가 ‘프로그램의 해결사’가 될 수는 없다. 편집과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수다 포인트
- 승기야, 이건 ‘팽이의 저주’가 아니라 ‘누나들의 저주’일지도 몰라…
- 승기야, 서지니 형이 “제일 무서운 건 이게 첫째 날이라는 거”라고 한 말 이제 이해하지?
- 승기야, 너 앞에 ‘칠봉이’ 좀 보고 여자 마음 좀 배워오면 안되겠니?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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