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를 연기 중인 손호준
‘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를 연기 중인 손호준
‘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를 연기 중인 손호준

1990년대는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을 지도 모르겠다. 급변하여 복잡했던 혼란한 역사를 지나 마침내 누리게 된 한반도의 골든타임 말이다.

그 안정의 시대도 돌이켜보니 이미 20년 전의 일이다. 2013년을 적극적으로 유영하는 세대들이 탄생하여 맹렬하게 커가던 시기. 그래서 완전한 과거의 시간으로만 받아들이기는 애매한 기억 속의 현재인 것이다.

그 시절을 지나 나이를 먹어버린 20년 후의 우리는 1990년대의 자신을 다시 해석하고 있는데, 복고의 적극적 시작에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가 있었다.

‘응답하라 1997′ 보다 더욱 거센 인기를 자랑하는 ‘응답하라 1994′의 주역 전라도 순천 출신 해태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 손호준에게 그가 기억하는 1990년대를 물어보았다. 올댓1990!

나정이가 짝사랑하는 오빠 쓰레기에게 삐삐를 치고 답장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나정이가 짝사랑하는 오빠 쓰레기에게 삐삐를 치고 답장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나정이가 짝사랑하는 오빠 쓰레기에게 삐삐를 치고 답장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1. 삐삐

“우리 드라마에는 1990년대를 기억하게 해주는 수많은 소품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저는 삐삐가 와다더라고요. 저 역시도 그 시절 삐삐에 대한 추억이 참 많아요. 제가 좋아했던 여자친구의 삐삐 번호를 알게 돼서 녹음하고 들어보고 다시 녹음했던 기억이 있어요. ‘응답하라 1994′에도 나정이(고아라)가 쓰레기(정우) 형에게 고백 삐삐를 녹음했다 지웠다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정말 과거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풋풋한 추억이네요. 유치하기도 했고요(웃음).”

‘응답하라 1994′에는 그의 말대로 과거를 돌이키게 해주는 무수한 소품들이 등장한다. 카메라가 비추는 인물들의 책꽂이에는 당시의 책들이 그득하고, 화장대에도 당시의 CF 속 화장품들이 놓여있다. 나정이가 유독 자주 먹는 빼빼로의 껍데기도 오늘날의 세련된 그것이 아니다. 투박하지만 더 맛있어 보이는 유치한 빨강. 추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분명, 그 시절 우리에게는 많은 상처들도 있었을 것인데, 그것을 돌이키는 미래의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따름이니까.

‘응답하라 1994′ 속 윤진 역의 도희가 서태지 브로마이드 옆에서 웃고 있다
‘응답하라 1994′ 속 윤진 역의 도희가 서태지 브로마이드 옆에서 웃고 있다
‘응답하라 1994′ 속 윤진 역의 도희가 서태지 브로마이드 옆에서 웃고 있다

2.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마지막 승부

“1990년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죠. 윤진이(도희)가 극중 서태지의 열성팬으로 등장하는데, 그것 때문에 윤진이의 방으로 가면 서태지 브로마이드와 테이프가 가득차있어요. 그 방에만 들어가면 그 시절의 기억이 더욱 강렬하게 떠오르죠. 덕분에 요즘 그때의 노래를 일부러 더 많이 찾아듣게 되고요. 그리고 드라마하면 역시 ‘마지막 승부’죠!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 당시에 인기가 정말 굉장했죠. 각 반에 여학생 한 명씩은 꼭 다슬이 머리를 하고 있었다니까요.”

1990년대의 주역은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인가보다. 손호준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등장이 획기적 사건이 됐던 서태지와 아이들.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방식으로 가요계를 지키고 있는 그들이지만, ‘응답하라 1994′ 덕분에 다시 절정의 서태지와 아이들을 목격하게 된 우리 1990년대 그들의 황금기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손호준과 김성균이 90년대 패션으로 락카페에 가고 있다. 실제의 손호준은 94년 초등학생이었다
손호준과 김성균이 90년대 패션으로 락카페에 가고 있다. 실제의 손호준은 94년 초등학생이었다
손호준과 김성균이 90년대 패션으로 락카페에 가고 있다. 실제의 손호준은 94년 초등학생이었다

3. 못다 이룬 축구선수의 꿈

“1994년에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요. 그때까지만 해도 전 배우가 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때 이미 축구를 하고 있었고 중학교 1학년 때 까지 했었죠.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축구를 잘 했었어요. 운동신경도 제법 있고 주장도 했었고요. 그런데 너무 많이 다치니까 아버지가 나중에는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결국 접어야 했죠.”

손호준의 어릴 적 꿈은 축구선수였다. 군인 아버지 때문에 이사를 자주 다니는 환경 속에서도 그는 어릴 적부터 축구는 꾸준히 했다. 그러나 덩치가 제법 커질 무렵 아버지는 자꾸만 다쳐서 돌아오는 아들이 걱정됐었나보다. 하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시던 아버지가 반대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여겼다. 물론 결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멀리 이사를 가게 되면서 못하게 되긴 했다.

그러나 지금의 손호준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큰 미련은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배우라는 또 다른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공부도 해봤고 운동도 해봤지만,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연기였어요. 배우가 되고자 마음 먹고 홀로 상경하면서 힘든 시간도 분명 있었지만 연기 외에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연기 말고는 제가 칭찬을 받고 인정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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