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94′
tvN ‘응답하라 1994′
tvN ‘응답하라 1994′

‘응답하라 1994′ & ‘프렌즈’①에서 이어짐

그렇다면 원론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1994년이었을까. 위에서 당초 제작진은 ‘응답하라 1997′을 제작할 당시 원래는 1994년, 여주인공을 서태지 빠순이로 설정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 이유로 제작진들이 모두 94학번 언저리의 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공감대가 높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거쳐온 40여년의 세월들 중 유독 1994년이라는 세월에 아름다운 추억을 멈춰두고 싶었을까. 이는 단지 이들이 찬란하게 빛났던 20살 언저리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994년은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한 시기다. 우선, 이 시절 대학 생활을 거쳐간 이들은 ‘X 세대’다. 도무지 알 수 없고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미지의 수를 빌려 세대의 명칭을 만들었다는 이들. 한국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1994년의 ‘X 세대’들은 청춘이 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밥벌이를 해야 하는 성인과 충분한 유흥에 대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아이 사이의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자유가 있었고, 대학생이라는 희소성이 주는 안정된 미래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라면 ‘졸업하고 뭐 하지?’라는 취업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고, 이들에게 미래는 핑크빛으로 보장된 것이었다.

또한 삐삐와 데스크탑 보급 및 pc통신 등 발달하기 시작한 IT 산업과 랩과 힙합이 이끄는 대중문화는 그들을 ‘신인류’로 지칭했고, ‘X 세대’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94학번’들은 시대가 주는 달콤함을 만끽하며 호시절을 보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1994년은 당연히 찬란하게 빛날 수 밖에 없는 추억이고 현재 자신의 밑거름이 된 수 많은 경험을 안겨준 시대다. 그런 그들에게 ‘응답하라 1994′는 팍팍하기만 한 2013년을 잊을 수 있는 아주 달콤한 추억팔이인 셈이다. 그 시절을 주인공들과 함께 거쳐온 이들은 자신의 추억을 되새김질하고,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이들은 현재는 가질 수 없는 청춘의 싱그러움을 판타지로 받아들이며 애틋해한다.

시트콤 ‘프렌즈’
시트콤 ‘프렌즈’
시트콤 ‘프렌즈’

이는 ‘프렌즈’가 처음 시작하게 된 1994년의 미국 또한 마찬가지다. 빌 클린턴 정부 아래 미국은 그 시절 경제적 풍족함을 바탕으로 호황을 누렸다. 덕분에 생겨난 여유는 ‘프렌즈’와 같은 시트콤의 배경과 이야기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프렌즈’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여섯 친구들의 우정과 사랑은 로맨틱한 판타지였고, 기대해 봄직한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10시즌 까지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렸던 ‘프렌즈’가 굳이 그 인기의 정점을 두고 스스로 종영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는 ‘빌 클린턴 정부’와 함께 구가했던 경제 호황의 후광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였으니 ‘프렌즈’가 1994년에 태어나고 10여년 동안 큰 인기를 누린 것이 단지 콘텐츠의 힘만이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2013년에 소환된 1994년, ‘응답하라 프렌즈’! ‘응답하라 청춘’!

결국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것은 그 시절의 달콤한 로맨스도 내 곁에서 나의 모든 것을 지켜봐 준 오랜 연인에 대한 판타지도 아닌 그 시절 자체에 대한 짙은 향수와 무한한 애정이다. 그렇기에 같은 시대에 시작했던 ‘프렌즈’와 정서적으로 동일 지점에 있을 수 밖에 없고, ‘프렌즈’가 보여준 이야기와 구성에 기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과정처럼 보인다. 비록 지금같은 시대에는 모든게 촌스러워 보일 뿐이지만 적어도 그 시절에는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고 풍요로웠던 시절. 대학생이라는 것만으로도 미래가 보장되던 시절과 인물을 배경으로 한 ‘청춘물’은 그저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피상화된 ‘청춘’처럼 찬란할 수 있다.

1학년부터 학점에 목을 메고 토익을 준비하느라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대외 활동에 목이 말라 자기소개서를 쓰는 2013년의 청춘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그 시절의 청춘들은 정서 그대로 ‘청춘’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지나올 수 있었다. 지금 마흔이 된 제작진들이 모두가 거쳐왔던 스무살 대신 하필이면 딱 1994년의 스무살을 택한 것은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tvN ‘응답하라 1994′
tvN ‘응답하라 1994′
tvN ‘응답하라 1994′

물론 그 시절이 마냥 무지개 빛으로 물들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며 비극을 맞은 이들이 있었고, 그들 역시 그 스무살을 거쳐 사회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경제 위기를 맞아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무한 경쟁시대에 치열한 경제 활동의 주축 인구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당시 ‘94학번’이 호사스러운 청춘을 보낸 ‘축복 받은 세대’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무리 추억이 미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 시절에는 큰 걱정 없이 누릴 수 있는 청춘 그 자체의 싱그러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청춘을 그리는 ‘청춘물’이 2013년의 여유 없는 20대들의 이야기로는 태어날 수 없다는 씁쓸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찬란했던 1994년에 대한 애틋한 연서 ‘응답하라 1994’

어느덧 TV속에서는 청춘물이 사라졌다.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를 마지막으로 20대의 싱그러움을 다룬 이야기들은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오히려 고교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학원물’은 나올 지언정 언제나 치열하게 부딪히며 살아왔던 20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종적을 감췄다. 한 때 대학 생활의 로망을 그려내며 봇물처럼 쏟아지던 대학 배경의 드라마들도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설령 선보인다 하더라도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스러진다. 마냥 맑고 화사하기만 한 ‘청춘물’이 이미 20살부터 판타지를 벗어난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신기루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프렌즈’의 정서를 부활시킨 ‘응답하라 1994′는 찬란한 추억에 대한 깊은 그리움을 담은 연서다. 그 시절 모두가 열광했던 ‘프렌즈’를 보듯, 우리는 2013년에 애써 1994년을 추억하며 ‘응답하라 1994′를 본다. 이미 추억이 되어버린 지난 시간들과 현실의 씁쓸함을 곱씹으며, 우리는 그렇게 지난 세월에 대해 끊임없이 ‘응답’을 요청하고 있다.

글. 민경진(TV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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