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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해도 의미심장했다. 지난 8일 종방한 KBS2 ‘굿 닥터’ 속 강현태는 새삼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을 깨닫게 했다. 마땅한 악역 하나 없는 드라마 속에서 극에 갈등을 조장하는 외로움 싸움은 그가 아니었다면 기능적인 배역으로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쉬이 얻은 이름의 무게는 아니다. 배우 곽도원은 2003년 영화 ‘오구’의 단역으로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2010년 영화 ‘황해’ 속 김승현 교수로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렸으나 그가 걸어온 길은 대중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길고 험난했다.

“이제야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 느낌이네요.” 근래에 들어 높아진 관심에 대한 반응을 묻자 곽도원은 이렇게 답했다. 스무 살에 연극판으로 뛰어든 청년이 배우의 타이틀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신화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서른의 중반에 이르러 뒤늦게 이름을 알릴 계기가 된 몇 편의 영화의 이면에는 영화 대본을 통째로 외워버린 절박했던 한 사람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었다.

“여전히 바라는 건 하나에요. 저는 관객이 즐겁기만 바랍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털어놓은 바람은 소박하지만, 진실 되고, 울림이 컸다. 조만간 그가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그즈음이다. 그래서 들어봤다. 그의 이름만큼이나 가볍지 않은 배우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Q. “곽도원이 맡아서 캐릭터가 살았다”는 평이 많았다. 그만큼 ‘굿 닥터’ 속 강현태는 묻히기 쉬운 캐릭터였다. 항간에는 캐릭터의 무게감을 더하려 일부러 살을 찌운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떠돌았다(웃음).
곽도원: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안 그래도 이번 작품을 찍으며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하는데 목이 조이는 느낌이더라(웃음). 촬영할 때도 캐릭터에 묵직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아래서 위로 올려 찍는 신이 많았다.

Q. 선악 구분이 애매한 캐릭터를 풀어내는 게 쉽지는 않았겠다. 자칫하면 한쪽으로 이미지가 각인될 수도 있기 때문인지 부러 조심스레 연기하는 느낌을 받았다.
곽도원: 어느 날 천호진 선배가 “너는 나쁜 놈이냐, 착한 놈이야?”라고 물으시더라(웃음). 나는 원래 캐릭터에 대해서 의논을 하면서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라 이번 작품을 하며 애를 많이 먹었다. 작품의 진행 속도에 맞춰 연기에도 기승전결을 넣어야 하는데 강현태에 대해서 물어도 기민수 PD는 모르겠다고만 하고, 박재범 작가는 “모르고 가면 안 되느냐”고 되묻더라(웃음). 자연히 연기하는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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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후반부에 아픈 아들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몰랐단 말인가.
곽도원: 말을 안 해주니 알 도리가 있나.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호진 선배가 “어떻게 될 거 같냐”고 물으셔서 “나중에 아이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정도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아마 초반부터 반지(현태가 결혼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한 반지)를 끼지 않았을까.

Q. 결혼도 안 한 입장에서 부성애를 표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겠다.
곽도원: 촬영장에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대사가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저 온종일 병상에 누워있는 아이들도 있다. 촬영대기 시간에 곁에 가서 말을 붙이니까 어린 마음에 서러웠는지 눈물을 흘리더라. 실제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입장은 아니지만, 이런 마음은 인간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Q. 사실 드라마를 보는 입장에서는 후반부로 가면서 강현태의 심적 변화의 폭이 크지 않아 캐릭터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었다. 연기하면서 더 풀어내지 못해 아쉬웠던 부분은 없었는가.
곽도원: ‘강현태가 정말 나쁜 사람일까?’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물론 병원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기업의 목적은 이익추구인데 기업의 일부로서 이익추구를 하는 사람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범죄와의 전쟁’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찌 보면 다 깡패 캐릭터로 출연하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내가 맡았던 조범석 검사보고 악역이라 하지 않았나(웃음). 사회적 정의, 진실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굿 닥터’의 정 회장도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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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곽도원이라는 배우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근래의 일이다. 2003년부터 영화로 넘어온 후 작은 역할을 전전했기에 배우로서 배역에 메시지를 담는 데 있어서 갈증을 느꼈을 듯하다.
곽도원: 항상 영화를 하고 싶었다. 연극을 나와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닐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촬영이 없을 때면 계속해서 오디션 신청하고 프로필 올리고…. 현장에서도 배역 비중이 작으니까 충분히 원하는 만큼의 연기를 펼치기 어려웠다. 내 나이 서른네 살 때의 일이니 얼마나 막막했겠나(웃음). 그런 갈증을 채우려 직접 시나리오도 썼고, 영화를 연출해 미장센 영화제 본선에도 올랐다. 영화 ‘러브픽션’(2011)을 함께한 전계수 감독을 만난 것도 그즈음이다. 오디션을 처음 편하게 봤던 시점은 ‘황해’ 이후부터다. ‘황해’의 나홍진 감독이 나를 추천하기 위해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에게 편집본을 보냈다. 이후 SBS 드라마 ‘유령’, 영화 ‘분노의 윤리학’, ‘점쟁이들’을 거치며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Q. 무명시절이 길었다. 연기에 대한 웬만한 열정이 없었다면 진작 포기했을 법도 하다.
곽도원: 열여덟 살에 봤던 연극 ‘품바’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그 작품을 보며 울고 웃던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조명 스텝으로 시작했다. 이후 스물다섯 살 때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뒤 극단 ‘연희당 거리패’에 들어갔다. 나는 지금도 “내 연기의 뿌리는 연희당 거리패”라고 이야기한다. 무대에 서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 등 연기에 대한 모든 걸 그때 배웠다. 연극을 하며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도 얻었다. 흔들릴 때도 잦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잡은 건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였다.

Q. 연극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 같다.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곽도원에게 큰 밑거름이 됐는가.
곽도원: 연극을 하면서 관객이 없어서 공연을 못 할 때가 많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그걸 들어주고 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건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배우의 문제점은 무대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무대에서 마치 고름을 짜내듯이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해해나가야 한다. 나는 연극을 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관객이 즐겁기만을 바란다. 내가 준비했던 이야기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 현재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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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터뷰마다 “제주도로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배우로 사는 삶에 고민이 깊은 줄 알았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나 보다(웃음).
곽도원: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겠다는 마음은 접었다(웃음). 사실 그게 이유가 있다. 예전에 지인의 초대로 제주도에 갈 일이 있었고 홀로 게스트 하우스에 머물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유독 혼자 온 사람이 많은 게 게스트 하우스다보니 자연스레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동병상련이랄까,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다 보니 세상에서 나만 외로운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웃음). 결국, 본질은 똑같은 거다. 다만 지금은 내가 연기하면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으니까. 거기서 내가 살아갈 이유를 찾은 느낌이다.

Q. ‘굿 닥터’ 이후 오는 12월에는 영화 ‘변호인’으로 관객을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풀어냈나.
곽도원: 이번 작품을 보시면 ‘순수 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실 거다(웃음). 연기할 때의 마음은 늘 한결같다. 다만 이젠 배우로서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배우이자, 한 인간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다. 앞으로 살며, 연기하며 그 고민을 많은 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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