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신재동 악단장
‘전국노래자랑’ 신재동 악단장
‘전국노래자랑’ 신재동 악단장

“무조건 1등 ○○○입니다.”, “강서구 곰탱이 ○○○입니다.”

저마다 짧고 굵은 인사말을 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곧이어 조용필의 ‘모나리자’, 박상철의 ‘무조건’, 이선희의 ‘인연’ 등 주옥같은 히트곡이 울려 퍼진다. 지켜보는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든다. 여기는 1980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국내 최장수 예능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리허설 현장.

지난 9일 서울 강서구 우장산 근린공원에서 ‘전국노래자랑-강서구편’의 녹화가 이뤄졌다. 이른 아침부터 마련된 세트 주변에는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마치 지역 축제를 방불케 하는 흥겨운 장이 형성되고 있었다. 실제로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던 김영숙(62)씨는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운동하다가 노랫소리에 이끌려 왔어요. 매주 챙겨보던 프로그램이 우리 동네에서 한다니 신이 나요. ‘전국노래자랑’은 말 그대로 남녀노소 즐기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런데 송해는 언제 온대요?”라며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삭막한 도시에서도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정겨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국노래자랑’의 비결에는 바로 25년 경력의 진행자 송해가 있지만, 하나 더 ‘전국노래자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전국노래자랑 악단이 있다. 전국노래자랑 악단은 1920년대 노래부터 최신 유행하는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모두 섭렵하는 무적의 악단이다. 그런 악단을 이끄는 대장은 22년 경력의 신재동 악단장이다. 신재동 악단장은 지난해 별세한 김인협 악단장 때부터 함께 한 ‘전국노래자랑’의 산 증인이며, ‘전국노래자랑’이 낳은 스타이기도 하다. 무대 뒤쪽에서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지나가던 사람들이 끊임없이 “악단장님이셔~”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신재동 악단장은 사람 좋은 미소로 화답했다. 음악과 ‘전국노래자랑’을 빼놓고는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그, ‘전국노래자랑’의 리허설을 앞두고 신재동 악단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Q. 만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워요. ‘전국노래자랑’에서 연주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신재동 : 올해로 22년이에요. 내 나이가 50대 중반이니 3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했네요. 나 말고도 17~18년 된 사람도 있지요.

Q. 함께 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신재동 : 그렇지. 우리 악단의 특징이 바로 그거예요. 다른 악단하고는 다른 게 우리 악단은 소위 즉흥 연주를 많이 해요. 호흡이 맞지 않으면 해낼 수 없고, 기억하지 못하면 안 돼요. 송해 선생님이 1925년에 태어나셨으니까 20~30년대부터 지금까지 나온 음악을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안 하면 어떡해. 어떤 노래라고 딱 말하면 제목도 못 들어본 음악까지 해야 하는데. 허허. 옛날에는 거의 다 외웠죠.

Q. ‘전국노래자랑’ 악단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요.
신재동 : 우리는 단 한 곡도 MR 반주를 틀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목표로 한 것이기도 하고. 연주자들이 모두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친구들인데 겉으로 보면 아마추어 음악을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네 살, 다섯 살 어린 애들부터 백 살 이상 어르신들까지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시니 장르부터 각양각색 음악을 연주해야 해요. 취향도 다르고, 좋아하는 장르도 다르니까 다 하지 않으면 안 돼요. 대부분의 악단들이 90~100%가 가수 반주를 위한 악단이라면 우리는 가수 반주는 기본으로 하면서 ‘전국노래자랑’을 위해 있는 것이죠. ‘전국노래자랑’ 한 번 할 때, 많게는 17팀 정도 출연하는데 모두 다른 노래예요. 그것들을 다 소화하지 않으면 버티질 못해요. 다른 악단보다 순발력이 몇 배는 필요해요.

Q. 그럼 정말 다양한 노래가 있잖아요. 어떤 식으로 연습하세요?
신재동 : 녹화 3~4일전에 예심을 해요. 그때서야 녹화에서 부를 노래가 결정이 되니까 거의 즉흥으로 하는 수준이에요. 새로운 노래가 있으면 일단 노래를 들으면서 채보(악보를 만드는 것)를 해요. 악단의 악기에 맞게 편성을 하고. 그 대신 참가자들을 위해 아주 원곡에 충실하게 편곡해야 해요. 만약 다른 소리를 넣게 되면 참가자들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부르기가 힘들어져요. 그리고 다시 리허설에서 맞춰 봐요.

Q. 요즘은 일렉트로닉 음악도 많은데, 어떻게 소화하시나요?
신재동 : 우리가 건반이 두 개가 있어요. 건반 안에 들어 있는 모듈을 조정해서 그에 맞는 소리를 뽑아서 써요. 100%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97~98%는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어요. ‘빠빠빠’도 해봤고, ‘강남스타일’도 연주했어요. (웃음)

Q. 20년 넘게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시대의 유행가를 체감하시겠어요.
신재동 : 그렇지도 않아요. 솔직히 최근 대중가요는 정말 크게 히트하는 곡들이 별로 없잖아요. 요새는 금방 다운 받아 듣고, 훌쩍 지나가 버리니까 한 번 노래가 나오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노래가 없어요. 시대적으로나 시기적으로나 크게 유행하는 노래는 별로 없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음악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흥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옛날 노래만으로 솔직히 재미없어요. 요즘 노래는 우리도 신이 나요. (웃음)

Q. 맞아요.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 연주하실 때도 정말 멋있으셨어요. (웃음) 그럼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랑 받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신재동 : 흘러간 가요들을 들 수 있겠죠.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이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 생각나네요. 그런 것들은 세월이 가도 그냥 나오죠. 조용필, 남진, 나훈아, 하춘화 등 그런 분들 곡은 항상 불리는 거 같아요.

Q. 악단장님도 즐겨 부르시는 노래가 있으신가요? (웃음)
신재동 : 우리 악단 멤버들은 나이들도 있고 하니 모두 그룹사운드(밴드) 출신들이에요. 그래서 노래방에 가면 우리 세대가 좋아했던 노래를 불러요. 예를 들면 조용필?(웃음) 요즘 노래는 음악적인 걸 떠나서 가사가 너무 많으니까 외우지를 못해 부르지를 못해요.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는 신재동 악단장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는 신재동 악단장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는 신재동 악단장

Q. 가끔 어린 아이들이 출연하면 송해 선생님이 악단장님께 용돈을 요구하시기도 하잖아요. 혹시 그 전에 먼저 이야기가 된 다음에 하는 건가요?
신재동 : 전혀 안 해요. (웃음) 송해 선생님이 보고 어린 아이들이 나오면 즉흥적으로 하세요.

Q. 앗, 그럼 항상 현금을 들고 있어야겠어요.
신재동 : 맞아요. 그래서 항상 녹화 때가 되면 만 원짜리 지폐를 몇 장 준비해놔요. 느닷없이 상황이 오니까. (웃음) 그런데 좋아요. 그런 묘미가 있으니까. 기분도 좋고.

Q. 그럼 노래도 부르고, 인터뷰도 따로 하는 사람은 어떻게 뽑나요? 예심 과정도 궁금해요.
신재동 : 한 회에 15~17팀 정도 뽑아요. 대도시 같은 경우는 400명에서 정말 많게는 800명까지 지원하니까 경쟁률이 정말 세요. 그런데 모두가 나름의 준비를 다 하고 오니까 누구를 뽑을지 정말 고민을 많이 하지요. 어떨 때는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예심이 그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지기도 해요. 특히 요즘은 실용음악학원 다니는 학생들이 많아서 노래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아요. 음악적인 퀄리티도 좋고, 옛날과는 다르지요. 그러나 ‘전국노래자랑’은 노래 경연 대회이기도 하지만, 축제예요. 그래서 성별, 세대별, 다 배려하고 맞춰서 뽑아요. 작가가 우선 선별을 하고, 끼가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인터뷰할 사람들을 선별해요. 이렇게 보면 또 오디션 프로그램 원조라고 할 수 있지요.

Q. 맞아요. ‘전국노래자랑’ 출신 가수도 있잖아요.
신재동 : 많죠. 장윤정, 박상철 등등. 이런 사람들 보면 뿌듯하죠. (웃음)

Q. ‘전국노래자랑’에서의 실수담도 있겠죠?
신재동 : 천재지변으로 인한 실수가 많아요. 우리는 그야말로 전천후 악단이니까. 리허설할 때부터 비가 퍼부으면 안으로 이동하기도 하는데 리허설 할 때 괜찮다가 녹화할 때 비가 올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철퍽철퍽하는 경우에도 연주를 계속 해요. 바람 불어서 무대가 뒤집혀 날아갈 때도 있고, 눈보라 맞아가면서도 할 때도 있었어요. (웃음)

Q. 여름에도 항상 양복을 차려입으시고, 연주하시더라고요. 송해 선생님 옷이 땀으로 흥건한 모습을 봤어요.
신재동 : 그거야 뭐, 일이니까. 허허

Q. 날씨가 아무리 궂어도 녹화를 거의 끊지 않네요?
신재동 : 녹화는 거의 생방송으로 이뤄져요. NG가 없어요. 송해 선생님 생각이기도 하고, 공개방송은 중간에 하다가 끊어지면 맥이 끊기니까요. 아주 재미가 없지요. ‘시작! 땅’하면 웬만한 청천벽력이 일어나지 않는 한 끝까지 가요. 녹화는 3시간 정도 하는데 거기서 걸러내서 방송에 내보내요.

Q. 녹화가 항상 휴일에만 이뤄지니 쉬지 못하실 거 같아요.
신재동 : 거의 못 쉬죠. 어떨 때는 20박 21일을 밖에서 보낸 적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 제작진은 우리보다 더하지. 거의 한 달 넘게 집에 들어가질 못한 작가도 있어요.

Q.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시니까 더 그러시겠어요.
신재동 : 그렇지요. 하지만 지방은 다 같이 버스를 타고 갔다 오니까 여행가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소위 역마살이라고도 하지. 우리들한테 다 그런 게 있나봐. 나와 있으면 들어가고 싶고. 집에 있으면 또 나가고 싶고. (웃음)



‘전국노래자랑’ 리허설 현장
‘전국노래자랑’ 리허설 현장
‘전국노래자랑’ 리허설 현장

신재동 악단장은 리허설을 하는 와중에도 참가자 한 명 한 명을 눈여겨 보며, 참가자의 실력에 맞게 음악을 조율했다. 색다른 박자감각을 선보인 할머니 참가자가 등장했을 때에도 끊임없이 할머니의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맞췄다. 그저 사람 좋은 미소로 웃으며 ‘전국노래자랑’을 즐겼다.

Q. 송해 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
신재동 : 정말 소탈하고, 소박해요. 그게 롱런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지방가면 숙소에다가 짐 풀어 놓고 시장부터 가세요. 순대국이나 머리고기 시켜놓고, 그 지방 토속 막걸리 시켜서 마시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세요. 목욕도 좋아하셔서 항상 그 지방 목욕탕에 가시기도 하고. 서울은 그냥 각자 집에서 왔다 가니까 그런 재미는 없지.

Q. ‘전국노래자랑’ 악단은 어떻게 참여하시게 됐나요?
신재동 : 밴드를 했었는데, 그 당시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다 어려웠어요. 여건도 별로 안 좋고, 굶는 게 일쑤니까. 이래서는 가족 부양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KBS 김인배 악단에 오디션을 봐서 그때 입사를 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을 돌아다니다 ‘전국노래자랑’에 차출이 돼 라디오와 함께 했어요. 그러다가 95년도부터 아예 ‘전국노래자랑’ 악단을 따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졌죠.

Q. 베이시스트시잖아요. 지금도 베이스는 세련된 악기인데, 젊은 시절부터 베이스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세요?
신재동 : 베이스만의 매력이 있어요. 리듬악기이기 때문에, ‘둥둥둥둥’ 아~ 이게 어떻게 보면 기둥이죠, 기둥. 모든 음악에서 베이스를 빼 봐요. 음악 자체가 되질 않아요. 그것도 그렇고, 필연인 거 같아요. 그냥 나는 처음부터 베이스가 좋았어요. (웃음) 기본적으로 기타나 피아노는 다 하고, 또 곡도 쓰고 있어요. 조항조, 현철, 현숙 등에게 곡을 줬고, 그 곡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Q. 평생 음악과 함께 하셨는데, 악단장님께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신재동 : 허허허. 글쎄요. 식상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음악 빼놓고는 할 게 없는 거 같아요. 이걸 안 했으면 내가 뭘 했을까 가끔 생각해보는데 할 게 없어요. 전부예요, 전부. 우리 자식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음악을 했었고, 태어나서 애들 시집장가 보내놓고도 하고 있고. 음악을 빼놓고는 내 인생이 없는 것이지. 무대에서 쓰러질 때까지 음악을 하며 악단을 이끌 거예요.

Q. 마지막으로, 악단장님께서 생각하는 ‘전국노래자랑’의 매력은 무엇이에요?
신재동 : 일단 감사하죠. 우리 악단 식구가 13명인데, 한 가족에 3명으로 생각해도 거의 40명이에요. 요즘같이 직장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KBS에 감사하지. (웃음) 그리고 성향에 맞는다고 할까? ‘전국노래자랑’은 우리 나이에 맞는 서민적인 그런 느낌이 있어요. 이 프로그램 자체가 화려하기 보다는 소탈하고, 함께 숨 쉬는 느낌이 있어요. 게다가 매회 새로운 출연자가 나와서 다른 모습을 보이니까 안 지루하고, 소재가 무궁무진하지요. 어떤 사람이 어떤 재주를 부릴지 모르니까. 그런 게 일반 가수들을 가지고 하는 프로그램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사연도 정말 많다. 녹화하시고, 그 다음 주에 돌아가셨다는 분들도 있었고, 가족을 찾은 분들도 있고, 여기서 만나 결혼하신 분들도 있고. ‘전국노래자랑’이 정말 그냥 ‘삶’이라, ‘삶’.

글, 사진.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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