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 메인
김윤석 메인
장준환 감독이 10년 만에 내놓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이하 화이)는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 가능한 열린 텍스트다. 범죄조직의 리더 석태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자식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한 남자의 눈물겨운 고군분투기, 그릇된 부성애(父性愛)가 낳은 비극의 드라마, 한마디로 ‘미친 사랑의 노래’다. 한 아이의 삶을 파국으로 이끄는 석태가 충무로의 괴물 배우 김윤석의 얼굴을 빌려 스크린에 구현됐다. ‘타짜’의 아귀, ‘추격자’의 엄중호, ‘황해’의 면가를 통해 여러 차례 서늘한 한기를 선사했던 김윤석은 이번에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회환을 담은 눈빛과 저음의 낮은 음성 하나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그가 내뿜는 이 정체모를 열기는 그 자체로 혀를 내두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영화 제목을 살짝 바꿔 ‘김윤석: 연기를 삼킨 배우’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인터뷰를 마치고 며칠 후 그는 봉준호 감독이 제작하는 ‘해무’ 촬영 현장으로 떠났다. 이번엔 또 어떤 괴물을 들고 나타날지, 지켜 볼 일이다.(*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 하드보일드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막판에는 처절한 멜로드라마더군요.
김윤석:
맞아요. 미친 멜로드라마죠. 미친 사랑 이야기.

Q. 보고나면 시나리오가 궁금해지는 영화들이 있는데 ‘화이’가 딱 그랬어요. 시나리오의 느낌과 그것이 영상으로 구현된 영화 사이에 온도차가 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윤석:
시나리오대로 찍기는 했어요. 대사도 거의 안 바뀌었고요. 다만 시나리오에서 상상했던 것보다는 말랑한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말랑함이라는 것이 장준환 감독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말랑하다는 것이지,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그렇지 않죠.(웃음) 장준환이라는 사람의 미학이라면 조금 더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본인이 상상한 것들이 모두 나오면 다 명작이겠죠. 충분히 만족합니다.

Q. ‘화이’는 뜨거운 영화라고 하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차가운 영화라고 해야 할까요?
김윤석: ‘차가운 불꽃’같은 영화죠.

Q 연극배우 시절에 사무엘 베케트, 이오네스코 같은 부조리극 작가들의 번역극을 많이 연기하신 걸로 알아요. 석태는 일견 부조리극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있는데요. 석태를 연기하면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게 뭔가요?
김윤석:
순수! 순수악이요!

Q. 석태가 순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윤석: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석태는 도인 같은 인간이에요. 절대적 사랑에 빠져 있을 뿐,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탐욕스럽지 않아요. 그런 정서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했어요.

Q.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이 석태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안긴 느낌이 듭니다. 석태를 괴물로 만든 것은 외부의 환경일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까요?
김윤석:
복합된 거겠죠. 석태라는 아이의 DNA를 분석했을 때 굉장히 감수성이 예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민하고 머리가 좋은 아이니까 ‘선의 이면’을 본 거죠. 이를테면 보육원에 재단 이사장 아들이 2주에 한 번 정도 오는데, 아이들은 그 오빠(형)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처음에는 좋았겠죠. 맛있는 음식을 사오고 함께 놀아주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형이 부모가 있는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고 나면, 우리는 군내무반 같은 마루에서 담요 하나 달랑 덮고 외로움과 싸워야 해요.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석태는 ‘우리는 결코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겠죠. ‘왜 우리에게 희망을 주지?’ 라고 생각했을 테고요. 왜 질투 분노 슬픔이 빠져 나간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 희망이 있었다고 하잖아요. 석태는 ‘희망’이라는, 나와서는 안 될 놈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놈이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이놈 때문에 인간이 이리도 비참해 지는 구나’를 느낀 거죠.

Q.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겠죠.
김윤석:
네. 랭보라는 시인이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참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지 않은데 왜 견디면서 살지? 너희가 말하는 밝음이라는 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왜 그걸 받아들이면서 살지? 저 선은 다 위선이다! 그럼 나는 너희들이 만든 질서 속으로 가지 않겠어! 나는 차라리 짙은 어둠 속에서 밝은 너희들을 지켜보겠어!’ 그런 마음이었겠죠. 결국 환경, 예민한 유전자, 버려졌다는 피해의식이 석태를 괴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석태 눈에는 화이도 자신과 비슷한 거예요. ‘너는 나를 닮았으니 나에게로 와라! 거긴 위선이야. 왜 자꾸 거기로 가려고 해!’ 그런데 아무리 욕망해도 화이는 오지 않죠. 그래서 결국 극약처방을 쓰는 거예요. 화이를 파국으로 몰고 가죠. 균열을 일으키는 거예요. ‘빵!’
김윤석
김윤석
Q. 석태가 진정으로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김윤석:
단순하게 생각하면 종족보존의 본능이죠. 모든 생물들은 나를 닮은 유전자를 세상에 내놓고 죽잖아요. 어떤 동물은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도 나를 닮은 유전자는 내놓죠. 정말 단세포적인 본능이 있는 겁니다.

Q. 모든 인간들 안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윤석:
장준환 감독님이 자주 하는 말인데요, “(천진난만한 목소리로)우리 모두에겐 괴물이 있잖아요?”(웃음)

Q. 그렇다면 인간은 그 괴물을 누르고 사는 걸까요, 모른 체 살아가는 걸까요?
김윤석:
누르고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잊고 사는 사람도 있겠죠. 괴물이 쾌감을 주기 때문에 즐기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Q. 배우들은 어떤가요? 배우들은 연기할 때 종종 괴물이 되지 않나 싶은데요.
김윤석:
괴물 같은 면이 있죠. 두 가지 모습의 내가 같이 가니까요. 행동을 하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내가 함께 가죠. 그게 괴물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다른 자아가 마음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당신 안의 괴물은 언제 느끼나요?
김윤석:
배우는 일반적인 직업은 아닌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전복시켜 버리고 싶은 유혹을 종종 느끼죠. 오래전 연극할 때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야! 늑대가 돼. 결혼도 하지 말고 그냥 늑대처럼 살아 봐. 연극하면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무시무시한 애기에요.

Q. 그 얘기를 한 선배들은 연극에 빠져서 혼자 살고 있나요?
김윤석:
설마요. 정작 그래놓고 지금은 OO보일러 지점장 하고 있고 그래요.(웃음) 왜 그런 거죠. 대학 다닐 때 “요즘 애들은 야성이 없어!” 큰 소리 치던 선배들이 몇 년 지난 후에 나타나서 명함주면서 영업하는 그런 거.(웃음) 사람에겐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야수가 되는 시기가요. 그러다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처럼 적당한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죠. 돌아가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있지만요.

Q. 석태는 ‘도둑들’의 마카오박(김윤석)과 일견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인물들 사이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조율하다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죠. 후반부에 가서 극의 공기를 바꾸는 캐릭터랄까요.
김윤석:
드라마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들이죠. 감독의 의중을 전달하는. 그러게요. 9회 말 투 아웃에 나가는 캐릭터를 자주 맡게 되네요. 나이가 드니까 그런 역할이 자주 들어오나 봐요.

Q. 겸손의 말씀이네요. 경력이 오래된 배우라고해서 그런 키를 쥘 수 있는 건 아니죠.(웃음)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모자, 모녀, 부자, 부녀-관계가 있습니다. 모자관계를 끈질기게 그린 영화가 ‘마더’라면, 그 반대편에서 부자관계를 치열하게 그린 영화로 ‘화이’를 꼽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윤석:
안 그래도 촬영을 하고 있는데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문자가 왔어요. 무슨 내용이냐고 묻길래 “장준환의 작품은 ‘파더’야!”라고 했죠.(일동웃음) 그러니까 봉준호가 “헐! 헉!” 이러더군요.
김윤석
김윤석
Q. ‘화이’는 장준환의 컴백작으로도 주목받는 작품이에요. 현장에서 느낀 장준환이라는 사람은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짐작한 장준환과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김윤석: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천재다!” “피터팬 같은 사람이다!”라고 해요. 그 말에 동의해요. 화이에서 석태까지가 장준환 감독 같아요. 화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면도 있고, 석태처럼 어른의 세계를 꿰뚫어보는 면도 있어요. 폭이 굉장히 넓은 사람이죠. 가장 놀라운 건 정성이네요, 정성. 장인정신이 굉장히 투철한 사람입니다.

Q, 장준환 감독님이 화이부터 석태까지라면, 당신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같나요.
김윤석:
감히 말씀드리는데, 저도 똑같아요. 저에게도 화이부터 석태까지의 모습이 있어요.

Q. 언제 화이가 되고, 언제 석태가 되시나요?
김윤석:
술을 맛있게 먹을 때는 화이가 되고, 인터뷰 때 이상한 인간들을 만나면 석태가 됩니다.(웃음)

Q. 지금은 화이이신가요?(웃음)
김윤석:
화이예요. 지금 분위기 좋아요.(웃음)

Q. 이번에 함께 아빠를 연기한 배우 대부분이 연극무대 출신이죠?
김윤석:
네. 덕분에 현장분위기가 빨리 풀렸어요. 이미 다 알던 애들이거든요. (김)성균이는 ‘남쪽으로 튀어라’때 함께 했었고, (조)진웅이는 같은 고향(부산), 장현성은 같은 극단 출신이에요. (박)해준이 하나만 이번에 알았는데, 이 녀석도 그래봤자 극단 차이무 출신이라서 계보 정리가 자연스럽게 쫙 됐어요.

Q. 술자리를 자주 가지셨겠네요.
김윤석:
남부럽지 않게!

Q. 술 마실 때 화이, 여진구 군은 뭘 하고 있었나요. 술 한 잔씩 따라준 건 아닌가요?(웃음)
김윤석:
화이는 쉬어야죠. 촬영하는 와중에 학교가야지, 시험 준비해야지,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우리는 화이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웃음) 그리고 숙소에서 담배 피우면서 술 마시는데, 화이가 오면 오히려 신경 쓰이죠.

Q. 다섯 아빠들 입장에서는 화이라는 캐릭터를 맡은 여진구가 부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사실 배우가 살면서 화이처럼 선과 악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인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김윤석:
그렇죠. 한 번쯤 깊게 파보고 싶은 캐릭터죠. 하지만 부럽진 않았어요. 그러기엔 저는 석태가 너무 좋았거든요.

Q.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셨나요?
김윤석: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너무 아프잖아요, (손을 가슴에 얹으며)여기가.
김윤석
김윤석
Q. 최근에 만난 영화 속 캐릭터 중에 매력적이라고 느낀 인물이 또 있다면요?
김윤석:
‘마스터’에서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두 캐릭터요. 그 인물들도 극한의 끝까지 가는데, 그런 영화들이 우리도 가끔씩 나와 줘야 해요. 쉬운 것만 찾아서는 안 되죠.

Q. ‘화이’가 그런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실 것 같아요.
김윤석:
네. 그래서 반가워요. 그래서 뿌듯하고요. 감독님 말대로 이 영화가 오래오래 얘기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올해 최다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는 아니더라도, 올해 가장 인상적인 영화라는 이야기는 들었으면 좋겠어요.

Q. 이 하드보일드 한 세상에 범죄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김윤석:
뺏고 싶고, 더 가지고 싶은 욕망 아닐까요? 바다코끼리를 보면 욕심이 어찌나 많은지. 그렇게 많은 암놈을 거느리고 있는데도 다른 수컷이 다가오면 필사적으로 막잖아요. 그건 본능이에요. 소유하려는! 거기에서 범죄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흥미로운 점은 강자가 시대마다 달라진다는 거예요. 원시시대에는 힘센 자가 우두머리고 머리가 좋은 자는 약자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역전이 됐죠. 머리 좋은 자가 법을 만들면서 강자가 됐어요.

Q.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김윤석:
과거가 더 재미있지 않나요? 저는 과거가 미래보다 더 흥미로워요. 과거는 있는 사실이고, 미래는 예측하는 거니까요. 저는 있는 사실이 더 좋아요.

Q. 배우로서는 어떤가요. 배우는 앞으로 출연할 영화들이 더 궁금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김윤석:
배우 입장에서는 앞으로가 더 중요하죠. 이자벨 아자니가 그런 말을 했대요. “과거 얘기 하지 마! 죽은 시체들 얘기 같잖아!”라고. 캬~ 멋있어요. 저는 그렇게 파격적으로는 얘기 못하지만 연기자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극중 다섯 아빠들은 개성도 생각도 많이 다른데, 김윤석은 어디에 가까운 아빠인가요?
김윤석:
친절한 진웅이 아빠?(웃음)

Q. 전작 ‘남쪽으로 튀어’에서 극중 아들에게 “넌 절대 나 따라 살지 마!”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아들을 자신과 닮은 괴물로 만들려고 해서 흥미로웠어요. 성격적인 면에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뭔가요?
김윤석:
‘때로는 비상식적으로 낙천적일 필요가 있다! 아웅다웅하는 거, 그거 별거 아니다! 즐겨라!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는다!’ 허무주의를 가르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때론 아픔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물론 힘들겠죠. 저도 이렇게 힘든데. 그러나 항상 즐기려고 애를 쓰죠.

Q. 즐기시는 것처럼 보여요. 연기할 때는 특히나.
김윤석:
그런 게 있어요. ‘햄릿’이나 ‘오이디푸스’ 같은 비극을 연기하잖아요? 처절하죠. 절정의 순간엔 슬프기도 하고요. 그런데 배우들은 그 비극의 극점에 가면 이상한 쾌감을 느껴요. 묘한 오르가즘을요. ‘화이’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어요. 막판에 화이랑 맞설 때 극한의 감정을 경험했죠. 옛날에 선배들이 ‘살면서 해볼 만한 직업 중 하나가 성직자와 배우’라고 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에 연기가 가장 재미있어요.

Q. ‘내가 갈 길이 연기가 맞나’ 고민했던 시기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요. 그 갈등이 사라지고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이 생긴 건 언제인가요?
김윤석:
연극을 하다보면 덜컹거리는 시기가 분명히 와요. ‘내가 무엇을 위해 분을 바르고 있지? 이게 뭐 하는 짓이지?’ 갈등이 되죠. 생활고에 너무 힘드니까. 아무도 안 불러준다는 불안감에 흔들리니까. 그래서 저도 연극을 몇 년 떠나있었는데, 안 했더니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건 피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연기구나’ 하면서 다시 돌아왔죠.
김윤석
김윤석
Q. 막연하게 ‘미래엔 내가 인정받는 배우가 돼 있으리라’는 예감이나 기대는 없으셨나요?
김윤석:
없었어요. 늘 불안했어요. 그 모든 것이 불안한데, 그냥 가는 거였어요. 비단 저만 그런 건 아니었을 거예요. 확신이 있는 배우는 없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놈들 중에는 없어요. 성공할 거라는 걸 알고 가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어요.

Q. 지금도 불안하세요?
김윤석:
불안이라는 애가 저를 괴롭힐 나이는 이제 아닌 것 같아요.

Q. 남자 40대, 좋은 나이라고 생각해요.
김윤석: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즐기려고 하고 있고요.

Q. 오늘 캐릭터 얘기를 많이 했는데, 작품을 선택할 때 캐릭터를 가장 먼저 보시나요?
김윤석:
이야기죠, 이야기! 시나리오요. 대사를 보면 그 작품이 어떨지, 얼마나 준비된 작품인지 답이 딱 나와요. 가령 지문 하나로 설명 가능한 상황을 대사로 구구절절 적어 놓은 시나리오들이 있어요. 그건 필름을 모른다는 거죠.

Q. 그럼 ‘화이’ 시나리오는 어땠나요?
김윤석:
대사 하나하나가 꽉 차 있었어요. 한마디 한마디가 콕콕 찔렀고요. 감독님과 술 마시면서 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뭐 하나 쉬어 가는 게 없네요?” 그러니까 얼마나 쓰고 지우기를 많이 했겠어요. 정성이 느껴지는 거죠. 거기에서 작품의 질이 보이는 거고요.

Q. 프로를 존경하시는군요.
김윤석:
그럼요. 당연히 프로여야 하고요. 그리고 우리 나이에 프로가 안 되면 누가 프로인가요.

Q. 프로가 아닌 사람들이 주목 받는 일도 많으니까요. 프로임에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는 사람도 있고요.
김윤석:
슬픈 일이죠.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 유명한 고흐는 살아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죠. 왜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도 나오잖아요.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라는 사람도 있다’라는.(웃음)

Q. 고흐 얘기가 나와서 묻는데, 사람은 살아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죽어서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보세요?
김윤석:
죽어서 유명해지면 뭐 해요. 나는 모르는 거잖아요. 나에게 이 세상은 끝나고 없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욕심은 없어요.

Q. 그런데 영화라는 건 기록의 역사잖아요. 배우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닐 수 있는데요.
김윤석: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어요. DVD라는 게 있으니까, 내 영화를 100년 뒤의 사람들도 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결론은? ‘그러든 말든. 어차피 나는 없는데!’(웃음) 저는 지금을 즐기고 싶어요. 그래서 달리고 있고요.

글,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