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U_Showcase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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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습니다. 이번 앨범의 제 노래를 들으면 자유롭게 작업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가장 좋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콘셉트는 있죠. 지난 앨범의 ‘너랑 나’에서 양 갈래 머리에 귀여운 원피스로 소녀의 모습을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저 혼자만의 생각인데 악마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마녀랄까요? 머리는 노란색이고, 옷은 까만색이고, 입술은 빨간색이고, 막 이러니까 약간 못돼 보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거기에 취해서 활동할 생각이에요. 무대에서 훨씬 더 자유로운 표정, 장난기 많은 표정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지난번과 비교해봤을 때 표현에 있어서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10월 7일 올림픽공원 케이아트홀 기자회견 中)

아이유의 말대로다. 약 1년 반 만에 나온 새 앨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아이유는 한껏 자유롭게 노래하고 있다. 전작 ‘라스트 판타지(Last Fantasy)’까지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지켰다면, 새 앨범에서는 성숙한 여성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표현에 자유로움을 부여하고 있다. ‘좋은 날’을 불렀을 때는 꽃다운 열여덟 살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운명을 담고 있는 곡 ‘분홍신’, 사랑의 아픔을 털어놓는 ‘보이스 메일(Voice Mail)’을 노래하는 스물한 살의 아이유는 더 이상 ‘여동생 아이유’, ‘조카 아이유’에 머물러있지 않다.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 7일 자정 공개된 새 앨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는 버스커버스커의 아성을 잠재우고 주요 음원차트의 실시간 차트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국민 여동생 시절 아이유의 위용이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컴백 앨범이 이렇게까지 차트 줄세우기를 할지는 의문이었다. 자의였던, 타의였던 간에 이미 여동생의 티를 벗어낸 후가 아닌가? 게다가 새 앨범의 곡들은 과거에 비해 다소 어려워졌다. 타이틀곡 ‘분홍신’만 들어봐도 대중을 위한 편곡이라고 보기 어렵다.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아이유의 음악적 성장, 이미지 변신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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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콘서트에서 아이유는 관객들에게 “판타지는 끝났어!”라고 외쳤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전까지는 음악들은 아이유의 귀염성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전작 ‘라스트 판타지’만 해도 아이유는 ‘잠자는 숲 속의 왕자’를 기다리는 ‘별을 찾는 아이’이거나, ‘삼촌’을 다독이는 조카였으며 ‘너랑 나’에서는 ‘눈 깜박하면 어른이 될 거에요’라고 노래했다.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은 아이유를 정상의 궤도에 올려놓는데 일조했지만, 아이처럼 노래해야한다는 한계로 다가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멜로디, 가사, 편곡까지도 귀여운 이미지에 맞춰져 있었다.

정규 3집 ‘모던 타임즈’는 타이틀곡 ‘분홍신’부터 기존의 틀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다. 이 곡은 ‘좋은 날’, ‘너랑 나’처럼 오케스트라로 신비롭게 시작하는 것 같더니만, 대번에 빅밴드의 긴박한 스윙 리듬으로 전환한다. 아이유는 이 노래를 예전의 ‘율동’ 수준이 아닌 뮤지컬을 연상케 하는 고난이도의 안무를 추면서 노래한다. 무대를 보고 있노라면 독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각 악기의 즉흥성을 잘 살린 정통 빅밴드 편곡이 이루어져 악곡만 본다면 성인들이 향유하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뮤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이처럼 ‘모던 타임즈’의 곡들은 각 장르의 전통을 잘 살리고 있다. 박주원이 기타를 연주한 ‘을의 연애’는 집시 재즈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박주원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장고 라인하르트에게서 이어져 내려오는 집시스윙을 연주하고 있으며 아이유는 그 리듬 위에 능숙하게 올라타 노래하고 있다. ‘Obliviate’, ‘Havana’에서는 브라질리언 뮤직을 차용하고 있다. 이 곡들만 보면 ‘모던 타임즈’는 라틴 장르의 음반으로 분류해도 될 정도로 장르적인 특성에 충실하다. 라틴 외에 일렉트로니카 곡에서도 편곡에 있어서 전작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윤상이 만든 전작 수록곡 ‘잠자는 숲 속의 왕자’와 새 앨범 수록곡 ‘누구나 비밀은 있다’만 비교해 들어봐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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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장르의 변화와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은 목소리의 변화다. 아이유는 각 장르의 스타일을 스물한 살이라고 하기에는 마치 ‘애늙은이’처럼 능청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최백호와 듀엣으로 노래한 ‘아이야 나랑 걷자’가 특히 그렇다. 한편 ‘입술사이’에서는 살짝 농염함도 엿보인다. 노래하면서 교태를 부리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아직 섹시함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기존의 귀여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샤이니 종현이 만든 ‘우울시계’에는 풋풋한 감성이 잘 나타난다. 이 곡은 아이유와 매우 잘 어울리는데, 단지 샤이니라는 이름값을 더하기 위한 선곡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두에서 아이유가 언급한 자유로워짐은 기존의 여동생 이미지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무조건 자유롭게 노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장르의 특징과 아이유 본연의 목소리 사이의 줄다리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 면에서 가장 진솔하게 들리는 노래는 자작곡 ‘보이스 메일’이다. 사랑의 아픔을 넋두리 하듯이 늘어놓는 가사가 마치 경험담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소속사 로엔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곡을 앨범에 수록하는 것을 말렸다고 하는데, 아이유가 고집을 부려 싣게 됐다고 한다. 만약에 실리지 않았다면, 꽤 섭섭할 뻔 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로엔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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