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커버스커 2집 앨범 재킷
버스커버스커 2집 앨범 재킷
버스커버스커가 이제는 가을을 점령하려 한다. 25일 자정 정규 2집 앨범을 발표한 버스커버스커는 9개의 수록곡이 모두 음원차트 10위권에 진입하는 ‘줄 세우기’ 신공을 선보였다. 그들의 열풍에는 많은 이유가 따라오지만, 가장 큰 이유는 들으면 들을수록 저절로 자극되는 감성 때문이다. 대부분 음원 공개가 정오에 이뤄지는 요즘, 버스커버스커는 자정에 음원을 공개해 더욱 감성을 자극했다. 밤에 들어야 진가가 드러난다고 하지만, 언제 들어도 빠져드는 힘이 지녔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옛 기억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으로 대성통곡할지도 모르니까. 늦은 여름과 가을이 함께 버무려진 요즘, 버스커버스커 2집에 더욱 빠질 수 있는 ‘장소’를 제시하면서 버스커버스커 앨범을 살펴본다. 100배 즐거울 수도, 100배 슬플 수도!

#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정류장에 서서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을 듣는다면 어떨까. 낙엽을 밟는 소리도 음악처럼 들리고, 은행잎의 구수한 냄새도 가을 향기처럼 향기로울지도 모른다. 특히 현악기 선율이 감미롭게 흐르다가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함께 절정에 이르는 1번 트랙 연주곡 ‘가을밤’은 가을의 향취를 더욱 북돋는다.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기승전결이 꽉 짜인 ‘가을밤’을 듣는다면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한 듯한 기분도 들게 한다. 2번 트랙 ‘잘할 걸’도 추천한다. 드럼과 기타 연주가 잔잔하면서도 힘차게 어우러지는 음악은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경적 소리,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걸음과 상반된 느낌을 전하며 묘한 향수를 일으킨다. 지나간 인연에 대한 후회와 통찰은 덤이다.

# 비 오는 날 카페 창가에서
가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 창문을 톡톡 건드리는 빗소리가 드럼 연주를 뒷받침한다. (물론 비가 오지 않은 날에 들어도 좋다.) 기타, 베이스, 드럼의 기본 밴드 편성에서 출발하는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은 자극적이지도 않고, 키보드를 비롯한 세션의 참여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카페에 앉아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을 살펴보며 3번 트랙 ‘사랑은 타이밍’을 들어보자. ‘각자의 상처들은 각자의 인연으로’이라는 노랫말과 함께 음악은 카페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팔레트가 된다. 경쾌할 듯 말 듯한 드럼 박자와 대비되는 슬픈 노랫말도 인상적이다. 타이틀곡인 4번 트랙 ‘처음이 사랑이란 게’는 장범준 특유의 가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1집에서 선보인 가성보다 더욱 세련되게 넘어가는 가성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가을 타는 사람들, 최근 이별을 겪은 이들은 주의해야 한다. 군중 속의 외로움을 여실히 느낄지도 모른다.

# 이성과 함께 걷는 거리에서
5번 트랙 ‘시원한 여자’, 6번 트랙 ‘그대 입술이’와 8번 트랙 ‘아름다운 나이’는 경쾌한 느낌의 곡이다. 버스커버스커의 앨범 전곡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앨범 수록곡 전체가 가을에 어울리는 일관된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사랑, 이별 등 공감할 수 있는 가사와 함께 다양한 리듬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2집에서도 1번부터 4번 트랙까지는 무겁거나 슬픈 느낌의 가사를 담은 포크록이었다면, 5번 트랙부터는 한층 더 밝아지는 느낌을 담았다. 특히 사랑에 빠진 감정을 노래하는 ‘시원한 여자’와 여성 보컬과 듀엣으로 키스 직전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듯한 노래 ‘그대 입술이’는 이성과 함께 듣기에 좋은 노래다. 낙엽이 아름답게 진 거리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노래를 들으면서 천천히 걸어보자. 아직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남녀는 ‘아름다운 나이’를 집중적으로 듣다 보면 용기가 샘솟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로에게는 가을 타는 외로운 밤이 기다린다.

# 잠이 오지 않는 밤
솔로들을 위로할 트랙도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흔히 ‘새벽 감성’이 봇물 터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7번 트랙 ‘줄리엣’과 9번 트랙 ‘밤’을 듣는다면 재미난 밤이 될지도 모른다. 1집 수록곡의 ‘이상형’이 떠오르는 ‘줄리엣’은 ‘그녀의 자취방 앞, 창문에 흩날리는 실루엣’, ‘그녀의 파파파 파란 하늘에’ 등 재미있는 가사와 멜로디가 이어진다. 고요한 밤과 어울리지 않는 신 나는 리듬이 오히려 생기를 더한다. 반면 9번 트랙 ‘밤’은 밤에 느낄 수 있는 모든 새벽감성의 가사들을 모은 노래다. 그리움, 외로움, 후회, 별 등 밤이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모였다. 누구나 밤에 떠오르는 괴롭고 후회스러운 기억들로 이불을 차본 경험이 있었을 터. ‘밤’을 듣다 보면 그런 감성을 불러일으키면서 힘찬 밴드 연주와 장범준의 목소리에 위로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 잠이 들고 싶다면 1번 트랙 ‘가을밤’을 무한 반복하면서 스르르 취해보자.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제공. 청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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