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쿠데타’를 힘없는 사람들이 정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이들의 바로 밑에 있는 사람들이 판을 바꾸는 것으로 해석했어요. 그것처럼 저는 계속해서 제 자신을 깨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목표고, 그렇기 때문에 앨범 이름을 ‘쿠데타’라고 짓게 됐어요. 그에 맞춰서 노래를 만들었는데 여러 가지가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지드래곤 9월 9일 카이스 갤러리 기자회견 中)박진영의 10집 ‘하프타임(Halftime)’과 지드래곤의 2집 ‘쿠데타(COUP D’ETAT)’는 가수의 인생 중 하나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앨범들이다. ‘하프타임’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가 지난날을 반추해보는 회상과 함께 음악적인 건재함을 보여주는 ‘자신감’, ‘쿠데타’에는 인기의 정점에 막 다다른 가수가 보여줄 수 있는 활활 타오르는, 역시 ‘자신감’이 담겼다. “내 인생의 뜨거웠던 전반전, 나 같은 놈이 여기까지 온 건 놀라운 반전의 반전”(박진영 ‘하프타임’) “내 랩은 작살, 꽂히는 쇠창살, 말발로 대학살, 초창부터 개 박살”(지드래곤 ‘세상을 흔들어’)의 재미난 라임은 둘의 현 상황을 잘 보여줌과 동시에 각기 다른 공감대를 자아낸다. 열여섯 살 차이인 두 남자가수. 한 명은 ‘한땐 내가 최고였다’, 다른 한 명은 ‘지금 내가 최고’라고 노래로 말을 하고 있다. 각자 인생의 다른 지점에 위치한 두 남자의 새 앨범은 ‘결과론적으로 말해서’ 묘하게 닮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던진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원류인 블랙뮤직을 각자의 스타일로 자연스럽게 파고들어갔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 똑같이 생겼어요. 이상하게 여자도 음악도 영화도 극단적으로 딱 한 종류만 좋아하고 나머지는 좋아하지 않아요. 어릴 때 좋아했던 여자의 타입이 지금까지 이어지듯, 어릴 때 소울이 저에게 끼쳤던 영향은 막대해요. 소울은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데, 다른 장르는 안 일으켜요.”(박진영 네이버 라이브 인터뷰 中)
둘은 닮은 점이 몇 가지 있다. 데뷔 이후부터 음악만큼이나 패션에서도 기존의 남성 가수들과 차별화된 스타일로 화제를 몰고 왔다. 최근에 지드래곤이 다양한 ‘신상’을 결합해 개성적인 스타일을 보여줬다면, 일찍이 박진영은 비닐 옷으로 속살을 드러내는 등 섹슈얼한 패션을 뽐냈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둘 다 블랙뮤직에 베이스를 둔 음악을 해왔다. ‘블랙뮤직’이라는 표현이 다소 모호한데, 20세기 초엽의 가스펠부터 레이 찰스의 소울, 제임스 브라운의 훵크(funk), 그리고 디스코, 힙합 등을 아우른다고 정의할 수 있겠다. 박진영이 블랙뮤직 중에서도 디스코로부터 파생된 댄스에 특화된 음악들을 주로 보여줘 왔다면, 지드래곤은 힙합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던진다. 박진영은 ‘그녀는 예뻤다’로 고전적인 디스코를 선보인 1996년 앨범 ‘썸머 징글벨’(역시 블랙뮤직 애호가인 작곡가 방시혁과 처음 작업한 앨범) 이후 본격적으로 블랙뮤직을 가요와 결합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고, 이는 본인의 앨범 외에 JYP 소속 가수들로 이어지고 있다. 지드래곤은 YG엔터테인먼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힙합을 추구했고, 최근에는 힙합에 동시대의 트렌디한 사운드들을 접붙이기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인 노선은 둘의 새 앨범 ‘하프타임’과 ‘쿠데타’에서 명징하게 나타난다.


박진영의 앨범과 지드래곤의 앨범이 블랙뮤직에 걸쳐있다고는 하지만 음악적인 만듦새 면에서는 매우 다르다. 박진영이 고전적인 면을 파고들었다면 지드래곤은 첨단의 사운드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앨범의 징검다리가 되는 노래라면 지드래곤의 ‘너무 좋아(I LOVE IT)’를 꼽을 수 있겠다.(마이클 잭슨에 대한 오마주 정도로까지 들리는 이 노래는 근래 보기 드문 섹시한 곡으로 지드래곤의 보컬 소화력이 돋보인다) 박진영의 컴백이 JYP의 화려한 비상으로 이어질지, 지드래곤의 앨범에서 올해를 대표할만한 히트곡이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의 두 남자의 자신만만함을 읽어보는 것이 즐겁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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