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제국
황금의제국
SBS 대기획 ‘황금의 제국’ 23,최종회 9월 16,17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위기에 빠진 태주(고수)는 결국 강제 진압을 지시하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친다. 무리하게 시작된 분양에도 침체된 부동산 경기로 분양률은 낮고, 민재(손현주)는 정신이 흐린 한여사(김미숙)로부터 태주의 약점을 건네 받고 태주와 손을 잡는다. 설희(장신영)는 폭주하는 태주를 보며 실망하고, 결국 태주를 멈추게 하기위해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힌다. 무리하게 주식을 매입하다가 위기에 빠진 서윤은 결국박 전무(최용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원재(엄효섭)와 은정(고은미)의 이혼을 결정하고, 민재를 검찰에 고발한 뒤 혼자 남는다. 모든 것을 잃은 태주는 자살한다.

리뷰
통쾌한 판타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결말은 결국 없었다. 다소 허무해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황금의 제국’이 ‘추적자’와 달리 사람들이 원하는 결말의 희망 대신, 태주(고수)가 죽음을 택하고 민재(손현주)가 몰락하고 서윤(이요원)이 모두를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쳐 낸 뒤 홀로 남는 절망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 가는 권력과 달리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자본에는 어떠한 희망도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진 그룹이 보여주는 ‘황금의 제국’에서 태주(고수)는 영원한 이방인이자 그들에게 사용되는 도구이고 수단일 뿐이었고, 영원히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결국 제국을 향한 지독한 욕망이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한 그는, 민재가 내미는 마지막 동아줄을 스스로 끊어 버린 채 죽음을 택했다. 서윤(이요원)은 아버지의 인생 그 자체였던 성진그룹을 지키기 위해 가장 철저하게 외로운 길로 들어섰다. 모든 것을 걸고 위태로운 게임을 했고, 그 게임을 끝내기 위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두려운 사람’이 되기를 자처했지만 제국의 공주인 서윤에게 남은 것은 결국 지독한 외로움과 서러움, 끝없는 불안감의 지옥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마지막은 태주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과 전혀 무관한 결말이다. 태주는 그 동안 해 왔던 모든 일들을 책임지고 자살을 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제국의 주인은커녕 그 일원도 될 수 없었던 태주의 죽음은 밀려난 자들이 떠밀려 나갈 수밖에 없는 마지막 길이었다. 철거민으로 강제 진압 중 죽은 아버지와 태주의 삶은, 그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었을지 몰라도 결국 같은 결과나 다름없다. 아버지의 죽음에 분노했던 그 곳에서 죽음을 택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상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서윤 역시 자신이 직접 선택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생을 사랑했던 아버지를, 그 아버지가 죽었어도 아버지의 삶과 다름 없는 성진그룹을 지키기 위해 결국 가장 외로운 공주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서윤 역시도 어쩌면 태주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대로 받아들여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안에 있다. 영원히 2인자로 서윤에게 또 다시 밀려난 민재 역시, 민재의 아버지 최동진(정한용)이 그러했듯 계속해서 회장실의 문을 두드리면서도 또다시 게임에 임할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서 영원히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황금의 제국’은 24회 동안 지난한 게임과 싸움을 이어갔다. 때로는 서윤과 민재의 싸움이었고, 때로는 서윤과 민재와 한정희와 태주의 싸움이었으며, 또 때로는 스스로가 지키고 싶었던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모두가 그렇게 그들의 싸움과 게임에 집중해 나가는 동안 정작 ‘황금의 제국’은 이 세계를 그저 ‘조망’하고 ‘관망’할 뿐 어떠한 개입이나 결론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물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우고, 모두가 그 싸움에서 누가 승리할 것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때 ‘황금의 제국’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자신만의 운명 안에서 지옥을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태주는 태주의 지옥을, 서윤은 서윤의 지옥을, 민재는 민재의 지옥을 살아야만 하고 그 끝에 결코 ‘승자’나 ‘결론’은 없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아버지의 말을 회상하며 누구보다 서럽고 외롭게 울던 서윤과 아버지의 만류에도 아버지가 그러했듯 성진 그룹 회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민재, 그리고 아버지처럼 ‘황금의 제국’에서 밀려나 죽음을 맞이하는 태주는 결국 각자 그들의 가장 지독한 지옥을 살아낸 것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들의 삶이 여기에서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윤은 혼자가 된 뒤에도 끊임 없이 그룹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쳐 내야 할 것이고, 민재는 또 다시 성진 그룹을 향한 증오와 욕망을 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로지 태주 만이 욕망의 사슬을 끊어냈지만, 아마 누군가는 ‘제2의 장태주’, ‘제3의 장태주’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황금의 제국’의 허망해 보이는 결말은 결국 우리 현실의 반영이자, 비관 속에서 태어난 세계에서 필연적으로 얻어질 수밖에 없는 가장 염세적인 마무리다. 수 많은 암시와 비유와 게임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결국 ‘황금의 제국’의 마지막 그림 조각은 게임이나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벗어날 수 없는 삶의 운명’ 그 자체였다.

수다 포인트
- 결국 이렇게 희주는 이름만 남아…
- 서윤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던 장면에서 아버지의 말을 회상하면서 서럽게 흘리던 눈물, 배우 이요원의 재발견으로 남을 한 장면으로 추천합니다
- 백만년만의 야외 촬영이 태주의 죽음이라니, 좀 허무하긴 하네요.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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