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황금의 제국’ 방송화면
SBS ‘황금의 제국’ 방송화면
SBS ‘황금의 제국’ 방송화면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 21,22회 9월 9,10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원재(엄효섭)의 도움 없이 성진 그룹을 장악하려던 태주(고수)는 최씨 일가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임원들의 반발에 부딪힌다. 우호 지분을 얻지 못하자, 성진 시멘트 지분의 절반 이상을 직접 확보하려는 태주는 에덴과 함께 한강변 도심 개발 사업을 추진해 현금을 모으려 하고, 이를 알게 된 서윤(이요원)은 초조해 하지만 민재(손현주)는 자신이 가진 핵심 부지 7천 평을 무기로 태주를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태주는 한정희(김미숙)과의 거래를 통해 민재가 핵심 부지를 팔도록 한다. 한편 ‘서브프라임모기지 론’의 위험성을 예측한 서윤은 태주를 위기에 빠뜨린다.

리뷰
매회, ‘황금의 제국’은 다른 키워드로 다른 흐름으로 읽힌다. 어떤 순간에는 대기업을 둘러싼 재벌가 가족들의 골육상쟁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은 어떤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가족 문제와 구성원들의 깊은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가족극 같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태주(고수)라는 한 인물을 통해 거대 재벌가와 그들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한 개인의 투쟁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개발 시대를 거쳐온 기성 세대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 세대들의 가치관 갈등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을 뒤로 두고, 결국은 성진을 만든 최동성-최동진 형제의 땀과 장태주와 아버지 장봉호의 땀이 다른 식으로 보상 받을 수 밖에 없는 현 세태에 대한 깊은 한숨 같기도 하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울부짖음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 세계와 묘하게 대치되는 노골적인 비유가 사회 풍자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자본이라는 단단한 방어막을 입은 재벌과 욕망으로 가득 찬 개인을 씨줄로,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정치와 사회적 환경을 날줄로. ‘황금의 제국’은 그렇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동안 매 회 씨줄과 날줄을 하나씩 엮어가며 하나의 옷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씨줄과 날줄의 교차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비로소 이 이야기들이 키워낸 괴물들이 드러났다.

태주와 서윤, 그리고 민재와 한정희. 게임판에 모든 것을 걸고 뛰어든 이들 모두 브레이크를 잃어버렸다. 스스로 멈춰서면 쳇바퀴도 끝이 나지만, 이미 쳇바퀴에 올라탄 인물들은 멈추는 법을 잊어버렸다. 태주는 최후의 보루로 지켜야 했던 ‘미사일 스위치’를 눌렀고, 서윤은 이미 성진이라는 이름을 책임지게 된 순간 괴물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스스로 모두가 두려워하는 괴물이 되기로 작정한다. 그렇게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최동성과 닮은 서윤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람이 됐고, 태주는 도저히 깨어지지 않는 벽 앞에서 분노한다.

시간이 흘러도 때로 역사가 되풀이 되듯 ‘황금의 제국’ 속 세상도 결국 원점의 질문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한 편의 연극을 본 듯 정신없이 흘러온 세월, 혹은 이야기 앞에서 ‘황금의 제국’은 묻는다. 과연 이상적인 누군가가 정당한 방법으로 헤게모니를 쥐었을 때, 이 사회의 부조리는 깨질 수 있는 것이냐고.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한 룰이 과연 정당한 방법 하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냐고. 단 2회 만을 남겨 둔 채, 태주는 결코 눌러서는 안될 미사일의 단추를 눌렀다.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태주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으로 세상을 노래하고 보듬길 원했던 서윤은 ‘모두의 행복’을 위해 성진을 맡지만, 이제 그녀는 성진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금의 제국’은 태주가 결국 우리이며, 우리는 과연 이 세계의 부조리로부터 온전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묘하게 서윤을 옹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 지는 극의 리듬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룰에 우리가 얼마나 세뇌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추적자’는 비록 판타지라 할지라도 개미들이 꿈꾸는 세상을 눈앞으로 당겨 보여줬다. 부조리는 세상에 드러났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황금의 제국’에는 분노한 사람들이 없다. 다만 부조리 속에서 ‘미사일이 뭔지 안다’던 한 인물이 조금씩 괴물이 되어 가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처연해 지는 눈빛이 세상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태주가 “욕심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욕심”이라고 했듯, ‘황금의 제국’은 욕심에 대해 묻고 이제 그 끝을 이야기 하려 한다. ‘추적자’와 같은 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질문만이 있을 뿐.

수다 포인트
- 최동진의 ‘양갱’에 ‘설국열차’가 떠오르는 건, 단순히 양갱과 ‘단백질 블록’이 닮았기 때문만은 아닌듯.
- 원재의 묘한 웃음에 자꾸만 반전이 있을 것 같은 건, 그저 이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본 기분 탓이겠죠.

글. 민경진(TV리뷰어)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