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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은 한마디로 참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외피를 두르고 있긴 하지만, 선거도 없는 형국에서 6개월 이상을 정치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고, 때로는 정치를 유희의 소재로 활용하며 예능과 정보 전달 사이의 묘한 균형 잡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철희가 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서울디지털대 겸임교수,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편집위원, 비례대표제포럼 운영위원 등 그를 수식하는 타이틀 만해도 갖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가 몸담은 ‘썰전’이 대한민국 방송가에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정보의 전달에 오락을 함께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새로운 기류를 불러오며 정치와 대중의 간극을 좁히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 ‘독설가’ 김구라와 ‘고소왕’ 강용석 사이에서 누구나 납득할만한 ‘썰’을 풀고 있는 그에게 ‘썰전’의 의미와 ‘대중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Q. ‘썰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철희: ‘썰전’에는 재미와 의미라는 두 가지 맛이 있다. ‘썰전’ 이전에 정치를 다룬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딱딱했다. 조금 민감하고 무거운 주제일지라도 솔직함과 유쾌함을 바탕으로 부드럽게 접근하려 한 노고를 시청자들이 알아주시는 듯하다.

Q. 강용석의 상대역으로 출연하게 됐고, 일각에선 진영 논리를 대변한다는 비난도 일었다.
이철희: 진영 논리를 대변할 생각은 전혀 없다. 방송 출연 이전에 정치평론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그 안에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근거가 있는가 하는 거다. 물론 내심 강용석의 허상을 벗겨 실체를 드러나게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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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저격수를 자처했던 강용석은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다. 논리로 그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는가(웃음).
이철희: 처음에는 제작진이 상대역이 강용석이라고 해서 출연 제의를 거절했었다(웃음). 예전에는 강용석을 보면서 내공이 깊지는 않고, 정치에 대한 열망만 가득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많이 알고 그만큼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더라(웃음). 사실 논리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진보와 보수도 결국 상대적인 개념으로 다름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하는 거다.

Q. 김구라, 강용석과의 호흡은 어떤가. 자주 대립각을 세우는 강용석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썰전’ 1회 방송 때만 해도 김구라를 조금 깔보는 듯한 태도도 보였었다.
이철희: 솔직히 그런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정치와 조금 거리가 먼 직종에 종사하지 않나.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는 정치에 대한 지식의 양이 많지 않다 뿐이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방송에 대한 연륜과 여러 가지 지식을 갖고 있기에 ‘썰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사실 나는 앞서 말한 대로 강용석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한번 사고를 쳤었기에 저 사람 무슨 문제 있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웃음). 물론 지금은 느낌이 조금 다르다.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느낀 것이지만, 나와 그가 서로 많이 다르긴 해도 분명히 자신의 스탠스를 가져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Q. 방송 욕심이 있는 김구라, 강용석과는 방송에 임하는 마음도 조금 다를 것 같다.
이철희: 방송을 통해서 나를 홍보하거나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할 생각은 없다. ‘썰전’ 방송 초반에는 준비도 안 하고 갔다. 그러나 방송 중 팩트 전달이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준비도 열심히 한다.

Q. 아무리 방송과 적당히 거리를 둔다고 해도 ‘썰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방송인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이철희: ‘썰전’을 하면서 정말 공인이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는 만큼 더 조심해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다만 생활의 불편 외에도, 방송을 하며 어쩔 수 없이 대중성을 띄게 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진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 생길까 봐서 걱정이다.

Q. 하지만 여전히 당신이 진보 진영을 대변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않나.
이철희: 나는 항상 ‘내 생각과 판단에 맞는 이야기를 하자’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굳이 진영을 나누자면 진보와 보수가 있겠지만, 보수든 진보든 비판과 칭찬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다만 나에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미지가 없다면 비판도 칭찬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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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의 균형 감각은 ‘썰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철희: 그렇지도 않다. 사실 강용석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설전을 벌이다가 편집된 분량도 꽤 된다(웃음). ‘썰전’도 물론이고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다르다’는 것은 ‘좋다’, ‘나쁘다’와 같이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다. 보수는 오른손으로 밥 먹고, 진보는 왼손으로 밥 먹는 게 아니지 않은가?

Q. ‘썰전’은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분명 정치와 대중의 접점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철희: 사실 PD들과 교류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썰전’에 가장 먼저 주목한 이들은 방송가 사람들이더라. 종합편성채널은 시청자층이 고정되어 있고,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언성 높이고 싸우는 게 태반이지 않나. 뉴스를 보도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기자가 중심이 되기에 대중과 눈높이가 달라진다. ‘썰전’은 정치 사안이나 사회 이슈들을 부드럽게 대중의 언어로 전달하며 호응을 얻었다. 최근 ‘썰전’이 불러온 이런 기류가 방송가로 확산 되는 것은 좋은 변화라고 본다.

Q. 사실 여전히 대중은 정치에 관심이 적다. 방송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이런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함에도 아직 방송가의 반응은 미적지근한 편이다.
이철희: ‘정치’라는 것을 멀리할수록 국민은 손해를 보게 된다. 물론 한 사회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정치가 대중과 유리된 데는 정치인들의 탓이 가장 크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 매몰된 정치인들을 보면 누가 여기에 관심을 두고 싶겠나. 다만 정치와 대중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 있었기에 갑자기 친해지기는 어렵고, 가까워지는 계기는 제공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방송가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공영 방송을 지향하는 국가라면 무미건조하게라도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대중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핑계로 뉴스 전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보 전달’이 전제가 돼야 정보 공급에서 재미와 같은 수용성의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건데, 지금은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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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치계에 몸담았던 경험이 방송 활동에도 도움이 되고 있나.
이철희: 현장 출신만의 강점은 분명히 있다. 보통의 정치인은 비판만 한다면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은 위험부담이 따르긴 해도 대안이 있는 상태에서 비판한다.

Q. ‘썰전’과 함께 여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이철희: 정치계에 몸담았던 것도, 정치평론가 활동을 한 것도, 방송에 출연한 것도 모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었다. 물론 방송은 시청률이나 대중의 관심 때문에 본질보다 외양을 부풀리려는 유혹이 따르지만, 방송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서 정치와 관련된 어떤 것을 도모하려는 생각은 없다.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확답하기 어렵지만, 내가 방송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정치와 대중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하는데 충실하고 싶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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