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주먹> 강우석 감독,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우석 감독이 돌아왔다. 단순히 신작 <전설의 주먹>을 들고 돌아왔다는 의미를 넘어 과거 강우석표 영화에서 느껴졌던 ‘특유의 힘’이 되살아났다. <이끼>, <글러브> 등 최근작과 전혀 다른 느낌, 이게 바로 그동안 강우석이 해 왔던 ‘강우석표 영화’다. “다시는 웹툰을 하지 않겠다”며 힘들다는 말을 밥 먹듯 했던 <이끼>에 이어 다시금 웹툰을 꺼내들었음에도 신명나게 촬영장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본인 스스로도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작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년 이상 영화판에 있으면서 20편 가까이 영화를 찍고, 수없이 많은 작품을 제작해 왔고, 어느덧 50대 중반에 들어선 강우석 감독이 데뷔 때의 열정을 다시 품게 됐다. 강우석 감독의 ‘전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Q. “다시는 안 하겠다”고 했던 웹툰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강우석 감독: 제목과 아이템이다. 영화를 찍고 싶을 때가 아니었는데 이 제목과 이 아이템이면 남한테 못 주겠더라. 앞으로도 이 정도의 제목과 내용이면 웹툰을 또 할 거다.



Q. 영화를 찍고 싶을 때가 아니었다고?
강우석 감독: <강철중>을 찍고 나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었다. 짜증의 스타트였다. 그리고 <이끼>를 하면서는 말이 되기 위한 영화를 하고 있더라. 다음에 ‘힐링’용으로 휴먼드라마 갔더니 호흡이 너무 느려 힘들었다. 슬슬 영화를 놓아야 할 시간이 오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재능을 스스로 천덕꾸러기 취급하고 있다란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그래서 강우석표 영화를 해보자란 마음을 다시금 먹게 됐다. 정두홍 감독이 <공공의 적> 1편 찍을 때 눈빛이라고 했다. 과로를 하는데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Q. 그렇게 힘들다고 했던 <이끼>와는 확실히 다르다.
강우석 감독: 아이템 문제인 것 같다. 정확히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좋은 원작을 전달하는 입장이냐는 큰 차이다. <이끼>는 작품 내용은 좋으나 내 이야기가 들어가 있진 않다. 가령 <공공의 적>은 내가 만든 캐릭터다. <이끼>로 상은 무지하게 많이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그리 살가운 영화는 아니다. 여전히 무서운 영화다.



Q. <전설의 주먹>과 <이끼>,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는 의미인가?
강우석 감독: <이끼>는 어떤 아이디어도 넣을 수 없을 만큼 그 세계관이 탄탄했다. 그 자체를 영화적으로 구현하기에 벅찼다. 반면 <전설의 주먹>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내용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짱, 공부 잘하는 아이, 돈 많은 아이 등 영화 속 인물들이 현실에도 다 있다. 나 역시 전혀 모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신나게 찍었던 것 같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을 할 때도 다 알고 있는 것 마냥 들이댔는데 이번에도 비슷했다.



Q. 어떤 면에선 자신을 되돌아 볼 수도 있었겠다.
강우석 감독: 당연히 있었고, 내가 재밌는 영화로 살아있는지 글러브 끼고 올라가는 느낌도 들었다. 정두홍 감독이 ‘한 판 붙자고 글러브 끼고 올라가는 것 같다’라고 하더라.



“액션을 보러 와라. 다른 것을 선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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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단지 오락적 요소만이 있을 줄 알았는데 40대 가장의 애환이 진하게 느껴지더라.
강우석 감독: <전설의 주먹>과 가족 영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액션을 보러 와라, 대신 다른 것도 선물하겠다는 생각이다. 가족 영화 또는 감동 영화가 꼭 슬로우 템포고, 무조건 애잔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더 격함이 있고, 웃음이 있는 안에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베스트라고 본다.



Q. 요즘 ‘부성’이 강세인가 보다.
강우석 감독: 사실 아버지들이 위로 받는 영화가 별로 없다. 모든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사는데 매일 술만 먹고 들어오고, 일에 쫓기고 하는 모습만 기억한다. 영화를 보고 팍팍한 삶을 사는 40~50대 남자 관객들에게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그들이 보고 흥분하고, 울어주면 흥행을 떠나 즐거울 것 같다.



Q. 그런데 황정민, 유준상과 달리 윤제문만 유독 고등학생 때 그 모습 그대로 같더라.
강우석 감독: 정확하게 봤다. 양아치인데 어느 누구보다 가장 순수한 인물이다. 그리고 가장 멋있지 않나. 이를 의도하지 않았다면 잘 나가는 멋진 건달로 그렸겠지.



Q. 배우들이 정말 고생했겠더라. 감독의 신명이 배우들을 너무 심하게 밀어 붙인 것 아니냐.

강우석 감독: 액션의 짐은 정두홍 감독에게 떠넘기고, 나는 뒤에서 배우들을 위해주는 척을 했다.(웃음) 흉내만 내면 바로 티가 나기 때문에 진짜 맞고 때리기를 해야만 했다. 많이 몰아붙이긴 했다. 촬영할 땐 ‘마지막 액션 영화’라고 했는데 다음에 주어지면 또 할 것 같다. 그래도 미안한건 유준상이다. 인대가 끊어진 상황에서 맞고 구르고. 정신이 나가는 것도 당연했다. 쓰러졌을 땐 정말 기겁했다. 어머니 임종 때도 그렇게 손을 오래 잡고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응급실에서 의식을 잃어가는 준상이의 손을 잡고 기도를 많이 했다. 준상이도, 정두홍도 많이 울었다.



Q. 정말 격투 장면이 상당하다. 영화 <글러브> 당시 스포츠 영화의 어려움을 겪었다.
강우석 감독: 각 인물들이 링에 올라가는 이유가 다 있다. 촬영할 때도 스포츠라기보다 액션을 찍는 기분이었다. 이것도 스포츠라고 생각했으면 고생했을 거다. 그동안 액션을 많이 찍진 않았지만 수많은 액션 중 가장 터프하게 찍었다.

“배우를 잘 만들어내는 게 감독의 가장 중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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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설경구가 SBS <힐링캠프>에서 자기 복제를 한다는 이유로 강우석 감독과 결별(?)하게 됐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강 감독도 같은 배우와 계속 작업하면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더라.
강우석 감독: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서로를 위해 헤어져야 했다. 내 영화를 계속 봐 왔던 사람들이 ‘분명 다른 영화인데 같은 영화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하더라.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새로운 배우, 새로운 영화를 찍어 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전설의 주먹>을 보고 신선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앞으로 더 많은 배우들과 더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Q. 새로운 얼굴의 발탁은 어떤 변화와 시도를 하고자 하는 속마음의 표출이라는 말로 들린다.
강우석 감독: 당연하지. 감독이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배우를 잘 만들어낸다’ 혹은 신인 같으면 ‘조련을 잘했다’는 평가다. 배우를 가장 배우답게, 가장 잘 어울리게 만들어내는 게 감독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연출할 때도 연기에 가장 까다롭다. ‘어떤 배우도 어색한 배우가 없다’는 말이 굉장한 칭찬이다.



Q. 그런데 그런 배우들이 바로바로 떠오르나? 영화 속 캐릭터와 배우를 잘 연결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강우석 감독: 바로 떠오른다. 의도되지 않았던 캐스팅은 <공공의 적> 설경구다. 당시 직접 찾아오지 않았다면 캐스팅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황정민이란 느낌이 왔다. 윤제문, 유준상도 다 마찬가지다. 모두 1차 캐스팅이다.



Q. 요즘 황정민이 급부상하지 않았나. 강우석 감독이 바라보는 황정민은 어떤 배우인가.
강우석 감독: 설명이 정확히 돼 있으면 다 빨아들이는 배우다. 탁월한 연기자 같다. 연이어 하진 않더라도 또 다시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면 뭉쳐보자는 약속은 했다. 남한테 주기엔 아까운 배우다. 인격적으로 대단히 훌륭하고, 좋은 친구다.



Q. 그렇게 배우들이 바로 떠오를 정도고, 더욱이 그 배우들이 하나 같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면 평소에 배우들의 모습을 굉장히 많이 관찰하나 보다.
강우석 감독: 한국 영화는 한 편도 빼지 않고 본다. 외화도 좋아하는 감독, 배우들 작품은 다 본다. 최대 공부는 남의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이다. 동시에 돈을 들여 수입한 ‘핫’한 영화들, 그런 영화들을 끊임없이 보는 게 놀지 않는 감독의 태도다. 감독이 영화를 잘 보지 않는 것은 세상과 담을 쌓겠다는 것과 똑같다. <전설의 주먹>의 경우 <리얼 스틸>이란 영화를 보지 않고, 과거 <람보> 같은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렇게 못 만들었을 거다.



Q. 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그것을 뛰어 넘겠다는 욕심과 오기도 생기겠다.
강우석 감독: 바로 그거다. ‘내가 넌 잡는다’ ‘그 이상을 만든다’ 등의 오기도 생긴다. <실미도>를 만들면서는 <더 락> 보다 더 잘 만들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가끔 영화 지망생들이 물어오면 책 많이 읽고, 영화 많이 보라는 말 밖에 안한다.

“아직은 계속 싸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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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시네마 서비스가 올해로 20주년이다. 스스로 20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강우석 감독: 굉장히 부침이 있었던 20년이다. 안 좋은 영향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래도 한국 영화가 외화와 견줘 안 밀리고, 감독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조나 분배 등의 부분을 세팅할 때 기여했다고 본다. 다만 디테일은 조금 놓쳐버린 듯싶다. 지금 생각하면 스태프 처우 개선을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하지 않나 싶다. 영화 만들기에 바빠 그 부분에 다소 소홀했다. 앞으로 는 영화 하는 일이 즐겁게 또는 영화판을 따뜻하게 만드는데 기여해야 할 것 같다. 대기업과 싸울 수 있는 사람도 딱히 없지 않나. 하하하.



Q. 시네마 서비스의 위용도 과거와 달리 대폭 축소됐다.
강우석 감독: 축소가 아니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내공 있는 제작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한 상태다. 후배들을 1년에 2~3명 만들어내고 싶다.



Q. ‘흥행 승부사’, ‘충무로 파워맨’ 등 오랜 시간 강우석을 따라 다녔던 이런 수식어를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강우석 감독: 아직은 계속 싸우고 싶다. 스크래치 나더라도, 한국 시장에서만큼은 외화에 안 진다는 마음으로 맞서겠다. 그런 기운들을 후배들도 받았으면 좋겠다. 상업영화하는데 그런 전투력이 없으면 되겠나. 태생적인 성격상에도 안 될 것 같다.(웃음) 영화판 전체를 위해 나 같이 오래하는 놈이 있어야 한다. 선배들이 만든 영화를 보고, 이 산을 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고민하게 해주자. 임권택, 이장호 선배들의 영화를 보면서 언젠가는 저분들처럼 빛을 발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꿈꿨던 것처럼.



Q. 그러다 보니 200만, 300만 흥행에도 아쉬운 소리가 나오는 거 아닌가. 그것도 압박인데.
강우석 감독: 압박보다는 욕구가 더 크다. 부담, 압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내 입장에선 ‘그 압박을 내려놓고 싶다’는 게 ‘졌다’는 의미다.



Q. 예나 지금이나 그런 마음은 변함없는 것 같다.
강우석 감독: 물리적으로 나이는 먹지만 정신적으론 아니다. 최근 조정래 소설을 봐도 훨씬 더 깊어졌더라. 앞으로도 ‘올드’해지지 않을 거다.



Q. 영화감독으로서 전설로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나
강우석 감독: <전설의 주먹>에 열광해준다면 이제 시작이다. 전설은 지금부터다.

사진제공. 시네마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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