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사심으로 탐닉하기] 마리옹 꼬띠아르,이 여자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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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옹 꼬띠아르는 <러스트 앤 본>에서 두 다리를 잃은 스테파니로 등장한다. 그녀는 에디트 피아프의 분신이나 배트맨의 숨겨진 적이 아니라 이 영화의 히로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으레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라고 하면 아카데미 시상식을 떠올린다. 할리우드가 스스로 권력을 뽐내는 장이다. 누구나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환호하기 때문에 정작 문제를 제기하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여배우에 대한 시선이다. 사실상 아카데미에는 연기에 대한 커다란 편견이 존재한다. 여배우가 상을 받기 위한 조건은 보통 둘 중에 하나다. 아주 유명한 인물을 똑같이 묘사하거나 영혼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는 거다. 전자는 <철의 여인>에서 대처를 연기한 메릴 스트립 같은 경우다. 후자는 강간을 당하거나 몸을 파는 과정을 거치는데, 조디 포스터가 <의뢰인>으로 강간을 당한 후 상을 받았다. <레미제라블>의 수혜자 앤 해서웨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배우의 고통이 상의 척도가 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관객은 여인들의 고통을 보며 너무 빨리 눈물을 흘리며, 흔하디 흔한 방식으로 소비한다. 여배우의 고통 연기가 몹시 병적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을 수용할 때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되는 지점이 있다. 이는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판타지를 생산할 뿐이다. 마리옹 꼬띠아르도 <라비앙 로즈>에서 에디트 피아프로 변신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전형적인 전자의 경우였다.

[여배우, 사심으로 탐닉하기] 마리옹 꼬띠아르,이 여자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법
<인셉션><미드나잇 인 파리><다크나이트 라이즈>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영화 <퍼블릭에너미><인셉션><미드나잇 인 파리><다크나이트 라이즈>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프랑스 여배우가 아카데미에서 주연상을 받는다?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파리지엔느 마리옹 꼬띠아르는 <라비앙 로즈>에서 피아프를 흉내 내서 아카데미의 레드카펫을 거닐 수 있었다. 나무랄 데 없는 연기였지만, 전기 영화의 한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명예를 부르는 상도 꽤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는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퍼블릭 에너미>, <인셉션>, <미드나잇 인 파리> 등에 줄줄이 출연한 것을 보면, 확실히 할리우드 감독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아카데미 효과가 맞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선 배트맨을 위협하는 깜짝 반전의 주인공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마리옹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몹시 아쉬웠다. 어느새 그녀는 능수능란한 할리우드 배우가 되어버렸다. 그런 와중에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러스트 앤 본>을 찍었다. 오디아르의 범작이지만, 마리옹의 연기만큼은 단연 돋보인다. 마리옹이 연기한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는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다. 삼류 복서 알리를 도우미로 불렀다가 그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다리가 없는 미녀는 너무 현실적이라서, 고착된 여성성에 집착하는 아카데미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이미지를 내뿜는다. 당연히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여인(혹은 여배우)의 고통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여배우, 사심으로 탐닉하기] 마리옹 꼬띠아르,이 여자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법
(위)<라스트앤본>(아래)" />영화 <라비앙로즈>(위)<라스트앤본>(아래)

<러스트 앤 본>의 충격적인 장면은 초반부의 사고가 아니라, 오히려 베드 신에 있다. 다리를 잃은 마리옹이 섹스할 때 절단된 다리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물론 불편하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언캐니(Uncanny)’란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기이하다. 이것은 관객의 엿보기용이 아니라, 철저히 여배우의 욕망을 위한 장면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녀의 절단된 다리는 몇 가지 연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일찍이 초현실주의자들은 절단된 신체에서 파열을 발견했다. 불안이 외면으로 표출된 것으로 삶 속에 내재한 죽음을 예고했다. 페미니스트 린다 노클린은 절단된 신체를 유기적 통합의 불가능성으로 보았다. 총체성의 상실과 파편화된 육체는 모더니티의 특징이었다. 즉 자아 파괴와 사회 해체에 의한 파편화를 조명했다. 또 조르주 바타유는 고흐의 잘린 귀를 통해, “예술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에서 태동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신체의 절단은 모든 예술 제작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마리옹의 몸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여배우가 절단된 몸을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에서 그녀는 ‘DROITE(오른쪽)’와 ‘GAUCHE(왼쪽)’ 이라는 문신을 허벅지에 새긴다. 이것은 ‘올바른’과 ‘비뚤어진’ 사이에서 혼돈에 빠진 그녀를 잘 대변하고 있다. 다리를 잃은 흔적(부재)은 단순한 희생,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고로 여배우는 존재한다. 마리옹은 그렇게 영화와의 사랑을 유지한다.

글.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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