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그 겨울> 송혜교 “외로움과 쓸쓸함의 밑바닥을 봤다”
작품의 여운이 너무 컸던 탓일까?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마지막 촬영을 마친 이틀 후,송혜교의 모습에는 아직 오영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었다. 순간순간 까르르 터지는 웃음 속에도, 다소 빠른 말투로 눈빛을 빛내며 촬영장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오영의 깊은 외로움과 쓸쓸함이잔영처럼 묻어나온다. 그래서일까. “큰 산을 넘은 듯해 홀가분하다”면서도 사실은 오랜 친구와 작별하기 힘들어하는 여고생처럼, 커다란 아쉬움이 이 작은 체구의 여배우를 인터뷰 내내 감싸고 있었다.

Q. 작품의 무게 만큼 어느 때보다 힘든 종영을 맞았을 것 같다.

송혜교: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 아닌데 이 작품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할 정도로 감정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 얘기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그런 내 모습이 낯설다. 감정적으로 무척 괴로운 작품이었는데 벌써 괴롭힘 당했던 시간들이 그립다.



Q. 노희경 작가와 두 번째 드라마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선택한 작품인가

송혜교: 작품때문이 아니라 수다를 떨려고 만난 자리에서 작가님이 오영 역할을 제안하시더라. 원작 자체가 2000년대 초반 방송된 오래된 드라마고 여기저기서 연출 기법을 많이 따라했던 작품이라 ‘왜 굳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할까’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작가님이 너무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작품을 만들 것이고 대중적으로도 한발 더 다가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시더라. 사실 난 처음엔 많이 끌리진 않았지만 오직 작가님과 감독님을 믿고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Q. 오영이라는 캐릭터를 처음부터 송혜교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송혜교: 작가님이 <그들이 사는 세상> 때 준영이가 보인 어떤 스쳐가는 표정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너는 잘 모를거야’ 라고 하시며 약간 시니컬해지거나 예민해졌을 때 보이는 나의 미묘한 표정 변화가 영이의 캐릭터에 덧입혀지면 잘 어울릴 거라고 하시더라.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사는 세상>때 연기적으로 놓친 부분이 많아서 작은 감정도 허투루 흘러가지 않게끔 만회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대신 원작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좀 답답하고 느린 템포라 나와는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었고. 작가님이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하신 부분이 많아 같이 바꿔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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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노희경 작가가 어떤 면에서 배우 송혜교에 대해 확신했다고 생각하나

송혜교: 아마 <그들이 사는 세상> 때 가능성을 보시고 그 때 완벽하게 끝내지 못한 아쉬움을 없애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촬영한 후 주위에서는 시청률 40%를 넘긴 드라마보다도 ‘좋은 작품 했다’는 얘길 많이 들었었다. 이 작품에 들어갈 때도 묘한 확신이 있었다. 당장은 시청률이 적게 나오더라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이 볼 거야’란 마음이 있었다.



Q. 시각장애인의 시선으로 6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연기적으로도 가장 많이 신경을 썼을 것 같은데.

송혜교: 처음엔 한곳을 응시하는 시선으로 촬영하는 게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움직임이 거의 없으니 감정 표현에도 한계가 있고. 그런데 6개월이 넘어가니 이젠 누군가를 바라보고 연기하는 게 어색해져버렸다. 습관을 다시 들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Q.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역할이었을 것 같다.

송혜교: 드라마를 보고 시각장애인들을 도와줬다거나 차별받는 부분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냈다는 사연 등이 올라오는 걸 보며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 내가 드라마를 본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움직였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더라.



Q. 상대 배우로서 조인성과의 시너지 효과는 잘 살았다고 생각하나

송혜교: 내가 봐도 잘 어울리더라. 인성 씨가 키가 무척 커서 순정만화같은 느낌도 나고 영이가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면이 있었다. 사실 나도 현장에서는 인성씨의 눈을 보며 연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송을 통해 온전히 시청자의 입장으로 오수를 봤다. 그러면서 촬영 때는 몰랐던 눈빛과 표정에 표정에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오영이 업히거나 안기는 장면이 많아 무거울까봐 너무 미안했다. 스태프들이 그러는데 인성 씨가 나를 안고 가는 장면을 찍은 후 밥을 먹는데 수저가 떨리더라고 하더라.(웃음) 참, 드라마 촬영 전에 증권가 정보지에 내가 조인성씨에게 밥먹자고 꼬였단 내용이 나와 한참 웃기도 했다. 어쨌든 좋은 동료를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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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전 작품에서 연기력에 대해 크게 호평받지 못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송혜교 연기의 재발견’이라는 칭찬도 많았다

송혜교: 칭찬을 안 듣다 오랜만에 들으니 좋기도 하고 정신이 없더라. 내 연기를 보며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는데 이번에 좋았던 건 기존에 없었던 신비감 있는 모습이 살았던 부분이다. 그 외에는 모두 아쉽고 부족하다. 개인적으론 지난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지적받았던 부분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다. 이번 캐릭터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배수로 깔려 있는,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여자면서도 미스터리한 느낌이 많아 하이 톤의 대사가 거의 없었다. 대사 부분이 어색하다는 전작의 지적을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고쳐 나간 부분이 많다.

Q. 극단적인 클로즈업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송혜교: 오히려 무척 감사한 부분이다.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어 표정으로만 느낌을 전달해야 하는데 미세한 눈의 떨림이나 표정 변화가 잘 표현될 수 있었다. 그것 때문에 살았다 싶다.



Q. 영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촬영장에서도 많이 느껴졌나.

송혜교: 눈을 안보고 연기하니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도 늘 혼자만 떨어져 있는 것 같더라. 촬영 현장에서도 홀로인 느낌이었다. 원래 현장에서 우울한 편이 아닌데 많이 예민해져 있었고 그래서 무척 조용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새벽에 끝나고 집에 와서도 다음 신을 철저히 예습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었고. 감정이 너무 과잉돼도 가벼워도 안 된다는 압박감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었다. 그러다보니 배우들 대부분이 심적 스트레스로 장염에 걸리기도 했다. 연기하면서 쓸쓸했던 적을 꼽으라면, 오수랑 헤어질 때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죄가 얼마야. 내가 널 옆에 두고 사랑할 순 없지만 넌 살기 위한 방법이었고 난 행복할 때도 있었으니까’라고 영이가 오수를 힐링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 대사를 하는데 너무 쓸쓸했다. 내가 마치 정말 영이가 된 듯한 느낌처럼. 다시 영이의 외로움의 시작인 것 같았다.

Q.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송혜교: 13부 산장 장면에서 오수가 오빠가 아님을 알게 된 후 미묘한 심리전과 함께 감정을 폭발시켜야 하는 장면에서 사실 진이 많이 빠졌었다.



Q. ’사람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용서가 아니라 위로야’라는 극중 대사가 많이 회자됐다. 가장 위로해주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누군가?

송혜교: 왕비서님이다. 마음을 알면서도 오영이 모질게 대한 면이 있으니까. 마냥 예민한 영이를 몇십년 동안 받아준 왕비서는 오영에게 엄마같은 존재가 아닐까. 왠만한 친엄마도 그렇게 자신의 모든 걸 바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 물론 우리 엄마만큼은 아니지만(웃음)



Q. 다음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좀 가볍고 싶나

송혜교: 감정이 이렇게 필요한 작품이 와도 이젠 못할 것 같다. 에너지가 바닥이 난 것 같다. 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물이 좋지 않을까 싶다.



Q. 벌써 데뷔 17년차다. 송혜교가 경험한 여배우로 사는 건 어떤건가

송혜교: 안 좋은 게 사실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스캔들이 나도 여자가 다 나쁜 역할이 돼 버리니까. 누군가가 좋아 연애를 하더라도 여자가 나쁘게 비쳐지는 부분이 있지 않나. 이젠 활동한지 오래돼서어지간한 소문도 웃으며 넘기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루머에 대해 물을 땐 기분이 참 묘하더라. 여배우를 시작한 이상 앞으로도 아픈 날도 많을 거고 상처받을 일도 많겠지만 즐기려고 한다.



Q. 당분간 연애 계획은 없다는 얘기가 들린다

송혜교: 요즘엔 정말로 귀찮단 생각이 든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점점 멀어지고. 언젠간 하겠지만 누군가를 챙겨주기가 아직은 버겁다는 생각이다.



Q. <그 겨울, 바람이 분다>란 작품이 송혜교에게는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어떤 의미로 남았나
송혜교: 외로움과 쓸쓸함의 밑바닥을 봤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그 때 참 많이 배웠구나란 생각이 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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