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그 겨울> 김규태 감독, 깊이와 대중성 사이의 균형 잡기
“노 작가님의 진가를 좀 더 알아볼 수 있는 시도였다면만족스럽다” 기획기간까지 1년에 가까운 대장정을 마친 연출자의 표정에는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연출 작업 내내”작가님의 깊이를 대중적으로 어떻게 풀어낼까”를 화두로 고민했다는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극본 노희경, 이하 그 겨울)의 김규태 PD. 결과물은 신선함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방송 내내 회자되는 드라마로 자리했다. 깊이 있는 대본과 트렌디한 연출력이라는 상반되는 키워드가 잘 맞아떨어진 성과다. “질퍽함보다는 세련됨으로 승부하려 했다”는 그는 담담하게 연출 소회를 전했다.

Q. 어려운 작품이었는데 잘 끝났다는 평가가 많다.
김규태: 나는 원래 건조한 스타일이라 마지막 촬영 때도 덤덤했었다. 그러다 쫑파티 때 마지막으로 “모두들 고마웠다”고 얘기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이런 만족도가 있는 작품을 또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어려운 숙제를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마친 기분이랄까.



Q. 노희경 작가와는 <그들이 사는 세상> <빠담 빠담>에 이어 세 번째 작업이었다.
김규태: <그들이 사는 세상> 때는 B팀 감독이었고 본격적으로 함께 한 건 <빠담 빠담>이었는데 노 작가님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늘 컸었다. 쉽지는 않더라. 작가님의 작품 자체가 깊이가 있어, 대중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성격이 아니라 어떻게 시청자들을 TV 앞에 데려다 놓을 수 있을지가 내겐 큰 숙제였다. 대중적인 포석을 두겠다는 욕심을 작가님의 색깔이나 생각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접점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출 면에서는 가장 정직하게 가자고 생각했다. 배우들의 스타성이 크고, 연기적인 면에서 업그레이드를 할 만한 배우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Q. 극단적이 클로즈업이나 화이트 조명 등 기존 드라마에서는 쓰지 않던 기법이 많았다. 연출자로서도 큰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김규태: 대사나 감정의 디테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클로즈업 샷의 기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청자들 입장에선 강요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특히 오영은 시각장애인이라 정적이기 때문에 클로즈업 샷을 통해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인성씨는 다양한 패턴의 연기를 하는데 미세한 표정 움직임이 클로즈업 샷일 때 크게 느낌이 오더라. 결국 두 배우가 클로즈업 샷에 대한 힌트를 줬다.



Q. 처음부터 클로즈업을 염두에 두고 연출한 게 아니었나
김규태: 그렇다. 차차 촬영을 해 나가면서 어중간한 사이즈의 변화를 주기보다는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클로즈업이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통으로 가면서 강조할 부분에 포인트를 주는 연출이 이 드라마에는 어울리겠다는 판단이 어느 순간 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보는 사람들의 몰입도를 흐트리지 않는 선택을 한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단조로워질 수 있는 부분인데 대본의 깊이나 심리적인 긴장감, 복합적인 감정 표현이 극을 지루해지지 않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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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드라마의 일본적인 느낌과 미스터리한 요소도 몰입도를 크게 한 것 같다.

김규태: 심리적인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독특한 미스터리 코드가 재밌었다. 원작 자체의 설정은 사실 리얼리티가 사라진 과도한 설정이 있었다. <그 겨울>은 노 작가님의 반어적인 대사 톤과 인물들의 이중적인 심리상태가 맞물리다보니 정통 멜로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또다른 재미를 준것 같다. 하지만 노 작가의 작품에 대한 가치관이나 표현방식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연출과 작가의 밸런스가 안 맞으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데 작가의 의도에 이전과는 다른 색깔을 덧입힌다는 부분에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이 많았었다.



Q. 기존 드라마 색감과는 다른 촬영기법이 많은 화제가 됐다.

김규태: 스태프들의 공인 것 같다. 처음부터 20~3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호감도를 지닌 트렌디한 영상 기법을 시도해보자는 콘셉트를 잡았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보니 조명의 톤이나 미술적인 부분에서 색보정 과정이 들어갔다. 일명 ‘뽀사시’라고 부르는 콘트라스트가 거의 없는 톤으로 색감과 질감을 잡았었다. 일반 시청자들이 굉장히 궁금해하던데 사실은 새로운 장비는 없었다.

Q. 일본 원작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나

김규태: 원작에 대한 스트레스는 모두들 가지고 있었다. 원작이 내가 연출 데뷔할 타이밍에 나왔던 작품인데 묘한 정서를 지닌 부분에 많이 끌렸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못하겠다고 했었다. 스토리 라인 등을 한국 정서에 맞게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했다. 연출적으로 봤을 때 잘해야 본전인데.(웃음) 하지만 노 작가님이 오케이한다면 해 보자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깊이 있고 멜로적인 포틴트가 살아날 거란 생각이 들더라.



Q. 송혜교, 조인성이라는 두 스타 배우들과의 작업에서 특별히 주력했던 부분이 있나

김규태: 일단 배우들이 작가님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었던 점은 감독으로서 매우 행복했던 점이다. 단지 내가 염려했던 건 혜교 씨의 경우 영이에 대해 작가님이 굉장히 주체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잡아서 자칫 잘못하면 호감도가 떨어질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영이의 외로움이나 감정에 대해 몰입할 수 있도록 감정선을 잘 잡아내는 데 치중했던 것 같다.수 같은 경우는 시종일관 무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되도록 그런 무거움을 희석할 수 있는 찬스가 오면 엉뚱함, 독특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다행히 인성씨 같은 경우 동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을 때 천진난만한 부분이 있더라. 스스로가 지닌 유머러스하고 밝고 장난기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조금 더 카메라 앞에서 놀게 했던 것 같고. 예를 들어 1회 초반에 도박하다 도망가는 부분은 유머러스하게 풀어진 캐릭터로 표현한다든지, 속을 알 수 없는 놈처럼 이상한 미소를 짓는 표정들이 재밌었다. 그런 예상치 못한 재치를 극대화하자는 주의였다. 그래야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좀더 숨쉴 틈이 있을 것 같았다.

Q.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점도 촬영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김규태: 사실 나도 시작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아 시선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때 정면 샷을 많이 써서 교감할 수 있도록 하는 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동적인 부분은 많이 살릴 수 없어 주로 손의 느낌을 포착하는 부분에도 중점을 뒀다.



Q. 동화같은 두 주인공의 로맨스 장면도 화제를 낳았다
김규태: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의 힘은 멜로라고 생각했다. 결국 시청자들이 바라는 점은 둘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될지이기 때문에 어떤 식이든 약간의 로맨틱한 판타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러브라인은 최대한 예쁘게 찍자라는 의도가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워낙 선남선녀다보니 특별한 테크닉을 구사하지 않아도 되는 점도 있었다.



Q. 촬영하면서 배우들을 칭찬해주고픈 장면이 있었나

김규태: 영이가 강으로 걸어들어갔던 장면이 가장 고생도 했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실 첫 촬영 때는 강이 얼어붙어서 스태프들이 철수했었다. 두번째 촬영 때도 무척 춥고 배우들의 안전 문제를 보장하기 힘들어서 긴장감이나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런데 그 때 강에 들어가는 영이의 표정이 무척 감탄스러웠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웃음 띤 슬픔과 함께 표현하는데 놀랍더라. 난 칭찬에 인색한 편인데 이날 촬영에서는 칭찬을 많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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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죽고 싶어하는 여자와 끝까지 살려는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이 전해주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무엇이었다고 보나

김규태: 작가님과 처음에 극의 의도에 대해 얘기할 때살아야하는 이유에 대한 생각을 많이 나눴다. 자살시도 등의 장면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다는 부담감도 있긴 했다. 궁극적으로는 살만한 세상이고, 사랑이야말로 삶의 이유라는 주제의식을 담으려고 했다. 그 안에서 타인을 미워하거나 혹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을 느끼는 부분이 우리는 너무 과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다…자신이든, 남이든 죄에 대해 과한 형량을 내리면서 삶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작가님의 얘기에 많은 공감이 갔다.

Q. 해피엔딩으로 끝난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는데

김규태: 현실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약간 혼란을 준 부분이 있지만 해피엔딩은 기획 당시부터 정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예쁘고 아름답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어서 마지막 신의 구도나 색깔이나 렌즈를 고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결말 자체가 여러 해석을 낳는 것은 재미있는 부분인 것 같다.



Q. <그 겨울>이 사전제작제 드라마의 하나의 롤 모델 될 수 있을까

김규태: 의도는 하지 않았는데 나름대로 괜찮은 모델을 제시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8회까지 촬영을 완료하고 시작했는데 반 사전제작 드라마로 퀄리티를 높였다는 성과는 가져온 것 같다. 사실 사전제작이 어려운 첫번째 이유가 대본이고 제작비 조달이나 편성 협찬이 두 번째 문제인데 무엇보다 이번에는 작가님의 힘이 컸고, 시스템적인 부분에서는 제작진과 의기투합한 팀워크가 좋았다.



Q.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은

김규태: 나는 작가주의적인 연출가는 아니다. 하나를 파고들기보다는 잡종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편이다. 아마 여행 후 각각 주제가 다른 트렌디한 느낌의 로맨틱 단막 드라마를 시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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