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 by staff ㅣ 외화번역가 박지훈 “자막 속에 희로애락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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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내뱉은 “Shut up!”이 “됐거든”과 “좋댄다~”로 번역돼 나오는 순간,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상영관에 모인 관객들은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언어의 맛과 유머감각이 살아있는 번역으로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이는 바로 외화번역가 박지훈이다. 2002년 <악마 같은 여자>로 본격적인 외화번역의 세계에 들어선 그는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번역가로 성장했다. <오션스 13> <다이하드 4.0> <어벤져스> <맨 인 블랙 3>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다크 나이트 라이즈> 등의 무수히 많은 히트작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 마니아라면 엔딩 크레디트에서 박지훈 이라는 이름을 한 번 쯤은 본 기억이 있을 게다.

번역이라는 건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번역가의 필터를 거친 언어는 때론 오역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전문성을 중요시 여기는 마니아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원 뜻을 훼손하면 안 된다는 강박과, 원본보다 간결하되 이해하기 쉽게 대사를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 앞에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하는 게, 외화번역가의 숙명인 셈이다. 오늘도 제한된 14글자 안에 담아낼 언어와 씨름 중일 박지훈 번역가를 만나 영화번역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Q.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지낸다고 들었다. 번역 일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아닌가 싶다. (웃음)
박지훈: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가 있어서 혼자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미국에서 몇 개월 살고, 한국에서 몇 개월 살고. 이런 식이다.

Q. 현재 마감이 닥쳐온 영화가 어떤 게 있나? 한 달 평균 몇 편을 번역하는지도 궁금하다.
박지훈 :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와 윌 스미스 주연의 <애프터 어스>를 번역중이다. 한 달에 보통 3~5개를 번역하는데 배급시기가 비슷비슷하다보니, 동시에 2,3개를 잡고 가는 경우가 많다.

Q. <위대한 개츠비>는 세계 문학사에서 걸작으로 손꼽히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라, 번역하는데 더 신경이 쓰일 것 같다.
박지훈 : 원작이 있는 작품은 일단, 책을 찾아본다. 하지만 공간의 제약을 받는 자막은 소설 번역이나 더빙과 달라, 인물들의 대사를 100% 옮길 수 없다. 자수 제한(띄어쓰기 포함 14자 이내)이 있고, 5~6초 동안의 짧은 시퀀스에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까닭에, 무엇을 그대로 삽입하고 무엇을 압축할지, 또 과감하게 생략해야 할지를 내 방식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Q. 오리지널리티를 중요시 여기는 원작 마니아들의 경우 압축에 특히 민감하지 않나.
박지훈 : 맞다. 하지만 마니아만 보여주려고 영화 자막을 하는 건 아니잖나. 나는 극장에 잘 안 오는 분들도 받아들이기 쉽게 번역하려고 하는 편이다. 번역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의역을 많이 하진 않았다. 원문에 나온 전문용어와 지명을 가급적이면 그대로 쓰려 했다. 사실 그게 더 편하기도 하다. 깊게 고민 안 해도 되니까. 그런데 번역을 해 나가면서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가령 미국의 유명한 지명이 영화초반에 한 번 언급 됐다가, 후반부에 다시 나왔다고 치자. 미국 관객들이야 쉽게 기억해 내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은 그 지명이 왜 갑자기 나왔나 어리둥절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화에 큰 지장이 없으면, 그런 지명은 쳐 낸다. ‘OOO 클럽’이라면, 그냥 ‘클럽’으로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거다.

Q. 번역 쪽에 종사하는 사람 대부분이 하는 말이, 외국어도 잘 해야 하지만 우리말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하던데.
박지훈 : 중요하다. 어휘와 문장력이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내 경우엔 소설과 신문을 많이 읽는다. 원문에 얽매이다보면 우리말이 어색하게 나오니까, 소설을 통해 문장력을 향상시키는 거지. 어휘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가 다뤄지는 신문에서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하지만 영어와 우리말 중 어느 쪽 공부를 더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영어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두라고 하고 싶다. 해당 언어에 자신이 있어야 우리말 번역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하거든. 또 영어는 항상 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늘리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It’s on the house”를 직역 하면 “집에 있다”지만, 진짜 뜻은 “이건, 서비스예요”다. 그런데 그걸 “집에서 가지고 왔어”로 번역한 걸 본 적이 있다. 보면서 ‘저 분은 책으로 영어를 배우셨구나’ 했다. 평가절하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공부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웃음)

Step by staff ㅣ 외화번역가 박지훈 “자막 속에 희로애락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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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번역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박지훈 : 1997~98년도에 지금의 와이프와 세계 일주를 1년간 했다.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왔는데, 마침 IMF가 터져서 경기가 안 좋았다. 아는 분이 “놀면 뭐 하냐, 한번 해 봐라”며 소개시켜 준 게 비디오 번역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번역을 시작했는데, 내 적성과 너무 잘 맞았다. 내가 사회성이 부족해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이 일은 혼자 잘하면 되니 편했다.(웃음)

Q. 번역을 하다보면, 아무래도 자신의 평상시 말투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박지훈 : 들어간다. 번역가도 소설가처럼 자기만의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 번역은 홍주희 씨가 했구나’, ‘저건 이미도 씨가 했구나’를 영화 자막만으로도 가늠할 수 있다.

Q. 한때 ‘자막 번역은 이미도’로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랬 던 걸로 안다. 그러다가 당신을 비롯해 김은주 성지원 홍주희 등 번역 2세대로 불리는 번역가들이 등장했고. 번역가마다 문체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다른가?
박지훈 : 음… 다른 사람의 번역을 평가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한데, 먼저 홍주희 씨는 굉장히 한국적으로 번역을 한다.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사를, “그건 시어머니도 몰라요!”로 번역하는 식이다. (웃음)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는데, 호불호가 많이 나뉘는 편이다. 이미도 씨는 소설가적 기질이 있으시다. 말을 조금 미화한다고 할까? 간단한 말도 굉장히 멋있게 만드신다. 본인이 워낙 ‘글 빨’이 있으시니까, 가능한 거다. 반면 나는 의미만 직관적으로 던지는 편이다. 말을 툭툭 던지는 스타일이라, 번역에 시니컬함이 묻어난다.

Q. 그런 특징을 클라이언트들이 알고 의뢰를 해 오나?
박지훈 : 그건 아니다. 중요한 건 신뢰인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쌓이는 신뢰 말이다. 현재 이십세기폭스, 소니, 워너 등 세 군데 직배사 영화들은 거의 내가 번역 한다. 작은 영화나 지나치게 여성적인 영화를 빼면, 90%를 하는 셈이다. 작년에 번역한 작품? 블록버스터는 거의 다 내가 했다고 보면 된다.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직배를 통해 들어오니까.

Q. 거의 독점이네. (웃음) 대사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감동의 여운도 달라질 텐데, 관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번역가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박지훈 :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왜 박지훈이가 다 하냐?”는 일각의 불만도 이해한다. 하지만 번역에 문제가 생길 경우 영화사가 입어야 할 막대한 피해를 생각하면 직배사 입장도 이해가 된다. 날짜를 미리 받아놓고 자막을 찍어서 심의를 넣는데, 이게 틀어지면 광고도 못하고, 개봉에도 차질이 생기고, 모든 게 어그러지니까. 그러다보니 직배사 입장에서는 작업했던 사람을 더 선호하는 게 사실이다.

Q. 번역도 취향을 타는 분야인지라,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어려운 것 같다. 불만이 없을 수 없을 텐데, 어떤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나?
박지훈 : ‘디시 인사인드?’ (웃음) 나를 비판하는 곳을 찾아보면 ‘디시 인사이드’가 나올 때가 많다. 뭐, 이유 있는 비판은 괜찮다. 다만 디시인들은 뜬금없이 트집을 잡는 경우가 많다. “번역 박지훈!” 이러면, “어쩐지 이상하더라”가 줄줄이 달리는 식이다. <스토커> 같은 경우에도 “어쩐지 이상하더라”가 많았는데, 사실 <스토커>는 1차 번역 후에 감독님을 만나서 4시간 상의를 거쳤다. 그러니까 <스토커>는 번역에 박찬욱 감독님 의중이 100% 들어 간 영화인 거다. 그런데 디시에서는 “박지훈이는 감독님 의중을 몰라!” 이런다. 난감한 거지. (좌중폭소)

Q. 이 기회에 해명이 됐으면 좋겠다. (웃음)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박지훈 : 다행히 없지는 않다. (웃음) <인셉션> ‘장인’ 논란이 있었을 때, ‘DVD프라임’ 에 해명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댓글로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이 많아서 힘을 많이 얻었다.

Q. 번역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대본은 보통 영상과 같이 오나? 아니면 달랑 대본만?
박지훈 : 예전에는 영상이 불법유출 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대본만 보내왔는데, 작년 <어벤져스> 이후로 조금 바뀌었다. 회사마다 방식이 다른데, 어떤 회사는 스트리밍 방식으로 본사 서버에서 영상을 불러다가 볼 수 있게 해 주고, 어떤 곳은 디지털 부서에서 영상 파일과 그 파일을 틀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함께 보내준다. 화질이 좋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반면 지금도 대본만 보고 번역해야 하는 회사도 있다.

Q. 만족도에 차이가 크겠다.
박지훈 : 많이 나지. 그래도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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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번역하고 나서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은 어떤 건가?

박지훈 : 최근에는 <클라우드 아틀라스>. 대사가 조금 멋지다고 해야 하나? 내가 시적인 대사를 좋아하는데, 번역해놓고 스스로 ‘아, 이거 잘 했네!’ 이랬다. (웃음) <300>도 기억에 남는다. 장르가 액션이긴 했지만 그 작품도 대사가 워낙 시적이라 좋았다.

Q. 반대로 작업하면서, ‘이 작품은 하기 싫다’ 했던 경우도 있을 것 같다.
박지훈 : 많지. (웃음) 우리가 항상 회사 가서 일하고 싶은 건 아니잖나. 정신없이 떠드는 영화들을 특히 싫어한다.

Q. 배우들의 대사가 많고 빠르기로 유명했던 <소셜 네트워크>도 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번역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박지훈 : 아, 그건 재미있었다. 말을 속사포처럼 쏴도, 영화가 재미있으면 괜찮다. 영화 자체가 별로인데, 말까지 정신없으면 애를 먹는 거지. 장르적인 측면에서 보면, SF가 번역하는데 어렵다. 생소한 언어도 많고, 전문적인 용어도 많으니까.

Q. 영화 번역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비해, 진입 장벽은 높은 것 같다. 인맥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박지훈 : 인맥, 중요하다. 인맥이 1차라고 본다. 나 같은 경우에도 소니에서 시작을 했는데, 그게 연결이 돼서 워너와 폭스에서 연락이 왔다. 평가가 좋게 났는지, 로컬 업체 쪽에서도 연락이 왔고. 그게 다 긍정적인 의미의 인맥이라고 본다. 그런데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 않나. 혼자 잘났다고 설쳐봐야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힘들다. 물론 경험이 전무 하고 실력도 없는데, 인맥만으로 꽂아줄 수는 없지만 말이다.

Q. 누군가, “나는 인맥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조언을 구해 온다면?
박지훈 : 내 경험을 그대로 얘기해 주겠지. 나도 처음에는 이력서를 들고 직배사와 로컬 업체들을 찾아다녔다. 그때는 아무도 안 써줬다. 문을 안 열어줘서 못 들어간 적도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직배사들은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번역을 의뢰하는데 보수적이다. 학력이 좋다고 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진짜 실력을 보려면 영화를 맡겨야 하는데 그거 자체를 모험으로 여기니까 처음 일을 시작하는 사람입장에서는 뚫기가 어려운 거다. 나도 쉽게 일을 못 잡다가 소니에서 배급하는 <악마 같은 여자>라고, <아메리칸 파이>의 남자 주인공 제이슨 빅스가 나오는 영화를 하나 했는데, 그게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후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태양의 눈물>을 이미도 씨 대타로 하게 됐고, 그러면서 점차 늘려나갔다.

Q. 대타? 그 얘길 들으니, 당신이 대타를 급히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박지훈 : (웃음) 그런데 그런 게 있다. 4-5년 전만해도 개봉하는 외화들이 많아서, 직배사마다 번역가를 최소 두 명은 뒀다. 그런데 한국영화 시장이 커지고 외화의 입지가 좁아지면서 번역가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었다. 배급사 입장에서는 한 명의 번역가가 잉여가 돼 버린 거지. 옛날보다 사정이 더 좋지 못한 상황이다.

Q. 최근에 <로봇 앤 프랭크>가 ‘방가’, ‘-하삼’, ‘킹왕짱‘ 등 지나친 인터넷 은어 사용으로 한바탕 크게 홍역을 치렀다. 당신도 비슷한 논란도 겪은 적이 있다. 2006년 <박물관이 살아있다!>때,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옳지 않아”, “열라 짬뽕나” 등의 유행어를 사용했다가 찬반 논란에 휩싸인바 있다.
박지훈 : 욕을 많이 먹었지. (웃음) 그런데 그 영화 메인 타깃이 어린이 관객이었다. 어떤 방향으로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사전 회의가 회사에서 있었는데, 회의 결과 나온 게 “원작 대사들이 밋밋하니까, 한번 망가져보자!”였다. 당시 회사 성향이 그런 쪽을 추구했기에, 유행어를 가미해서 번역한 거다. 그 영화 이후 ‘박지훈은 유행어를 죄다 가져다 쓴다’가 관객뇌리에 박혔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유행어 사용을 지양하는 편이다. 반면 은어 쓰는 건 좋아한다. “쩌네” 이런 거 말고, ‘된장녀’ 같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은어 말이다. “멘붕이 왔다”는 써 본 적은 없지만,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어떤 관객은 저런 단어를 어떻게 자막에 넣느냐고 비난할 거다. 그런데 나는 그게 의문이다. 국회의원들도 국회에 나가서 “이건, 멘붕 상태”라고 하는데, 왜 자막에서만 그렇게 보수적인 기준을 들이대는지 모르겠다. 욕 같은 것도 그렇다. 한국영화, 특히 한국조폭영화들은 대사의 3분의 1이 욕이잖나. 그런 건 별 말을 안 하면서, 자막에는 왜 그렇게 엄격한지 나로서는 의문이다.

Q. 번역가를 중간자 입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박지훈 : 그런데 같은 장면을 두고도,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르지 않나. 모두가 자기대로 인식하고 자기대로 해석한다. 번역가도 똑같다고 본다. 코미디 영화라도, 내가 웃겨야 더 좋은 대사가 나오는 거 아닌가.

Q. 영화 외에 다른 분야를 번역해 본 적은 없나? 가령 소설 같은.
박지훈 : 소설번역과 영화번역은 너무나도 다른 영역이다. 자막은 압축의 기술이 필요한데, 소설은 반대로 늘리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미사여구를 많이 붙여야하고. 나는 늘리는 쪽에는 소질이 없다. 대신 한국영화에 영어 자막을 얹는 작업은 오래 전에 했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외화번역만 해서는 생활이 안 됐거든. (웃음) 외화번역 의뢰가 별로 들어오지 않을 때라, CJ엔터테인먼트나 쇼박스가 수출하는 한국영화의 번역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엔 배급사들이 의욕적으로 한국영화를 수출해서, 그쪽 일이 많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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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번역료를 물어보면 실례일까?
박지훈 : 한 작품 당 보통, 270만 원에서 400만 원 받는다.

Q. 한 달에 4-5 작품 한다고 했으니까… 오우! (웃음) 번역 쪽은 부익부 빈익빈 아닌가?
박지훈 : 차이가 꽤 나는 걸로 알고 있다. 작은 영화는 50~80만 원 정도 받는다고 들었다.

Q. 번역에도 저작권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극장용으로 작업한 자막을 케이블 TV나 인터넷 매체 등에서 허락 없이 베껴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박지훈 :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내가 번역한 표현법이 케이블 TV 등에서 그대로 방영되는 걸 본 적도 있다. 저작권 때문에 번역을 그대로 못 가져가니까, 최근 IPTV 쪽에서는 번역까지 포함해서 배급사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더라.

Q. 극장 번역과 다른 매체에서의 번역엔 어떤 차이가 있나?
박지훈 : 극장 번역이 표현에 있어 조금 더 자유롭다. 가령 “안 돼” 할 때, ‘안’하고 ‘돼’를 띄어 써야 하잖나. 그런데 나는 두 단어가 띄어져 있는 게 시각적으로 안 예뻐 보여서 붙여서 쓴다. (웃음) 극장은 화면이 커서 그 스페이스 하나가 굉장히 넓게 보이거든. 맞춤법 같은 경우에도, “했고요”가 맞는데, 나는 소리 나는 대로 “했구요”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케이블에서는 그런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굉장히 엄격하다. ‘섹스’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민감하고. 또 극장은 의역이 많이 허용되는데, 케이블에서 그랬다가는 오역이라고 혼난다. 그래서 직역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지. 케이블 번역이 조금 더 딱딱한 편이다.

Q. 이 작업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큰 것 같다. 대화 내내 그런 게 느껴진다. (웃음)
박지훈 : 재미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 적성과도 잘 맞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게 있다면?
박지훈 : 시간에 쫓기는 거? 해외일정에 맞춰 동시개봉 하는 영화가 많다보니, 번역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다. 그래도, 뭐.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웃음)

글.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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