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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한 여배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 뒤엔 너무나도 추악한 연예계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말로만 떠돌았던 연예계 성상납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중은 분노했고, 세상은 떠들썩했다. 그렇다고 바뀐 건 없었고,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져갔다. 그로부터 4년 후 그때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공개됐다. 지난 18일 개봉된 <노리개>다. 그리고 2009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여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극 중 추악한 연예계에 희생당한 신인 여배우 정지희 역은 신예 민지현이 연기했다.

Q. 실제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여배우가 성상납의 피해자를 연기한다는 게 기분이 남달랐겠다.

민지현: 연기하면서 진짜 저한테 일어나는 일 같았다. 그래서 연기하면서 희생양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지희가 된 것 같았고,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 마음까지도 알 것 같더라.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Q. 노출이나 화제성을 떠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연예계의 추악한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선택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특정인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 그런 색안경도 분명 있을 텐데.

민지현: 다른 쪽의 생각은 전혀 안했다. 다만 꼭 있어야만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보여지고, 남들이 저를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영화의 내용과 그 취지가 잘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배우는 기다림의 직업인 것 같다. 오래 잘 버티는 사람이 오래 가는 것 같다. 그 과정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이지만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번 했을 뿐이다. 그 기회가 저에게 왔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땐 어떤 느낌이었나?

민지현: 처음 읽으면서 펑펑 울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어?’ ‘이런 곳에서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등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가 이걸 할 마음을 먹었다는 게 신기한 것 같다. 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웃음) 앞으로도 이런 시나리오가 온다면 또 할 것 같고, 하고 싶을 것 같다.



Q. 작품을 선택할 때 있어 굉장한 확신과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민지현: 스스로 한이 많이 맺혔던 것 아닐까. 극 중 지희가 가진 열망과 실제 저의 목표가 상통했던 것 같다. 결과적인 선택은 다르지만 꿈꾸는 바나 가지고 있는 목표가 일치한다. 그 동안 연예계에 있으면서 너무너무 연기가 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제약들로 인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그 열망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가슴에 응어리지고 맺힌 것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MI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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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현은 2007년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로 데뷔했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이민호 박보영 문채원 등은 현재 스타가 된 반면 민지현은 이제 갓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잠깐 가수 데뷔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무산됐다. 오디션 기회조차 쉽지 않았다. 2011년 케이블 드라마 < TV방자전 >에서 향단 역으로 관심을 받았고, 뒤이어 2012년 케이블 드라마 <노란 복수초>에서는 6세 지능을 가진 역할을 통해 연기력적인 면에서도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화 <노리개>를 통해 첫 주연의 기쁨을 누렸다.



Q. 이렇게 주연 배우로서 인터뷰 하는 게 거의 처음인 것 같더라.

민지현: 사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 내가 영화를 찍었구나’ ‘이런 게 시사회구나’ 싶다. 또 개봉을 해봐야 개봉한 것도 실감할 것 같다.(인터뷰는 개봉 전 진행됐다.) 다 새롭고 그렇다.



Q.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지 꽤 됐다. 또 중간에 잠깐 가수 데뷔를 준비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제야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우여곡절이 참 많았겠다.

민지현: 연기로 들어갔는데 자꾸 가수 팀에 끼워 넣더라. 일단 데뷔를 하고 나면 연기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당시엔 제가 ‘아이돌’스러웠나 보다. 하하. 1년간 연습은 죽어라 했는데 회사가 사라지면서 그 팀 자체도 데뷔를 못했다. 가수의 꿈이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 더군다나 리더였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Q. 스타가 되기 위해, 아니면 배우가 되기 위해 눈물을 삼켜야 하는 시기가 많았겠다.

민지현: 오디션을 봐야하는데 오디션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정말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싶기도 했고, 배우가 내 길이 아닌가 싶더라. 가족, 친구 등 고마운 힘들이 있었다.



노리개 민지현
노리개 민지현
Q.
그렇다면 첫 주연이란 점이 작품 선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

민지현: 꼭 그런 건 아니다. 주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오래 연기하고 싶다. 인생에 한 방은 없다고 생각하고,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Q. < TV방자전 >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은 과감한 연기와 노출이다. 포털사이트에서 그려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노출’ 관련 단어들이 뜬다. <노리개> 역시 노출을 피할 수 없다.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서서히 인지도를 더해가고 있는 여배우의 입장에서 ‘노출’이란 꼬리표는 당연히 달가울 리 없다. 포털에서 민지현을 검색했더니 연관 검색어가 조금은 민망하더라. <노리개>를 선택할 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았나?

민지현: 하하. 제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민지현 엉덩이’ ‘민지현 노출’ 등이 같이 뜬다는 거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 연관 검색어를 들어가보면 나쁜 내용은 아니다. 그런 것들이 검색되지만 < TV방자전 >은 감사한 작품이다. 그리고 제 선택이었고, 그렇게 검색이 된다는 자체도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만들어 갈지 신중하게 생각해야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타당성 있게 선택했고, 연기할 때도 그랬다. <노리개>도 마찬가지다. 노출 이미지가 굳어질까 봐 고민했던 건 있는데 <노리개>에서 노출은 러브신도 아니고, 에로틱한 것도 아니다. 노출이 전혀 부각되는 작품이 아니었다.



Q. 노출이 있었지만 상황과 느낌, 감정은 전혀 다르다. 어떤 게 연기하기 더 어렵던가.

민지현: 둘 다 어렵다. 향단이는 처음 그런 장면을 찍다보니 어려웠던 게 있었고, 노리개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란 점에서 힘들었다. 상상하기도 싫은데 찍는 동안에도 그 감정이 확 올 때가 있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그 트라우마가 얼마나 오래갈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Q. 마지막에 다소 가학적인 노출 장면이 있지 않나. 그 장면은 보기에 조금은 거북하더라. 연기하면서는 어땠고, 배우의 생각은 어떤가? 내부적으로도 그 장면에 대한 논의가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민지현: 모든 신에 타당성과 당위성은 있었다. 왜 찍나 했던 신은 없었다. 그 신도 그랬다. 의상에 대한 논의만 했던 것 같다. 저는 지희한테 많이 입혀주고 싶었다. 미니스커트, 가슴골 보이는 옷 등 안 입었으면 좋겠다 싶더라. 감싸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테이블 신이 유일하게 다 벗는 신인데 그 신 자체는 폭력성 자체에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님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노리개 민지현
노리개 민지현


앞서 말했듯 <노리개>는 2009년 특정 사건을 연상시킨다. 때문에 얄팍한 상술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란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 또 다른 한편으론 고인의 주변 사람들은 이 영화로 인해 그 때 그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도치 않은 고통과 아픔을 다시금 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라는 게 더욱 조심스럽다.



Q. 누가 보더라도 고(故) 장자연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민지현: 모티브를 따 왔다 보니 연상되는 거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 본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곡해되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고,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지금도 조사를 하거나 찾아보지 않았다. 그 사건이 터졌을 때 고인이 제 연기지도를 해 주던 선생님께 5년 정도 레슨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당시 선생님이 가슴 아파하시는 것을 눈앞에서 봤다. 그러다 보니 검색조차하기 싫더라. 또 연기를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혹시라도 고인의 지인들이 보게 되면, 제 역할을 보면서 생각을 할 텐데라는 마음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Q. 일부러 차단을 한 것인가?

민지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티브를 따 왔지만 시나리오 자체만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감정을 이용해 정지희를 표현하면 되는거다. 역사적 인물이나 실존 인물이 아닌 정지희를 연기하면 되는 거였다.



Q. 감독이 바라보는 시선, 여배우가 바라보는 시선. 분명 다른 지점이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 같은데.

민지현: 우리가 바라보는 지점은 하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상황에 따른 지희의 감정을 추측해서 말하지 않고, 저한테 많이 맡겨주셨다. 감독님께서도 지희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하면서 캐릭터 자체에 애정이 많았다. 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정지희로 보인다고 힘들어하시더라.



Q.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많이 낼 수도 있는 여지가 많았을 것 같다.

민지현: 모니터를 하면서 너무 보여주는 연기를 하지 않았나 싶다. 저희가 나오면 힘든 신이 많은데 오히려 무덤덤하게 연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지희는 두 장면을 제외하고 행복하게 웃는 신이 없다. 항상 우울할 필요는 없는데란 생각이 지금에 와서 든다.



Q. 연예계 종사자로서 이런 이야기 많이 듣지 않나? 인권위 조사에 의하면 60.2%가 성 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제의가 알게 모르게 많았을 것 같기도 하다.

민지현: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본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속상한 일이다. 배우가 연기 잘해서 인정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결국은 선택의 문제고, 그 선택은 자기 몫이다. 주연이 아니어도, 좀 늦어도 된다란 마음으로 잘 기다려왔던 것 같다. 열매가 익기도 전에 따면 망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견디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굳은살도 생겼고, 상처에도 새살이 단단하게 붙은 것 같다. 언젠가 그 상처에서 향기도 날거다. 지켜봐달라.



글.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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