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일생] 예능, 왜 남자에 주목하는가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나 혼자 산다> 방송화면(위부터)" />MBC<일밤>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나 혼자 산다> 방송화면(위부터)

TV를 켜면 온통 남자들의 고생담이다.

남자들은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 꼭두새벽부터 생전 해보지 못한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시시각각 보살피느라 동분서주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또 다른 남자들은 군대에 갔다. 누구는 10년 만에 재입대, 누구는 생전 처음 경험하게 된 군 생활이지만 고생의 크기는 엇비슷하다. 나이가 많든 적든 한 발짝 들어선 순간 모두 저보다 나이 어린 선임들의 명령에 각잡고 절대복종하여야만 하는 ‘군인’아닌가. 그러다보니 이 남자들, 엄마 보고 싶다고 난리다. 딱히 고생담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혼자 사는 남자들의 인생도 꽤나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됐다. 들여다봐도 별 내용은 없다. 누구는 혼자 사는 남자라는 타이틀에도 여자 이상으로 깔끔하고, 누구는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한 공간에서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다. 남의 집에 놀러가 눈치 없이 굴기도 하고, 귀 아프게 잔소리도 하는 그런 보통의 남자들이 모여 앉았는데, 여기에도 또 나름의 드라마가 있다.

하나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아빠! 어디가?’ 속 다섯 남자, 김성주, 성동일, 송종국, 윤민수, 이종혁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일밤〉의 또 다른 코너 ‘진짜 사나이’ 속 김수로, 류수영, 미르, 서경석, 손진영, 샘 해밍턴을 둘러싼 상황이며, 마지막은 MBC의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속 김태원, 김광규, 노홍철, 데프콘, 서인국의 에피소드다.

세 프로그램의 공통 키워드는 한눈에 알 수 있다. 바로 ‘남자’다. 사실 돌이켜보면 국내 예능사는 다분히 남성 중심적인 역사를 걸어왔다. 〈남자의 자격〉, 〈1박2일〉, 〈무한도전〉등 과거에 인기를 끌었거나 현재도 여전히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만 봐도 남자출연자들로만 구성돼있다. 최근 새삼스럽게 예능의 남초 현상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빠와 군인과 독신남들은 대체 뭐가 다르기에?

예능 속 오랜 남초 현상의 원인에 대해 대다수 예능 관계자들은 “아무래도 리얼 버라이어티에 더 적합한 것은 여성보다는 남성일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가식과 치장을 내려놓고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남성이 더 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성의 놀이문화 특성상 서로를 거침없이 공격하고 또 때로는 자신이 그 속에서 망가지는 것에 여성보다는 거부감이 덜하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 보수적인 잣대에서 남성들보다 덜 자유로운 여성들은 아무래도 망가지는 것에 주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솔직함을 중요시하는 오늘날 리얼 버라이어티의 주인공으로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적합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분명 우리에게는 박미선, 이영자와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분석은 SBS 〈일요일이 좋다〉의 코너 〈런닝맨〉의 송지효와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여러 여배우들이 과감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생고생하며 망가지는 야생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중의 사랑을 얻게 된 현상을 뒷받침해주는 분석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유독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 그리고 〈나 혼자 산다〉 가 ‘남자’라는 키워드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아마도 우리 피부에 와 닿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빠? 어디가!’는 우리 일상이 발을 붙이고 있는 ‘가족’이라는 공간 속 남자의 성장담을 다루고 있다. ‘진짜 사나이’는 남자라면 꼭 가야만 하는(특수한 상황에서는 제외가 되기도 하지만) 군대라는 공간에서의 희노애락을, 〈나 혼자 산다〉는 그야말로 특별할 것 없는 남자들의 하루하루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기존 예능에 출연하는 남자들이 남자라는 정체성보다 예능인의 정체성에 더 가까웠다면 이들 보다 한 꺼풀 더 벗겨져 우리 일상 속 호흡에 더 주목한 ‘아빠! 어디가?’, ‘진짜 사나이’,〈나 혼자 산다〉는 ‘현실 남자’라는 키워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더욱 솔직한 남자들을 담아냈다는 점은 시청자들의 리얼을 향한 더욱 강렬해진 욕구와 맞물리며 인기의 견인차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 프로그램은 남자라는 키워드 외에도 ‘관찰’이라는 공통분모도 있다. 제작진은 최소한의 개입만 한 채, 이들이 저절로 만들어내는 상황을 스케치하는 정도에 머물면서 시청자들에게는 보다 리얼에 가까운 상황을 전하는 형태다.

생활관 내에서는 카메라만 설치해두고 멤버들과 일반 병사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는 ‘진짜 사나이’의 김민종 PD는 “ ‘아빠! 어디가?’가 마침내 〈일밤〉의 오랜 부진을 씻고 부활에 성공하는 것을 보고, ‘진짜 사나이’ 기획 초기 〈일밤〉고유의 색깔인 착한 예능과 변화된 시청자의 입맛에 맞는 새로움 외에도 관찰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현재 트렌드에 맞다고 판단했다”라며 보다 리얼한 상황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노라고 밝혔다.

결국 리얼 버라이어티의 인기는 남자를 불러들였고, 다시 남자는 더욱 리얼한 예능을 끌어들인 셈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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