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공효진이라는 배우의 장점 중 하나는, 비호감일 수 있는 캐릭터들을 끝끝내 관객들이 사랑하게 만든다는 점이에요. <네 멋대로 해라>의 송미래가 그랬고, <미스홍당무>의 양미숙이 그랬고, 이번 <고령화가족>의 미연도 그렇죠. 호감으로 거듭나는 성공의 관건은 어디 있다고 보나요?
공효진: 방법을 찾아요. 두 남자에게 사랑받는 드라마를 하다 보면, 두 남자 중 한 명은 보험처럼 들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람이 나를 좋아는 걸 시청자는 다 알고 있는데, 나 혼자 “요즘 연애 안 해요? 제가 친구 소개시켜 드릴까요?” 이러면서. 그런 연기를 할 때마다, 속으로 ‘왜 너만 몰라? 네가 지금 친구 소개 시켜 주겠다는 말이 나오냐?’ 이래요.(웃음) 그럴 때 가장 힘들어요. 나만 모르는 척 할 때. 어장관리 하는 척 할 때. <최고의 사랑>에서 윤필주(윤계상)를 대할 때 그랬죠. 도움은 도움대로 받으면서, 힘들면 가서 “(독고진의)그 행동은, 무슨 의미일까요?” 막 이러고. ‘윤필주는 구애정(공효진)이 나가면, 한숨을 푹 쉬면서 그녀가 남기고 간 물건을 보고 있다’ 이런 거 있잖아요? 진짜 힘들었어요.



“별책부록으로 주어진 패셔니스타로서의 삶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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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하하. 그래서 찾은 방법이 뭔가요? 적당히 타협하나요?
공효진: 이야기의 큰 틀은 못 깨죠. 급박한 상황에서 작가님들을 ‘멘붕’에 빠뜨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적당히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요. “너무 미안해요”할 때는 진짜진짜 미안해서 말이 입에서 안 떨어져 보이려고 하고, 미안해 미치겠네 하는 표정을 짓고, 얄미워 보이지 않으려는 리액션을 하죠. 그런 식으로 감정을 조절해요.

Q. 한때 당신은 주류와는 거리가 먼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이미지는 훼손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인 인기도 얻는데 성공했죠. 그리고 이제는 두 가지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있고요.
공효진: 그렇게 주류와 비주류로 오가는 건, 정확하게 영역이 나뉘어 있어요. 영화가 하나 있고, 그 대척점에 드라마와 광고가 있죠. 패셔니스타라고 하는 별책부록처럼 주어진 호칭도 있고요. 그러니까 독특한 비주류 정서의 영화를 하지만, 어김없이 패셔니스타로서 ‘쇼잉’을 하고, 그러면서 드라마를 하는데 드라마는 또 굉장히 괜찮은 여자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대중적인 드라마 안에서도 사랑 타령만 한 적은 거의 없었고요. 그렇게 이질적인 두 가지가 운 좋게도 조절이 잘 됐어요.

Q. 그런 행보는 앞으로도 가지고 가시겠죠?
공효진: 아마도요. 다만, 조금 더 상업적인 영화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저에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긴 한데, 드라마에서 보여준 보편적인 모습을 영화에서도 이젠 보여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자칫하면 “공효진 나오는 영화는 너무 독특하지 않아?” 이렇게 될 것 같아요.(웃음)

Q. 아~ <러브픽션>의 ‘겨털녀’ 희진은 정말!(웃음)
공효진: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상업적 선택이었어요. 저는 그 영화가 굉장히 상업적인 영화라 생각하며 촬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더라고요. 아, 겨털녀~(웃음)

Q. 그런 생각이 드네요. 공효진이 할 수 없는 역이 존재할까, 하는 생각.
공효진: 없어요! 하하하. 흠. 액션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워낙, 몸치라서. 검도부 고수로 출연했던 <화산고>때, 무술팀 감독님이 그랬어요. “효진씨는 앞으로 절대 액션영화 하지마세요. 이건 몇 년에 몇 있을까 말까한 몸치예요.”(웃음) 그래서 “진짜요? 희망이 전혀 없나요?” 물었더니, “없어요!” 딱 잘라 말씀하시더라고요. “움직임에 강단이 없다”고. 그때 알았죠. ‘아, 내가 포기해야 할 건 액션, 그리고 춤이구나!’

Q. 만약 당신의 키가 10센티 작았다면, 어땠을까요?
공효진: 이 일을 못하고 있지 않을까요?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키가 크고, 마른 게, 저에겐 굉장히 큰 장점이에요. 아니었다면 연기자를 못했을 것 같아요.

Q. 아까 별책부록이라 표현했던 패셔니스타. 패셔니스타의 삶을 살 땐 어때요? 많이 즐기시나요?
공효진: 완전 즐기려고 노력하죠. 처음부터 그걸 위해 ‘쇼업’을 했다든가, 노력했던 건 아니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 패셔니스타라 불리게 된 건데, 그게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이라는 걸 몇 년 전에야 깨달았어요. 조심스럽긴 해요. 특히 배우들은 “사극인데 왜 메이크업을 뿌옇게 하고 나와?”, “가난한 캐릭터인데, 어떻게 명품가방을 들고 나올 수 있어?” 이런 것들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잖아요. 극을 해친다는 이유로요. 그런데 그건, 너무 그런 거에 집중하는 시청자들의 문제이기도 해요. 그냥 가방일 뿐인데, 그 가방의 브랜드 가치를 너무 훤히 알고 따지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거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대중문화잖아요? 대중의 눈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고, 그에 맞춰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Q. 누군가의 워너비가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인 동시에, 책임감도 따르는 일 같아요.
공효진: 네. 그래서 모피를 입고 어떤 소비를 조성한다거나, 거친 것들에 대해서 멋들어지게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해요. 청소년 선도도 해야 하고요.(웃음) 새로운 룩을 제시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나에게 주어진 부가가치에 대해서 감사하게 여기는 거고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언제까지 내가 나타나면 카메라 플레시가 빵빵 터지고, 기사가 나갈까?’ 하는 생각. 지금의 상황이 고맙기 때문에 염려스럽기도 한 거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 인생의 다음 챕터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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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사람들에게 공효진을 ‘쿨’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이 낸 환경서적 <공책>을 보면 공효진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같다는 생각도 들죠.
공효진: 나를 둘러싼 여러 생명체들, 동물이든 식물이든 그런 것들을 배려하면서 사는 것도 멋진 인생이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도 천천히 알리고 싶고요. 왜 1회용 컵을 들고 길을 활보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보면서, 그걸 마치 하나의 아이템으로 인식하고, 뭔가 굉장히 바쁜 커리어우먼 같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 역시 그런 화려한 것들에 끌렸던 적이 있고요. 그거 뭐죠? ‘그란데(Grande)’ 사이즈라고 하나요? 그런 큰 잔으로 미친 듯이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그런.(웃음) 그런데 살다보니 아니더라고요. 끝이 보이는 립밤을 아껴 쓰고, 다 깨진 콤팩트를 알뜰살뜰 잘 쓰는 작은 모습들이 오히려 더 의식 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면서, 나도 누군가의 귀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의 제가 그렇기도 하고요. 사실 난 말랑말랑하게 사는 사람인데, 어릴 때는 뭔가 활동적이고 멋대로 살아야 ‘쿨’해 보인다고 착각을 했던 거죠.

Q. 환경 책을 출간했다는 건, 당신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가를 세상에 알리는 일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공책>을 낸 후, 행동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진 부분이 있을 텐데요.
공효진: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얘기해요. “저도 인간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습니다”라고 얘기하고, “나를 비난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고, “당신도 그렇다고 비난받지는 않아요”라고 얘기하죠. 저는 다만 그런 거예요. 이를테면, 1회용 컵을 열 번 사용할 걸, 세 번으로 줄일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굉장히 대단한 거라고 응원해 주고 싶고, 박수쳐 주고 싶고, 나도 그렇다고 얘기해 주고 싶은 거예요. 내가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껴보라고 하고 싶은 거고요. 저는 그런 거에서 에너지를 받고, 내가 잘 살고 있구나를 느끼거든요.

Q. 배우 공효진과 인간 공효진이 부딪히는 순간이 많나요?
공효진: 없지는 않죠. 환경에 대한 소중함은 느끼는데, 소비를 조장하는 상업적인 모델로 활동도 하고 있으니까요.(웃음) 그런데 제가 (환경운동에)그렇게 끝까지 간 사람은 아니에요. 왜 이효리 씨처럼 굉장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나는 내 인생 패턴을 바꿀 거야”라고 아예 공표를 해서, 공격을 당하기도 하고, 지지를 받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죠. 그리고 제가 크리스천인데, 교회 나가는 것도 왔다 갔다 해요. 어떨 때는 신앙에 깊게 기대다가, 어쩔 때는 ‘아, 귀찮아. 오늘만 (교회 가는 거) 패스 할까?’ 이래요. 그러니까 제게 절대적인 건 없어요. 일단은 내가 즐거운 만큼만,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는 게 변화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문제는 그 다음으로 잘 안 넘어가지네요.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그게 어떻게 보면 이 일을 하는데서 오는 충돌이 아닐까 싶어요.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게 말이에요.

Q. 굳이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껏 그래왔듯, 어떤 변화가 자연스럽게 당신을 찾지 않을까 싶거든요.
공효진: 네. 계기가 오겠죠? 결혼이든, 부모가 되는 것이든, 어떤 계기로 인해 다음 챕터로 넘어 갈 거라고 믿어요. 지금 그걸 기다리고 있고, 준비하고 있고,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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