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비중이 크든 작든, 예쁘게 보이든 말든, 망가지든 말든, 캐릭터 속에 녹아들어 현실감 높은 연기를 보여주는 건 공효진이라는 배우가 지닌 장기이자 무기이자 능력이다. <고령화가족> 속 셋째 딸 미연은 그런 공효진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캐릭터다. 세 번의 결혼식과 두 번의 이혼도장을 찍은 여자. 욕망에 솔직하고, ‘민낯’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욕을 구수하게 내뱉는 여자. 윤여정 말마따나 “공효진 외에는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녀만을 위한 맞춤형 역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작품 속에서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공효진의 모습에 관객이 어느 정도 면역이 된 건 아닐까. 공효진이기에 가능한 것들이 이젠 너무 당연하게 평가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공효진을 만나고 그런 생각이 괜한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아직 보여준 것 보다 보여줄 게 더 많다고 말하는 이 여배우에게 ‘도전하지 못할 캐릭터’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Q. 실망하실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환호하더군요.
공효진: (다 알고 있다는 듯, 예상했다는 듯) 하하. 실망하지 않습니다!

Q. 제 주위 여자들은 공효진을 얘기할 때 “멋지다”라고 해요. 개인적으로 “멋지다”는 여배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수식어라 생각합니다. 성별을 지우고 인간 그 자체로 인정 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공효진: 공감해요. 저도 인터뷰에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항상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거든요.

Q.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예쁜 배우가 돼야지”, “섹시한 배우가 돼야지?” 하는 생각도 했을 법 한데요.
공효진: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이미지 메이킹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고요. 그리고 너무 예쁜 애들을 신경쓰다보면 내 자신이 비굴해지잖아요. 비굴해지는 게 싫었어요. 그런 기분이 제일 힘들어요. 비굴해진다든지, 내가 한 일에 대해 내가 후회하는 것들이요. ‘배신’과 ‘후회’라는 감정만 안 겪으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인생에서 큰 ‘후회’나 ‘배신’은 없었던 것 같아요.

Q. 배우는 작품이든 캐릭터 설정이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그렇기에 배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후회라는 감정이 별로 없었다니 놀랍군요.
공효진: 어떤 일이 일어난 데에는 다 뜻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긍정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더 좋은 일이 생기려고 이런 걸 거야’ 내 멋대로 편하게 판단해 버리죠. 어른이 돼 가면서 부정적으로 바뀌는 게 있기는 해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세상이 돌아가는 것들에 대해 세세하게 알게 되면서, 예전엔 문제 삼지 않았을 것들도 괜히 붙들게 되더라고요.

Q. 욕심이 더 많아진 것도 있겠죠?
공효진: 그렇겠죠. 어릴 때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했다면, 이제는 “이래야만 해.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는 것들이 자꾸 생겨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요.



“작은 일에 소심하고, 큰일에는 대범해요.”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Q. <고령화가족>을 보면서, <가족의 탄생> 후일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족의 탄생>처럼 ‘이상적 가족이라는 신화’에 반기를 드는 영화 같았거든요. 미연(공효진)과 미연의 딸 민경(진지희)의 미래가 <가족의 탄생>의 모녀 매자(김혜옥)와 선경(공효진)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죠. 사랑 때문에 딸에게 소홀한 엄마 매자와 그런 엄마에게 실망해서 홀로 살아가는 선경 말이에요.
공효진: 어~ 그렇네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이제까지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가족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가족의 탄생>의 가족은 대화가 없잖아요. “엄마는 몰라도 돼. 나한테 물어보지 마!”, “너 인생은 너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 이러면서 서로의 감정을 숨기죠. 그에 비해 <고령화가족>의 가족은 끊임없이 나를 어필하고 사건을 집으로 끓고 들어와요. 그런 면에서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을 끊임없이 해나가는 엄마와 그거에 스트레스 받아서 못마땅해 하는 딸’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또 굉장히 닮았네요.

Q. 가족이 감옥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핏줄이기에 할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것들, 끊을 수 없는 것들 말이죠. 당신은 가족 안에서 어떤가요?
공효진: 영화 속 미연과, 실제 딸로서의 저는 많이 달라요. 일단 저는 가족을 끔찍하게 아껴요. 엄마의 갱년기에 대해서, 동생의 고민에 대해서,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마치 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강박이 있죠. 가령 한 살 어린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다시 걸었는데, 그래도 안 받는다. 그러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요. 본인들이 알아서 잘 할 텐데, 그걸 믿지 못하고 염려하는 거죠.

Q. 대범할 것 같은데, 의외네요.
공효진: 제가 A형에 장녀라서 그래요. A형이 소심하다는 게,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많은 것들을 염려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되게 피곤해요, 인생이.(웃음)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한 번은 심리 공부하시는 분에게 물어봤어요. “제가요, 요즘 이런 고민들을 하는데, 정상인가요?” 그랬더니, 정상이래요. “요즘 뭔가가 불안해서 그렇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또 큰일에는 굉장히 대범해요. 큰일 앞에서는 “그게 뭐 대수야?”, “그럴 수 있어!”, “또 벌면 돼!”, “다음에 하면 되지 뭐” 이래요.

Q. 당신이 받아들이는 ‘큰일’과 ‘작은 일’의 기준이 궁금하네요. 당신이 ‘큰일’이라고 생각하는게, 남들이 보기엔 별 게 아닐 수도 있잖아요?
공효진: 예를 들면, 결별 이후에 나온 열애설 같은 거? 그런 일에는 대범해요. “이게 뭐야? 내가 그냥 (언론에) 빨리 얘기할게. 무슨 소리 하시는 거냐고. 그게 가장 빠를 것 같은데?” 이래요. 만약 제가 그런 일에 소심했다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오빠(하정우),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밖에서 만나면 안 될 것 같아” 이랬겠죠. 그런데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명백히 아닌 것까지 끌어안고 끙끙 앓지는 않아요. 진실은 결국 통한다고 믿거든요.

Q. ‘결혼환승전문 미연은 공효진이기에 가능한 캐릭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이 배역을 다른 여배우가 했다면 ‘연기변신!’이나 ‘새로운 발견!’ 하면서 큰 조명을 받았을 텐데, 공효진이기에 조용히 지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죠. 작품 속에서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당신의 모습에 관객이 어느 정도 면역이 됐다고 할까요? 배우로서 억울할 것도 같아요.
공효진: 그건 단점일 수도, 장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저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말해 뭐해. 입 아프지”의 의미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반복하다보면 “공효진이 뻔히 그려지니까, 별 기대가 안 되네”라는 말들이 나올 수 있으니, 여러 가지를 시도해봐야죠. 그거에 대해서는 또 다른 돌파구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또 다른 방식이요. 아니면 정말 청순한 역할을 하는 거예요. 아파 죽으려고 하는 역을 한다거나.(웃음)

Q. 안 그래도, 저 역시 그 생각을 했어요.(웃음) 공효진이 지독한 신파멜로의 청순가련한 캐릭터를 맡으면 오히려 변신이다 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청순가련한 역할은 경계해 오지 않았나요?
공효진: 음… 미뤄왔다고 생각해요. 저만의 색깔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후에, 그 이후에 보여줘도 늦지 않겠다 싶어요.

Q. 배우로서 피곤하기도 하겠어요. 대중의 입맛이 너무 쉽게 바뀌니까요. 신선하다고 좋아해주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질려버리기도 하고.
공효진: 그렇죠. 하지만 그걸로 실망하기엔 즐거움이 너무 큰 직업인 것 같아요. 특히 연기할 때 배우들끼리 화학작용이 일어나면 큰 쾌감을 느껴요. 왜 합주가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을 때 느껴지는 희열 같은 거 있잖아요. 이번 영화 찍으면서도 자주 느꼈어요. 포장마차에서 둘째 오빠(박해일)랑 싸우는데 각종 스파크가 튀더라고요. “네가 가족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어” 대들면, 오빠는 “이젠 동생 년까지 나를 밟네?” 이러고. 그러면 저는 또 “저 새끼 말 하는 것 좀 봐, 엄마! 지금 년이라고 했어?” 쏘아붙이고.(웃음) 내가 보내는 신호를 상대방이 절묘하게 맞받아치면 정말 짜릿하죠.



“저는 상대배우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드는 타입이에요.”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INTERVIEW] 공효진, “애쓰지 않아도, 세월은 본래의 나를 찾아준다”
Q. 공효진은 본능에 이끌려서 연기하는 배우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어요. 그런 점이, 리액션을 할 때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해요.
공효진: 저는 상대배우를 조금 당황스럽게 만드는 타입인 것 같아요. 그걸 드라마 <최고의 사랑>할 때 알았어요. 완전히 다른 메소드 연기인데, 차승원 선배님은 한 회 대사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연기하는 분이에요. 그와 달리 저는 연기를 하면서 감을 잡아가는 스타일이죠. 왜 치마 입었을 때, 힐 신었을 때, 바지 입었을 때, 행동거지가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분장을 하고 그 공간에 섰을 때, 감정을 나눠야할 상대 배우와 연기를 주고받을 때, 그때 확 감이 잡혀요. 그러다보니 저는 매 테이크마다 연기가 달라지죠. 비아냥거리면서 “그랬나보지?” 했다가, 정말 몰랐다는 듯이 “그랬어요?” 이랬다가. 가끔은 상대방을 순간적으로 당황시키고 싶을 때도 있어요. 앞에 있는 배우가 급작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나 궁금해서 말이에요. ‘이게 도와주는 건가?’ 고민이 될 때도 있지만, 저는 제가 (상대방에게) 여러 가지 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렇죠. 상대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 내주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디렉터 역할을 해 주는 거고요.
공효진: 네. 자극을 주는 거죠. 그러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패턴의 여러 연기가 나오잖아요. 편집이라는 마지막 순서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붙여놨을 때 어떤 의외의 재미가 나올지도 모르는 거고요. 그런 호흡이 절묘하게 맞았던 게, <파스타>의 (이)선균 오빠였던 것 같아요. 선균 오빠가 당황하는 듯하다가, 이내 적절한 리액션을 해 주는데, 그런 것들이 놀라울 만큼 딱딱 맞아떨어졌어요. 물론 그런 제 연기방식이 어떤 배우에게는 적절치 못할 수도 있어요. 가령 무덤덤하게 연기해야지 하고 촬영장에 갔는데, 연기하면서 생각해보니 상황이 너무 슬프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저는 글썽이는 걸로 연기를 바꿔요. 그랬을 때 먼저 장면을 찍은 상대방 입장에서는 덤덤하게 연기한 자신이 매정해 보일 수 있잖아요? 결국은 다 복불복인 것 같아요.

Q. 하정우, 이선균, 차승원, 장혁 등 많은 남자 배우들이 당신을 만나면 더 돋보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왜, ‘공효진은 파트너를 빛나게 해 주는 배우’라는 평가가 많잖아요.
공효진: 제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그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NG가 날 때도 많은데, 제 경우엔 그런 NG컷들이 버려지지 않고, 그대로 나간 경우도 많았던 것 같아요.

Q. 그게 TV에 포착될 때가 있어요. ‘저거 NG 아니야?’ 싶은 순간들이.(웃음)
공효진: 그렇죠? 하하하. <파스타>때가 특히 심했죠. 재미있는 게 뭐냐면, 상대배우 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함께 당황하고, 그러면서 더 집중을 한다는 거예요. ‘공효진이 왜 대사를 안 하지? 까먹었나?’ 할 때 대사가 나오면, 그 의외성에 놀라는 것 같아요. 제가 그걸 언제 느꼈냐면,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양동근 오빠와 연기하면서예요. 그 오빠가 템포가 굉장히 남달라요. 대사나 장면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 ‘마가 뜬다’고 표현 하는데, 그 ‘마’가 뜨는 게, 보통 사람들과 많이 달라요. 한 박자 반이 떠버리거든요. “어… 저…” 그러는, 하여튼 참 희한한 리듬감이 동근이 오빠에겐 있어요.(웃음) 그래서인지 오빠가 대사할 땐, 사람들이 더 집중을 하더라고요. 왜 사람이 그렇잖아요. “너 그거 어떻게 된 거야?”라고 물어봤는데, 상대가 오래 뜸들이면, ‘뭔가 굉장한 얘기를 하려나보다’ 이러면서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잖아요.(웃음)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도 그렇거든요. ‘쟤가 왜 저렇게 뜸들이지?’ 하면서 괜히 더 집중하죠. 템포와 리듬을 가지고 연기하는 게 재미있는 연기론이라는 걸 동근이 오빠를 통해 배웠고, 적당히 활용하는 것 같아요.

Q. 시청자의 심리까지도 꿰뚫어보고 계시는군요.(웃음)
공효진: 하하. 제가 어릴 때부터 눈치가 굉장히 빨랐어요. 상황파악도 굉장히 잘 했고요.

Q. 그런 성향이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때도 있지 않나요?
공효진: 많아요. 생일날 제가 제일 피곤하다니까요. ‘쟤는 재미있게 놀고 있나?’, ‘술 마시기 싫은데 나 때문에 마시나?’, ‘집에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건가?’ 이런 모든 것들이 저를 너무 피곤하게 해요.

Q. 상대방에게 무심한 사람도 많잖아요? 주위를 예민하게 살피는 사람으로서, 그런 무심한 사람을 만나면 어때요?
공효진: 억울하죠.(웃음) 제 주위만 해도 저 같지 않은 개인주의자들이 많아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에너지를 쏟아야 하냐” 싶은 동성친구도 있고 이성친구도 있고, 많죠. 그래서 가끔은 “나는 힘들 때 너를 필요로 하는데, 너는 왜 힘들 때 나에게 말을 안 해? 너에게 나는 필요가 없는 존재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들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 수 있거든요. 자기 일은 스스로 해결하는 게 그 사람만의 방법인데, 제가 “섭섭해!” 막 이러면 뭔가 어긋나는 거죠.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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