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드린지 오 “관객이 몰입하면, 귀신이야기를 시작한다”
[INTERVIEW] 드린지 오 “관객이 몰입하면, 귀신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절한 인디 싱어송라이터 엘리엇 스미스는 1998년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에 삽입된 그의 노래 ‘Miss Misery’가 주제가 부문 후보에 올랐기 때문. 수상의 영광은 〈타이타닉〉의 주제가인 셀린 디온의 ‘My Heart Will Go On’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엘리엇 스미스와 같은 인디뮤지션이 아카데미시상식과 같은 대형무대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은 꽤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당시 자료영상을 보면 스미스가 기타 한 대를 들고 외롭게 서서 약 2분 간 노래하고 무대 뒤로 황황히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드린지 오가 연말 가요대전에 나간다면 딱 그런 ‘뻘쭘함’이 아닐까?

혼자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드린지 오(Dringe Augh)의 음악을 알기까지는 개인적으로 꽤 드라마틱한 과정이 있었다. EP 〈Individually Wrapped〉, 1집 〈Between The Tygh〉 등 음반도 좋았지만 공연이 더 좋았다. 작년 가을 홍대 카페 ‘핑크 문’에서 드린지 오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는 음악으로 공기가 바뀌는 마법과 같은 순간을 경험했다. 그의 노래와 기타는 홍대에 널리고 널린 여타 통기타 싱어송라이터들과 확연히 달랐다. 1940~60년대 영국의 ‘포크 리바이벌’에서 피어난 브리티시 포크의 향취가 느껴진다고 할까? 국내에는 시완 레코드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는 아름다운 포크음악 말이다. 최근 2집 〈Drooled and Slobbered〉를 발표한 드린지 오를 지난 6일 텐아시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마틴 D-15를 멋지게 연주하는 그는 여송연을 잽싸게 말아 피우는 손재주도 가지고 있었다.

Q. 최근 제주도 공연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드린지 오: 작년 3월에 김목인과 제주도의 엘리어스 체어란 카페에서 공연을 했다가 공간이 편해서 거의 매달 간다. 관객들이 홍대와는 다르다.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커피 마시러 들렀다가 음악을 듣고 가는 것이 좋았다.

Q. 일본 공연을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정은 어떻게 되나?
드린지 오: 80일간 투어를 할 예정이다. 모레(8일) 출국해서 이번 주말에 칸사이를 돌고, 그 다음 주말에 기타큐슈를 돌고, 카나자와 등지에서 공연을 한다. 아수나(Asuna)라는 일본 친구가 사는 동네에서 공연을 하고, 그 다음은 미정이다. 상당히 긴 기간인데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 같다. 지금 회사도 그만 둔 상태고 미혼이니까. 80일간의 일본투어는 앞으론 시도하기 힘들 거다.

Q. 아수나가 내한했을 때 무대 위에 카시오키보드와 오르골, 오뚜기, 장남감 등 수십 개의 잡다한 물건을 펼쳐놓고 기괴한 소리를 내며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와는 어떻게 친해졌나?
드린지 오: 2009년에 아수나가 내한공연을 했을 때 내가 게스트로 나섰다가 친해졌다. 이후 아수나와 같이 여러 번 일본에 가서 공연을 했다. 이번 일본 투어 때에도 아수나가 몇몇 공연을 잡아줄 예정이다.

Q. 1999년에 나온 앨범 〈클럽 빵 컴필레이션 1〉에 페퍼민트 오나니즘이란 밴드로 참여했었다. 어떤 음악을 하는 팀이었나?
드린지 오: 슈게이징, 포스트 록이라 할 수 있는 노이즈 위주의 음악을 했다. 원래 3인조였는데 드러머가 나가서 드럼머신과 함께 2인조로 활동했다.

Q. 슈게이징이라고 하면 지금의 어쿠스틱 음악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지금의 드린지 오 음악으로는 어떻게 전환을 하게 됐나?
드린지 오: 2000년부터 드린지 오로 활동했다. 엄밀히 말하면 슈게이징의 선율도 곱다. 어차피 곡은 그때도 혼자서 통기타로 만들었다. 노이즈를 입히면 페퍼민트 오나니즘이 되고 나 혼자 음악을 하면 드린지 오가 되는 것이다.

Q. 드린지 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스페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러시안 레드를 인터뷰했을 때 그녀가 “오늘 아침에 드린지 오라는 뮤지션의 노래를 들었는데 ‘한국의 닉 드레이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환상적이었고 좋았다”고 말해서였다.
드린지 오: 그 러시안 레드 기사가 나온 날이 내 생일(6월 15일)이었다. 생일날 출근했다가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또 한 번 닉 드레이크 스타일로 굳어지는구나 생각했다.

Q. 닉 드레이크를 상당히 좋아하지 않나?
드린지 오: 물론 좋아한다. 나에게는 음악적인 모티브이자 숙제이기도 하다.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비교가 되니까…. 닉 드레이크 같다고 하면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다.

데뷔EP individually wrapped, 1집 between The Tygh, 2집 drooled and slobbered (왼쪽부터)
데뷔EP individually wrapped, 1집 between The Tygh, 2집 drooled and slobbered (왼쪽부터)
데뷔EP individually wrapped, 1집 between The Tygh, 2집 drooled and slobbered (왼쪽부터)

Q. 드린지 오의 1, 2집에 닉 드레이크와 관련된 노래들이 있다. 1집 〈Between The Tygh〉 수록곡 중 ‘Wile’에 대해 드린지 오 본인이 닉 드레이크의 ‘From The Morning’과 그 곡이 수록된 앨범 〈Pink Moon〉에 대한 곡이고, 가사는 대부분 앨범의 가사에 사용된 단어들을 사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드린지 오: ‘Wile’이라는 곡에서는 내 나름대로 닉 드레이크의 앨범 〈Pink Moon〉을 정리해보려 했다. 〈Pink Moon〉에 내가 좋아하는 가사, 기타주법, 코드 진행 등의 요소들이 있다. 그런 요소들로 만든 곡이 ‘Wile’이다.

Q. 2집 〈Drooled and Slobbered〉의 첫 곡 ‘Picknick’은 ‘닉 드레이크(nick)를 틀어주세요(pick)’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드린지 오: 원래 제목은 ‘피크닉’이었다. 사전에 없는 말을 쓰고 싶어서 스펠링을 바꿨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닉 드레이크에 대한 곡으로 해석하더라. 애초에는 소풍을 가서 여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든 곡이다.

Q. 드린지 오의 기타 연주는 상당히 유니크하고 숙련도도 대단하다. 기타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드린지 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 아버지가 졸업선물을 사주신다고 해서 기타를 사달라고 했다. 비틀즈를 너무 좋아해서 기타를 치고 싶었다. 누구한테 뭘 배우는 성격은 아니라 혼자서 기타를 연습했다. 비틀즈의 노래 ‘We Can Work It Out’ 같은 곡을 기타 치며 노래한 기억이 난다. 존 레논이 만든 ‘Rain’과 같은 곡이 혼자 기타 치면서 부르기 딱 좋았다.

Q. 음악을 들어보면 드린지 오는 도무지 가요는 연습도 안 해봤을 것 같다.
드린지 오: 가요는 거의 안 들었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다른 뮤지션은 듣지 않고 비틀즈의 13장 정규앨범만 미친 듯이 들었다. 기타를 치게 된 이유도 비틀즈고, 기타를 치기 이전에도 오로지 비틀즈만 들었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 집에 있던 비틀즈 테이프를 발견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비틀즈 발라드’라는 편집앨범이었다.

Q. 당시 다른 음악은 안 좋아했나?
드린지 오: 딱 한 번 외도는 장국영이었다. 당시 초콜릿 광고에 삽입된 장국영의 노래를 듣고 너무 좋아서 동네 레코드점에 있는 장국영의 앨범을 모조리 다 샀다. 6학년 수학여행 내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남은 돈으로 비틀즈의 〈Magical Mystery Tour〉를 구입하면서 다시 비틀즈만 들었다.

Q. 드린지 오의 기타 연주를 들으면 영국의 기타리스트 버트 잰쉬가 떠오른다. 특히 ‘Pyne’과 같은 연주곡 말이다. 그런 뉘앙스의 연주는 기존 한국 연주자들에게 들어본 적이 없다. 정말 놀랐다.
드린지 오: 비틀즈 이후 브리티시 포크 계열인 페어포트 컨벤션, 버트잰쉬, 펜탱글의 음악을 찾아듣게 됐다. 닉 드레이크도 그 즈음에 알게 됐다. 중학생 때인 1994년에 음악잡지 ‘핫뮤직’에 닉 드레이크의 기사가 꽤 크게 나왔다. 요절 뮤지션 특집 기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닉 드레이크의 앨범이 국내에 정식으로 수입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왜 그런 기사가 나왔는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웃음) 너무 궁금해서 레코드점에 가서 닉 드레이크를 찾았지만 구할 수 없었다.

Q. 브리티시 포크 계열의 음악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드린지 오: 개인적으로 비틀즈 이후 음악 취향을 넓힌 계기가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다. 수입레코드를 파는 곳이 많아서 용돈 받으면 바로 LP, CD를 샀다. 내 음악 인생을 바꾼 계기 중 하나가 시완 레코드에서 수입한 앨범들이다. 시완 레코드에서 갑자기 브리티시 포크 계열 명반을 리이슈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레코드를 고르는 족족 스파이로 자이라, 멜로우 캔들, 포레스트 등 브리티시 계열이더라. 앨범재킷이 너무 예쁘기도 했고, 음악도 너무 좋았다.

Q. 개인적으로 기자도 한때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 페어포트 컨벤션, 펜탱글부터 닉 드레이크 등등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시 포크에 흠뻑 빠졌던 적이 있다. 그래서 드린지 오의 음악에 공감을 느낀 것 같다. 미국포크와는 다른 브리티시 포크의 신비로운 매력 말이다.
드린지 오: 그래서 난 미국 음악을 오래 못 듣는다. 뭔가 코드가 맞지 않는다.
[INTERVIEW] 드린지 오 “관객이 몰입하면, 귀신이야기를 시작한다”
[INTERVIEW] 드린지 오 “관객이 몰입하면, 귀신이야기를 시작한다”
Q. 드린지 오의 음악을 들으면 도시와 시골이 동시에 느껴진다고 하더라.
드린지 오: 내가 둘 다 좋아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지금 살고 있는 광명시도 도시와 시골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도시인데 10분만 걸어가면 안양천에서 할머니들이 텃밭을 가꾸는 그런 동네다. 1집 앨범재킷은 안양천에서 찍었다.

Q. 안양천이란 생각은 전혀 못했다. 사진이 너무 예쁘게 나왔다. 외국의 어떤 다리인줄 알았다.
드린지 오: EP 재킷은 대천 해수욕장에서 찍었다. 내 앨범재킷은 자살을 암시하는 것이다. EP는 신발을 벗고 기타를 옆에 버려놓은 것이고, 1집은 내가 안양천에서 떨어질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새 앨범 재킷 속 나는 유서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Q. 왜 자살을 암시하나?
드린지 오: 글쎄… 버릇인가? 자살한 사람들의 노래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닉 드레이크, 지미 헨드릭스, 커트 코베인, 블라인드 멜론 등. 난 자살이 특별한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동차사고, 공무원시험 합격하는 일처럼 받아들인다. 주변에 그렇게 간 친구들도 있고….

Q. 하지만 당신의 음악은 아름답다. 제목과 멜로디가 가사 내용과 전혀 딴 판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Twinkled’, ‘Addicted’ 등도 멜로디는 밝은데 가사는 어둡다.
드린지 오: 내가 하는 이야기는 크게 다섯 가지다. 죽음, 자기 비하, 꿈, 보고 싶은 사람, 싫어하는 사람. 작곡을 할 때에는 아쉬움, 그리움 등이 모티브가 되곤 한다. 꿈 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도 꿈에서 깨어나는 거시 아쉽기 때문이다.

Q. 새 앨범에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드린지 오: 이번에는 앨범에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이별’을 주제로 잡았다. 그래서 노래도 성우가 연기하듯이 불러봤다.

Q. 타이틀곡 ‘Finite’는 연병장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과연 누가 이 곡을 들으며 연병장을 연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예쁜 곡이다.
드린지 오: 행군할 때 방탄헬멧을 쓴 상태에서 허밍을 하면 그 소리가 머리에서 울린다. 그런 식으로 군대에서 허밍을 하면서 멜로디를 만들었다. 얼마 전 입대하는 꿈을 꿨는데 잊었던 멜로디가 떠올랐다. 원래 제목은 ‘Footstep’(발자국)이었다. 완성을 해보니 내가 만들었지만 참 좋더라.(웃음)

Q. ‘Fire’는 이별 후 그리움에 대한 곡이다. 본인의 이야기인가?
드린지 오: 내 이야기가 맞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바람과 불과 같은 상극.

Q. ‘Raffle’은 무능력한 상사를 욕한 곡이다. 전 앨범에도 상사를 욕한 곡이 두 곡 있었다. 이번에는 너무 무능한 상사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고 하던데?
드린지 오: 이번 상사는 정말 회사를 그만두게 할 정도로 무능했다. 세 곡 다 각기 다른 상사에 대한 것이다. 무능한 사람에게 두 곡 이상 쓸 가치가 없으니까.

Q. 공연 때 귀신이야기를 자주한다고 들었다.
드린지 오: 공연 때 따로 곡 설명을 할 것이 없어서 그렇다. 난 팝송을 듣고 자라서 그런지 굳이 곡 설명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냥 음악을 들으며 자기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닌가? 관객들이 그렇게 느끼길 바란다. 내가 죽음에 대해 노래한다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 곡 소개는 피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멘트를 할 바에 귀신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시작했다. 공연 집중도가 최고조에 달하면 제일 무서운 귀신이야기를 한다. 그때 가장 효과가 크다.(웃음)

Q. 전곡이 다 영어가사다. 한글로 가사 써본 적 있는가?
드린지 오: 시도는 해보는데 내게는 어렵다. 최근 후배들이 서양의 음악 스타일을 한국어로 소화해내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하헌진, 김태춘의 음악을 들어보면 가사 쓰는 재능이 부럽다.

Q. 지금은 전업뮤지션이다. 일본투어를 다녀온 후 계획은 어떤가?
드린지 오: 앞으로 1,2년 정도는 전업으로 음악을 할 계획이다. 그런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공연 횟수는 대강 정해져 있다. 곡을 많이 만든다고 해서 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쉴 수 있어서 좋다. 여행을 다니면서 많이 보고 듣게 되면 결국 그것이 음악으로 나온다. 차기작에는 무능한 상사를 욕하는 곡은 없을 거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채기원 t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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