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 이예지 PD, 흐르는 트렌드의 물줄기를 잡아라.
[INTERVIEW][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 이예지 PD, 흐르는 트렌드의 물줄기를 잡아라.
KBS2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로 한 때 우리에게 익숙했던 신동엽과 이영자의 전성기를 되찾아주고, 현재는 KBS2 <우리 동네 예체능>을 통해 조달환 선생을 탄생시키고 강호동을 꽃다운(?) 소녀동으로 만들고만 장본인 이예지 PD를 ‘여자’라는 키워드로 만나고자 한 이유는 분명했다. 예능 프로그램 속 캐릭터들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놓은 그는 예능계에서 유독 두드러지던 여성 PD들의 활약상을 쫓아가면서 기대했던 바로 그것, 남자와는 다른 따뜻하고 보드라운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말이다. 그러나 이예지 PD는 그런 기대감은 또 하나의 편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타인을 대할 때 치우친 전제로 상대를 해석하려다보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 여자 혹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던진 질문보다 다른 종류의 질문이 그녀의 가장 깊은 면을 들춰주었다.

트렌드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예능 PD들은 많다. 그러나 그 능력이 발휘되는 공간이 긍정적인 흐름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골똘히 고민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예지 PD는 후자였다. 점점 더 강한 것을 요구하는 시대라는 변명 하에 점점 더 수위를 높여가게 되는 현실에서 건강한 웃음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그녀와의 만남은 유쾌하면서도 개운한 기억으로 남았다.

Q. PD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이예지 : 우리 때만해도 PD는 낯선 직업이 아니었다. 입사 당시 이미 여자 선배들도 꽤 있었으니, ‘여자가 왜?’라는 질문을 한 이도 없었고. PD를 꿈꾸게 된 것의 출발점은 막연하게 영상 쪽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학창시절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여명의 눈동자>, SBS 드라마 <모래시계> 등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던 세대를 지나왔기에,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방송 현장 실습을 해보니 호흡이 긴 드라마보다는 순발력을 요하는 예능이 내게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Q. 입사 이후, ‘여자’라서 힘들었던 점은? 입사 바로 다음 해 결혼을 하셨다. 결혼생활과 일을 병행하는 것은 어땠나?
이예지 : 물론 외부의 낯선 스태프를 만날 때 간혹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결혼을 빨리 했던 것, 아이를 빨리 출산한 것은 도리어 메리트가 되기도 했다. 어른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육아를 하게 되면서 생활하는 부분에 있어 고된 점이 있다. 남자 PD들의 경우, 24시간을 일에만 집중해도 되는 환경이라면 나는 엄마로서의 역할도 챙기면서 일을 하려다보니 늘 머릿속에 두 명의 내가 사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업무에 소홀하고 싶지 않은 욕심들이 다 있지 않나. 그런 마음은 그대로인데,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임무와 책임들이 새롭게 주어진다. 슈퍼우먼 컴플렉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느 것 하나에도 소홀하고 싶지 않으니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야만 한다.

Q. 생활, 즉 일상의 영역으로 가다보면 ‘여자’라서 힘든 점보다 오히려 예능 PD라서 불편한 점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겠다.
이예지 : 가장 힘든 것은 아무래도 남들이 놀 때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주말에 프로그램이 가장 많고, 명절 때 특집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남들이 쉴 때 일하는 것이 왜 힘든지 몰랐는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문제가 됐다. 아이들은 늘 정확하게 주말에 쉬는데, 나는 나와서 일을 해야 하니까. 그래도 예능 PD의 장점은 그나마 웃으면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의를 해도 심각하게 하지 않고 재미있게, 편집을 할 때도 즐겁게. 늘 웃음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예능 PD의 가장 큰 장점이다.
[INTERVIEW][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 이예지 PD, 흐르는 트렌드의 물줄기를 잡아라.
[INTERVIEW][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 이예지 PD, 흐르는 트렌드의 물줄기를 잡아라.
Q. 입봉작 <안녕하세요>와 현재 연출하는 <우리 동네 예체능>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지만, ‘시청자 참여형’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특별히 이런 콘셉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예지 : 정석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론칭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획에서 출발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다른 하나는 MC가 정해진 상태에서 사람으로 출발하는 프로그램이다. <안녕하세요>가 전자, <우리 동네 예체능>이 후자다. <안녕하세요>는 KBS1 <전국노래자랑>의 토크쇼 버전, <전국고민자랑>이라는 기획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의 고민,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순위를 매겨보자는 콘셉트였는데 이런 기획 안에서 어떤 MC가 좋을까 생각해보니 컬투가 떠올랐고, 일반인을 잘 다루는 신동엽과 이영자가 함께 매칭이 됐다. 그리고 <우리 동네 예체능>의 경우, 강호동이라는 MC가 정해진 상태에서 출발한 만큼 ‘지금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이 뻗어가게 된다. 바로 그것이 운동이라는 콘셉트였다.

Q.시청자 참여형을 선호하는 편인가.
이예지: 맞다. 아마도 조연출 시절 KBS2 <상상플러스>의 시청자 참여 코너에서 맛을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시청자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면 자리가 잡히는데 시간은 걸리지만, 어느 정도 축적이 되면 제작진이 하는 것 이상의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그런 매력이 분명 있다.

Q. ‘시청자 참여’ 콘셉트는 공영방송인 KBS의 이미지와도 상당히 잘 어울린다.
이예지 : 방송에 대해 요즘 고민하는 것은 과연 독한 예능이 좋은 것인가라는 점인데, 물론 그런 종류의 예능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건강한 웃음을 주고 싶다.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힘을 믿는다. 그러나 요즘의 예능들은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 같고, 또 그런 예능이 ‘신선하다’거나 ‘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 점이 아쉽다.

[INTERVIEW][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 이예지 PD, 흐르는 트렌드의 물줄기를 잡아라.
[INTERVIEW][예능 신지도를 그린 사람들] 이예지 PD, 흐르는 트렌드의 물줄기를 잡아라.
Q. 이예지 PD의 예능관, 건강한 정서는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의 얼굴인 MC들에게로 전이가 됐다. <안녕하세요>를 통해 신동엽과 이영자의 봄을 되찾아 준 것도 이와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다.

이예지 : PD로서는 가장 보람되는 순간이 MC들이 잘 되는 것이다. 지난 해 <안녕하세요> MC들이 모두 상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뻤다. 사실 프로그램은 전파를 통해 증발된다. 남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래서 바로 그 사람들이 잘 됐을 때 가장 뿌듯하다.

Q. 그 점에서 유독 <우리동네 예체능> 속 강호동에 기대가 크다. 타 프로그램에 비해 가장 빨리 캐릭터를 잡아갔다는 느낌도 들고.
이예지 : 강호동의 제2의 전성기도 얼마든지 올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표현은 식상하긴 하나, 국민MC는 역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된다. 프로그램 촬영이 아무리 오래 지연이 돼도 지치지 않고 끌어준다. 또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운동을 해야 하는데, 진지한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리얼이 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강호동 씨가 전반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이끌어주니 모든 MC들이 투혼을 발휘하게 된다. 소녀동과 같은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 그분이 가진 예민함과 감수성 등 의외의 면도 있다. 다소 경직돼있는 면이 무장해제 되는 순간 그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또 그것이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다.

Q. 그러나 무장해제 되기 위해서는 출연자와 제작진 사이 ‘신뢰’ 관계가 우선 구축이 돼야할 것이다. 출연자들과의 신뢰는 어떤 방식으로 쌓아가나.
이예지 :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는 것이지 억지로 친해지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역시나 촬영장에서는 마음껏 활보하게 하되 편집을 통해 잘 걸러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편집을 믿어야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되는 과정 속에서는 의사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혹시나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이 생기더라도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하면 결국은 삐거덕거리고, 악순환이 돼버리고 만다.

Q. 예능을 통해 누군가의 이미지가 회생된다는 것, 예능의 큰 장점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분명 있다.
이예지 : 조심해야할 부분이다. 예능이 자꾸 누군가의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비호감을 호감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예능의 속성이고, 사실상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의 역할이기도 하다. 아무리 촬영 도중 욕을 했더라도 이를 디테일하게 편집하여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예능의 장점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예능은 물과 같아서 담기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진다’고 답했는데, 또 그래서 예능 안에 정치,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처럼 가치판단을 흔들어 버리게 되는 시대에는 제작진이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사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기도 하다.

Q. 예능이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주류가 된 시대에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진의 책임감이 커졌다는 말로 들린다. 끝으로, 이예지 PD가 생각하는 오늘날 예능의 흐름은?
이예지 : 지금은 확실히 스타의 시대가 아닌 콘텐츠의 시대가 왔다. 사실 지난 해만 해도 우리도 미국처럼 스타의 시대가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유재석이 나오면 무조건 본다는 팬덤이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편채널이 생기는 등 방송환경이 바뀌게 되면서 콘텐츠는 다양해졌고, 실시간으로 TV를 보는 것이 아닌 다운받아 찾아보는 것으로 시청자들의 시청환경 역시도 달라지면서 ‘입소문이 나는 좋은 콘텐츠’가 더 중요해진 시대가 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스타성을 활용하되 그것에 기대기 보다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제작진 입장에서는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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