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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절,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들이 차고 넘치는 연예계에서도 눈에 띄게 수려한 ‘조각 미남’으로 대중에 각인됐던 이 배우는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어느 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머금어지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시청자들 곁에 다가와 있었다. ‘꽃미모’를 흐트러트릴 법한 코믹한 ‘빠마’ 스타일에, 틈만 나면 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어수룩한 연애 기술까지 겸비한 KBS 2TV <직장의 신>의 장규직은 오지호를 만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

숨가쁘게 달려온 16부작 드라마를 마치고 마주 앉은 이 배우는 아직도 에너지가 쌩쌩하다. 아니, 오히려 “연장이 안 돼 아쉬울 정도”라며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웠던 촬영 뒷이야기를 남도 사나이 특유의 우직한 말투로 들려준다.

Q. 이번 <직장의 신>이 다른 어떤 작품보다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오지호 :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배우, 스태프들과 단체 문자 채팅방을 운영하는 등 계속 연락하며 지낸다. 함께 출연한 (조)권이 뮤지컬 공연에도 다 같이 가기로 했고. 그 동안 인상 깊고 좋은 작품도 많았는데 <직장의 신>은 모든 걸 다 떠나서 다들 웃으면서 재미있게 끝낸 작품이다. 처음으로 연장을 기대하기도 했었고. 드라마가 잘 되더라도 연장 얘기가 나오면 힘드니까 좀 망설이곤 하는데, 이번엔 연기자들이 “연장 안 하느냐”는 얘기를 먼저 꺼냈었다. 그러다 예정대로 종영한다는 얘기에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앞섰을 정도로 다들 신나게 했다.

Q. 스스로의 연기에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나.
오지호 : 열심히 했으니 80-90점 정도는 주고 싶다. 잘했다기보다 열심히 즐기면서 재밌게 한 데 대한 점수다. 대본을 혼자 분석하면서 예상하던 것과 실제 연기가 비슷하게 나왔을 때 배우들은 희열을 느끼는데, 이번 드라마는 매 장면이 막힘없이 연상되더라. 극중 미스 김 춤을 흉내내는 게 가장 어렵긴 했지만(웃음).

Q. 서로 각자의 길로 가면서 여운을 남긴 드라마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오지호 : 처음부터 미스김이나 장규직이 각자의 길로 가지 않을까란 생각은 했다. 멜로가 좀 늦게 붙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면은 있었다. 로맨스 연기를 할 때는 장규직과의 첫 키스를 미스 김이 ‘파리’라고 묘사하는 장면에서 실제 파리 소리를 내 달라고 감독님께 부탁드리기도 했었다.

Q. 원래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인가.
오지호 : 이번 드라마는 애드리브가 정말 많았다. 전작에서는 안 그랬는데 이번 촬영 땐 이상하리만치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더라. 아마도 (김)혜수 누님이랑 어느 순간 호흡이 딱 맞으니까 회가 거듭될수록 편안해져서 그런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장규직이 마추피추로 미스 김을 찾으러 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 미스 김에게 대시하면서 “내 통장 보면 깜짝 놀랄거야”라고 얘기하는 장면 등은 모두 애드리브였다. <직장의 신>이 다른 로맨틱 코미디물과 차별화됐던 이유도 애드리브가 좀더 많아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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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장에서 연기에 대해 여러가지 색다른 제안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오지호 : 대본상으로는 충분히 재미있는 장면인데 막상 연기하면 밋밋해지는 장면들이 이젠 조금씩 눈에 보이더라. 시청자들 입장에서 뻔한 리액션을 예상할 수 있게 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편이다. 다른 드라마와 똑같다는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그런 변화들이 필요한 것 같다.

Q. 디테일한 직장생활을 다룬 드라마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는 직장생활을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점도 핸디캡으로 작용하진 않았나.
오지호 : 주변에 직장인 친구들이 많고, <신입사원> <내조의 여왕> 이후 세 번째 직장 드라마라 낯설진 않았다. 친동생이 5년간 회사원으로 일하다 그만뒀는데, 옆에서 지켜보며 애환을 함께 공감했던 것 같다. 이번 작품의 경우 비정규직이라는 소재가 사회적으로 이렇게까지 큰 울림을 줄 지는 예상치 못했다. 아마도 미스 김을 통해 시청자들의 통쾌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Q. 하지만 극중 장규직은 비정규직의 ‘적’처럼 묘사된 부분이 꽤 많았는데.
오지호 : 그런 사람이 많아야 회사가 잘 돌아가는 건 사실일 거다. 장규직은 원리원칙대로 가는 사람이다. 회사에 목숨을 걸고 뭐든 회사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실 모든 사람들이 무정한 같은 성품에 장규직같은 추진력을 지닌 인물을 바라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나.

Q. 극중 비정규직을 심하게 차별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연기하면서 고민이 되지는 않았나.
오지호 : 장규직이 임신한 박봉희에게 매몰차게 대할 때는 좀 고민이 들더라. ‘이 장면에서는 세게 나가야 시청자들이 좀더 공감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그 때는 내가 진짜 나쁜놈이 된 것 같아 고민이 많았었다.(웃음)

Q. 극중 ‘빠마 씨’라고 불리는 강한 웨이브의 헤어스타일도 큰 화제가 됐다.
오지호 : 처음엔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압구정동에서 펌을 하고 갔는데 감독님이 뭔가 느낌이 안 산다며 “재미가 없다”고 하시더라. 너무 세련된 느낌이었나 싶어 이후에는 고대기를 이용해 좀더 곱슬거리는 스타일일 만들어 합격점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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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 함께 연기한 김혜수와의 호흡은 어땠나.
오지호 : 몸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며 항상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빨간 내복을 입고 홈쇼핑 모델로 나서는 장면에서는 “누님 괜찮으신거죠”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 같으면 그런 장면에서 좀 고민했을 것 같고 약간 포장도 해서 다르게 했을 것 같은데 선뜻 해내시는 걸 보며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Q. <내조의 여왕>의 김남주, <두번째 프러포즈>의 오연수, 이번 <직장의 신>의 김혜수 등 유난히 연상의 여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오지호 : 여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에 캐스팅됐을 경우 일단 내가 잘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돋보이는 것보다는 여배우를 잘 받쳐주는 게 우선이니까.

Q. 연상의 여배우들 중 누가 가장 카리스마있던가.
오지호 : 기가 가장 센 분은 역시 김남주 선배다(웃음). 여선배지만 대장부 스타일이다. 김혜수 누님은 겉보기에는 강해보이지만 사실 여성스럽고 부드러운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번 작품 마치고 혜수 누님이 나에게 많이 배웠다고 하셨는데 눈물 날 정도로 고맙더라. 그렇다고 내가 “누님도 잘 하셨어요”하기도 외람되고…대 배우가 나에게 배웠다고 말씀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Q. 장규직 캐릭터는 어찌 보면 MBC <환상의 커플> 속 장철수의 연장선상에 있는 코믹 캐릭터다. 그동안 이런 코믹 연기와 <추노>의 송태하와 같은 진중한 연기를 번갈아 보여준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연기가 더 잘 맞나.
오지호 : 기본적으로 즐거운 걸 좋아하기 때문에 편한 건 코믹 연기다. 로맨틱 코미디물은 이제 보면 내가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가 눈에 잘 들어온다. 반면 진지한 캐릭터 연기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무게감 있는 캐릭터도 혼자 끌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해가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드라마보다는 영화 쪽으로 주력해보려고 한다. 내가 보지 못한 내 모습을 끌어내주는 감독님을 만나 연기해보고 싶다. 당장은 흥행이 잘 안되고 욕을 먹더라도 상관 없다.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는 편인데 앞으로 5년 안에 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진지한 역할을 완성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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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생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는 편인가보다.
오지호 : 습관인 것 같다. 학창시절에도 공부 시간을 정해 놓고 ‘이 때까지만 하자’고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편이었다. 배우가 되고 초반에 연기를 못해 욕먹던 시절에는 1~2년간 쉬면서 연기 공부하며 계획을 짜곤 했다.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지, 20년 후에는 뭘 하고 있을지를 그리면서 스스로를 다잡았었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사실 연예계 데뷔 전에는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중간에 연기에 대해 비판을 받으면서 사람이 채찍질을 당해야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Q. 어려서부터 적극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성향이었나.
오지호 : 사람이 좀 변하더라. 쑥스러움이 많고 말도 잘 못했는데 배우로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걸 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려놓게 되더라. 그 전엔 평이하게 살았다면 배우가 된 후에는 좀 굴곡이 심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 인생이라면 따라가자는 생각을 했다. 늙은 모습을 상상하는 건 싫지만 목표가 있으니 일단 어떻게든 해 보자는 생각을 하곤 한다.

Q. 삼십대 후반, 지금 시점에서 배우 오지호의 목표는 무엇인가.
오지호 : <추노> 끝나고 (장)혁이랑 그런 얘길 했다. 나이 들어서도 멋있게 멜로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돼 보자고. 외국에는 미키 루크같은 배우들도 있는데 한국에는 중년을 넘어서면서 남성미를 풍기는 배우들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중년의 나이에도 남성미 가득한 멜로 연기를 해 보는 게 목표다. 그래서 꾸준히 운동도 하고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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