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이면] TV 속 목소리, 캐스팅은 어떻게?
의 ‘진짜 사나이’와 ‘아빠! 어디가?’ 방송화면" />배우들의 목소리로 소개되는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진짜 사나이’와 ‘아빠! 어디가?’ 방송화면

요즘 TV 속 새로운 트렌드는 유명인들의 목소리다.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의 부활을 이끈 효자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는 각각 가수 이적과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과 카라 멤버, 가수 손담비 등에 이어 중견배우 김영옥과 변희봉의 내레이션으로 프로그램의 이해를 돕는다. 내레이터 윤도현의 박력 있는 목소리가 없는 SBS <정글의 법칙>도 상상하기 힘들다.

‘관찰 예능’이 뜨는 오늘날 트렌드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명확한 대본이 있는 토크쇼나 개그 프로그램은 이런 목소리의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으며, 대본은 없지만 출연자들의 진행이 가미된 리얼 버라이어티 역시도 또 다른 화자가 불필요했다. 그러나 진행자의 역할이 전무하거나 대폭 축소된 관찰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관찰 예능 속 목소리는 진행의 부재 탓에 영상만으로는 미처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설해주는 기능을 하며, 제작진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출연자들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는 것에도 상당한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서두 부분의 내레이션은 주로 상황을 소개하고, 내용 사이사이 삽입되는 내용은 출연자들의 내면 상태를 표현하는 것도,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에서 경험하는 것을 시청자가 함께 공유하는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아빠?어디가!’ 강궁 PD는 “관찰 프로그램이다 보니 출연자들의 대사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없었으며, 일찍부터 이런 기능을 했던 자막의 과도한 사용은 일부 시청층에게 스트레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기본적인 내러티브는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목소리가 영상의 길잡이 역할을 한 것은 실은 예능 프로그램보다는 다큐멘터리가 먼저 였다. 영상을 통해 미처 전달하지 못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거나 제작진의 목소리를 사용해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또 감성적인 스토리텔링을 강조해야하는 휴먼 다큐멘터리의 경우,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TV는 어째서 전문 성우가 아닌 유명 배우나 가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까. 물론 홍보효과 탓이다. 아무래도 TV를 통해 얼굴과 목소리가 알려진 이들을 내레이터로 기용하게 되면 프로그램 방송 전 홍보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명인들의 이미지를 활용해 더욱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진다는 점도 이들의 목소리가 가진 큰 장점이다.

유명 배우들을 내레이터로 기용시켜 효과를 본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에게 캐스팅 기준에 대해 물어보았다.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목소리여야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앞서 유명 배우들의 내레이션으로 일찍이 화제가 된 MBC 간판 다큐멘터리인 <휴먼다큐 사랑> 제작진은 “성우를 기용할 경우, 명확한 발음 등의 전달력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유명 배우들을 기용할 때는 영상 속 화자의 이야기를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을 최우선으로 캐스팅 했다”고 전했다.

지난 2009년 방송된 <휴먼다큐 사랑>의 ‘엄지공주’ 편은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어렵게 얻은 아들에 대한 엄마의 간절한 사랑을 다룬 프로그램으로, 당시 첫 딸을 출산한 배우 김희선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암투병 속에서도 아이들을 착실히 길렀던 싱글맘의 위대한 모성애를 다룬 ‘풀빵엄마’ 편 역시 실제 싱글맘인 허수경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화제성과 함께 이들 본연이 가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 사례다.

가수 이적이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기를 그린 ‘아빠? 어디가!’의 목소리로 발탁된 사연도 이와 비슷하다. 강궁 PD는 “이적이 내레이션을 하게 된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적이 실제 아이 아버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아무래도 싱글남이 읽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고 전했다

“목소리만 나온다고 연기력은 안본다?! NO!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신뢰를 주죠.”
환경 소재 다큐멘터리로는 흔치 않았던 시도였지만, 김남길, 송중기, 안성기 등 배우들의 목소리로 화제가 된 MBC 눈물 시리즈 <남극의 눈물>,<북극의 눈물>,<아마존의 눈물> 제작진은 ‘연기력’을 또 하나의 주요한 기준으로 꼽았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작품이 전달하려는 스토리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또 이야기 속에 담긴 감동을 전달하는 것에도 유리했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가진 신뢰도는 프로그램에까지 이어져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감정이입 역시도 주요한 기준이죠.”
‘진짜 사나이’의 김민종 PD는 “군대라는 공간의 특성상 남성들에 비해 여성의 공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위해 걸그룹이나 여가수, 여배우의 내레이션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여성의 목소리를 덧입혀 여성에게 이질적인 공간에 친밀함을 더한 것이다. 또 “이후 시청층을 분석한 결과, 중장년 여성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들을 군대에 보낸 연령층의 여성들의 공감을 더욱 끌어내기 위해 김영옥 씨를 캐스팅하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유격훈련 편에서는 첫 남성 내레이터인 변희봉을 기용, 유격훈련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식을 군대에 보낸 아버지의 마음을 싣는데 성공했다.

“프로그램 전체와 통하는 코드와도 맞물려야 합니다.”
<정글의 법칙>은 출연자들의 야생 속 좌충우돌 고생담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이미지의 록커 윤도현을 기용하게 됐다. “야생의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그램에는 활동적인 이미지의 록커 윤도현이 적역이었다. 프로그램에 깔리는 BGM(배경음악)이 주로 록이라는 점 역시도 윤도현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요소가 됐다”는 것이 제작진의 설명이다.

“결국은 대중과의 친밀함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죠.”
또 이들 제작진은 공통적으로 유명 배우들의 목소리를 기용한 이유로 ‘친숙함’을 꼽았다. 전문 성우에 비해 확실히 발음 등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들 목소리가 지닌 대중적인 친숙함이 프로그램에 대한 친숙함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 된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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