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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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년차를 바라보는 요즘에도 보컬 레슨은 거르지 않는다. 목 관리를 위해 금주는 물론이다. 드라마 촬영 때는 일주일에 4일 밤을 새고 이틀은 뮤지컬 무대에 서는 강행군이지만 하루 쉬는 휴일에는 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촬영 중 벌에 쏘여 얼굴이 퉁퉁 부어도 하루만에 가라 앉았다며 감사 기도를 드리고, 좋아하던 걸그룹 출신의 상대 배우에게서 사인을 받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어느덧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가 ‘나이들 틈’이 없는 이유다.

진한 충청도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던 SBS 주말드라마 <출생의 비밀>의 부성애 연기로 심금을 울렸던 유준상은 트레이드 마크인 긍정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와 뮤지컬, 영화 홍보까지 병행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했던 지난 몇 달이었지만 따뜻한 느낌의 작품을 만나 행복했다는 그는 “가족 간의 사랑이 뭔지, 과연 부자만이 행복할 수 있는지 삶에 대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였던 것 같다”며 천천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Q. 아역배우 갈소원과의 연기가 실제 아빠와 딸처럼 다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준상: 정말 내 딸같은 느낌으로 연기했다. 그래서인지 다섯 살짜리 아들 아이가 질투가 나서 집에 가면 나한테 자꾸 안기려고 하더라. 전엔 아빠를 거들떠도 안 보더니(웃음) 소원이는 ‘어린애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대견스러운 아이다. 생각도 깊고, 새벽에도 아무리 졸려도 괜찮다며 본인 장면을 다 찍은 후에야 잠든다. 잘 클 수 있도록 많이 돌봐주고 싶다. 계속 연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슬럼프가 올 수도 있을 테니.

Q. 연기하면서도 부성애라는 감정을 최고조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으로 남았을 것 같다.
유준상: 9부 엔딩 장면에서 극중 소원이가 “아빠가 돈이 없잖아” 라며 우는 장면을 찍는데 정말로 슬펐다. 대사를 하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찍었는데 “컷!” 소리가 난 다음에 보니 스태프들도 다 울고 있더라.

Q. 한 여자만 해바라기 하는 홍경두의 모습이 연기하면서 답답하지는 않았나
유준상: 경두는 충분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세상물정을 너무 모르니까. 바보는 아니지만 바보처럼 순박한 면을 지닌 남자다. 나 또한 약간 무대포적인 면이 있다. 생각하는 코드도 경두와 약간 비슷하고. 애들이랑 놀 때는 철저하게 애들 눈높이에 맞춘다든지 하는. 그렇게 착한 캐릭터여서였는지 연기를 하면서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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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 중반부쯤에는 지나치게 이현에게 몰두하는 모습이 스토커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다.
유준상: 악역으로 나왔던 KBS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이후 오랜만에 욕을 먹어본 것 같다. 식당에 가면 밥도 잘 안 주시고 그러더라(웃음). 하지만 처음부터 경두의 따뜻함을 나는 볼 수 있었다. 결국 시청자들도 이후 경두의 모습에 많은 공감을 보내준 것 같고.

Q. 상대역인 성유리도 이전 작품에 비해 연기력이 많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준상: 이현 역이 대사량도 많고 기억을 잃는 등 변화무쌍한 캐릭터였는데 유리가 잘 끝내줘서 상대역으로서 정말 기뻤다. 새벽까지 차 안에서 대본 보고 연습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서로 어떻게든 설득력있는 장면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유리나 나나 본인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서로 울어주면서 촬영하곤 했다. 연기하면서 얼마나 배려했느냐는 상대역끼리만 아는 건데 서로 많이 맞춰준 게 연기 호흡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Q. 한참 어린 후배 배우들에게도 거리낌없이 다가가는 소탈함이 엿보인다
유준상: 그래야 서로 거리낌 없이 연기가 나온다. 에를 들어 뮤지컬에서 함께 공연한 (지)창욱이와는 열여덟살 차이다. 내가 선배라며 권위를 세우고 윽박지르면 연기가 당연히 안 나오지. 상대방은 몸을 자꾸 사리게 되니까.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있어야 연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내가 먼저 다가서려고 노력한다.

Q. 타방송사의 경쟁 드라마인 MBC <백년의 유산>이 줄곧 시청률 1위를 고수했는데 의식이 되진 않았나
유준상: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대본이 무척 재밌어서 선뜻 하겠다고 했다. <백년의 유산>과 같은 시간대라 고민되진 않았다. 다만 그 작품이 한창 탄력을 받을 때 첫방송돼서 상대적으로 막 시작하는 우리 작품에 관심이 덜 가게 된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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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작인 KBS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이어 이번 <출생의 비밀>까지 드라마 상에서 착하고 바른 캐릭터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향후 강렬한 역할로 변신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유준상: 다행히 드라마와 달리 영화와 뮤지컬에서는 완전히 다른 연기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균형감을 맞춰가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에도 드라마와 뮤지컬을 병행하느라 몇개월간 강행군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익숙해지다보니 <출생의 비밀>을 찍을 때는 순박한 홍경두로, 뮤지컬 <그날들>에서는 김광석의 노래로 관객들과 만나는 게 저절로 몸에 익더라. 다른 작품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따뜻한 모습과 개성있는 역할을 함께 하는 것을 나름대로 몸으로 익혀갈 수 있을 것 같다.

Q. 드라마와 무대를 오가면서 늘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유준상: 가끔 그렇긴 하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무대에서의 긴장감을 견디기가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대사를 잊을까, 노래 실수를 할까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무대에서 받는 관객들의 환호와 기립박수에 힘든 순간이 모두 날아가는 것 같다. 이번에도 드라마 촬영중 예기치 않게 벌에 얼굴을 쏘여 퉁퉁 붓는 해프닝이 있었다. 병원에 가면서 기도했었다. ‘아 이것만 빨리 낫게 해주시면 진짜 열심히 할게요’라고.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밤샘 촬영이나 연이은 공연이 결코 힘든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카메라 앞에,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Q. 연기자로서 자신만의 꿈이 있나
유준상: 나이가 들어서도 내 연령대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노장의 배우들이 무대에 서는 감동이 있지 않나. <노인과 바다> 같은 작품을 실제 그 나이가 돼 공연할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글. 장서윤 기자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나무엑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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