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센 곡 없다고요? 색깔을 들으세요”
이승철 “센 곡 없다고요? 색깔을 들으세요”
타이밍 때문일까? 이승철의 새 앨범이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조용필과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가왕’에 이은 ‘가창 왕’의 귀환이라 그랬을까? 사실 데뷔년도, 나이로만 따지면 이승철은 조용필의 한참 후배다. 그럼에도 비교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이승철이 가요계에서 가지는 독보적인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참 많은 이들이 심사위원이 아닌 가수 이승철을 기다렸다. 12일 이승철의 개인 작업실인 진앤원 뮤직웍스에서 열린 새 앨범〈My Love〉 발매 기자간담회에 앞서 미리 들어본 신곡들은 대체로 편안했다. 가창력을 자랑하는 곡은 단 한 곡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곡의 분위기에 편안하게 올라타 자연스레 귀에 감겼다. 흐느낌만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명인의 풍모도 느껴졌다. 영롱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첫 곡 ‘사랑하고 싶은 날’부터 지금의 이승철을 가장 잘 표현한 곡이라는 ‘손닿을 듯 먼 곳에’까지 9곡이 묵직하게 흐른 후 이승철은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승철이 2년 전부터 11집 〈My Love〉 작업에 돌입했다. 60여곡을 모았고 40여곡을 녹음했다. 이 중 18곡이 이번에 공개된 파트1과 가을쯤에 나오는 파트2 두 장의 앨범으로 나뉘어 발매된다. 트렌디한 곡들은 파트1에, 이승철 특유의 정통 록발라드는 파트2에 각각 담긴다. “최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다보니 지켜보는 눈이 많아서 방향성에 대해 큰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는 곡, 대중적인 곡, 그리고 내 노래를 모두 보여주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곡 분위기들이 들쑥날쑥해 두 장의 앨범으로 발표하게 됐습니다.”

〈My Love〉 파트1에서는 트렌디한 이승철을 만나볼 수 있다. “대중가요는 ‘핫’한 느낌이 중요해요. 그동안 녹음해놓은 곡들 중 ‘말리 꽃’ ‘네버 엔딩 스토리’ 스타일의 곡들이 있었는데… 곡은 좋지만 저에겐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올해 2월 말부터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다시 작업을 시작했는데 새 앨범이 잘 되려고 하는지 4~5일 간격으로 신곡이 나오더라고요. 역시 음악 작업은 오랫동안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순간적이 느낌인 것 같아요. 결국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곡들이 앨범에 실리게 됐어요.”

대중이 이승철에게 바라는 것은 바로 ‘노래’다. 하지만 이승철은 가창력을 뽐내기보다 앨범의 완성도, 흐름에 집중했다. “이제까지 앨범 작업을 하면서 방향성을 미리 잡고 들어간 적은 거의 없어요. OST를 작업할 때에는 노래 한 곡에 집중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앨범 수록곡들의 흐름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이승철 “센 곡 없다고요? 색깔을 들으세요”
이승철 “센 곡 없다고요? 색깔을 들으세요”
창법에 대해서도 전과 차이가 느껴진다. “〈슈퍼스타K〉에서는 지원자들에게 본인의 창법을 계발하라고 하는데 저 같이 오래된 가수는 자신의 창법만 고집하면 위험합니다. 그것이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거든요. ‘센 곡’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센 음악’은 저에게 항상 있던 것들이에요. 이번에는 앨범의 컬러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에 집중했습니다.” 〈My Love〉의 음악감독으로 이승철의 음악적 파트너이기도 한 전해성 작곡가는 “트렌디함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지금 현 시점에서 이승철이라는 가수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덧붙였다.

〈My Love〉에는 전해성 작곡가가 만든 곡, 해외 작곡가가 만든 한 곡 외에 학생들이 만든 두 곡이 들어가 있다. ‘늦장 부리고 싶어’와 ‘40분 차를 타야해’는 동아방송대학교 08학번들이 만든 곡. 이승철이라면 얼마든지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받을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그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동아방송대학교 학생들이 만든 40여곡을 검토했고, 그 중 스무 곡 정도는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현재 실용음악과 학생만 수천 명이 넘는데 그 중 프로로 데뷔하는 이들은 극소수에요. 반면 가요계에는 전해성과 같은 몇몇 작곡가가 수백 명의 가수를 상대로 곡을 쓰고 있죠. 제가 노래한 학생들의 곡이 관심을 받으면 다른 가수들도 이들을 찾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가요계에 곡을 공급하는 커다란 밭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해성 작곡가는 “정수경 학생이 만든 ‘40분 차를 타야해’는 그 나이에 쓸 수 있는 감성의 가사가 너무 신선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는 ‘사랑하고 싶은 날’에는 이승철 특유의 절절한 감성이 잘 담겨 있다. 이승철의 아내가 “이 노래 주인공이 누구야?”라고 물어볼 정도. “옛 추억이 떠올라 눈물을 머금고 부른 노래예요. 창법이나 테크닉보다도 감성이 잘 살았죠. 이런 느낌으로 노래한 건 ‘마지막 콘서트’ 이후 처음인 것 같아요. 다시 이렇게 부르라면 못 할 것 같아요.” ‘손닿을 듯 먼 곳에’에는 외국인 작곡가, 연주가가 참여했다. 최근 조용필이 ‘헬로’ ‘바운스’ 등 외국 작곡가의 곡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반면 이승철은 외국 곡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외국 곡을 받아 한글 가사를 붙이니 어색한 느낌이 있었어요. 마치 번안가요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외국 연주자의 반주는 그대로 둔 채 전해성 작곡가가 거의 재건축 수준으로 곡을 다듬었어요. 이제 외국 곡을 받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이승철 “센 곡 없다고요? 색깔을 들으세요”
이승철 “센 곡 없다고요? 색깔을 들으세요”
올해로 데뷔 28년차인 이승철은 3~4년 주기로 앨범을 발표해왔다. 〈My Love〉는 40대를 정리하는 앨범인 셈이다. “12년 전에 제 스튜디오를 지을 당시가 IMF 때였어요. 음반 산업이 사양길을 걸을 때죠. 그럼에도 큰돈을 들여 스튜디오를 지은 이유는 제가 늙은 후 아무도 음반을 제작해주지 않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어요. 전 이 공간이 너무 소중해요. 노래를 그만두는 날까지 이곳에서 작업을 할 겁니다.”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악동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 편안한 이미지는 억지로 만들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기에 천운이라 생각한다고. 18일 오후 8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새 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연다. 이날 현장에서는 자신의 유행어인 ‘어서와’의 패러디 콘테스트 ‘어서왕’ 선발대회도 열며 심사는 박명수가 맡는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루이 엔터테인먼트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