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로커와 배우로 살아가는 김창완,  ‘불금엔 술을 마시자’
에서 주연을 맡은 김창완" />영화 <닥터>에서 주연을 맡은 김창완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 나에겐 커다란 의미 / 너의 그 작은 눈빛도 /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1984년 발표한 산울림 10집 앨범 <너의 의미>의 타이틀곡 <너의 의미>. 김창완은 직접 기타를 들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이 노래를 선물했다. 맥주를 한 잔 마신 탓인지 약간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미소 가득한 표정, 무더운 오후의 나른함을 싹 가시게 할 만큼 ‘행복’한 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 곳은 서울 삼청동의 작은 카페. 하지만 이곳은 미니 콘서트 현장이 아닌 영화 <닥터> 개봉을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 장소다. 인터뷰 중 느닷없이 기타를 달라고 하더니 노래 한 곡조를 뽑았다. 또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오늘이 ‘불금’이지 않나”라며 들뜬 기분을 드러냈다. “일 없으면 마셔야지. 술 좋아한다”라며 크게 웃는 김창완의 모습, 소년 같다. 이날 인터뷰는 금요일 오후 4시에 시작됐다.

그 소년 같은 모습, 영화 <닥터>에선 찾아볼 수 없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옆집 아저씨 같이 푸근하고 편안한 모습도 온데간데없다. 광기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는, 연쇄살인마만 있을 뿐이다. 웃고 있는 모습조차 무서울 정도다. 대본을 받자마자 집어던졌다던 김창완, 결국 ‘사이코패스’ 성형외과 의사 최인범을 연기해 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그 모습, 그는 이를 통해 많은 배웠고, 많은 반성을 했다. 이번 인터뷰는 로커 김창완과 배우 김창완, 같은 듯 다른 그 모습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배우 김창완 “이전에 내가 했던 인물 탐구, 얼마나 허접했는지”

Q. 지난 부산영화제 때부터 최근까지 일관된 말이 있다. 대본을 받자마자 던졌고, 내 스스로 그 거부감의 실체를 알고 싶어 참여했다는 말이다. 그 실체를 찾았는지 궁금하다. (참고, <닥터>는 지난해 부산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에 초청, 상영됐다.)
김창완 : 결국 내가 얼마나 갇혀 있었나, 나의 영화관이나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유치했나, 그간 연기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단선적이었나 하는 것 등에 대한 반성이 생겼다. 그 전에는 연기관이랄 것도 없었으니까. 많이 배우게 됐다.

Q. 그 반성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김창완 : 가령 인물의 성격이란 게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인물이 주어지더라도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고, 표현하는데 장애가 없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상상치도 않던 인물을 그려내면서 ‘이 인물의 성격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 전에 내가 했던 ‘인물 탐구’란 게 얼마나 허접하고, 표피적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Q. 이전에는 연기관이 특별히 없었다는 것도 놀랍다. 어떤 의미인가.
김창완 : 배우는 감독에게 선택받는 직업 아니냐. 다만, 이런 저런 역할을 쭉 해오면서 오래 하다 보니 이제 조금 알겠다. 아직 멀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맡았던 시골의사나 애 딸린 홀아비 역할을 다시 해보고 싶긴 하다. 지금 하면 완전히 다를 텐데.

Q. 배움과 반성. 이번 영화를 하면서 느낀, 두 가지 키워드 같다. 배움과 반성이 연기에 대한 욕심을 생기게 한 것 같기도 한데.
김창완 : 그보다 이전까지 시나리오는 작가가 쓰고, 행동거지는 감독이 지시를 하고, 미장센은 스태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배우는 좀 자조적이긴 하지만 ‘퍼핏’(puppet)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배우가 ‘시대 아이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 브래드 피트인가, 또는 왜 엘리자베스 테일러인가, 그걸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내가 노래를 했을 때 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쩌면 그 팬들에겐 ‘시대 아이콘’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전혀 몰랐다. 가령, 배용준 때문에 난리 났을 때도 키 크고 잘 생겨서 그런거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그런게 아니더라. 영화의 주인공은 시대 아이콘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 없기도 하다.

Q. 김창완 때문에 영화를 꼭 보겠다는 댓글도 꽤나 많던데.
김창완 :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그런 골수팬도 있는 거죠. 하하하. 근데 실망하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INTERVIEW]'불금엔 술을 마시자', 로커와 배우로 살아가는 김창완
[INTERVIEW]'불금엔 술을 마시자', 로커와 배우로 살아가는 김창완
Q. 그렇다면 이번엔 연기 방식도 전과 달랐겠다.
김창완 : 물론 달랐다.

Q. 극 중 최인범이 지닌 광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어떻게 했나.
김창완 : 관객한테 최인범은 연쇄살인마인데 나는 최인범이 어떻게 살인마가 됐나를 생각해 봤다. 정신이 이상해져 살인마가 됐을 수도 있고, 독초를 먹고 살인마가 될 수도 있지 않나. 최인범은 ‘공포’를 먹고 살인마가 된 거다. 최인범의 행동거지를 보면 보통 악랄한 게 아닌데 그건 확대경을 들이댄 공포다. 최근 진드기 확대사진 많이 나오는데 그거 보면 얼마나 괴물처럼 보이나. 또 밤에 고즈넉한 곳에서 낚시할 때 갑자기 물고기가 튀어 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나. 그런 것처럼 공포를 확대해서 보니까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포의 실체는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서 늘 겪는 그런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Q. 감정을 격하게 토해내고, 살인하고. 그런 역할은 그동안 없었다.
김창완 : 연기하면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병원에서 나와서 거리를 방황하는 신이 마지막에 있는데 그 신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다.

Q. 김창완의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성형외과 의사란 것만 봤을 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사이코패스’가 들어가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김창완 : 나보고 웃지 말래요. 웃는 게 더 무섭다고. 하하. 반응이 아주 썰렁합니다. 사실은 그 전에 연기할 때는 잘 몰랐는데, 앵글 안 연기라는 게 있더라. 그 점을 조금 더 신경 쓰게 됐다. 뭐랄까? CF촬영할 땐 초 단위로 연기가 필요하긴 하다. 이 영화에선 초 단위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압축된 연기를 보여줘야만 했다.

Q. 대중들에겐 이런 모습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김창완이 생각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김창완 : 오락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찾기보다 그냥 호러물이 갖고 있는 오락성에 치중하면 좋겠다. 인터뷰 할 때마다 성형왕국, 물질만능 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물어보는데 내 생각엔 완전한 오락물이다. 감독과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성형외과 의사는 영화적 소재일 뿐이다. 그게 치과일 수도, 내과일 수도 있는 것. 여기에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

Q. 극 중 아내 역으로 나온 배소은 씨가 1989년생이더라. 아들이 1980년생으로 알고 있는데 그 보다 더 어린 여배우와 부부 호흡을 맞췄다.
김창완 : 전혀 부부 같지 않았다. 부부로서의 연기는 어색했다. 극 중에서 부부라는 게 설정일 뿐이다. 사실 영화의 흠이긴 하다. 부부로서의 뭔가 있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돼야 설득력도 있고 한데 많이 생략된 것 같다. 이 영화 안에서 부부라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현장 밖에선 부부 같았다. 소은이가 ‘여보, 여보’ 하면서 다가오니까.

Q. 혹시 가족하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 이 설정을 보고 뭐라고 했을지.
김창완 :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한다. 전혀 안 한다고 보면 된다.(김창완의 가족도 영화를 봤지만 같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김창완
김창완


로커 김창완 “나는 편식이 좋다. 솔잎만 먹고 사는 송충이처럼”

Q. 최근 출연한 tvN <백지연의 피플 INSIDE>란 프로그램에서 음악과 연기 중 ‘음악’에 좀 더 무게를 두더라. 배우 또는 연기자 김창완을 좋아하는 대중들이 봤을 땐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창완 : 배신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로커여야 하니까. 하하. 그리고 어린 친구들이 배우로 알다가 저 사람 로커였어’ 이렇게 되니까 반전 효과가 있겠죠. 그런 와중에 사이코패스라고 하니까.

Q. 이번 영화의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제대로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신 것 같던데. 그리고 예전엔 영화 음악도 꽤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김창완 : 산울림 레파토리인데 김창완 밴드가 다시 연주를 했다. 그렇다고 연기와 음악을 다 한 건 아니다. 그리고 주연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노래를 한 것도 아니다. 김창완 밴드의 이상훈 키보디스트가 영화의 음악 감독을 했는데, 그 노래가 어울릴 것 같아 음악 감독에게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음악 감독이 감독하고 상의한 뒤 좋다고 해서 결정된 거다. 그리고 예전엔 영화 음악을 꽤나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하지 않는다.

Q.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각본이 이번 영화를 연출한 김성홍 감독이다. 근데 그 영화의 음악을 했더라. 흥미로운 인연이더라.
김창완 :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 때 각본과 지금 감독이 같은 사람인지 몰랐다. 이번 영화를 결정하고 난 다음, 그 이야기를 하더라. 또 예전부터 캐스팅하려고 했었다는 말도 했다. 김성홍 감독은 나를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은데 정작 나는 몰랐다. 진작 얘기를 하지. 하하.

Q. 평소엔 주로 어떤 음악을 듣나. 록이 아닌 즐겨듣는 장르의 음악이 있나.
김창완 : 주로 듣는 음악이 다 록이다.

Q. 보통 여러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들어야 한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데 록 음악만 주로 듣는 건 ‘편식’ 아닌가.
김창완 : 나는 그 편식이 좋다. 코알라는 평생 죽순만 먹고 살지 않나. 송충이도 솔잎만 먹고. 여러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송충이가 좋다. 이건 고집이기도 하지만 록 장르만 듣다 보니 귀에 인이 배겼다고 할 수 있다.
kim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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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창완에게 록은 무엇인가.
김창완 : 록은 뭐랄까. 유명 록스타가 한 이야기인데 ‘록은 형식이 아니라 태도’라고 했다. 로커로서 음악적 태도가 좋은 거다. 장르 등 음악적 형식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뭐 저런 노래가 있나’ 싶을 때가 있는데 그거야 말로 태도가 된 거다.

Q.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뭐 저런 노래가 있나’라고 할 정도면 그 노래가 별로라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거야 말로 태도가 된 거라는 게 무슨 말인지.
김창완 : 록 태도가 뭔지 그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게 왜 저래’ 같은 것들이 록의 시작이다. ‘록 스피릿’이라 하는데 다 애매한 경계에 있는 것들이다. 음악과 비음악의 경계일 수도, 비트일수도, 멜로디일수도 있다. 록은 생물이다. 살아있는 것이다. 훨씬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설명을 해줘도 이해가 쉽지 않았다.)

Q. 음악인으로, 연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 두 가지를 어떻게 마무리 하고 싶은가.
김창완 : 에이. 에이. 마무리, 마무리를 말하는 건 주제넘죠. 앞으로도 계속 배울 것이고, 배워야 한다.

Q. 과거 tvN <스타특강쇼>에서 ‘꿈은 작게 꿔라’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지 않았나. 지금 김창완의 작은 꿈은 무엇인가.
김창완 : 지금 내 작은 꿈은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홍대의 어느 집에 가서 술을 마실까 정도. 하하. 지금에서야 잠을 자고, 그 다음날 일어나도 ‘세상이 변함없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를 느낀다. 어려서는 하루 밤만 자고 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생기고, 달나라에 가 있고. 50살쯤 되면 복제인간인 내가 태어나서 힘든 일을 대신 해주고. 뭐 이런 상상을 했다. 작은 꿈이라는 것은 내 이름은 왜 이런지, 나는 나를 똑바로 볼 수 있는지, 나는 나한테 창피하지는 않은지, 이런 것들이다. ‘왜 살지’ 등 이런 질문들, 그것조차 답하기 힘든데 무슨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는 건지. 지금 닥친 일상, 이날 오후가 중요한데 그에 대한 감흥도 없으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고. 그런 것들부터 깨우치는 것이다.

글. 황성운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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