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엘 3
씨엘 3
“우와 정말요? 저희 노래 중에 ‘Ugly’는 록 적인 요소가 많은 곡이기도 하죠.” 록 뮤지션들이 유난히 투애니원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자 씨엘(CL)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새삼 1990년대 미국에 정상의 인기를 구가했던 흑인 여성 그룹 엔 보그(En Vogue)가 떠올랐다. 섹시함을 내세운 여성 그룹 사이에서 엔 보그의 ‘Free Your Mind’와 같이 ‘센’ 여성상을 보여준 곡들은 동시대 록 뮤지션들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기존의 예쁘고 귀여운 걸그룹의 이미지에 반기를 든 투애니원의 음악이 ‘로커 오빠’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투애니원의 에너지 넘치는, ‘격’이 다른 라이브를 본 사람들이라면 쉬이 공감할 것이다. 특히 리더인 씨엘은 마치 관객을 잡아먹을 듯한 파워풀한 무대를 선보이곤 했다. 그런 그녀가 솔로 곡 ‘나쁜 기집애’를 통해 여성 래퍼로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3일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여러 매체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 현장의 이야기를 옮겼다.

Q. 첫 솔로 곡을 발표한 소감이 어떤가? 래퍼를 꿈꾸며 YG 연습생으로 첫 발을 들인 것이 16세였으니 7년 만에 꿈을 이룬 셈이다.
씨엘: ‘나쁜 기집애’는 나의 모든 애정을 담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아가와 같은 곡이다. 지금 제 나이에 나오게 돼 너무 기쁘다. 이런 저런 가사도 써보고, 곡 작업부터 의상, 뮤직비디오 편집하는 장소에 함께 있으면서 내 의견을 냈다. 결과적으로 내 자신이 많이 투영된 작업이었다. 훗날에 추억할 수 있는 하나의 시점이 된 것 같아서 의미가 크다.

Q. 이번 작업에 참여하면서 말하고 싶었던 씨엘이라는 사람은?
씨엘: 나에게 충실하면 씨엘이라는 사람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했다.

Q. ‘나쁜 기집애’ 속의 씨엘은 매우 사납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가?
씨엘: ‘나쁜 기집애’는 씨엘의 확고한 면을 담아낸 곡이다. 나는 씨엘과 채린을 구분지어서 살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 안에 흑과 백이 있는데 흑이 씨엘, 백이 채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대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씨엘이고 싶고, 평소에 날 만나는 가족과 친구들은 채린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Q. 뮤직비디오에서 남장부터 섹시한 콘셉트까지 다양한 의상을 소화했다. 금이빨도 했다.
씨엘: 금이빨은 ‘그릴’이라고 해서 힙합 계에서는 래퍼들이 많이 끼고 나오는 것이다. 내가 해봐도 멋지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끼고 나오면 ‘나중에 시집 갈 수 있을까’ 고민도 했지만, 씨엘에 충실하기 위해서 꼈다. 워낙 투애니원 할 때부터 파격적인 콘셉트를 많이 했기 때문에 다른 의상들은 자연스러웠다.

Q. 투애니원은 무대 자체가 다른 걸그룹과 에너지가 다르다. 라이브를 봐도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모습이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다른가?
씨엘: 무대 위와 밖은 정말 다르다. 무대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평소에는 조금 아껴두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클럽에 매일 가고 술 잘 마실 것 같다고 말하는데, 난 평소에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YG에 들어와서도 테디 오빠나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하면서 노는 게 좋다. 그 외에는 집에서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밥을 무쇠 솥으로 해먹는다. 거기다 하면 밥이 훨씬 윤기가 나고 촉촉하다.

Q. 간혹 지드래곤과 패션 쇼에 함께 간 사진을 보면 매우 패셔너블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씨엘: 평소에는 화장도 잘 안 한다. 옷은 내가 워낙 입는 것을 좋아한다. 옷은 단지 옷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들을 존경한다.
씨엘 2
씨엘 2
Q. ‘나쁜 기집애’의 가사를 썼다. 제목을 센 반면 가사는 약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가령 ‘눈웃음은 기본, 내 눈물은 무기’는 나쁜 기집애라기 보다 흔히 볼 수 있는 여우같은 기집애 중 하나 아닌가? 씨엘이 생각하는 ‘나쁜 기집애’란?
씨엘: ‘나쁜 기집애’에서 ‘나쁜’은 멋진 것을 의미한다. 제목은 작년에 테디 오빠와 말장난을 하다가 나온 것이다. 데뷔 전에 16세 때 YG 패밀리 오빠들 무대에 설 때 같이 랩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페리 오빠가 ‘The Baddest Female’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랩을 써준 적이 있다. 그게 너무 맘에 들어서 내 사인, 시그니처처럼 사용했다. 작년에 테디가 씨엘이 랩으로 ‘나쁜 기집애’라고 하면 재밌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하다가 올해 초에 재미로 만든 곡이다. ‘내가 제일 잘 나가’도 그런 식으로 만든 곡이고. 나중에 사장님이 들으시고 “채린이와 어울리는 곡”이라고 하셔서 최종적으로 하게 된 곡이다.

Q. 요새 이효리를 비롯해 가요계에 나쁜 사람이 잔뜩 있다.
씨엘: 투애니원 시절부터 아시아 여성들의 소극적이고 부끄러워하는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외국인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부터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다. 그래서 투애니원 때부터 여성들을 대변해서 강한 목소리를 내는 노래를 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많은 여성 가수들이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기쁘다.

Q.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세계 여러 나라를 많이 다녔다.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시각을 몸으로 경험했을 것 같다.
씨엘: 디자이너 제레미 스캇을 만났을 때 아시아 여성이 나처럼 옷을 입은 것을 처음 봤다고 하더라. 한국에도 힙합을 즐기고, 여러 가지 패션을 시도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말이다. 아직도 아시아 여성들이 소극적일 거라는 시각이 있어서 놀랐다.

Q. 얼마 전 스놉 독과 함께 공연을 했다. 스눕 독은 미국 웨스트 코스트 신의 맹주로 자리하고 있다. 본인이 래퍼를 추구하는데 그런 전설적인 힙합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나?
씨엘: 아버지가 푸지스(The Fugees)를 좋아하셔서 어린 시절부터 들었다. 로린 힐의 음악을 참 좋아한다. 아버님이 마인드가 힙합이시다. 록도 좋아하셔서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가 양복도 잘 안 입으신다. 평소에 청바지, 운동화를 고집하시는 힙합 아빠다. ‘나쁜 기집애’를 들으시고 ‘나쁜 딸내미’라고 트위터에 올리셨다고 하더라. 그런 것이 든든하고 고맙다.

Q. ‘나쁜 기집애’는 느림 템포의 곡이다. 이런 곡은 혼자서 무대에 올라가면 사운드가 비어 보일 수도 있다.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씨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곡을 몇 천 번은 들었는데 아직도 너무 신나고 좋다. 나와 어울리는 곡이다. 다른 멤버들이 이 곡을 흥얼거리는 것을 보는 것이 뿌듯하다. 사장님도 ‘언니야’라고 하시고 빅뱅 오빠들도 ‘여왕벌’ 이러고.(웃음)

Q. 랩에서 동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가 떠오른다.
씨엘: 여러 가지 가사와 멜로디를 시도해봤다. 그 중에서 가장 재밌고, 순간순간 좋았던 것을 캐치해냈다. 우리가 꽂힌 대로 갔다고 할까?
씨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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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가사만 놓고 보면 남자 입장에서는 겁이 날 수도 있다. 연애할 때 실제로 그 면이 있나?
씨엘: 내 안에 씨엘과 채린이 있기 때문에 씨엘을 기대하고 다가오면 반전의 매력을 느끼거나 실망을 할 수도 있다. 연애할 때에는 씨엘이 아니지 않을까? 모르겠다. 해봐야 알겠지.

Q. 남성 팬이 멀어질 거라는 걱정은 안 해봤나?
씨엘: 이런 것을 좋아하는 남성 팬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지 않나? 나는 내 자신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 맞추기보다 내 자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Q. 가사에 ‘여자들은 언니라고 부르고, 남자들은 허니’라고 부른다고 나오는데 본인은 어떤 명칭이 더 좋은가?
씨엘: 둘 다 좋다.(웃음)

Q. 이번 곡이 지드래곤과 비교과 되기도 한다. 지드래곤은 ‘One Of A Kind’를 통해 세간의 자신의 이미지를 힙합 고유의 어법으로 잘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쁜 기집애’도 씨엘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비교되는 것이 아닐까?
씨엘: 그런가? 두 곡이 가지는 의미는 다르다. ‘One Of A Kind’는 ‘난 다르다’는 뜻이고, ‘나쁜 기집애’는 ‘나 자신이 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Q. 예전에 본인이 작곡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작곡을 하면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다른 작곡가의 곡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나?
씨엘: 그게 사실 강하게 표현이 됐다. YG에서는 소속 뮤지션에게 강요하는 이미지가 없다. 투애니원을 할 때에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업을 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음악에 있어서 좋아하는 일은 틀에 가두지 않고 해보고 싶다.

Q. ‘나쁜 기집애’에서 씨엘이 가사를 쓴 것은 래퍼로서 랩 메이킹을 한 것이다. 한국의 여성 래퍼가 많지 않다. 윤미래, 렉시, 미료 등이 알려져 있는데 이번 곡을 통해 어떻게 그런 선배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욕심은 없나?
씨엘: 그 안에 들어가면 너무 큰 영광이다. 하지만 난 내 영역을 래퍼에만 두지 않고,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

Q. 요새 씨엘이 좋아하는 것은?
씨엘: 내 성향이 그런데 예전의 것들을 좋아한다. 과거의 음악, 패션에서 나오는 오리지널을 가져와서 최신 트렌드와 섞는 것을 재밌어 한다.
씨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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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지드래곤이 단독공연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씨엘은 그런 단독 무대에 대한 욕심은 없나?
씨엘: 워낙 무대를 즐긴다. 관객들과 호흡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작년에 글로벌 투어를 하면서 이만큼 중독성 있고 아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투애니원으로서가 됐건 혼자가 됐건 무대는 항상 하고 싶다.

Q. 투애니원으로도 곧 컴백을 한다.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씨엘: 작년에 원래 ‘I Love You’를 내면서 투애니원 앨범이 나올 예정이었는데 글로벌 투어 ?문에 미뤄졌다. ‘I Love You’ 통해서 투애니원의 조금 다른 매력을 보여주려 했다면 이번에는 다시 투애니원스러운 모습을 나올 것 같다. 녹음해놓은 곡이 많아서 빨리 들려드리고 싶다.

Q. 데뷔 전 YG 사옥 앞에서 양현석 대표에게 데모를 직접 건네 준 채린과 지금의 씨엘은 어떤 차이가 있나?
씨엘: 나는 똑같다. 항상 언니들에게 어린이 취급해달라고 말한다. 16세에서 멈췄다. 언제나 어린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Q. 그래서 손톱에 1991을 새겼나? 어린 나이를 강조하기 위해?
씨엘: 뮤직비디오, 아트워크에 내 개인적인 의미를 많이 넣고 싶었다. 앨범 로고에 있는 양은 내가 양띠여서 넣은 것이다. 뮤직비디오 속 흰 가방에 내 얼굴이 그려진 것 등 나한테 의미 있는 것을 넣고 싶었다. 1991도 마찬가지다. 뮤직비디오에서 깃발을 들고 있는 장면은 잔 다르크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잔 다르크가 ‘난 이것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한 그런 여성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까?

Q. 그만큼 자신의 여러 가지 모습을 투영시켰는데 ‘나쁜 기집애’ 싱글 하나로 그치는 것이 아쉽지 않나? EP 규모로 몇 곡을 더 해보고 싶지 않던가?
씨엘: 지금은 투애니원을 시작하는 단계라 거기에 집중할 시기다. 작년에 박봄 언니가 ‘Don’t Cry’로 투애니원 미니앨범을 시작했듯이 나도 투애니원의 컴백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음악은 천천히 들려드리고 싶다.
씨엘 1
씨엘 1
Q. 지금 데뷔 4년 동안 씨엘의 열애설이 전혀 없었다. 지드래곤과 사석에서 함께 한 모습이 꽤 포착이 됐는데도 열애설이 안 나던데?
씨엘: 오빠와 너무 친하다. 지용 오빠 팬들도 질투를 안 한다. 나만큼은 믿는 것 같다. 왜냐면 딱 봐도 친구 같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이니까.

Q. 어떤 작업을 할 때가 가장 재밌나? 공연할 때, 녹음할 때, 랩을 쓸 때 멤버들과 지지고 볶고 할 때 중에?
씨엘: 뭘 만들어나갈 때가 제일 재밌다. 프로듀서 테디 오빠 스타일리스트 양승호, 서현승 감독님, 양 사장님과 무대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

Q. 씨엘의 나이가 아직 어린데 소속사 선배들의 음악을 얼마나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양현석 대표의 솔로 1집 〈Yang Hyun Suk〉, 지누션의 초창기 앨범들은 혹시 들어봤나?
씨엘: 물론이다. 내가 청소년 때 한창 원타임 오빠들이 활동을 했었다. 내가 원래 이상형이 없었고, 배우, 연예인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이 테디 오빠였다. 그래서 YG를 좋아하게 됐고 선배님들의 예전 음반들도 찾아 들어봤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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