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직장의 신] 김혜수 때문에, 미스김 덕분에 우리는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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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김(김혜수)은 은행원 시절, 엄마처럼 자신을 아껴준 진계장을 사지에서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가스가 누출된 물류센터에 갇힌 진계장의 아들, 장규직(오지호)을 구하는 것으로 씻을 수 있었다.

21일 KBS2 드라마 <직장의 신>(극본 윤난중, 연출 전창근 노상훈)이 종영됐다. 마지막 회에서는 미스김이 계약이 종료되고 와이장을 떠나는 에피소드가 그려졌다. 와이장은 미스김을 잡으려고 분투하지만 미스김은 고고히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나갔다. 그러나 떠나는 길목에서 장규직이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다시 슈퍼우먼처럼 나타나 그를 구해준다.

마지막 회에서 그녀는 장규직을 구하면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 동시에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판타지로 남은 미스김은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히 뚫어주며 대리만족시켜주는 존재로 기억됐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 비정규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화제가 된 드라마<직장의 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계약직)간의 차별은 물론, 재계약, 인사고과, 사내연애, 학자금 대출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비롯해 소소하게는 부모의 직업으로 은근히 차별받는 현실, 조직 내 만연한 회식 문화 등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차마 변화의 물꼬를 트지 못했던 문제들을 꼬집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드라마는 초반 우리 현실과 연관된 여러 에피소드들을 배치해 시청자의 공감을 산 것에 이어 중후반부부터는 주인공 미스김을 중심으로 한 와이장 사람들의 관계에 보다 집중했다. 사내연애나 인사고과 등 관계가 생겨나면서 스토리에 힘이 실리는 에피소드들은 그래서 중반부부터 배치됐다.

이 모든 현실을 반영한 에피소드들은 다소 비현실적인 주인공, 슈퍼갑 비정규직 미스김 캐릭터를 주축으로 펼쳐지면서 현실의 갑갑함을 탈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다.

미스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수한 자격증을 가져 누구보다 위기대처능력이 뛰어난 자발적 비정규직이다. ‘미스김 사용설명서’로 대변되는 그녀만의 룰로 조직과 대등한 관계를 맺으며 3개월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자유로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홀가분한 존재다. 정규직 제안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만 하는 회식에서도 그녀는 추가수당 없이는 결코 갈 필요가 없다.

언제나 차별당하면서도, 언제 잘려나갈지 몰라 불안한 직장 내에서 영원히 ‘을’로만 머물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그녀의 존재 그 자체는 대리만족이 되기 충분했다. 상상해보라. 추가 업무를 맡기는 상사에게 “점심시간입니다만!”, “그건 제 업무가 아닙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자신을. 차마 하지 못했던 그러나 입 속에는 늘 맴돌던 그 통쾌한 한 마디를 실제로 뱉어버리는 미스김의 존재는 비록 브라운관 속 허구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직장인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직장의 신>은 또한 캐릭터 미스김만큼이나 미스김이 된 김혜수라는 존재가 크게 부각된 드라마이기도 했다.김혜수는 지난 해 여름 영화 <도둑들>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고, 불혹을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기억되던 존재였다. 그러나 3년 만에 브라운관에 컴백한 그녀는 뒤뚱뒤뚱 희한한 모양새의 체조를 하고, 빨간 내복을 입고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고, 가위질을 하며 게장을 파는 미스김 캐릭터로 그야말로 기존의 고고한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키는 연기를 보여줬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무려 28년차 배우인 그녀는 쉴 새 없이 도전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통통 튀고 건강한 이미지의 청춘스타 시절을 지난 김혜수는 영화 <타짜>의 정마담과 드라마 <스타일>속 박기자, 그리고 <도둑들> 팹시처럼 아름답고 당당한 여성으로 주로 기억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열한 번째 엄마>의 엄마, <이층의 악당> 연주, 드라마 <즐거운 나의 집>김진서 등 다양한 배역으로 자신을 드러냈던 배우였다. 그 꾸준한 노력이 <직장의 신> 미스김을 통해 빛을 발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번 변신은 여러 후배 배우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동시에 연기를 향한 식지 않은 열정과 그것을 완벽하게 구체화시키는 노력과 능력을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보여주며 주어진 불평등한 환경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가진 열정과 노력이라는 진리를 몸소 증명해내는데 성공했다.

<직장의 신>은, 미스김은, 그리고 김혜수는 여러모로 시청자를 행복한 힐링의 길에 들어서게 했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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