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엄정화는 그냥 엄정화다
[INTERVIEW] 엄정화는 그냥 엄정화다
엄정화는 쇼 무대 위에서의 자신과 스크린 안에서의 자신을 완벽하게 분리할 줄 아는 엔터테이너다. 장르에 따라 자유자재로 가면을 바꿔 쓰는 배우이기도 하다. <싱글즈> <댄싱퀸>에서의 엄정화와 <오로라 공주> <베스트셀러>에서의 엄정화는 질감부터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댄싱퀸> 이후 1년. 신작 <몽타주>는 엄정화의 극적인 변화를 또 한 번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오열하는 <몽타주>의 하경에게서, <댄싱퀸>의 발랄한 엄마 정화를 찾기란 불가능한 일. 오늘 ‘몸빼’ 바지를 입고 시장을 전전하다가, 내일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남자를 유혹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여배우, 엄정화를 만나봤다.

Q. <몽타주>에 대한 평가가 좋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좋아 보인다.
엄정화:
그래 보이나?(웃음) 사실, 이게 ‘뭐지?’ 싶다. 많은 작품을 해 왔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뭔가 전해지는 분위기가 다르다. 피드백도 이전과는 다르고. 시사회 이후 매일매일 ‘오?’ 이러고 있다.

Q. 시사회 때 받은 느낌, 이를테면 흥행예감이 적중하는 편인가?
엄정화:
어느 정도 맞는 편이다. <몽타주>는 초중반까지 내 분량이 많지 않고, 혼자 연기한 씬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도 궁금한 영화였다. 다른 배우들이 어떤 연기를 펼쳤나, 궁금해 하면서 영화를 봤지.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게 아닌가. 시나리오에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들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살아있는 인상이었다. 영화가 시나리오보다 재미있게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몽타주>는 영화가 오히려 더 좋았다. ‘작품적으로는 자신 있다!’는 생각이 딱 왔다.

Q. 피드백이 이전과는 다르다고 했는데, 어떤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나?
엄정화:
반응? 너무 많다. 먼저 홍진경은 술을 끊었다. 아이를 가진 엄마 입장에서 보니까 마음이 더 아팠나 보다. 스스로를 똑바로 지켜야겠다고, 술에 취하면 안 되겠다고, 그랬다고 하더라.

Q. 홍진경 씨의 주량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웃음).
엄정화:
하하. 금주가 얼마나 갈지, 모를 일이야. 정재형 씨도 극찬을 해줘서 놀랐다. 재형 씨가 성격상 칭찬만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그리고 내 스타일리스트를 했던 20년 지기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잘했어!”라고 하면 정말 잘한 거다. 그 친구마저도 좋아해 주니까, 이건 뭐. 최고의 찬사인 거지.

Q.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사람들이 “엄정화는 애도 안 낳아 봤는데, 어쩜 저리 절절해?” 하더라(웃음). 그런데 사실 엄마 엄정화는 그리 낯설지 않다. <오로라 공주> <해운대> <베스트셀러> <댄싱퀸> <마마> 등에서 이미 엄마를 연기했으니까. 어떤가. 엄마 연기가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 같나?
엄정화:
아우~ 어렵다~ 매번 어려워. 그리고 사실 엄마다운 엄마 연기는 많지 않았다. <댄싱퀸>과 <마마> 때 그나마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엄마를 보여줬던 것 같고, 대부분은 엄마라는 특성 자체가 부각된 캐릭터는 아니었다. 자식과 마음을 교류하는 진짜 엄마 캐릭터를 연기할 날이 오겠지.

[INTERVIEW] 엄정화는 그냥 엄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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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상경 씨가 “<몽타주>는 정화 누나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했더라.
엄정화:
하하하하. 자꾸, 그 얘길 하네. 김상경 씨가.

Q. “가수 이미지가 강해서 연기력이 과소평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도 했는데, 그 말에 일부분 동의한다. 당신은 어떤가. 그런 선입견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었나?
엄정화:
흠… 완전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시상식 같은 자리에서 서운할 때가 왜 없었겠나. 대감독님들과도 작업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인연이 안 닿았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멀리보자, 멀리!’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후진 영화’는 안 했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그리고 사실, 흥행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잖아(웃음).

Q. 그렇지. <댄싱퀸>만 해도 너무 잘 됐지.
엄정화:
그러니까. 지금은 ‘저평가다 아니다’ 이런 걸 다 떠나서 그저 감사하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 아닌가.

Q. 김상경 씨 말을 듣고, 엄정화의 대표작에 대해 생각해봤다. 조금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신에겐 대중 모두가 공통적으로 떠올릴만한 작품은 없는 듯하다. 음악의 경우 대표곡으로 내세울만한 게 너무 많아서 뽑기가 힘든데 말이다.
엄정화:
맞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나 <싱글즈>를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뭔가를 하나 딱 꼽기가 애매한 게 있기는 하다. 작품 편수가 적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가끔 ‘너의 대표작은 뭐니? 너는 왜 그런 거 하나 없어?’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생각하지. ‘그래서, 뭐? 그럼 다른 배우들은 모두 대표작을 가지고 있어?’ 라고. 일종의 자기 위안을 하는 거다(웃음). 영화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이건, 내가 ‘열심히 하고 안 하고’ 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야. 보이지 않은 뭔가가 작용하는 세계다.

Q. 동의한다.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고.
엄정화:
그렇지. 모든 것들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순간을 지금 기다리고 있고, 그게 <몽타주>가 되면 너무 좋겠고, 그렇다.

Q. 많은 여자들에게 엄정화는 ‘멋진 언니’, ‘든든한 친구’, ‘어떤 로망’ 같은 존재다. 남자들이 바라보는 엄정화는 어떤 것 같나?
엄정화:
이젠 완전 누나인 것 같아. 아니! 왜 다들 나보고 누나라고 하지?(웃음) 어느덧 나도 선배가 됐다. 정말 그렇게 됐더라고. 이번 영화 특수효과팀에 ‘안토니아 반만데라스’라고, 진~짜 나이 들어 보이고 사투리 쓰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 앞에서 자꾸 “누나~ 누나~” 하면서 귀여움을 떠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살짝 적응이 안 됐는데, 나중엔 너무 좋았다. 왜 사람의 진심이라는 건, 꾸미지 않아도 느껴지잖아.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스스럼없이 누나라고 하는 구나’가 느껴졌다. 그런 따뜻한 느낌, 너무 좋다.

Q. 예전엔 어땠나? ‘섹시 디바’로 한창 활동할 때 말이다. 그땐 당신이 촬영장에 가면 많은 남성들이 설레어했을 것 같은데(웃음).
엄정화:
그럼!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웃음) 기운 자체가 달랐다. 뭐랄까. 여가수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인지, 내가 가면 남자 스태프가 “와! 엄정화다!” 이러기도 했다.(웃음) 지금의 촬영현장이 따뜻한 느낌이라면, 그땐 두근두근한 느낌이었다.

Q. 지금의 이 편안함이 아쉽기도 하겠다.
엄정화:
뭐, 어쩔 수 없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인데!

Q 시간의 흐름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엄정화:
그러려고 노력한다. 나도 여자인지라, 시간 앞에 얽매일 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고 휘둘릴 때도 있다. 상실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럴 땐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감정들이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만 하고 있기엔 내 일이 너무 소중하다. 해결되지 않은 고민으로 시간을 죽이기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다.
[INTERVIEW] 엄정화는 그냥 엄정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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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은 가수일 때와 배우일 때의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건, 연기할 때도 전혀 다른 두 가지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댄싱퀸> <싱글즈> <…홍반장>에서의 엄정화과 <베스트셀러> <마마> <몽타주>에서의 엄정화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엄정화:
어떤 치밀한 계획 하에 작품을 선택해 온 건 아니다. 하지만 의도가 완전히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끝나고 2년 동안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러다가 제안 받은 게 영화 <싱글즈>와 드라마 <아내>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집중해야 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시대를 대표하는 <싱글즈>의 여성 캐릭터와 완전한 정극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아내> 캐릭터를 함께 해보고 싶었거든. 내겐 도박과도 같은 선택이었지만, 그런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 것 같다. <오로라 공주>를 선택한 것도 장르를 넓히고 싶어서였고. 순간순간의 선택에서 운도 많이 따랐다.

Q. <베스트셀러>와 <댄싱퀸>은 애초에 당신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다.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은데, 또 누군가가 당신을 놓고 시나리오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었으면 좋겠나?
엄정화:
‘징’한 거였으면 좋겠네요. 어떻게든 징~한 거.

Q. ‘징’한 거? 얼마나 또 눈물을 뚝뚝 흘리려고.(웃음) 당신은 스크린 안에서, 예뻐 보이려 안달하지 않는 것 같다.
엄정화:
사실, 연기할 때는 예뻐 보이고 싶지 않다.

Q. 정말? 처음부터 그랬을까?
엄정화: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노래할 때는 예뻐 보이고 싶다. 멋있어 보이고도 싶고. 하지만 배우로서는 다르다. 연기할 때는 그런 욕심을 포기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스크린 안에서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생활인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쇼 무대에 서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인 거지. 그리고 내가 송혜교처럼 누구나가 인정하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배우도 아니잖아. 그런 의미에서 예뻐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한 거다.

Q. 이전에는 엄정화가 가수 활동을 메인으로 하면서 연기를 가지고 간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뒤집힌 듯한 인상이다. 물론 가수 활동은 부차적으로 한다는 건 아니고. 연기가 당신에게 그만큼 중요해진 느낌이랄까.
엄정화:
그런 시점이 자연스럽게 내게 왔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씩 정규앨범을 발매했었다. 그걸 10년 넘게 이어왔고. 그런데 그건 그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그럴 시간이었던 거고. 이제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할 시간이라고 본다. 매년 정규앨범을 내는 시기는 이제 지난 거지. 아쉽냐고? 아니. 오히려 내가 원하는 시기에 앨범을 발매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과 미래를 내다보는 시간이 공존하는 지금이 나쁘지 않다.

Q. 최근 당신의 ‘절친’ 이효리가 앨범을 내고 활동을 시작했다. ‘배드걸’ 이전에 선 공개된 ‘미스코리아’의 경우 밴드 <롤러코스터>의 느낌이 난다는 평이 많았는데, 확실히 (소위 말하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정화: 그렇지. 무시 못 하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는다.

[INTERVIEW] 엄정화는 그냥 엄정화다
[INTERVIEW] 엄정화는 그냥 엄정화다
Q. 그래서 묻는 질문인데, 당신은 오래 전부터 정재형, 루시드 폴 등의 뮤지션들과 깊은 친분을 이어왔다. 음악을 듣는 취향 역시 그들과 비슷한 걸로 아는데, 그에 비해 그런 흔적이 당신의 앨범에서는 크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신나는 음악에 주력해 온 느낌인데, 다음번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 봐도 재미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봤다.
엄정화:
그런데 요즘에는 또 대중적인 게 좋다. 가사가 적당히 있으면서 경쾌한 리듬이 반복되는 ‘후크송’도 귀에 잘 감기고. 다음 앨범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어쨌든 완전히 대중적인 앨범이 될 것 같다.

Q. 지금이야 가수와 배우가 경계 없이 분야를 오가고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다. 당신이 데뷔 했을 당시엔 더 드물었고.
엄정화:
그랬지. 그땐 김민종, 임창정 씨 정도가 가수와 배우 활동을 모두 했다.

Q. 당신이 20년 늦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지금 가요계에 데뷔한다면.
엄정화:
오, 재미있을 것 같은데?

Q.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이콘’이라 불리지 못하지 않을까. 일찍이 새로운 걸 개척했기에 ‘아이콘’이 된 건데.
엄정화:
아니, 왜? 또 아이콘이 되면 되지. 아하하하. 지금 여성 솔로는 많지 않으니, 경쟁력도 있다고 본다.(웃음)

Q. 많은 인터뷰에서 후배들에게 하나의 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엄정화:
하하. 그 얘기를 내가 왜 했는지~

Q. (웃음)스스로 중간평가를 해 보자면.
엄정화:
나에겐 롤 모델 같은 게 없었다. 나와 같은 행보를 걸었던 선배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연기 영역에서는 이미숙 선배 같은 분이 계셔서 ‘여배우가 나이 40이 넘어도 계속 멋있을 수 있구나’ 힘을 얻었지만, 가수 영역에서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하나의 길이 되고 싶다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음, (잠시 생각) 잘 달리고 있다고 믿는다. 더 잘 달리고 싶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노력 중인 거고.

Q. 최근 당신을 자극하는 게 있다면? 영화는 빼고.
엄정화:
없는 것 같은데? 요즘 내 생활은 굉장히 잔잔하다. 잔잔한데, 시간은 또 굉장히 잘 간다. 예전에는 쉬는 날에도 뭔가를 찾아 항상 분주하게 움직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체의 시간도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 고요한 시간에 많이 익숙해졌다.

Q. 10년 전인가? 영화잡지에서 “엄정화는 마를린 먼로였는데, 점점 마돈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엄정화: 어머, 진짜? 아, 좋아라. 그런 상징적인 인물을 둘씩이나.

Q.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마돈나와도 다른 행보다. 앞으로 어떤 인물과 가까워지고 싶나.
엄정화:
음, 다음은 그냥 엄정화였으면 좋겠다. 그 자체로 그냥 엄.정.화!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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